[진보생활백서]

반다(일상의 사소한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다큐인’, ‘팔레스타인평화연대’에서 활동한다.) | 사진 – 한경은

(* 이 글은 픽션임을 밝힙니다.)

“성폭력은 법정으로 가면 깔끔한 거 아냐?”

툭! 가느다란 기대가 끊기는 소리가 들린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요즘 선배 SNS 계정엔 여성학책 서평이 종종 올라왔다. 심지어 여성이 최후의 식민지라고 떠들어 대는 글도 보였다. 선배가 마초인 건 알았지만, 못 본 몇 년 사이 변화가 있는 줄 알았다. 기대를 품은 게 잘못이었다.

이 선배와 얘기하느니 코딱지만 한 내 원룸에서 벽 보며 얘기하는 게 낫겠다. 답답한 심장을 식혀야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아, 맥주 몇 캔을 사 들고 집으로 향한다.

건물 입구 우편함 앞에 옆집 두 남자가 서 있다. 술 한잔 했는지 목소리가 거칠다. “노동자후원회? 씨발 우리 건물에 빨갱이 사는구나”, “가방에 노란 리본 달고 다니는 년 아니야?”, “분명 못생긴 메갈년일 거야”, “큭큭큭”.

건물을 그대로 빠르게 지나쳐 옆 건물 현관을 서성인다. 조용해지고도 몇 분을 흘려보낸 뒤 비로소 내 원룸 건물 입구로 들어간다. 우편함에서 노동자후원회 소식지를 꺼내고, 얼른 계단과 복도를 지나 번호키를 누르고 몸을 집어넣는다.

‘띠리릭’ 번호키가 잠기는 소리와 동시에 묵직한 스틱을 옮겨 걸쇠를 완전히 잠근다. 맥주 캔 딸 힘조차 없다. 침대에 기절하듯 누웠는데, 얇은 벽 너머로 옆방 소음이 들린다. ‘소라넷에 새로 올라온 몰카 봤냐’는 이야기와 TV 소리가 벽을 비웃듯 고스란히 전해진다.

TV는 종편 시사 프로그램인 것 같은데, ‘해고의 정당성은 노사가 다툴 일이 아니라 법정에서 가려 줄 것’이라는 단호한 목소리가 들린다. ‘주장이 정당해도 과정이 적절해야 한다. 노사 문제는 대화로 풀어야지 폭력적 파업은 근절해야 한다’는 톤 높은 소리가 이어진다.

헉, 아까 술자리에서 선배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선배는 “성폭력 사건의 진위는 법정으로 가면 깔끔한 거 아니냐”, “성폭력 피해자라 하더라도 과정이 적절해야 한다. 둘이서 대화로 풀면 될 문제를 그렇게 푸는 건 옳지 않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리고 “페미니스트들은 성폭력 사건 앞에서 객관적이지 못하다”며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다.

선배를 만난 건 요즘 내가 참여하고 있는 성폭력 공대위 때문이었다. 요즘은 운동판 성폭력 가해자들도 명예 훼손이니 무고죄니 하며 사건을 쉽게 법정으로 몰고 간다. 사건 본질이 훼손되는 건 물론이고, 해결도 더 어려워지고 있다.

엊그제 피해자가 억울하다고 울먹이며 전화를 했다. 명예 훼손 소장을 받았단다. 속이 아렸다. 잠시 망설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가해자와 친하게 지냈던 선배에게 연락했다. 가해자를 좀 말려 보라는 말을 하려던 건데, 분노 게이지만 높아져 돌아왔다.

답답하다, 이 분노가 누구를 향하는 건지 모르겠다. 선배인가, 가해자인가, 옆집 저 두 놈인가, 여성 혐오와 성폭력이 넘치는 이 세상인가, 늘 제대로 싸우지 못하는 나인가.

아… 꽉 막힌 듯 답답한 마음! 미치지 않기 위해 글을 썼다는 어떤 여성 작가의 심정이 격하게 공감된다. 물음표를 가득 단 문장들을 SNS에 쏟는다.

# 좌파들의 성폭력과 사법부 사랑, 객관성

좌파들이 언제부터 그렇게 법을 좋아했지? 부르주아 법정을 욕하던 좌파들이 성폭력 사건 앞에선 유독 법 타령을 한다. 그게 강간인지는 법정에 가면 밝혀 줄 거라는 둥, 명예 훼손

으로 고소해야 한다는 둥. 법, 법, 법 타령이다. 심지어 성폭력 앞에서 페미니스트들은 객관적이지 못하다고 한다. 명치가 막히는 소리다. 도대체 객관성이라는 게 뭐냔 말이다.

우리가 좋아하는 민중 언론 <참세상>. 언론의 핵심은 ‘객관성과 공정성’인데 ‘민중 언론’이라니! 이런 편파적 언론이 어디 있단 말인가? 파업을 어떻게 보도해야 객관적인 거지? 노동자 입장과 자본가 입장을 반반씩 보도하면 객관적인 건가?

아악, 분노의 타이핑을 하는 이 와중에 옆집 TV 소리가 너무 크다. 저 새끼들은 종편 시사 프로그램의 쓰레기 같은 소리를 BGM으로 깔고, 컴퓨터 게임을 하고 있다. 패널들은 투사라도 된 듯 목소리가 경건하기까지 하다.

“노동자들이 파업 과정에서 공장을 점거하고, 기물을 파손했으니 손해 배상 청구는 당연한 것 아닙니까?”

“그렇죠. 우리는 법치 국가에 살고 있는데요, 노동자들은 아직도 착취 타령입니다. 감금 노동을 시켰나요, 노동자들이 자본가에게 착취당했다면 법적으로 설명하면 되는 거죠. 경영이 어려워서 해고가 필요하고, 퇴직금도 준다는데 도대체 뭐가 문제라는 건가요?”

빡친다. 이어폰 볼륨을 더 높이는 수밖에.

노동자의 해고는 어떻게 보도해야 ‘객관적’인 거지?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해고는 괜찮은 건가? 법으로 노동자의 착취를 설명할 수 있나? 법이 노동자의 권리를 대변하나? 필요한 것은 화합이 아니라 투쟁, 투쟁 없이 쟁취도 없는 것 아닌가?

성폭력이 어떻게 규정되어야 ‘객관적’인 거지? 법정에서 유죄로 판결이 나지 않으면 성폭력이 아닌 건가? 법으로 성폭력 피해를 설명할 수 있나? 법이 피해자의 권리를 대변하나? 투쟁을 통해서만 가부장제로부터 새로운 사회로 이행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우연은 역사적 필연 속에서 발생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던 이들이 유독 성폭력 얘기가 나오면, 딴소리를 한다. 왜들 이러시는가, 선수들이 새삼스럽게! 노동자의 해고와 파업은 맥락 없이 개별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에서 벌어지는 현실이 아니라, 자본주의에서 일어나는 ‘필연적 사건’이다.

성폭력도 맥락 없이 개별 여성과 남성 사이에 벌어지는 현실이 아니라, 가부장제 혹은 성별 계급 조건과 맥락 안에서 일어나는 ‘필연적 사건’이다. 그런데 그 맥락을 삭제한 채 개인 대 개인의 일이라는 관점으로 성폭력 사건을 제대로 볼 수 있다고 믿는 건가, 정말?

언제나 이 사회는 우리 저항을 어떻게든 입 닥치게 한다. 요즘 적들이 자주 쓰는 방식은 법적으로도 문제가 없다며 여론을 호도하고, 우리 저항에 벌금을 세게 때린다. 성폭력에 대해서도 늘 그랬다. 여성이 피해를 말하기 시작하면, 오히려 가해자로부터 명예 훼손, 무고, 모욕죄 등으로 역고소를 당하거나 벌금을 맞았다. 1986년 부천경찰서 성 고문 사건, 1993년 신◦◦교수 사건, 2001년 운동 사회 100인 위원회 사건… 최근 들어 명예 훼손과 역고소 사건이 크게 늘고 있다.

때로 성폭력 피해를 공적으로 말한다는 것은 성폭력 피해 경험 자체만큼 힘들다. 성폭력 피해를 부정당하고, 고소당하기 쉬우므로 아예 처음부터 입 닥치고 있는 게 가장 쉬운 일이 된다. 물론 이렇게 되는 건 가해자의 고소뿐 아니라 침묵으로 가해자를 옹호하는 이들의 ‘공모’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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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이렇게라도 쓰고 나니 좀 살겠다. 아까 선배의 말이 기가 막혔지만, 새삼스럽진 않았다. 그런 이들에게 성폭력이나 페미니즘은 신문의 잘 안 보이는 섹션에 배치된 그런 거다. 그러니까 알면 좋고, 트렌드한 단어 좀 뱉는 데 도움이 될 수는 있어도 중요하고 본질적인 것은 아니다. 사적이고, 사소한 그 무엇에 불과하다.

여성이 최후의 식민지라는 말을 어디서 주워듣고 떠들어 댔는지 모르지만, 그게 무슨 뜻인지나 알고 한 말일까?

안 되겠다, 포스팅을 하나 더 해야겠다. 열이 나서 잠을 못 잘 것 같다.

# 여성, 최후의 식민지

지구의 식민지 대표 선수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거리’란 차를 타고, 걷고, 사람을 마주치는 공간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도 그렇다. 그리고 동시에 검문을 당할 수 있으며,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꿇으라는 명령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이다. 언제든 자신의 몸은 통제·침해당할 수 있다. 폭탄이나 흉기로 오해될 만한 물건이 없는지, 일상적으로 몸을 살펴보게 된다. 이스라엘 사람과 팔레스타인 사람은 같은 거리에서 다른 공기를 마시며 산다. 팔레스타인 사람에게 점령과 산다는 건 그런 것이다.

한국은 성폭력과 여성 혐오가 만연한 사회다.

남성에게 ‘지하철’은 이동을 하고, 스마트폰을 보는 공간이다. 여성들에게도 그렇다. 그리고 동시에 쩍벌남의 다리가 내 다리에 닿는 불쾌감, 몰카를 찍힐 수 있는 공간이다. 언제든 자신의 몸은 통제·침해당할 수 있다. 일상적으로 몸을 살펴보게 된다. ‘오해’ 살 만한 옷매무새는 아닌지. 남성과 여성은 같은 지하철에서 다른 공기를 마시며 산다. 여성에게 가부장제와 산다는 건 그런 것이다.

만원 버스에서 누군가의 손이 한 여성의 엉덩이를 만지고 있다. 왜 여성들은 그 순간 소리를 지르지 않거나 못하느냐고? 왜 그 새끼 손모가지를 잡아서 부러뜨리지 않느냐고? 여전히 적지 않은 수의 여성은 그 순간 얼음이 된다. 당혹, 분노, 좌절, 불안, 살의, 두려움 등 8만 4천 개의 감정이 1초보다 짧은 찰나에 일어난다. 어리둥절해 하는 사이 손은 사라진다.

방금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거지? 집에 와서야 그 손모가지 새끼에게 저주를 퍼붓다가,  손모가지를 비틀지 못한 자신을 미워했다가를 반복하며 이불 속 하이킥을 한다. 그리고 약간의 시간이 지나면 정신 건강을 위해 그 사건을 잊고 지내기로 한다.

만원 버스뿐일까? 이런 식의 일은 형태를 조금씩 달리하며 일상 곳곳에서 벌어진다. 그리고 대부분은 친구, 동지, 연인 같은 관계에서 일어난다. 법정에서 이 여성에게 왜 거부 의사를 표현하지 않았는지 설명해 보라면 뭐라고 하면 되는 걸까, 흉기로 위협하거나 감금한 것도 아닌데 왜 제대로 저항하지 못했냐고 물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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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담배 한 대 피우고 정말 자야겠다. 담배 연기에 답답한 마음을 실어 보내며, 선배에게 문자를 보냈다.

“선배는 항상 변혁의 대상은 먼 곳 저들이고, 자신은 변혁의 주체라고만 생각하는 것 같아. 변혁의 대상은 선배야, 최소한 성폭력 이슈에 대해선 말이야. 그리고 언젠가 내가 될 수도 있겠지. 기꺼이 자신 또한 변혁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인정하고 성찰할 때, 그때 세상은 변한다고 봐. 아참, 그리고 명예 훼손 금액이 3000만 원이라고 말했던가? 이 싸구려 원룸 보증금도 보태야 할 것 같아, 고마워!”

벌써 담배 한 개비가 끝났다. 옆집 그 두 놈의 우편함에 담배꽁초를 버리고, 우편함 뚜껑에 메갈리아에서 만든 몰카 금지 스티커를 붙여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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