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 없는 노력으로 한 뼘 늘어난 집회 시위 자유

박점규(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집행 위원을 맡고 있다.)


2007년 3월 13일 새벽 0시 경북 구미경찰서. 코오롱 해고 노동자들과 회사가 고용한 용역 경비들이 집회 신고를 내기 위해 모였다. 한 달 뒤인 4월 12일 코오롱 회사 창립 50주년 기념일에 회사가 대대적인 창립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해고 노동자들은 이에 맞춰 집회를 할 계획이었고, 회사는 노조 집회를 막기 위해 집회 장소를 선점해야 했다. 노조는 집회를 오전, 오후로 나눠서 하자고 제안했지만 회사와 경찰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경찰은 새벽 0시가 되면 철문을 열 테니 먼저 달려온 사람의 집회 신고서를 접수하겠다고 했다. 노동자들은 달리기 시합으로 집회 신고를 접수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반발했지만, 경찰은 노조 간부들을 경찰서 밖으로 쫓아내고 달리기 시합을 강행했다. 회사 측 관리자와 용역 경비 70여 명, 노동조합 해고자 40여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달리기 경주가 벌어졌다. 회사는 20대 젊은 용역 경비들 중에서 육상 선수 출신을 뽑았다. 노동조합도 나름대로 날쌔다는 정 모 조합원을 출전시켰다. 해고자의 나이는 서른일곱, 회사 용역 경비의 나이는 20대 초반이었다. 경찰서 철문이 열렸고, 상황 접수실까지 30미터 단거리 시합이 벌어졌다. 그러나 800일이 넘는 장기 투쟁으로 체력이 소진된 해고 노동자는 20대 용역 깡패를 이길 수 없었다.

박우택 코오롱노조 조합원은 “이날 집회 신고를 하지 못했다는 것보다 희한한 경기가 끝나고 회사 관리자들이 ‘돈 없으면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지’라며 노래를 불렀는데 그게 더 속이 상하고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서울의 동작경찰서도 달리기 시합으로 집회 신고를 받았고, 남대문경찰서는 의자에 먼저 앉기를 했다. 노동 단체나 인권 단체들이 유령 집회를 금지하고 중복 집회를 허용하라고 요구했지만, 경찰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웹툰과 드라마 〈송곳〉에서 집회 신고를 내기 위해 달리기 시합을 하는 장면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집회 신고 달리기 시합

2011년 11월 15일. 현대자동차 울산 공장 비정규직 해고자들이 봉고차를 타고 서울에 올라왔다. 집회 신고를 하기 위해 찾아간 서초경찰서엔 시커먼 옷을 입은 청년 30여 명이 줄을 서 있었다. 자정이 되면 맨 앞에 있는 청년이 서초구 양재동 현대차 본사 앞에 집회 신고를 내고, 그다음 청년은 서초동 삼성 본사에 집회 신고를 한다. 집회 신고를 마친 청년은 맨 뒤로 가서 다시 줄을 선다. 비정규직 노동자 6명이 그 뒤에 줄을 섰다. 꼬박 17일, 400시간을 그 자리에서 먹고 자면 비정규직의 순서가 돌아왔다.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집시법) 제8조 2항은 “관할 경찰서장은 집회 또는 시위의 시간과 장소가 중복되는 2개 이상의 신고가 있는 경우 그 목적으로 보아 서로 상반되거나 방해가 된다고 인정되면 뒤에 접수된 집회 또는 시위에 대하여 금지를 통고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경찰이 이를 악용해 선착순으로만 집회를 접수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집회 신고를 받아주지 않아 벌어진 일이었다. 재벌들의 집회 장소 선점 때문에 ‘집회 신고 전문 알바’까지 생겨났다. 돈 많은 기업들은 집회마저 돈으로 사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집회 한 번 하기 위해 23일을 거리에서 보내야 했다. 대한민국 헌법 제21조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는 조항은 재벌의 돈 앞에 휴지 조각이 됐다.

400시간 줄 서서 집회 신고

노동자들은 ‘집회 시위의 자유’를 향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집회가 금지되면 집시법 제9조(집회 및 시위의 금지 통고에 대한 이의 신청)에 따라 지방경찰청에 이의 신청을 해 24시간 내에 재결(裁決)을 하도록 하고, 법원에 효력 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서 대응했다. 2010년 9월 기아차 모닝을 만드는 동희오토 사내 하청 해고자들과 노동 사회단체 회원 60여명이 집회 신고서를 들고 서초경찰서 민원실로 모였다. 새벽 4시까지 밤샘 농성을 벌인 끝에 현대차가 선점한 장소 중 2곳을 동희오토 하청노동자들이 사용할 수 있게 됐다. 회사가 내놓은 유령 집회에 대한 노동자들의 항의와 반발이 거세지자 경찰은 날짜를 하루씩 정하거나 오전, 오후로 나눠 집회를 하도록 했다.

집시법 제10조(옥외 집회와 시위의 금지 시간)는 “누구든지 해가 뜨기 전이나 해가 진 후에는 옥외 집회 또는 시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맞서 노동자들은 ‘문화제’라는 이름으로 늦은 밤까지 집회를 벌였다. 48시간 이전에 신고해야 하는 집시법 규정 때문에 ‘기자회견’ 형식을 빌려 사실상 집회를 진행했다. 2008년 5월 2일 시작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집회는 집회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저녁에 시작한 집회가 밤새 계속되고 새벽에 끝났다. 3개월 동안 밤샘 집회로 이어졌다. 경찰은 집시법의 야간 집회 금지 위반으로 주최자들을 기소했다. 2008년 10월 법원은 “헌법이 집회ㆍ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는데 야간 옥외 집회를 사전 허가제로 운영하는 것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해당 집시법 조항에 대해 위헌 법률 심판을 제청했다. 2009년 9월 24일 헌법재판소는 야간 옥외 집회를 금지한 집시법 10조와 벌칙을 규정한 23조 1호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밤에도 문화제라는 이름을 빌리지 않고 마음껏 집회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촛불 집회의 힘, 야간 집회 금지 위헌 결정

국회는 집시법의 중복 집회 금지에 대해 “집회 또는 시위의 시간과 장소가 중복되는 2개 이상의 신고가 있는 경우 그 목적으로 보아 서로 상반되거나 방해가 된다고 인정되면 각 옥외 집회 또는 시위 간에 시간을 나누거나 장소를 분할해 개최하도록 권유하는 등 서로 방해되지 아니하고 평화적으로 개최·진행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법을 개정했다.

지난해 12월 대법원은 차량 정체를 일으키거나 공공질서를 해치지 않는 평화적인 집회나 시위에 대해 신고된 범위를 벗어났다는 이유로 해산을 명령한 것은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법원은 “신고를 안 했다는 이유만으로 옥외 집회 또는 시위를 헌법의 보호 범위를 벗어나 개최가 허용되지 않는 집회 또는 시위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지난 4월 2일 서울 양재동 현대자동차 본사에서 집회가 열렸다. 현대차가 교사한 유성기업의 노조 탄압으로 목숨을 잃은 한광호 열사를 추모하고, 현대차를 규탄하기 위한 집회였다. 현대자동차는 본사 앞과 하나로마트, 길 건너편 사거리까지 인근 6곳의 집회를 선점하고, 기초 질서 지키기 캠페인을 벌인다. 용역을 동원해 매일 집회 신고를 한다. 유성기업 대책위는 하나로마트 앞에 집회 신고를 했다. 경찰은 현대차 1순위, 유성기업 대책위를 2순위로 지정했다. 집회 당일 현대차는 하나로마트 집회 취하서를 냈다. 현대차 바로 옆에서 하는 집회는 언제든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지금도 재벌들은 돈으로 집회를 사고 있지만, 달리기 시합이나 400시간 줄서기는 사라졌다. ‘집회의 자유’를 향한 쉼 없는 노력으로 얻어낸 한 뼘의 자유다.

(워커스 5호 2016.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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