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의 집요하고 사소한 트집에 타협하지 않기

 

오진호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네트워크 집행위원. 노동과 사회 운동의 접점이 늘어나기를 바라며 활동 중이다.


 

 

2015년 1월의 어느 날, 서울지방경찰청 민원실로 잠입했다. 이현준 쌍용자동차 정비지회 동지는 혹시 몰라 카메라를 들었고, 나는 한 손에 봉투를 들었다. 마음을 졸이며 민원실로 들어가자 의경으로 보이는 직원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긴장된 표정으로 말했다. “집회 신고 하러 왔는데요.”

목표는 1월 7일부터 진행할 오체투지 행진 신고. 오체투지 행진은 정리 해고와 비정규직 제도가 얼마나 우리 모두의 삶을 파탄 내는지 온몸으로 알리기 위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청와대에 그 책임을 물어야 했고, 청와대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이전 사례를 보면 청와대 행진은 무조건 금지였다. 전날 밤 사람들과 함께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다. 청와대까지 한 번에 행진 신고를 내면 금지일 테니 우선 정부종합청사까지 행진 신고를 내고, 정부종합청사에서 청와대는 별도로 신고해 법적으로 다퉈 보는 것은 어떨까. 아예 통째로 금지 통보를 받고, 법원에 집행 정지 신청을 빨리 내는 것은 어떨까. 광화문 광장에서 청와대까지 가는 것을 민감해하니 조금 돌아가더라도 독립문 쪽으로 행진 신고를 내는 것은 어떨까. 전날 밤부터 몇 가지 시나리오를 그려 놓고 경찰청을 찾았다.

그러나 우리가 짜 놓은 시나리오는 경찰의 ‘사소함’ 앞에 무너졌다. 경찰은 행진 경로가 아니라 세 걸음 걷고 오체투지를 하는 행진 방식을 문제 삼았다. ‘3보 1배’는 교통에 지장을 준다는 것이 경찰 주장이었다. 그때부터 경찰과 우리의 밀당이 시작됐다. 통행량이 많은 교차로와 횡단보도에서 ‘5보 1배’를 하는 것이 어떠냐는 우리 안을 경찰은 거부했고, 경찰은 오히려 ‘10보 1배’로 행진하다 교차로나 횡단보도에서는 ‘30보 1배’나 ‘40보 1배’를 할 것을 요구했다. 횡단보도는 그냥 걸어가라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요구였다. 몇 걸음을 걷고, 1배를 할 것인지를 놓고 경찰과 네 시간을 다퉜다. 우리는 격해졌고, 민원실로 내려온 집회 신고 담당자는 본인이 결정할 수 없는 영역이라며 쉼 없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렇게 네 시간이 넘으니 더 이상 협상의 여지가 없었다. 행진 경로는 정부종합청사까지, 행진 방식은 교차로와 횡단보도 ‘5보 1배’. 최후 안으로 던져 놓고, 경찰청을 나왔다. 다행히 우리 안이 받아들여졌다. 물론 경찰은 광화문 횡단보도를 건너는 오체투지 행진단에 난입했고, 행진단을 횡단보도 밖으로 내팽개쳤지만.

 

경찰 통제의 승리

 

경찰의 사소한 통제는 점점 그 영역을 넓혀 가고 있다. 2016년, 도로 행진을 추진하는 이들의 가장 큰 화두는 300명이다. 경찰이 행진 대오가 300명을 넘지 않으면 행진을 불허하겠다고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법적 근거는 없다. 올해 들어 300명이 안 되는 행진에 경찰이 난입한 경우만 수차례다. 행진을 주최한 사람들은 행진이 시작하기 직전까지 우리 숫자가 300명이 넘을지 아닐지를 놓고 전전긍긍한다. 300명이 안 되면 도로로 행진을 시도할 것을 ‘결의’하던가 그냥 경찰 통제에 따라 인도로 행진할 것인가를 선택해야 한다. 사람 수가 적어도 문제지만 사람이 많아도 경찰은 경고 방송 등을 통해 트집을 잡는다. 이제 원활한 집회를 위해 출석 체크를 해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경찰은 지난 3월 26일, 무교동 사거리에서 시청 광장까지 오는 인도 행진도 문제 삼았다. 행진하는 참가자 앞을 경찰 병력이 갑자기 막아섰다. 행진 신고가 왼편 인도로 되어 있는데 오른편 인도로 행진을 했다는 것이 행진을 막은 이유였다. 승강이를 벌이느라 250미터를 이동하는 데 두 시간이 걸렸다. 원래 서울 시청 한광호 열사 분향소를 들러 다시 종로구청 인근 동양시멘트 농성장까지 가고자 신고한 행진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체됨에 따라 결국 서울시청 한광호 열사 분향소에서 일정을 마무리했다. ‘사소함’을 트집 잡은 경찰의 승리였다.

 

선을 지키면 행복해질까

 

서울 경찰이 최근 집착하고 있는 폴리스라인은 ‘선선선, 선을 지키면 행복해져요’라는 서울시경 캠페인의 일환이다. 교통안전선, 질서 유지선, 배려 양보선. 이 세 선을 준수하면, “서울이 보다 안전하고 질서가 바로 선 행복한 도시로 발돋움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담긴 캠페인이다.

음향 장비와 선전 물품을 준비하고, 사람들을 모으기 위해 전화를 돌리고, 시간과 돈을 투자해 집회를 준비하는 이유는 그만큼 우리가 절박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삶이 행복하지 않기에, 가만히 있으면 더 위험해지기에 본인들의 위태로운 현실을 알리는 일환으로 집회를 택한다. 절박함을 알릴 다른 방법이 딱히 떠오르지 않기에 집회를 한다. 이들 앞에 폴리스라인을 친다고 안전하지 못한 삶이 안전함으로 포장되지는 않는다.

집회를 준비하고 있으면 누군가가 다가온다. “고생이 많으십니다.” 해당 경찰서 정보과 형사다. 이들은 현장에 와서 이것저것 캐묻고 소위 ‘현장 조율’을 시도한다. 상부 지시로 폴리스라인을 칠 수밖에 없다며 으름장을 놓는다. 우리 쪽 담당자가 잠시라도 방심하는 순간 집회는 가두리가 된다. 집회 대오 주변에 폴리스라인이 서고, 지나다니는 시민들과 집회 참여자는 나누어진다. 폴리스라인이라는 섬에 갇힌 집회는 왠지 위험해 보이는 집단의 회합 정도로 전락한다.

 

사소한 트집 앞에 타협하지 않기

 

집회 신고에서부터 집회 현장까지, 경찰의 끊임없는 사소한 트집 잡기가 이어지면서 이제는 우리 스스로 우리 집회를 검열한다. 목적과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집회 방식이 먼저 떠오르기보다는 금지 통고를 받지 않기 위한 집회 방식이 먼저 떠오른다. 집회 참여자 숫자와 음향 볼륨, 신고 물품과 실제 집회 물품이 동일한지까지 트집 잡는 경찰의 집요함에 우리는 이제 폴리스라인 정도는 적당히 타협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렇게 헌법에 보장되어 있다는 ‘결사의 자유’는 ‘불온한 권리’로 전락한다.

참가자들이 경찰의 벽을 넘겠다고 싸우던 어느 집회에서 주최자가 경찰 관계자와 담배를 피우며 웃고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그 주최자가 집회를 개최하기 위해 들였을 고생이 떠올랐고, 디테일을 트집 잡았을 경찰의 집요함이 떠올랐다. 집회 신고자의 귀찮음을 무릅쓰고 지켜 낸 집회 신고는 우리 권리를 지키는 마지노선이다. 참여자들은 주최자들이 신고하고 진행하는 방식에 따라 싸운다. 물대포 앞에 맞서기도 하고, 연행을 감수하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그 격렬한 순간 그가 경찰과 피우던 담배 한 개비가, 그 여유가 괜히 야속했다.(워커스 8호 2016년 5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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