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위기 조성에서 노골적 추진까지, 의료 영리화 연대기

신나리 기자
사진 이우기 / 강남역_38,700,000원 / 2008

 


 

공공 의료가 위협받기 시작한 건 오래됐다. 일각에선 이명박 정부에 그 책임을 떠넘기지만 사실 김대중 정부 말기에 나온 〈경제자유구역의지정및운영에관한법률(경제자유구역법)〉이 의료를 산업화하겠다는 움직임의 시작이었다. 참여 정부의 의료 선진화 정책도 그 궤를 이어받았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 이르러 의료 민영화나 의료 영리화라는 이름을 얻었지만 실체는 다르지 않다. 공공 의료를 포기하고 국민 건강을 민간 자본에 맡기는 것. 반면 그때부터 지금까지 의료 영리화를 주도하고 있는 이가 있다. 삼성이다. 이 기획에선 삼성이 의료 영리화의 시대를 어떻게 대비하고 있는지, 그 대비를 위해 어떤 작업을 해 왔는지, 삼성의 의료 영리화 로드맵은 얼마나 완성됐는지 살펴본다.

① 이재용의 삼성, 이번에는 HT 산업이다 (8호)

② 삼성서울병원은 왜 성균관대 부속 병원이 아닌가 (8호)

③ 분위기 조성에서 노골적 추진까지, 의료 영리화 연대기

④ 의료 영리화 해외 사례


 

 

출발은 시장 개방이었다. 1990년대 초 ‘우루과이 라운드(UR)’는 세계 시장의 문을 활짝 열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40년 동안 국제 무역 질서를 이끌었던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이 변화한 것이다. 1993년 12월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이 타결되고, 1994년 1월 세계무역기구(WTO)가 정식 출범하면서 당시 김영삼 정부는 시장 개방 분위기를 조성했다. 쇠고기·돼지고기, 고추·마늘 등 농축산물 14종에 대한 전면 수입 자유화 조치가 이뤄졌고, 한편에서는 보건 의료 역시 시장 개방에 노출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기 시작했다.

 

예측은 현실로 다가왔다. 2000년대 들어 의료 영리화는 더욱 구체화됐다. 김대중 정부를 시작으로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정부는 의료 선진화, 의료 민영화 혹은 의료 영리화로 이름만 바꾸며 의료를 개방하고 산업화하겠다는 노력을 꾸준히 했다. 우연인지 의료 민영화 논의가 활발해진 시기 삼성과 정권의 관계도 돈독해졌다. 의료 분야 시스템을 본격적으로 산업화의 방향으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 참여 정부와 삼성의 밀월 관계는 유명하다. 백재중 건강미디어협동조합 대표는 저서 《삼성과 의료 민영화》에서 “참여 정부의 경제 정책 아젠다는 삼성이 끌고 갔다고 할 수 있을 정도”라며 “이 당시 의료 산업화 정책은 기업 논리를 충실히 따르는 것으로 결국 민영화 논란이 촉발되는 계기가 됐다. 경제 자유 구역의 영리 병원 허용 문제를 본격적으로 거론하기 시작했고, 민간 보험 회사들을 위한 실손형 보험을 시행했다”고 밝혔다. 이어 “삼성경제연구소는 한미 FTA 아젠다의 논리적 기반 형성에도 크게 기여했다. 한미 FTA의 주요 내용은 서비스 시장 개방, 의료 산업 개방 등인데, 이런 내용은 삼성그룹의 이해관계와 일치하는 것들”이라고 지적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부터 의료 민영화 정책을 공언한 이명박 대통령 역시 황영기 전 삼성증권 사장, 지승림 전 삼성중공업 부사장, 친 삼성 인물로 꼽히는 윤증현 전 금감위원장 등 삼성과 관련된 인사를 인수위에 포함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김대중 정부에서 박근혜 정부까지, 이름은 다르지만 주제는 하나 ‘의료 영리화’

 

김대중 정부는 2002년 1월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 국가 실현 구상’을 발표했다. 같은 해 12월에는 〈경제자유구역법〉을 통해 이를 구체화했다. 경제 자유 구역의 성공은 외국인 투자 유치에 달려 있었다. 경제 자유 구역 내에 외국인을 위한 의료 시설 등 편의 시설이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법률은 3장 제15조(조세 및 부담금의 감면), 5장 제23조(외국인 전용 의료 기관 또는 약국의 개설)를 통해 경제 자유 구역 내 외국인 전용 의료 기관 설립을 허용했다. 당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은 “경제 자유 구역 내 의료 기관은 국민건강보험법 규정에 의한 요양 기관으로 간주되지 않아 건강 보험 제도의 적용을 받지 않는 완전 상업 의료 체제가 될 것”이라며 “이에 따라 민간 의료 보험이 도입될 개연성이 높으며, 외국인만을 대상으로 운영한다지만 우리나라 의료 관행을 볼 때 고소득 내국인의 의료 기관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시민 단체들 역시 이러한 의료 기관이 영리 병원의 신호탄이라고 지적했지만, 정부는 이 병원이 외국인 전용이라 국내 의료 체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참여 정부는 의료 영리화를 보다 구체적으로 이끌었다. 의료 서비스 산업의 경쟁력 강화 방안을 마련하고 민간 의료 보험 활성화, 병원 영리 법인화 등을 논의했다. 당시 보건복지부는 2004년 3월 ‘동북아중심병원유치를위한실무팀’을 구성하고 내국인 진료 허용을 검토했다. 같은 해 12월 정부는 국회 본회의에서 〈경제자유구역법〉을 개정했다. 외국 영리 병원의 내국인 진료를 허용한 것이다. 참여 정부가 영리 법인화와 건강 보험 당연 지정제 폐지로 가는 기반을 닦았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5년 1월 신년 기자 회견에서 “교육과 의료 등 고도 소비 사회가 요구하는 서비스를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전략 사업으로 육성하겠다”고 발표했다. 10월에 이해찬 총리가 위원장을 맡은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가 발족했고, 이듬해 7월 ‘의료 산업 선진화 전략’을 발표했다. 위원회는 제주도 영리 의료 법인 허용과 의료 자본의 활성화 방안을 논의했다. 2006년 12월에는 ‘1단계 서비스 산업 경쟁력 강화 종합 대책’을 발표하며 병원 경영 지원 회사(MSO), 인수 합병, 유인 알선 행위를 허용하고 실손형 민간 의료 보험을 활성화할 것을 제안했다. 정부가 종합 대책을 발표하자 재정경제부가 발을 맞추었다. 재정경제부는 〈MSO 활성화를 위한 제도 개선 방향〉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MSO가 외부 자본 유치 후 병원 시설 임대·리스, 경영 위탁 등을 통해 외부 자본의 의료 기관에 대한 투자를 활성화하고, MSO는 의료 기관에 대한 수수료 수익을 투자자에게 배분”하자는 내용을 담았지만, 실행되지 못했다. 이어 참여 정부는 2007년 2월 〈의료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 했다(당시 이를 주도했던 인물이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다). 이 개정안은 건강 보험 당연 지정제 폐지를 제외하고 그간 추진된 의료 민영화 정책을 망라한 법안으로 대한의사협회(의협)가 반대하는 등 논란을 일으킨 채 결국 무산됐다.

 

보다 적극적으로 좀 더 노골적으로

 

의료 민영화는 이명박 정부의 핵심적인 의료 정책이었다. 핵심은 ‘영리 법인 병원 도입’이다. 정부는 효율성, 의료의 질, 경쟁 등을 내세워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의료로 전환하려 했다. 건강연대 정책위원회는 2009년 〈의료 민영화 정책이 국민 건강에 미치는 영향과 대응 방안〉에서 이명박 정부 의료 민영화의 핵심 정책을 ‘영리적 자본 투자 장치 마련, 제주도·경제 특구 내 영리 의료 법인 허용, 민간 보험 활성화’로 설명했다. 정부는 2008년 병원도 외부 투자자의 채권 투자를 받고 수익을 나눌 수 있도록 한 〈의료채권법〉을 발의했지만, 촛불 시위라는 국민의 반발에 부딪혀 추진하지 못했다. 하지만 의료 민영화를 위한 발판을 차분히 마련했다. 〈경제자유구역법〉을 특별법으로 격상하고, 2012년 외국 의료 기관 개설 허가 절차 위임 규정을 담은 〈경제자유구역법〉 시행령을 개정했다. 이어 같은 해 10월 〈경제자유구역내외국의료기관의개설허가절차를담은 시행규칙〉 을 제정·공포했다. 영리 병원 도입을 위한 제도적 절차를 완성한 것이다. 법률이 아닌 시행 규칙을 통해 영리 병원을 우회적으로 허가했다. 또, 외국 의료 기관과 공동 운영을 명문화해 수익 분배, 해외 송금 등 한국의 의료 기관에서 할 수 없던 문제를 해결했다. 포장은 외국 의료 기관이지만 사실상 국내 영리 병원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국내 기업이 투자 지분 중 49%를 투자할 수 있고, 내국인도 진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경제 자유 구역 내 외국인 병원이라고 주장했지만, 사실상 국내 영리 병원이라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 역시 의료 민영화 정책을 밀어붙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공약으로 ‘4대 중증 질환 100% 보장’을 내세웠지만 당선 이후 국정 기조를 ‘경제 성장과 규제 완화’로 바꾸며 의료 민영화 정책을 노골적으로 추진했다. 공공 의료 기관(진주의료원) 폐원 역시 박근혜 정부에서 이루어졌다. 방법은 교묘해졌다. 법 개정이 아닌 행정 가이드라인과 시행 규칙 개정을 택한 것이다. 이는 국회의 동의나 공청회 등 여론 수렴을 피하는 방식이다. 결국 박근혜 정부는 비영리 병원의 영리 자회사를 허용했고, 부대사업 범위를 확대했다. 신의료 기술에 대한 규제 역시 완화했다. 특히 의료 법인의 영리 자회사 설립안은 시민 사회 단체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다. 투자자에게 수익을 배분할 수 없다는 뜻에서 ‘비영리’로 규제되었던 한국의 법인 병원의 빗장을 풀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비영리 병원이 영리 자회사를 만들어 외부 투자자의 투자를 받고 이윤 배분을 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정부가 추진한 부대사업의 확장 역시 비판을 받았다. 기존의 부대사업은 환자 편의를 고려한 주차장, 장례식장, 구내식당으로 한정돼 있었다. 하지만 새롭게 허용된 부대사업은 부동산, 건강 증진 식품, 의료기 기업, 화장품까지 가능해졌다. 이를 두고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이 조치는 병원을 ‘종합 쇼핑몰과 호텔, 부동산 임대업을 하면서 가끔 환자도 치료하는 곳’으로 바꾸려는 시도”라며 “의료 등 생활용품 판매업과 식품 판매업, 관광 호텔에다 헬스 클럽, 목욕탕, 수영장 등이 부대사업이 된다. 여기에 부동산 임대업까지 병원 부대사업으로 포함해 사실상 병원 기업을 가능하게 했다”고 지적했다. 국내 첫 영리 병원도 생겼다. 정부는 지난해 12월에 제주도에 국내 첫 영리 병원인 녹지국제병원을 승인했다. 민간인이 설립하고 병원비도 비싸지만 건강 보험은 적용되지 않는 영리 병원이 탄생한 것이다.

 

정부가 가속 페달을 밟았던 의료 영리화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여소야대’로 개편된 4.13 총선 결과 때문에 주춤할 거라는 예상은 깨졌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총선 직후 전체 회의를 열어 의료 법인의 인수 합병을 가능토록 한 〈의료법〉 개정안을 가결한 가운데, 여야 3당이 19대 임시 국회에서 이 법을 처리하기로 잠정 합의했기 때문이다. 〈지역전략산업육성을위한규제프리존의지정과운영에관한특별법안(규제프리존특별법)〉은 다른 법령에서 명시적으로 금지하는 사항 이외에는 모두 허용하는 방식인 ‘원칙 허용·예외 금지 규제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이 법안 대로면 〈의료법〉 등에서 명시적으로 금지하는 조항 이외에는 모든 행위가 허용된다. 따라서 원격 의료, 건강 관리 서비스 등 의료 영리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이에 시민 단체의 반발도 확산하고 있다. ‘의료민영화저지와무상의료실현운동본부’는 “총선 후 첫 국회 합의가 의료 민영화·영리화 법안이라는 것은 총선에서 보여준 민의를 해석하지 못한 것”이라며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의 지역화 전략인 〈규제프리존특별법〉을 즉각 폐기하라”고 주장했다. 대한의사협회 역시 “법이 제정될 경우 〈의료법〉 등 보건 의료 관계 법령의 상위법”이 된다며 “보건 의료를 경제 산업화 관점에서 추진해 국민 건강을 훼손시키며 의료 영리화를 추진할 수 있게 된다”고 우려를 표했다. 정부와 정치권의 휴식 없는 의료 영리화 시도에 따라 사회적 갈등도 쉬지 않고 터져 나올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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