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6일 오후 대구 성서공단역 앞에서 진행한 '이재명 정부 강제단속 규탄! 우리친구 뚜안 살려내라' 이주민 집회.
2011년 겨울, 당신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당신을 만났지요.
당신 아버지는 창원의 한 금속 공장에서 일하다 지게차에 끼어 생을 마감하셨지요.
한국에서 이주노동 10년째였던 당신의 엄마와 아버지.
10년 만에 아버지와 대면했던 열두어 살의 당신.
어린 당신에게 맞는 상복이 없어 온몸을 감싸고도 남는 검은 양복을 입고,
바스러질 것 같았던 엄마 곁에 앉아 있던 당신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14년이 지나 이제 서른을 앞둔 청년이 되었겠네요.
K-팝, K-컬처로 세계의 청년들이 한국에 관심을 갖는다고 하는데,
아버지의 유해를 안고 떠난 당신에게 이 나라는 어떻게 기억되고 있을까요?
250만 명의 이주민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는 곳이 대한민국입니다. 1980년대 후반 시작된 이주노동의 역사는 40년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2024년 기준 약 130만 명의 이주노동자들이 한국 땅에서 노동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대한민국에는 각종 이주(노동) 비자들이 우후죽순처럼 증가하고 있습니다. 농어촌의 일손이 부족하다며, 소멸하는 지방 대학 유지가 어렵다며, 조선소와 건설 현장에 인력이 부족하다며, 그리고 돌봄·가사노동 시범사업까지 한국사회는 이주노동자의 피땀으로 지탱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이주노동자들의 인권은 보호되지 않고, 불안한 일상과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는 복잡하고 다양한 비자 종류, 출신국에 따른 차별,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 제한에 대해 국제기구로부터 시정을 권고받은 바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이주노동자들의 노동권과 인권보장을 법·제도적으로 제한하고 있어 노동현장에서는 차별과 폭력, 괴롭힘 등 인권침해가 심각합니다. 그럴듯한 사회적 필요를 명분으로 사람이 아닌 도구처럼 사용하고 버릴 수 있도록 법·제도로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지요. 모두가 장시간 저임금의 구조를 심화시키는 이주노동력 활용 정책들입니다.
가장 힘들고 어렵고 더럽고 죽음을 부르는 일터에서 억울한 죽음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한 해 200여 명의 노동자가 당신의 아버지와 같은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습니다. 죽음의 원인조차 밝혀지지 않고 사라지는 사람이 수천에 달합니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살인적인 더위에 열사병으로, 고속도로를 닦는 현장에서 전기에 감전되어, 양식장 물탱크에서 질식해 죽어가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얼마나 더 많은 이주노동자가 죽음과 고통을 쌓아야 달라질 수 있을까요? 지난 2024년 6월 24일, 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아리셀’이라는 리튬배터리 공장에서 화재 참사로 23명의 노동자가 한순간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중 18명은 한국으로 일하러 온 이주노동자였습니다. 노동자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아리셀 대표 박순관에게 징역 15년이 선고되었는데, 너무 과한 형량이라며 기업주가 패가망신했다는 망언을 서슴지 않는 국회의원이 존재하는 곳이 대한민국 의회의 현실입니다.
사람을 ‘보관’이라 부르는 나라
며칠 전,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임금을 갈취하고 여권을 빼앗아간 사업주를 노동자들과 함께 만났습니다. 노동자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자 사장의 입에서는 욕설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분을 못 이겨 씩씩거리던 사장은 말끝에 “더 이상 관계하지 않겠다. 지금까지는 내가 이들을 ‘보관’하고 있었는데 더 이상 간여하지 않겠다”고 하더군요. 그에게 이주노동자들은 자신의 돈벌이를 위해 활용한 도구였고, 보관하는 물건이었던 것이지요. 어디 이뿐일까요? 올해 봄, 전남 나주의 벽돌공장에서 스리랑카에서 온 이주노동자를 지게차에 랩으로 칭칭 감고 조롱하던 영상이 공개되어 한국사회 많은 이들을 분노하게 했습니다. 이러한 사건은 수십 년 동안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인권침해는 단지 일부 악덕 관리자가 벌이는 일탈행위가 아닙니다. 노동자들의 생사여탈권을 사장이 가지고 있어 부당한 일을 당해도 말 한마디 못 하고 참고 살도록 강제하는 대한민국의 이주 정책이 불러온 결과들이지요.
벽돌공장의 인권침해 영상이 공개된 뒤, 대한민국의 대통령 이재명은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 실태를 파악하고 이에 대해 조처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뒤이어 발표된 한국 정부의 이주 정책은 노동자의 인권을 지키겠다는 발언과는 전혀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2020년 겨울, 캄보디아 노동자 속헹이 비닐하우스 기숙사 안에서 사망한 채 발견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유족은 속헹이 사망한 지 500일 만에 산재 인정을 받았고, 지난 9월 19일 대한민국 재판부(서울중앙지법)는 속헹 씨의 사망에 고용허가제 운영 주체인 대한민국 정부의 책임이 인정된다며 속헹 씨 부모에게 2,0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그런데 판결 이후 한국 정부(노동부)는 속헹 씨 유가족의 손해배상 소송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아들이지 않고 상고했습니다. 국가의 책임을 정면으로 부인하는 것이지요. 또한 최근 정부는 계절노동자와 관련한 법안으로 계절노동자 전문기관을 운영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한국에 오는 이주노동자들은 민간 인력업체 브로커에게 사기를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특히 계절노동자의 경우 그 피해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정부가, 전문기관이라는 이름으로 이주노동자에게 돈을 갈취하는 불법 송출업체(브로커)를 양성화시키겠다는 것입니다. 아예 계절노동자 제도를 인신매매 제도로 만드는 일을 정부가 주도하는 형국입니다.
청년의 꿈과 가족과의 안정된 삶을 위한 희망과 미래를 담보 삼아 노동을 착취하고, 임금을 체불하고, 인권을 파괴합니다. 체류 기간의 제한, 사업장 변경의 자유도 없이 위험 속에서 일하며, 정말 참을 수 없으면 미등록의 불안한 삶으로 내몰리는 것이 한국의 이주 정책입니다. 그리고 한국 정부의 폭력적인 단속은 이주민들의 생명을 앗아갑니다. 미국 조지아주에서 벌어진 단속이 이 땅에서는 매일같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얼마 전 한국에서 열린 세계의 정상들이 모인다는 APEC을 성공적으로 개최하겠다며 대대적인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이 진행되었습니다.
기억하며 나아가는 길
경남 진주·사천에서 벌어진 단속과정에서 추락해 다친 노동자들과 함께 창원 출입국사무소를 다녀온 10월 28일 저녁, 대구의 한 사업장 출입국의 폭력적인 단속과정에서 25살 부뚜안 님이 추락해 사망했다는 처참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주 노동하는 한국으로, 그는 베트남에서 19살에 유학을 왔던 청년이었습니다. 대학 졸업 뒤 대학원 입학을 준비하며 아르바이트로 일했던 대구 성서공단의 한 공장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가 생전에 좋아했다는 붕어빵과 바나나우유, 그리고 저녁 반찬으로는 빨간 떡볶이가 곱디고운 그의 제사상에 올려졌습니다.
25살, 아직은 엄마에게 아이였다며, 뚜안이를 위해 한국에서의 힘겨운 이주노동을 견뎌왔는데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며 울먹이던 그의 엄마, 코로나 시절 한국에 유학 온 사람이 적어 뚜안이는 너무도 귀한 친구였다는 그의 친구는 뚜안과의 마지막 문자를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무서워… 숨쉬기가 힘들어…”
울먹이는 뚜안의 엄마를 보며 당신의 엄마가 떠올랐습니다.
핏덩이 당신을 고향에 남겨 두고 머나먼 한국으로 아버지와 함께 이주해, 미등록노동자로 온갖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당신과의 미래를 꿈꾸었을 당신의 엄마.
당신의 엄마와 아버지는 같은 공장에서 일했지요.
사고 현장에서 짓이겨진 남편의 시신을 보듬고 오열했을 당신의 엄마,
영원히 잊지 못할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겠지요. 안. 녕. 하신지요….
14년 전 당신에게 해줄 수 있는 게 겨울 파카와 양말뿐이었던 저,
오늘은 뚜안의 친구 등을 다독이며 부끄러움과 자괴감에 쌓여 있던 저에게, 뚜안의 추모제에 참여한 친구는 말합니다.
뚜안이를 기억하기 위해, 다시는 뚜안이와 같은 죽음이 없게 하기 위한 투쟁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투쟁이라고, 세계 누구도 자유로이 살아갈 권리가 있고 그 존엄성이 지켜져야 한다고요. 불쌍한 이주민을 위한 위로가 아니라, 이주민의 존엄과 자유와 생명을 앗아가는 한국의 이주 정책을 바꾸기 위한 투쟁이며, 그것은 한국사회의 민주주의와 진보를 향한 것이라고요. 지난해 겨울 한국사회는 폭력적인 계엄령에 맞서 새로운 민주주의 역사를 썼습니다. 그 광장에서 응원봉을 들고 ‘다시 만난 세계’를 부르며 민주주의와 진보를 향해 외쳤던 외침이, 뚜안의 친구들의 외침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해줍니다,
당신 아버지의 죽음이, 2025년 부뚜안의 죽음이 한국사회에 던지는 질문에 응답하기 위해
그들 곁에서 뚜벅뚜벅 걸어가겠습니다.
14번째 아버지 기일을 맞는 당신과 가족들에게 평안함이 깃들기를 기원합니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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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는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 상임활동가이다. 참세상은 이 글을 노동자역사 한내와 공동 게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