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3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성소수자 시민들이 서울시장 후보들에 “모든 시민의 존엄과 권리를 보장하는 서울”을 위한 공약 수립과 이행을 촉구했다.
이들은 이번 선거는 “내란 이후 처음 치러지는 전국 단위 선거”로, “민주주의를 다시 세우는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면서, 그 민주주의는 지난해 광장에서 시민들이 함께 확인했듯 성소수자를 비롯한 “가장 취약한 시민의 존엄과 권리를 동등하게 보장하는 데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짚었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이하 ‘행성인’)는 14일 저녁 서울시청 신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는 성소수자의 삶에 응답하는 서울시장을 원한다”라며 “성소수자가 차별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서울, 누구도 혐오 때문에 존재를 부정당하지 않는 서울, 평등이 선언에 머무르지 않고 정책이 되는 서울”을 위한 정책 요구들을 발표했다. 행성인은 1997년 설립된 대학동성애자인권연합에 뿌리를 둔 한국사회 대표적인 성소수자 인권단체로, 성소수자 인권이 존중받는 사회를 위한 여러 활동을 펼쳐왔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서울시를 함께 살아가는 성소수자 당사자 시민들이 발언에 나서 저마다의 일상에서 마주한 차별과 불평등의 현실을 짚고, 성소수자 시민들을 비롯해 모두가 평등하고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서울시를 위해 필요한 정책들을 직접 제안했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지오 활동가. 참세상 류민.
먼저 기조 발언에 나선 행성인의 지오 활동가는 “성소수자들이 바라는 일상은 결코 특별한 것이 아니다”라며 “사랑하는 사람과 가족을 꾸리고, 일터에서 안전하게 일하며, 아플 때 걱정 없이 병원에 가는 것,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서 차별받지 않는 것”은 “특권이 아니라 시민으로서 누려야 할 최소한의 권리이자 기본 조건”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는 이어 “서울에서 성소수자의 삶은 여전히 제도라는 울타리 밖에 놓여 있고, 정치는 성소수자의 삶을 그저 소모적인 논쟁거리로만 다뤄왔다”라며 “누군가의 존재를 찬성과 반대로 나누고 표 계산을 하는 사이에 우리의 일상은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지워졌다”고 지적하면서 지방선거에 나선 모든 후보들에 “이제 성소수자의 삶을 공약하라”, “성소수자를 이 도시의 주권자로 인정한다면 그에 걸맞은 구체적인 정책과 제도를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그것이 광장 이후 모든 시민들에게 열린 민주주의로 가는 길”이라 짚었다.
혼인평등 캠페인 ‘모두의 결혼’의 권순부 활동가. 참세상 류민
혼인평등 캠페인 ‘모두의 결혼’의 권순부 활동가는 “서울은 혐오나 괴롭힘, 가부장적인 문화, 지역의 폐쇄성 등 다양한 이유로 고향을 떠난 성소수자들이 터 잡은 도시”로, “성소수자 인구 비율이 전국 어느 도시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곳이나, 서울시정 어디에도 우리를 고려한 정책은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한 “성소수자 시민들은 애초에 혼인 제도에서 원천적으로 배제된 채 살아가고 있다”라며 “그런 구조적 불평등을 그대로 둔 채 평등한 도시를 만들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
권 활동가는 “혼인평등은 성소수자에게만 “특별한 권리”를 달라는 것이 아니라, 동등한 시민이라면 누구나 마땅히 가져야 할 권리를 보장하라는 요구”라며 “동성부부와 성소수자 가족이 차별 없이 평등하게 살아가는 서울, 성소수자 청소년들이 자신의 미래를 자유롭게 꿈꿀 수 있는 서울, 그러한 서울을 만들 서울시장을 원한다”고 밝혔다.
성소수자 서울 시민 '물보라'. 참세상 류민
서울 관악구 주민인 ‘물보라’씨는 관공서의 민원 및 행정 처리 과정에서 소수자가 겪는 차별을 증언하며, 개선을 촉구했다.
그는 자신이 가정폭력 피해자로서 원가족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행정절차를 밟는 과정에서 겪었던 어려움과, 혼인신고 불수리 증명서를 받기 위해 혼인신고서를 제출한 동성부부가 접수 자체를 거부당했던 사례 등을 환기하면서, “적어도 국가 기관에서는, 존재하는 제도 속에서는 성소수자도 가정폭력 피해자도 또 다른 소수자들도 더 이상 차별받지 않고, 민원 처리를 거부받지 않는 서울에 살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트랜스해방전선 김겨울 대표. 참세상 류민
트랜스해방전선 김겨울 대표는 “서울은 다양성과 인권의 도시를 말하지만, 트랜스젠더에게 서울은 여전히 안전한 도시가 아니다”라며 “성별이분법적 제도와 행정은 노동권·의료접근권·학습권을 침해하고 있으며, 시민으로 살아갈 최소한의 조건조차 보장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해외 여러 나라에서는 트랜스젠더 차별과 증오범죄를 방지하고, 노동권과 의료권을 포괄적으로 보장하는 제도와 법률이 확대되고 있다”면서 “그러나 한국 정치권은 여전히 성소수자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거나 의제를 외면하고 있다”고 짚고는 “서울시장 후보들은 이 문제에 침묵하지 말라. 인권은 나중으로 미룰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공공영역부터 성별정보 수집과 표기를 최소화할 것 △공공일자리 채용 과정에서 불필요한 성별 정보를 삭제할 것 △서울시 차원의 트랜지션 의료 지원 정책을 마련할 것 △성별정정 과정에서 과도한 의료적 조건과 사회적 낙인을 강화하는 제도 개선에 앞장설 것을 주요 정책 요구로 제시했다.
"성소수자 말하기 대회 - 나는 00한 서울시장을 원한다" 기자회견 현장. 참세상 류민
학교 밖 퀴어 청소년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장하은 빛나는우리청소년성소수자모임 활동가는 일상에서 매번 자신을 숨길지 말지 고민해야 하는 현실을 증언했다. 친구들이 좋아하는 사람 이야기를 할 때, 화장실 앞에 설 때, 청소년 지원 공간을 찾고 싶을 때마다 “나도 말해도 괜찮을까”, “내가 들어갈 수 있는 문이 있긴 한 걸까”, “여기도 나를 받아줄까”를 먼저 계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학교 밖 청소년이 학생이라는 이름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제도와 보호에서 자주 비켜나 있다며, 학교 안팎을 나누지 않고 모든 청소년의 존재를 인정하는 퀴어 친화적 지원 공간과 제도를 요구하며 “누구도 문 앞에서 자기 자신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도시”,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말에 더 이상 용기가 필요하지 않은 도시, 저는 그런 서울시를 바란다”고 마음을 전했다.
행성인의 HIV/AIDS 인권팀 박형대 활동가. 참세상 류민
행성인의 HIV/AIDS 인권팀에서 활동하는 박형대 씨는 “시민으로서 평등하게 의료 시스템을 이용하고, 원하는 일을 하고, 성적 권리를 실천하는 것은 모두가 마땅히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임에도, “HIV 감염인들은 학교, 병원, 일터, 군대 등 여러 장소에서 안전하지 못하다고 느끼며, 감염 사실로 인한 차별과 낙인을 온몸으로 경험한다”고 증언했다.
그는 “HIV 감염인들이 감염 사실로 인한 낙인을 경험하지 않는, 일터와 병원을 포함한 모든 곳에서 동등한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감염 사실로 인해 꿈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서울을 원한다”라며 △감염인에 대한 직장 내 차별에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 신고 및 진정 창구, 감염 사실 공개 금지 지침 △HIV 감염인에 대한 낙인을 해소하고 인식을 개선할 수 있는 교육 및 캠페인 △HIV 감염인에 대한 차별 금지를 명문화하는, 감염인 당사자의 의견이 반영된 조례나 행정지침을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그러면서 “HIV 감염인들, 그리고 이들의 삶을 위해 함께 싸우는 사람들의 표가, 질병에 대한 낙인과 혐오를 치울 수 있는 후보에게 갈 것”이라 밝혔다.
성소수자 서울 시민 김민지 씨. 참세상 류민
마지막 발언에 나선 서울 시민 김민지 씨는 “지방선거를 약 20일 앞둔 지금 ‘성소수자’로서 ‘말해야’ 한다는 것은, ‘성소수자’라는 존재가 제도적 행정적 차원에서 인식조차 되고 있지 않음을 의미한다”고 짚고는, 서울시장 후보들과 차기 서울시장에 “성소수자의 인권을, 퀴어의 존재를 인식”하고, “그 누구의 존재도 행정 권력으로 지우거나 미온적인 ‘검토’의 대상으로 삼지 말라”, “특정 이익집단만을 위한 경쟁적인 개발 공약 대신, 모든 구성원들이 체감할 수 있는 포괄적이고 구체적인 인권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우선시하라”, “소수자들의 집회 시위의 권리를 보장할 뿐 아니라 그 몸들을 직접 마주하고, 책임 있고 평등한 행정을 이행하라”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지금 서울시에는 “혐오폭력 및 인권침해 사안을 다루는 실효성 있는 기반, 성별이분법으로 구획되지 않은 모두를 위한 공공시설, 검열 없이 성평등 도서가 비치되어 있고 차별행정 없이 열린 광장, 살만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일터와 집과 거리, 낙인 없이 존재하고 다양성을 이야기할 수 있는 공공의 자리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제대로 뒷받침하는 지자체의 역량”이 부재하다며, “소수자의 삶을 삭제하는 “문화예술도시”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끝으로는 시청 앞을 지나는 시민들에게도 “누군가의 배제를 바탕으로 유지되는 사회에서, 젠더화된 억압의 체제에서 안전하고 자유로운 존재는 없다”라며 “우리는 여기에 함께 있고 연결되어 있다”고 이야기했다.
"성소수자 말하기 대회 - 나는 00한 서울시장을 원한다" 기자회견 현장. 행성인 제공
행성인은 이날 기자회견문을 통해 “서울은 한국에서 가장 많은 시민이 살아가는 도시이며, 가장 많은 성소수자가 살아가는 도시이기도 하나, 성소수자 시민의 삶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시 차원의 정책은 여전히 부재하다”라며 “성소수자의 삶과 권리를 얼마나 보장하는가는 서울이라는 도시가 얼마나 민주적인 도시인지를 보여주는 기준”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우리는 성소수자가 차별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서울, 누구도 혐오 때문에 존재를 부정당하지 않는 서울, 평등이 선언에 머무르지 않고 정책이 되는 서울을 원한다”라며 서울시장 후보들에게 △성소수자 인권정책 수립 △생활동반자 등록제 시행 △성소수자 인권교육 확대 △모두를 위한 화장실 설치 △성소수자 행사 차별 방지 △HIV 감염인 노동권 침해 및 차별 방지 대책 마련을 약속하고 이행할 것을 촉구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민주주의가 모든 시민의 존엄과 권리를 동등하게 보장하는 사회가 될 때까지, 성소수자의 삶이 지워지지 않고 누구나 안전하게 존재할 수 있는 서울이 될 때까지, 계속 말하고 요구하며 함께 싸워나갈 것”이라 밝혔다.
성소수자 평등대회 웹포스터
한편, 오는 16일 오후 3시에는 5월 17일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을 “성소수자 평등의 날”로 새롭게 기념하며 “성소수자 평등대회”가 열린다.
한국성소수자인권단체연합 무지개행동이 주관하고, 행성인을 비롯한 100여 개의 단체가 공동주최하는 이날 평등대회는 “민주주의의 심장에서”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주최 측은 “1년 전 광장을 가득 채웠던 다채로운 빛과 연대를 기억하며, 민주주의를 외쳤던 바로 그 자리에서 성소수자 평등을 다시 외치고자 한다”라며 “성소수자가 존엄하고 평등하게 살아갈 사회를 만들기 위해 평등대회에 함께해 달라”고 제안했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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