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옵티칼하이테크 해고노동자 박정혜 수석부지회장은 오늘로 고공농성 500일을 맞았고, 세종호텔 해고노동자 고진수 지부장의 고공농성은 98일째, 원청 한화오션을 상대로 한 김형수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지회장의 고공농성은 68일째다. 광장이 앞당긴 제21대 대선으로 거대 양당의 대선후보들이 많은 언론사의 헤드라인을 차지하고 주목받고 있지만, 우리가 보고 싶은 소식은 박정혜 동지가 보는 아침, 소현숙 동지의 치아 건강, 김형수 동지와 고진수 동지가 지새울 아득한 밤에 대한 뉴스다. 고공농성하는 이 동지들은 언제 어떻게 땅으로 내려올 수 있을까.
우리가 기다리는 소식은 고공농성하는 동지들이 문제가 해결되어 땅으로 내려왔다는 소식이고, 성평등이 강화되어 여성들이 더 안전해졌다는 소식이며, 이주민의 권리 보장이 강화되어서 더 이상 괴롭힘과 착취에 시달리다가 죽지 않아도 된다는 소식이다. 성소수자들이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도 안전하게 교육받고 결혼하고 노동할 수 있다는 소식이고, 장애인들이 더이상 시설에 갇힐 필요없이 자유롭게 우리 사회 곳곳을 이동할 수 있다는 소식이다. 노동자들이 더이상 쓰다버리는 도구 취급받지 않는다는 소식이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가 기다리는 소식은, 어떤 대선후보가 이 소식들을 우리에게 전해줄 수 있는가의 문제일지 모른다. 뉴스를 가득 차지한 양당의 대선후보가 이런 소식을 전해줄 수 있을까? 왜 수많은 언론들은 우리가 기다리는 소식을 전해줄 수 없는 대선후보의 소식만 자꾸 다루려고 하는지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이곳에 선 우리가 누군가를 향해
여자라는 이유로,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학교를 다니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주민이라는 이유로, 일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결혼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질병을 겪고 있다는 이유로… 차별하거나 혐오해서는 안됩니다.
- 평등하고 민주적인 집회를 위한 모두의 약속 中
어떤 이들은 어떤 대선후보에게 ‘광장후보’라는 이명을 부여하기도 한다. 광장은 모두의 것이지만, 그 누구의 소유도 아니기에 이명에 우려를 표하며, ‘광장후보’에게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광장에서 요구된 수많은 의제들과 요구주체들의 삶과 권리를 한 번이라도 중요하게 여겼는가? 광장의 약속을 기억하는가?
우리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수개월 동안 나섰던 거리와 광장의 약속을 기억한다. 우리는 “민주주의는 성별, 성적지향, 장애, 연령, 국적 등 서로 다른 사람이 배제되지 않고 안전하고 평등하게 참여할 수 있는 곳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약속했다. 매 집회마다 약속을 다시 함께 확인하고 지키기 위해 노력했기에, 광장이 안전할 수 있었고, ‘모두의 광장’이 될 수 있었다. 우리 모두의 광장이 만들어낸 조기대선을 앞두고 있는 지금, 질문한다. 뉴스소식을 가득 차지하고 있는 대선후보 중 누가 이 광장의 약속을 기억하고 지키고 있나? 우리가 지켜온 광장의 약속이 우리가 새로 만들 민주주의 사회의 약속이 될 수 있도록 다시 읽고 제안하는 대선후보는 누구인가?
4월 말, 49개 성소수자 인권단체의 연합체인 무지개행동은 제21대 대선을 맞아 21개의 성소수자 정책과제를 발표하고 정치에 요구했다. 차별금지법 제정, 동성혼 법제화, 성별인정법 제정 등 정치가 외면해온 성소수자의 삶과 존재를 정책에 반영하여 국정과제를 마련하라는 것. 이제 우리 사회에 ‘성소수자 지키는 민주주의’를 실현할 대통령이 필요하다는 것.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의 요구에 응답한 것은 민주노동당의 권영국 후보가 유일하다.
“구의역 김군, 태안화력발전소 김용균, 평택항 이선호, 파리바게뜨 에스피엘(SPL) 박선빈, 디엘(DL)이앤씨 건설일용직 강보경…”
지난 18일, 대선후보들의 경제 분야 토론회에서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에 의해 산재 피해자들의 이름이 호명되었다. 우리가 수개월 간 지켜온 광장의 약속에 호응하는 순간이었다. 토론회에서나마 볼 수 있었던 그 순간, 이제는 ‘순간’이 아니라 ‘언제나’ 지속할 수 있도록 우리의 힘을 보태는 것이 필요하다.
윤석열 파면 후의 대선이다. 우리는 내란범이 앉았던 의자에 그저 다른 사람이 똑같이 앉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우리가 다시 만날 세계는 성평등, 차별 금지의 원칙, 인권 증진의 의지가 담긴 사회다. 평등으로 가는 길은 끝나지 않았다. 윤석열 파면은 끝이 아니라 민주주의 회복의 시작이고, 6.3 조기대선은 평등으로 가는 길목이어야 한다. 광장을 열었던 것은 늘 우리라는 걸 아로새긴다.
- 덧붙이는 말
-
오소리는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에서, 소주는 'HIV/AIDS인권행동 알'에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