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바실리 벨로쿠로프는 2026년 카블리 천체물리학상(Kavli Prize in Astrophysics)공동 수상자 세 명 가운데 한 명이다. 그는 과거 은하 병합의 화석 증거를 밝혀내 은하수가 어떻게 진화했는지를 입증한 공로로 이 상을 받았다.
허블 우주망원경, 스피처 우주망원경, 찬드라 X선 천문대가 관측한 자료를 합성해 제작한 은하수 중심부 영상. 출처: NASA/JPL-Caltech/ESA, 위키미디어 커먼즈
선사시대 이전의 동굴에서 바라보든, 팬데믹 봉쇄 이후의 런던 고층 건물에서 바라보든, 언제 어디서 밤하늘을 올려다보아도 변함없이 펼쳐지는 모습은 언제나 영속성과 안정감을 상징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평온함은 착각이다. 우리은하인 은하수는 혼돈과 격변 속에서 탄생했으며, 밤하늘의 별자리에는 이주자와 추방된 별, 그리고 살아남은 별들이 가득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은하수는 거대한 동반 은하의 중력에 이끌려 다시 늘어나고 뒤틀리기 시작했으며, 피할 수 없는 충돌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어떻게 이렇게 확신할 수 있을까? 나는 은하 고고학자(galactic archaeologist)로서 우리은하의 과거를 복원하고 미래를 예고하는 흔적을 읽는 일을 한다.
나는 흙을 파헤치는 대신 역학과 항성 진화의 법칙을 이용해 수억 개의 별을 분석한다. 그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화학적 조성이 특이한 별을 찾아내고, 이들의 궤도를 해석해 은하수를 형성한 사건들을 하나씩 재구성한다. 그 과정에서 일어난 한 차례의 오래된 조우는 너무도 깊은 흔적을 남겨 수십억 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 주변 은하의 모습을 규정하고 있다.
나는 이러한 거대한 우주 시스템의 삶을 지배하는 요인이 무엇인지 이해하고자 한다. 즉 은하 원반이 내부적으로 서서히 진화하는 자연적인 변화와, 충돌과 병합이 강제로 만들어 낸 변화가 각각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밝히려 한다.
이 모든 연구의 바탕에는 암흑물질(dark matter)의 기원을 둘러싼 질문이 자리한다. 암흑물질은 중력으로 은하를 하나로 묶어 주는 보이지 않는 물질이지만, 그 정체는 여전히 천체물리학의 가장 큰 미해결 문제 가운데 하나로 남아 있다.
은하수는 별들의 운동을 매우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는 유일한 은하다. 덕분에 나를 비롯한 우주론자들은 지금까지 가장 정밀한 암흑물질 지도를 만들 수 있다. 이 지도는 암흑물질이 어디까지 분포하는지, 태양 주변에서 얼마나 높은 밀도를 보이는지, 어떤 형태를 이루는지, 그리고 분포가 매끄러운지 아니면 덩어리 구조를 이루는지를 보여 준다. 우리가 이 지도를 아주 정밀하게 완성한다면 암흑물질이 어디에 있는지를 넘어 그것이 무엇인지까지 이해하기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은하수의 진화 역사를 추적한 컴퓨터 시뮬레이션
프란체스카 프라그쿠디(Francesca Fragkoudi)와 마크 러벨(Mark Lovell), 더럼대학교(Durham University)
대격변적 충돌
우리 연구는 공개 천체 탐사의 혁명으로 크게 달라졌다. 2000년부터 진행한 슬론 디지털 전천 탐사(Sloan Digital Sky Survey)는 방대한 천문 자료를 공개하면 원래 탐사 목적을 뛰어넘는 수많은 발견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2014년부터는 유럽우주국(ESA)의 우주망원경 가이아(Gaia)가 거의 20억 개에 이르는 별의 위치와 운동을 측정해 이러한 변화를 한 단계 더 끌어올렸다. 가이아는 우리은하를 거대한 고고학 기록으로 바꾸어 놓았다. 이 기록에는 폐허도, 도자기 조각도, 뼈도 없다. 오직 단서를 간직한 별들만 존재한다.
슬론 디지털 전천 탐사(SDSS) 자료로 작성한 은하수 지도. 출처: 바실리 벨로쿠로프, CC BY-NC-ND
우리은하에서 오래전 대격변이 일어났음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 주는 증거는 우리가 관측하는 이주 별들이다. 이 별들은 은하수에서 태어난 별이 아니다.
은하수에서 태어난 별들은 대부분 은하 원반의 거대한 회전 흐름을 따라 은하 중심을 함께 공전한다. 반면 이주 별들은 이러한 질서를 가로지른다. 이들은 토착 별들 사이를 스쳐 지나고 은하 안쪽으로 깊숙이 파고들었다가 다시 외곽으로 날아 나가는 운동을 반복한다.
이처럼 특이한 궤도는 독특한 화학 조성과도 맞물려 있다. 이주 별들의 대부분은 은하수에서 태어난 별들보다 무거운 원소의 함량이 더 낮다. 이러한 화학 조성은 왜소은하(dwarf galaxy)에서 흔히 나타나는 느린 화학 진화의 흔적을 보여 준다.
이 때문에 이주 별들은 두 가지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이들은 은하수의 격렬했던 과거를 간직한 화석인 동시에, 토착 별들이 거의 가지 않는 외곽 영역까지 이동하면서 은하 바깥 영역을 탐사하는 중요한 탐침 역할도 한다.
은하수는 어떻게 재편됐는가
우주 구조 형성 이론의 핵심 개념 가운데 하나는 은하가 위계적으로 성장한다는 것이다. 작은 은하들이 더 큰 은하로 유입되고, 그 과정에서 산산이 분해되면서 자신들의 별을 이주 별로 남긴다.
은하수에서 이러한 고대 구조 가운데 가장 큰 것은 가이아-소시지-엔셀라두스(Gaia-Sausage-Enceladus)로 알려져 있다. 이는 약 80억~110억 년 전 우리은하와 충돌한 뒤 사라진 은하의 잔해다. 여기서 ‘소시지’는 그 은하에 속했던 별들의 운동이 보여 주는 독특한 분포 형태를 가리킨다.
약 100억 년 전 젊은 은하수가 다른 은하와 충돌하는 모습을 그린 상상도. 출처: 바실리 벨로쿠로프, 후안 카를로스 무뇨스/ESO 이미지를 바탕으로 제작, CC BY-NC-SA.
은하수도 이 충돌을 아무런 피해 없이 넘기지는 못했다. 이 충돌은 은하수의 구조를 재편하고 모습을 바꾸어 놓았다.
이러한 변화 가운데 일부는 관측 자료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옛 은하 원반에 있던 별들은 충돌의 충격으로 은하 헤일로(halo)까지 튕겨 나가 자신이 태어난 곳에서 추방된 별이 됐다. 또한 우리은하는 새로운 성단 집단도 함께 획득했다.
동시에 우리는 훨씬 더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다고 생각한다. 이 충돌은 은하수 원반의 방향을 바꾸었으며, 원반과 암흑물질 헤일로(dark matter halo)의 정렬 상태도 변화시켰다.
암흑물질은 너무 희박해 태양계에서는 중력을 지배하지 못하지만, 은하 외곽에서는 가장 큰 중력 질량을 차지한다. 암흑물질은 은하 바깥에서 흐르고 이동하며, 표준 우주론 모형에서는 다양한 크기의 덩어리 구조를 계층적으로 형성한다.
은하수 주변에서 암흑물질은 우리은하의 빛나는 영역보다 훨씬 더 거대한 헤일로를 이룬다. 우리는 흔히 이 헤일로를 희박하고 둥근 구름처럼 상상하지만, 가이아는 이러한 그림이 지나치게 단순하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거대한 충돌이 일어나면 암흑물질 헤일로도 본래 형태에서 늘어나고 뒤틀린다. 마치 배가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하듯 은하수도 기울기 시작했다. 그 변화는 갑작스럽지도 않았고, 눈에 띄지도 않았지만, 수십억 년에 걸쳐 서서히 진행됐다.
남쪽 하늘에 펼쳐진 은하수와 그 오른쪽 지평선 부근에 보이는 두 이웃 은하인 소마젤란은하와 대마젤란은하. 출처: H. H. 헤이어(H. H. Heyer)/ESO, 위키미디어 커먼즈, CC BY-NC-ND
새로운 은하의 춤
은하수는 비슷한 질량을 지닌 다른 많은 은하와 비교하면 ‘소시지 병합(sausage merger)’의 충격에서 회복할 충분한 시간을 누렸다. 그 이후에는 다른 우주적 대격변이 우리은하를 뒤흔든 흔적이 보이지 않으며, 은하수는 조용하고 평온한 상태로 안정을 되찾았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랬다.
현재 우리은하에서 가장 무거운 동반 은하인 대마젤란은하(LMC)는 이미 은하수를 중력으로 끌어당기며 헤일로를 다시 교란하고 있다. 약 100억 년 전에 일어난 사건이 되풀이되듯, 은하수는 이웃한 왜소은하와 점점 더 빠르게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은하수는 LMC가 가까워질수록 그 중력에 반응하며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이 춤이 끝난 뒤 온전한 모습을 유지할 수 있는 은하는 아마 하나뿐일 것이다. 이주와 생존, 그리고 적응의 새로운 장이 이미 시작됐다.
이러한 사실은 밤하늘의 아름다움을 훼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아름다움을 더욱 깊게 만든다. 우리 머리 위를 가로지르는 고요한 빛의 띠는 영원함의 상징이 아니라 오랜 생존의 역사를 보여 주는 눈에 보이는 흔적이다.
은하수는 한때 부서졌고 재건됐으며, 지금도 또다시 교란을 겪고 있다. 별들은 과거를 기억하며, 그들의 운동은 미래를 드러낸다. 영원해 보이는 것조차 사실은 훨씬 더 긴 이야기 속의 한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번역] 하주영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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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실리 벨로쿠로프(Vasily Belokurov)는 케임브리지대학교(University of Cambridge) 천문학연구소(Institute of Astronomy) 천문학 교수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