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오름

[인권오름] [책의 유혹] <다시 봄이 올 거예요>를 읽었습니다

-세월호 생존학생과 형제자매 이야기

1주기가 조금 지난 화창한 날이었다. 세월호 약전작업을 위해 ‘희생학생’의 친구들을 만났다. 중학교 때부터 친했던 두 소녀 중 한 명은 옆 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한 명은 단원고에 다니는 ‘생존학생’이었다. 피자를 신나게 먹고 카페에 앉아 즐거웠던 추억으로 이야기꽃을 피우는 고3 여학생들의 목소리가 햇살처럼 환했다. 그러다 ‘그때’ ‘그 사건’ 이야기가 나오자 생존학생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그 순간부터 나는 몹시 당황했다. 내 눈은 테이블 위를 헤매고 내 말들은 공중에 흩어졌다.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을 하고 헤어진 후 그들이 다녔다는 중학교 교정을 거닐었다. 나는 그날 내가 무능한 어른이고 무력한 기성세대가 되어버렸음을 알았다. 그들보다 갑절의 세월을 살아왔지만 그날의 그 배에서 살아 돌아온 생존학생의 눈빛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를 몰랐다. 어른이 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채 나이만 먹었다는 자괴감이 들었다. 416세월호 참사 작가기록단이 펴낸 책 <다시 봄이 올 거예요>는 그런 점에서 놀라웠다. 어떤 가르침도 더하려 하지 않고 그들의 목소리를 담담히 듣고 기록해내고 놓았기 때문이다.


그날

“모든 전화가 다 저한테 왔어요. 엄마 직장 동료, 친척들한테도, 동생 거기 탄 거 맞다고 계속 말해야 하는 거예요. 그 말을 하기도 싫고 실감하기도 싫은데 계속 말해야 되니까 계속 울면서 갔어요.”
“아빠가 오빠 탄 배가 침몰하고 있다고... 내가 들은 게 뭔 소리지? 너무너무 이상하고 혼란스럽고...”
“야, 너 동생 어제 제주도 가지 않았냐? 그 배가 어떻게 됐다던데...”


- 가만히 있으라
그 시각, 기울고 물이 차오르는 배 안에서 승객들은 공포에 떨며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가만히 있으라는 반복되는 안내방송은 승객들을 주저앉혔다.
“그때 배가 기울면서 갑판 쪽으로 나가는 문이 열렸는데 선생님은 갑판 쪽으로 날아가시고...”
“‘움직이지 마십시오’ 그 소리를 듣는데 제 상식으로는 너무 안 맞는 거예요. 반 아이들한테 ‘일단 배가 뒤집힌 상황이면 나가야지 가만히 있으라는 게 말이 되냐, 한번 확인해보겠다’하고 나갔어요...”
“가만히 있으래서 가만히 있었는데 방송을 몇 번째쯤 할 땐 그 사람이 말을 더듬는 거예요. 저는 들었거든요. 방송 이렇게 듣고 있는데 말을 계속 더듬길래, 아, 저 사람도 무섭나 보다... 저희는 단체실이어서 가만히 있었는데 혼자 있었다면 가만히 안 있었을 거 같아요. 무서운데 침착하게 기다렸어요.”

배가 기울기 시작한 이후부터 침몰 직전까지 대부분의 선원은 도주 준비를 하고 있었고 선내에는 가만히 있으라는 안내방송이 연거푸 울려 퍼졌다. 배의 3층 로비의 출입문까지 바닷물이 들어온 시각 9시 45분에 여객부 선원 강혜성은 “현재 위치에서 안전하게 기다리시고, 더 이상 밖으로 나오지 마시기 바랍니다.”라고 못 박은 안내방송을 되풀이했다. 이미 선장과 갑판부 선원은 모두 배를 빠져나간 시간이었다. 비상벨은 끝내 침묵을 지켰고 구명정, 미끄럼틀 등 탈출도구는 제 역할을 한 번도 하지 못한 채 그대로 뱃속에 가라앉았다. 그로부터 배가 가라앉기까지 약 45분의 시간이 있었지만 탑승객의 3분의 2가 넘는 304명이 배를 빠져나오지 못한 채 속수무책으로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 들어갔다.

- 구조하지 않았다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학생들에게 구조의 손길은 차가웠다. 아니 보이지 않았다.
“저기 창문 위로 해경이 로프 타고 내려오는 게 보여요...계속 소리 질렀어요. 살려달라고. 그런데 계속 안 오는 거예요...가까워서 올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 안 오는 거예요.”
“‘너 먼저 올라가.’ 서로 막 다 먼저 올라가라고... 서로 어깨 밟으라고 하면서 올려주고. 그래도 안 닿아서 겨우 올라가고. 먼저 올라간 애가 밑에 애 끌어올려주고. 애들 손이 다 멍들고...”
“보트를 배에 붙이려고 하는데 제가 구명보트랑 해경 배 사이에 낀 거예요. 매달려 있던 저를 생각 안 한 거예요... 너무 무서워서 ‘여기 사람이 끼었다’고 소리 지르는데 아무도 안 들어주는 거예요. 결국 친구들이 배 밀면서 여기 사람 끼었다고 같이 외쳐주고 어른들이 도와줘서 빠져나왔어요. 그때도 해경은 안 도와줬어요.”
“애들이 서로 잡아줘서 올라가고. 원래는 벽이었던 부분이 바닥이 됐으니까 거기를 밟고 걸어나오는데, 친구가 ‘저기 비상구다’ 해서 나가니까 앞에 어선이 있었나. 그분들이 잡아 끌어주셔서 잡고 나왔어요. 그냥 저희는 저희들끼리 나온 거죠.”
“구조된 게 아니라 살아나온 거죠. 해경이 하나도 안 도와줘서 저희들이 스스로 나왔거든요. 헬기에 있던 해경은 헬기 탈 자신 있는 사람 먼저 손들고 나오라는 식으로 얘길 하고 애들 한명씩 배에서 나오는 거 보고만 있다가 구명보트에서 ”어 나왔다“ 이러는 해경도 있고.”
“분명히 기억하는 건 애들이 배에서 탈출한 거라는 거. 나온 아이들을 그냥 앞에서 건진 것 뿐이지 적극적으로 배에 들어가서 뭘 어떻게 했거나 그런 게 없으니까. 그걸 구조했다고 말할 순 없잖아요.”

가라앉는 배에서 살아 돌아온 이들에게 세상이라는 배는 어떻게 느껴졌을까. ‘어른들이 하라는 대로 그저 공부만 열심히 하면 돼’라는 말을 들으며 학교라는 울타리에 속했던 10대들이 겪은 참혹한 일은 그들의 미래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까. 이윤을 위해서라면 안전은 무시되는 것이 일상다반사이며, 배를 몰던 이들이 침몰하는 배 안에 승객들을 버려두고 도망가도 다수가 처벌조차 받지 않으며 눈앞에 쓰러져 있는 다친 동료를 버리더라도 나만 살아남으면 된다는 것이 당연한 세상에 적응해나가야 하는 것일까. 언제고 가라앉을 수 있는 위험한 배가 떠다녀도 사고에 대응할 체계는 부재하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 직업인 이들이 위험에 빠진 사람의 상태에는 관심 없고 상부보고에 집착하며 빠져나갈 구멍만을 찾는 총체적 무책임. 책임지지 않는 나라. 책임지지 않는 어른. 책임지지 않는 인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친구의 죽음은 끝나지 않는 참상으로 남아 있다.


그날 이후


- 내 형제자매가 사라졌다
“하나를 제가 먹으면 하나는 무조건 남겨놔야 돼요. ... 형 거는 항상 남겨둬요.”
“지금도 컴퓨터를 켜면 진웅이의 흔적들이 남아 있거든요. 진웅이가 하던 게임... 한번 접속만 해봤어요... 슬픔이 조금씩 저를 갉아먹는 느낌이 들어요.”
“언니들과 미래를 상상하면서 같이 하기로 한 일도 많았는데 이제는 할 수가 없어요... 언니가 그렇게 되다 보니까 앞으로 미래가 불확실한테 섣불리 뭔가를 판단할 수 있을까 싶어요.”
“사고 후엔 학원 버스를 한 번도 탄 적이 없어요. 제가 다니는 학원버스가 단원고 앞을 지나갔거든요. 버스 타고 가다보면 학교에 불이 켜져 있으니까 ‘아 오빠가 지금 야자 하고 있겠지’ 생각을 했는데...”
“언니가 알고 보니까 살아 있어서 우리 집에서 같이 지냈다. 다리를 다쳤을 뿐이었다... 너무 기뻐서 언니가 친구들과 연락할 수 있게 해주려고 노력했다. 깨어나니 달라진 건 없었다.”
“동생이 없다는 느낌이 들 때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끔찍해요. 정신을 놓다가 죽을 수도 있을 것 같고 너무 화가 나서 누굴 죽일 수도 있을 것 같은 감정이에요... 시간이 멈춰버렸다는 거, 시간을 잃어버렸다는 게 뭔지 알 것 같아요.”
“동생이 꿈에 자주 나와요. 항상 배경은 집이고, 그전이랑 똑같은 모습. 그런 날은 하루 종일 아무 일도 못하죠. 군대에서 짬이 낮을 때는 실수해서 많이 혼나기도 했고.”
“오빠가 남기고 간 말이 되게 막 슬프고. 그런 생각도 들었어요. ‘오빠는 그 때 자기가 나올 수 없다는 걸 안 게 아닐까.’ 많이 무서웠겠죠, 그 배 안에서... 살려달라고 외치면서...(고 박수현 학생이 찍은 동영상에 담긴 고 김동혁 학생의 말은 “내 동생 어떡하지”였다.)
“얼굴에 이렇게 상처가 난 거예요... 어디에 쓸린 것 같아요. 껍데기가 벗겨졌는데, 그게 너무 슬픈 거예요. 지현이가 지금 숨을 안 쉬고 죽었는데, 그게 슬픈 게 아니고 여기 다친 데, 그게 너무 슬퍼서 꺼이꺼이 목이 터져라 울고. 얼마나 아팠을까...왜...상처가 났냐구!’”

매일 아옹다옹 지내던 형제자매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그냥 사고를 당한 게 아니라 충분히 탈출할 수 있었던 배 안에 갇혀 죽었다. 그날 이후 부모님은 넋이 나간 채 거리를 헤매고 어두운 집에 홀로 남아 날마다 꺽꺽 울다가도 부모님이 돌아오면 눈물자국조차 지워야 하는 것이 그날 이후의 일상이었을 것이다. 친구들의 냉정한 한마디가 가슴에 꽂히고 분노와 슬픔조차 주변 어른들에 의해 억눌리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이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는 그려나갈 수 없을 것 같은 미래를, 이제 너 혼자니 네가 잘해야 한다는 중압감으로 억지로 그려나가는 하루하루였을 것이다. 나와 닮은 친구 같은 내 형제자매가 이제는 없다는 것이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 지우고 싶은, 그러나 지울 수 없는 그날의 기억
생존학생은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고 싶지 않지만 친구들을 생각하면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 그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꾸역꾸역 기억을 더듬어야 했다. 그 일에 관련된 어른 그 누구도 속 시원히 내가 잘못했다고 말하지 않는 가운데 오히려 피해자가 죄책감에 시달렸다.
“처음에는 저를 좀 탓했어요. 그때 친구들을 더 데려왔더라면 하고. 같이 있던 친구 보라도 그렇게 구했으니까 한명 더, 두명 더, 이렇게...”
“친구들이 꿈에 나오고 나서 우울증 같은 게 괜찮아졌어요. 애들이 다 살아나는 꿈을 꿨어요. 제 소원이 꿈에 나온 거예요.”
“수고했다, 살아와서 고맙다, 네 잘못이 아니다. 그런 말들이 너무 고마웠어요. 그런데도 자꾸만 저를 원망하게 되더라고요... 이제 스무살이 되니까 조금은 옅어져요. 언젠가는 잊혀지겠구나. 그래도 죄책감이라는 세 글자, 그건 잊지 못할 거 같아요.”
“그때 기억이 사라지지 않아요. 길을 가다 어린아이를 보면 그 남자애가 보여요. 뉴스를 보면 여동생이 혼자서 오빠 찾고 있고 내가 그 오빠를 알고 있고 그 오빠의 마지막을 알고 있고... 오빠 소식을 모르니까 그 여동생한테 알려주고 싶더라고요. 편지를 썼는데 보낼 수는 없었어요. 너무 미안해서... 제가 살인자 같은 거예요. 살인자의 편지를 받는 거니까 많이 힘들겠다, 그냥 가지고 있는 게 낫겠다.”

2년이 넘도록 찾지 못한 일곱 살 아이, 혁규의 마지막을 목격한 생존학생의 이야기다. 차마 꺼내지 못한 말과 마음이 가슴 속에 응어리로 남았다.

생존학생은 죽은 친구들의 가족에게 죄스러워 했고 유가족들은 생존학생이 힘들어할까 조심스러웠다. 서로가 서로를 염려해 온전히 슬픔과 고통을 표현해내지 못하는 시간들이었다.

“가끔 친구 부모님 뵈면 친구랑 너무 닮아서 더 생각이 나요...”
“한번은 416기억저장소에 불이 켜져 있어서 ‘아, 누구 생일인가’ 싶어서 올라갔는데 형제자매 모임인 거예요... 거기 있기가 좀 미안했어요. 눈치 보이고. 괜히 절 보면 더 생각날까봐...”
“생존자 친구들도 힘들텐데 언젠가 같이 만나고 싶어요. 만나서 친하게 지내고 싶어요. 서로 마주하는 게 힘들긴 하지만 또 서로가 서로에게 위안이 되는 존재일 것 같아요.”

생존학생들은 자신들에게 향한 시선을 감당하며 남은 학교생활을 안간힘을 다 해 버텨내면서도 서로의 상처를 보듬었다.
“저희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아니라, 전체 단원고 학생이 하나로 보인다고 해야 하나. 뭔가 75명 중에 한명이 어떤 행동을 하면 전체가 다 포함되는?... 많이 힘들어하는 친구가 있으면 약간... 죄책감도 느꼈어요. 저희는 서로 다 알잖아요. 서로서로 보듬어줘야 한다는 걸 알고 있는데 그런 일이 생기면 제가 잘못한 것 같은 거예요...”
“수학여행 안 간 친구들이 더 힘든 것처럼 보였어요... 둘 다 친구 잃은 슬픔은 똑같은데 같이 그 자리에 없었다는 그 자체에 죄책감, 미안함을 느끼는 것 같아요.”

우리의 미래

- 어른이 되기 싫다
우리는 세월호 참사를 비껴가고는 단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말해왔다. 총체적인 비리와 무능, 무책임이 만연한 우리 사회의 모습을 참사를 통해 목격했기 때문이다. ‘가만히 있으라’로 대변되는 권위적이고 억압적인 사회질서와 분위기는 단순히 획일성과 몰개성을 낳을 뿐 아니라 학습된 무기력을 만든다. 내가 열심히 한다 해도 다른 이들이 협조할까? 위에서 명령이 떨어지지 않았는데 굳이 내가 목숨 걸고 열심히 할 필요가 있을까? 잘해야 본전, 못 하면 내 손해라는 논리가 만연하다. 이윤창출을 위한 산업시스템 뿐만 아니라 공적 관료시스템이 더욱 처참하다는 것을 보았다. 그런 사회에 적응한 ‘어른’이 아직 못 된 아이들은 속절없이 사라져갔거나 서로를 도와 죽음의 문턱을 겨우 넘어 돌아왔다. 부상당한 몸으로 친구를 데리고 헤엄쳐 구명보트에 오르는 순간 지켜보고 섰다가 차가운 욕설을 내뱉은 해경에 대한 기억은 어떻게 남을까. 오랜 시간 원망과 분노의 대상이 될 테지만 그 원망과 분노가 방향 잃고 지속된다면 그 학생은 ‘제 할 일’ 열심히 하는 어른이 되어 그 일을 어떻게 기억할까. 어려움에 처한 약자를 대할 때 그 학생의 입에서는 무슨 말이 나올 수 있을까. 무책임하고 비정한 어른들의 민낯을 본 이들은 어른이 되기 두려운 것이다.

“나이를 먹는 게 너무 무서워요. 나도 변할까봐... 기득권, 어른의 때가 묻을까봐.”
“저는 그냥 어른이 된다는 게 싫어요... 모든 어른들은 원래 어린아이였고 그들이 자라서 이 나라를 이끌어나가고 있잖아요... 우리도 어른이 될 거라는 걸 알아요. 하지만 저는 그 사실 자체가 너무 두려워요. 자기가 한 일도 책임 못 지면서 자기들만 생각하고 반성할 기미도 보이지 않는 그런 어른이 될까봐... 그런 어른들을 싫어하면서 그런 사람이 될까 봐...

- 우리의 임기는 평생이에요
“말로는 차마 표현할 수 없는 삶의 고난과 역경을 겪었고 그것을 함께 극복하고 성장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대학에 가서도 사회에 나가서도 스스로가 강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2016년 단원고 졸업식에서 살아남은 학생들이 말했다. 고통스럽지만 이들은 그날의 기억을 되짚으며 진실에 다가서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시뮬레이션을 되게 많이 해요. 병원에 있을 때는 매일매일 그랬어요. 아직까지도 그런 생각 많이 해요. 그 순간만이라도 되돌아갔으면 좋겠다...”
“기억할 수 있을 때까지 기억할 거예요.”

세월호 참사 1주기에 희생학생들의 형제자매 74명이 성명을 발표했다. 그들은 “엄마아빠의 동료가 되어 진실에 다가가겠다”고 했다. “정치권의 임기는 몇 년이지만 세월호 형제자매라는 이름의 임기는 죽을 때까지니까. 우리가 잊지 않고 있으니까. 부모님 세대에서 밝혀내지 못하면 우리 세대에서라도 꼭 밝혀낼 것이다. 그걸 권력에게 말하고 싶었던 거예요...”
“절망 속에 핀 꽃인 셈이죠. 그런데 절망 속에서 피기까지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꽃 피우려고 얼마나 아등바등 했겠어요? 그때 도와준 사람이 얼마나 많았겠어요?...나는 주저앉지 않을 거예요. 어떻게든 이겨내려고 발버둥칠 거예요.”

- 이제 우리는
이제 법적 성인이 되어가는 이들의 미래가 우리 모두의 미래임을 직감한다. 이들이 하는 빛나는 말들에서 미래의 실마리를 얻는다.
“사랑하는 사람을 읽으면 누구나 가슴이 미어진다. 살릴 가능성이 있었는데 살리지 못하고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던 그 마음들은 더 타들어가고 더 무너진다. 이걸 겪어보지 않는 사람들은 모른다. 그러나 직접 겪어보지 않고도 우리를 위로해주고 한마음이 되어주고 이해해주는 분들에게는 정말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감사함을 느낀다. 우리가 바라는 것이 피해자들만을 위한 게 아니라 모두를 위한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한 생존학생이 지난해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나고 남긴 기록)
“행복할수록 눈물이 나고 슬플수록 남을 존중하다 : 요즘 제가 되새기는 말이에요. 사고를 겪고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면 행복을 느끼는 매순간에도 늘 슬픔이 동행했던 것 같아요. 그래도 슬픔과 고통도 뭉치면 더 강해지지 않을까. 고통을 이겨낸 만큼 더 남을 이해할 줄 아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그러고 싶어요, 그럴 거예요.”

내가 만났거나 책과 기사 등을 통해 사연을 알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마주할 때마다 숨이 막혀오는 듯 했다. 여러 기록과 정보들이 뒤섞여 그날의 상황이 그려지고 짜맞춰지는 듯 했다. 이 책은 ‘그날’ 뿐만 아니라 ‘그날 이후’의 시간까지 우리가 함께 재구성하고 진실에 다가설 수 있도록 하는 한걸음을 내딛게 했다. 애써 이들의 목소리를 담아낸 작가기록단에 경의를 표한다. 세월호를 잊지 않은 우리, 이제 진실의 조각을 함께 맞춰나가며 우리의 미래를 새롭게 준비해나가야 한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이미 우리에게 손을 내밀고 있다.
“동료가 되어 함께 싸워요.”


덧붙이는 말

최예륜 님은 반빈곤운동 활동가로, 세상만사 걱정을 글에 담고 싶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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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다시 봄이 올 거예요> , 세월호 형제자매와 생존학생 이야기 , 10대와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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