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의 주간지 사회와노동

타임오프제 시행 이후 투쟁 과제

투쟁 사업장을 묶어세우고 정권의 공세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타임오프제 시행 이후

7월 1일자로 타임오프제가 시행되었다. 정권과 자본은 개악 노조법 시행을 기회로 민주노조를 현장에서부터 무너뜨리겠다고 벼르고 있다. 노동부는 아예 초법적 매뉴얼까지 작성해 노조 파괴를 현장 지도하고 나섰다.
노동부가 발표한 타임오프제 매뉴얼은 사실상 노조 간부가 회사의 허락을 받아 활동하라고 지시하고 있다.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의 대상을 협소하게 규정해 회사의 허가를 받지 못한 노조 활동은 모두 유급 대상에서 제외된다. 노동부 매뉴얼을 바탕으로 기아차, GM대우 등에서 작성한 전임자에 대한 근태관리 매뉴얼은 부서장의 승인을 받지 못한 활동에 대해서는 이후 인사고과에도 반영하게 되어 있다. 매뉴얼을 그대로 따른다면 전임자 수가 최고 90%까지 줄어드는 대공장의 경우 노조 활동은 고사하고 임단협 교섭 시간도 확보할 수 없다. 심지어 매뉴얼은 전임자 관련 조항도 아닌 조합원, 대의원 교육에 대해서도 무급을 적용하게 되어 있다. 아예 이 기회에 노조 활동 자체를 금지하겠다는 어처구니없는 내용이다. 위법성이 다분한 내용이지만 이러한 노동부의 현장 지도 지침은 현실에서 노조 단협 투쟁에서 사용자가 교섭을 파행으로 몰고 가게 하는 명분이 되고 있다.
개악 노조법은 노조 탄압을 작정한 자본에게 큰 무기다. 금속노조 KEC지회가 대표적이다. KEC 사측은 노조 전임자 문제를 빌미로 단체협상 과정에서 6월 30일 직장폐쇄와 용역깡패 투입을 단행, 본격적으로 노조 파괴에 나섰다. 금속노조 기아차지부, 충남 엠시트지회, 경기 케피코지회 등 현대차그룹 계열사들 역시 예전과 달리 단협 과정에서 전임자 등의 문제를 빌미로 강경 대응을 하고 있다. 그리고 정권 역시 이러한 움직임에 힘을 보태고 있다. 기아차의 경우 아예 노동부에서 타임오프제 관련 단협을 정부 뜻대로 관철하기 위한 감독관을 파견해 놓은 상황이다. 또한 정부는 공공노조 사회연대연금지부, 가스공사지부 등에 대해 단협 해지 이후 강경 입장을 계속 유지하며 자본의 노조 탄압이 정권 차원의 계획임을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다.
정권과 자본의 공세 속에 민주노총은 아직까지 총노동 투쟁 전선을 만들고 있지는 못하다. 지금까지 대응은 단협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한 사업장들이 사업장 차원에서 힘겹게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수준이다. 금속노조는 2010년 170개 임단협 사업장 중 7월 18일까지 101개 시업장이 전임자를 현행 유지 혹은 단협 현행 유지 후 추후 논의하기로 합의를 보았다고 밝혔지만, 전임자 수가 크게 줄어드는 대공장 사업장의 경우 여전히 교섭 자체도 제대로 열리고 있지 못하다. 금속노조는 7월 21일로 예정했던 총파업을 연기하고 휴가 이후 투쟁을 다시 준비하고 있다. 다수의 사업장이 단협해지에 이은 사측의 교섭 회피를 겪고 있는 (가)공공운수노조준비위(구 공공운수연맹)는 7월 17일 공공부문 노동자 총력 결집대회를 계획했으나 산하 노조들의 여건으로 대회를 성사시키지 못했다. 총연맹 차원의 대응은 위원장 단식 농성 정도를 제외하고는 지금까지 아예 없다.
민주노총의 대응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타임오프제의 이후 효과는 매우 파괴적일 것으로 보인다. 이미 단협 투쟁 과정에서 드러나고 있듯이 타임오프제의 목표가 단순히 전임자 숫자를 몇 명 줄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타임오프제의 시작은 일부 사업장에서의 전임자 수가 줄어드는 것으로 시작하겠지만, 타임오프제가 확대한 자본의 항시적 노조 활동에 대한 개입은 기층 현장에서부터 노조 활동에 대한 제약과 사회운동에 반하는 관행을 만들어 낼 것이다. 당장 노동부가 제시한 타임오프 매뉴얼에 따르면 유급 전임자는 상급단체 파견을 비롯하여 사업장 외부 활동 일체를 할 수 없으며, 심지어 산별노조의 회의도 나갈 수 없다. 한 예로 철도공사는 최근 열린 철도노조 대의원대회 참가자에 대해서도 모두 무급 처리하겠다며 노조 간부들을 협박했다. 더 나아가 가스공사의 경우는 아예 풀타임 유급전임자 5명을 제외하고는 무급 전임자도 인정할 수 없다고까지 밝히고 있다. 노조 간부들은 이제 매번 타임오프의 적용 유무를 가지고 사측과 장기간의 싸움을 해야 할 형편이다. 임단협 투쟁 한번만 해도 기진맥진해지는 현재 노조 운동 속에서 이러한 사측의 규제가 활동가들의 자기 규제로 이어질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민주노조 vs 현대차그룹, 어차피 우회할 수 없는 투쟁이다

민주노조 운동 진영은 당장 법개정을 해내지는 못하더라도 우선은 타임오프제가 현장에서 정권과 자본의 의도대로 실행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자본의 선봉임을 자임하며 타임오프제를 관철시키는 현대차그룹과의 싸움이 타임오프제 성공 여부의 상징이 될 것이다. 기아차지부를 비롯하여 현대위아지회, 케피코지회, 엠시트지회 등 현대차그룹 계열사들 대부분이 단협을 체결하고 있지 못하다. 정권의 전폭적 지지를 받고 있는 현대차그룹은 이 번 기회에 금속노조 자체를 손 보겠다는 기세다.
금속노조는 양재동 현대차 본사 앞 집중 집회를 비롯하여, 8월 기아차지부 파업 등을 통해 현대차그룹에 대한 집중 투쟁을 조직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현대차 자본의 공세도 만만치 않다. 기아차 사측은 노조가 전임자 문제로 교섭을 끌고 있으며 무쟁의 타결 시에 현대차에 준하는 임금 인상, 성과급, 주식 등을 제공하겠다고 조합원들을 선동하고 있다. 매년 현대차에 비해 적은 임금 인상으로 쌓인 조합원들의 불만을 자극하고 있는 것이다. 기아차지부는 휴가 이후 파업을 조직하여 타임오프 투쟁 전선을 지키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단협이 2011년 3월까지라 타임오프에 현재 직접적 이해관계가 없는 현대차지부의 이경훈 집행부가 ‘실리’ 중심의 임투만을 지향하고 있는 상황이라 현대차 타결 이후 자칫 기아차지부 조합원들의 현대차 따라잡기가 파업 투쟁 전선을 허물수도 있는 상황이다.
현대차지부의 활동가들은 쉽지는 않겠지만 가능한 현대차지부 집행부가 기아차지부 임단협 투쟁과 보조를 맞출 수 있도록 견인해나가야 한다. 현대 자본의 최종 목표는 다름 아닌 현대차지부고 현대그룹의 노조들을 식물 노조로 만드는 것이다. 타임오프제는 내년 현대차지부의 손과 발도 묶을 것이다. 금속노조를 강화하고 민주노조 운동을 지켜나겠다는 현대차지부의 현장 활동가들은 기아차지부의 타임오프 관련 단협 투쟁이 기아차지부만의 문제가 아니라 현대차그룹의 반노조 공세에 맞선 싸움이라는 것을 양 지부 조합원들에게 알려나가야 한다.
더군다나 타임오프 건만이 아니라 세계경제위기 속에서 앞으로 재벌 대기업의 반노조 공세에 맞선 투쟁이 더욱 중요해 질 것이라는 점 역시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2008~09년 경제위기 과정에서도 보았듯이 재벌 대기업들은 위기를 명분으로 하청업체 노동자들을 비롯하여 국민경제 전체를 수탈한다. 현대그룹은 한국 경제성장률이 1998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한 2009년 사상 유래 없는 순이익을 기록했다. 납품업체들을 쥐어짜고, 정부로부터 각종 세제 혜택을 받은 결과다. 1998년 외환위기 극복 과정에서도 보았던 재벌 대기업들의 경제 위기 속 성장은 고용, 임금에 대한 유연화를 바탕으로 노동자들에 대한 철저한 착취를 통해 이루어진다.
2009년 현대차그룹 노동자들은 그다지 피해가 없었다. 하지만, 앞으로 제2, 제3의 경제위기가 온다면 작년과 같은 타협은 기대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은행 파산과 신용경색에 대한 대응으로 세계 각국 정부가 쏟아부은 돈은 최근 재정위기라는 형태로 세계 경제를 다시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 이는 세계경제위기가 해결된 것이 아니라 위기가 다른 형태로 변형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앞으로 다시 닥칠 경제 위기는 기업 내에서 적당히 노사 타협하고, 기업 외부에서 나머지 부분을 수탈하는 정도로는 극복할 수 없는 수준일 가능성이 크다. 그룹 내 노동자들의 단결을 통한 노동조합의 강화, 금속노조 차원의 전국적 계급 단결 없이는 2009년 미국자동차노조가 몰락했던 그 길을 그대로 가게 될 수 있다. 현대, 기아지부를 포함한 금속노조의 공동 투쟁을 한 해의 문제가 아니라 보다 전략적 의미로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다.

총연맹, 투쟁 사업장들을 묶어세우고 정권의 추가 공세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한편, 이번 타임오프제 투쟁만큼 사안에 비해 총연맹의 존재감이 없는 투쟁도 드물었다. 총연맹은 전략적으로 타임오프 투쟁을 현장과 논의하고 조직해야 하는 시기에 별 다른 영향력도 발휘하지 못한 반MB연대와 지방선거에 모든 역량을 쏟았었다. 개악 노조법과 관련한 투쟁은 2009년 12월의 1박2일 전간부 상경 투쟁과 얼마 전부터 시작된 김영훈 위원장의 단식 농성이 전부다.
이는 분명 현 총연맹 지도부의 실책이다. 타임오프 관련 투쟁이 기업별 단협과 깊게 연관되어 있고, 총연맹이 산별노조가 관장하는 기층 노조의 단협 투쟁에 별다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한계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총연맹이 상반기 내내 공허한 반MB연대와 그에 연계한 지방선거에만 매몰되어 민주노조 운동의 치명적 약화를 가져올 수도 있는 중대 사안을 총연맹이 할 수 있는 만큼도 하지 못한 것은 분명 평가가 필요한 지점이다.
총연맹은 지금이라도 금속노조, 공공운수연맹, 보건의료노조 등에서 타임오프 및 노조탄압 관련 투쟁을 벌이고 있는 사업장들을 묶어 세워 다시 한 번 대정부 투쟁 전선을 구축하는 일에 매진해야 한다. 노조 탄압 분쇄 투쟁을 전국적으로 묶어 세워 정부가 개정 노조법을 무기로 현장에 개입하는 것을 막아내고, 정부의 반노조 정책을 사회적 쟁점으로 만들어 내야 한다.
더군다나 2011년 복수노조 창구단일화까지 더해지면 현장의 노조 활동은 더욱 어려워 질 것이기 때문에 올 해 투쟁을 제대로 조직해야만 한다. 국외의 경험으로 노조 간 경쟁으로 힘을 잃는 것은 노조 측이 대부분이었다. 더군다나 어용노조 관행이 남아있는 한국의 노사관계 현실에서 현행법은 어용노조를 통해 복수노조 간 창구단일화 절차를 매우 어렵게 가져갈 수 있도록 여지를 두고 있기 때문에 사측의 반노조 공작이 극에 달할 수도 있다.
민주노조 사수 투쟁을 정부가 조만간 본격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보이는 고용지원서비스 민간위탁, 단시간근로일자리 및 변형근로제 확대 방안 등의 노동유연화 정책들에 대한 투쟁으로 이어가는 것 역시 반드시 고려한다. 정부는 작년 초부터 국가고용전략회의를 통해 노동법 재개정과 정부 고용 정책을 논의해 왔는데, 최근 중간착취를 규제하는 직업안정법을 전면 개정하여 파견중개업을 대형화하고, 파견법을 개정으로 인한 논란을 우회하기 위해 고용서비스촉진법을 새로 만들어 파견업을 대폭 확대하려 하고 있다. 정부가 이미 공무원 노동자를 상대로 시범 실시하고 있는 단시간근로시간제 역시 전 산업으로 확대한다는 계획도 가지고 있다. 많은 사업장에서 불법이지만 일반화된 불법 파견 노동자 사용을 아예 합법화하겠다는 것이며, 자본의 의도만큼 활성화되지 않은 노동시간의 유연화도 정부 차원에서 추진해 보겠다는 것이다. 90년대 대폭 확대된 노동 유연화의 종점인 셈이다.
앞으로 당분간 경제 위기가 반복될 것이고 정부는 이를 노조 파괴와 노동유연화를 통해 해결하려 할 것이다. 민주노총의 투쟁은 현재의 노조 파괴 공세를 막아내고 정부의 고용 정책, 위기 해결을 위한 경제 정책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를 폭로하는 것에 집중되어야 한다. 현장의 노조 파괴 책동을 막아내는 것이 그 시작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태그

전임자 , 민주노조 , 민주노총 , 타임오프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사회진보연대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
  •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