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나누기

게임중독이라는 왜곡된 프레임

문화연대 소식지 "상상나누기" 2010년 13호 밥보다 문화

 

게임중독이라는 왜곡된 프레임

 

양기민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게임중독에 빠진 부부가 3개월 된 자신의 아이를 굶어 죽이고 유기했다는 기사(http://news.nate.com/view/20100304n08475)에 많은 사람들은 놀랐다. 기사의 제목도 자극적이었다. “게임중독 부부 딸은 굶는데 ‘사이버 딸’ 집착(연합뉴스)”이라며 부모들이 죽은 아이대신 가상의 게임 캐릭터(아니마)를 마치 선택한 것처럼 제목은 묘사한다. 기사의 댓글을 살펴보면서 사람들의 반응은 대부분 어떻게 자기 아이를 굶어 죽이면서까지 게임을 하느냐고 부모의 탓 한다. 어쩌면 상식적인 반응이다.


경찰 관계자는 “자기 자식이 우선이지, 내 자식은 굶고 있는데 인터넷 게임에서 캐릭터를 키우는데 빠져 내 자식을 굶어 죽게 했다는 게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한국사회에서 부모가 자식을 키우는 의무를 저버린다는 행위는 변명할 수 없는 패륜적 행동이고 부모의 책임 영역으로 국한시킨다. 이는 당연한 이야기처럼 느껴지지만,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그 순간, 우리 사회가 육아와 양육에 가져야 할 책임은 사라지게 된다. 복지국가의 상상력은 무너지고, 개인의 당연한 권리들은 실종된다.


이 사건에서 주로 문제시 되는 ‘게임중독’ 담론도 왜곡 된 시각을 강요한다. ‘게임중독’이란 게임산업이 발전하면서 구조적으로 발생 된 디지털 사회의 질병이다. 이반 일리히 식으로 말하면, ‘자동차가 발명 되어, 교통사고가 발생된 것처럼’, 편리의 선택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감당해야 할 사회적 책임의 영역이다. 그러나 이러한 게임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용납할 수 없는 취향이다. 하루에 4시간에서 6시간 또는 그 이상의 시간을 게임으로 보내는 가능성을 비상식화 한다. 그래서 게임은 정신의료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마약과 비슷한 중독적인 ‘물질’로 규정한다. 내가 물질이라 강조 한 것은 게임의 내용적인 측면(음란, 폭력적인 면)에 초점을 맞추거나 또는 제거하거나 조절하면 문제점들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전히 게임이 삶을 구성하는 문화의 일부라는 시각까지 도달하진 못했다. 그래서 표상적인 문제에서 입장을 정리 할 수 있다. 게임은 수출의 역군이거나 사회의 암적 존재라는 상반된 시각 모두 게임을 문화적 존재로 해석하는 입장은 아니다. 


이번 사건을 통해 현재 우리나라 게임들이 문제적 상황이라는 것은 동의할 수 있다.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하는 과몰입적 구조는 게임업계에서 준비한다는 피로도 시스템 이상의 대책방안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규제 장치들로 게임 과몰입 문제가 해소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이용자들은 조금의 허점을 이용해서라도 하지 말라는 일을 더욱 하고 싶어 하며 방법을 고안할 것이다. 게임업계에게 지속적으로 게임중독 문제에 해소방안을 요구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나, 이러한 방향은 근본적인 처방이라기 보다는 편리한 방법일 뿐이다. 다시 말하면 게임중독은 게임을 너무 많이 한다는 현상적 측면의 수준을 넘어 우리 생활세계에 구조화된 사회적 모순의 징후이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의 피의자를 인터뷰한 표창원 박사의 글(http://v.daum.net/link/6079453)을 보면 게임부부의 상황과 행동이 단순 게임 중독자의 문제로 환원하기 어려운 복잡한 맥락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요약하자면, 이번 사건은 가난해서 육아양육을 심리적으로 회피하여 도피를 선택한 것이 게임이었다는 것이다. 많은 경우 게임중독이라는 현상은 현실을 회피하거나 도피하게 되는 종착의 한 유형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게임 산업이 활성화된 것이 97년 IMF 이후 PC방의 증가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단지 스타크래프트의 인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경제적 파탄으로 인해 저렴한 여가수단으로 게임을 선택하게 되었다. 사회의 재구조화 과정에서 현실 속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과정에서 탈락되고 상대적으로 게임 안에서는 자신의 존재감을 보상받으며 대리적 만족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오히려 PC방이나 게임과 같은 대중적 문화는 사회적 약자들을 그나마 버티게 하는 기능을 해왔던 것이다.


결국 사회 변화를 견지하는 구조적 시각 없이 현재의 ‘게임중독’ 자체를 문제시한다면 많은 사회적 모순들이 은폐되는 효과가 나타난다. 예컨대 청소년 게임중독의 경우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느끼는 과중한 입시스트레스로 게임으로 쉽게 유입하여 도피하는 매커니즘으로 지속되는데, 이러한 문제를 가족 내 게임 이용 관리책이 미흡하다는 식으로 어영부영 마무리한다면 해결할 수 없다. 덧붙여 청소년들이 보낼 수 있는 게임과 PC방을 대체할 수 있는 마땅한 여가 및 문화시설이 없다는 현실은 제기되지 않는다. 최근 청소년보다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20~40대 게임중독인데, 이는 실업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관된다. 개인화가 진행된 유휴노동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경제적인 문화 활동은 오직 게임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선 부부의 사례처럼 모든 사회 구조적 모순을 개인의 잘못으로 치부한다면, 오히려 실업문제의 경우 청년 실업자들이 게임중독에 걸려 그 개인들이 실업을 선택했다는 논리로 왜곡 확장될 수 있다. 괜찮은 일자리를 제공하지 못하는 사회구조적 문제를 치환하여 개인에게 책임을 치환하는 매커니즘으로 게임중독은 이것저것 활용될 수 있다. 이런 경우 앞으로도 사회의 책임을 은폐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게임중독 담론은 활용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게임중독을 바라보거나 해결책을 위한 시각의 재정립이다. 정부에서 자꾸 해결책으로 개인의 심리적 치료를 통해 해결하려는 것은 사회의 문제를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겠다는 액션에 불과하다. 게임중독을 해결하기 위한 ‘예방’적 차원의 접근이라면, 그것은 게임을 적게 하도록 유도하는 기술적 차원의 문제를 넘어, 게임 의존자들이 게임 세계로 도주하지 않고 현실 안에서 더 많은 기대를 하게 할 수 있게 하는 전망을 주는 것이다. 그것이 문화의 역할이자 가능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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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luny

    소유에서 접속으로 가치관이 변했다는 논지에서 신세대의 다중인격을 받아들이는 등, 탈근대 사회의 특성에 관한 사회적 담론이 매우 부족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게임을 근원적인 '악'으로 규정하고 마녀사냥하듯 대해서는 우리 사회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을 것입니다. 시장지상주의 아래서 언론이 사회적 책임을 저버리고, 스타덤과 마녀사냥식의 마케팅 기법으로 모든 기사를 대하는 것이 큰 문제가 아닌가 합니다. 그런 면에서 본문의 논지가 갈증을 해소해주듯 기꺼움을 전해주는군요. 감사합니다.

  • 김혜진

    이런 사회적인 문제 덕분에 게임을 순수하게 즐기는 사람들까지 정신병자 취급을 당하고 있습니다.속시원한 한말씀 해주셔서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