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헌법을 겨냥한 극악무도한 공격

출처: Rohit Dey, Unsplash

이전까지도 인도의 여러 주에서는 각기 한정된 범위와 재정적 제약 아래 다양한 고용 보장 제도를 운용해 왔다그러나 2005년에 제정된 마하트마 간디 국민농촌고용보장법(MGNREGS)은 이런 제도들과 달리전국 단위로 통일되고본질적으로 중앙 정부가 재정을 책임지는 수요 기반 고용 보장 제도를 도입했다농촌의 각 가구당 한 명은 연간 최대 100일의 일자리를 요구할 수 있으며일자리를 제공하지 못할 경우 그에 대한 보상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수요 기반 제도는 국민에게 권리를 부여하며, MGNREGS는 바로 그런 권리를 신설한 법이다인도 헌법은 노동권을 포함한 경제적 권리를 기본권(Fundamental Rights)이 아닌 국가 정책의 지침 조항(Directive Principles of State Policy)으로 두고 있지만, MGNREGS는 이러한 헌법적 결함을 일부라도 보완하려는 시도로헌법이 상상한 이상을 부분적으로 실현한 사례였다.

이 법은 제정 전 수개월간 공개적인 토론이 이어졌고의회 상임위원회는 전국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청취하며 심도 있게 심의했다그리고 마침내그 내용에 대한 광범위한 합의가 형성되자 만장일치로 의회에서 통과됐다이 법은 국민의 뜻을 반영해 헌법이 상정한 권리를 현실로 구현한 것이었다따라서 이 권리를 폐지하는 행위는 비록 명문상의 헌법 위반은 아닐지라도헌법의 정신에 명백히 어긋난다.

그런데도국민민주동맹(NDA) 정부는 바로 이 권리를 사실상 박탈했다단지 구두 표결만으로국민이 헌법적 절차에 따라 부여받은 권리를 무효로 했다이는 실로 터무니없는 조치다정부는 이와 같은 부적절한 행위에 스스로도 불편함을 느낀 듯극도로 은밀하게 일을 처리했다. MGNREGA를 대체할 새로운 법안은 12월 15일에 제출되어, 17일 밤에 토론됐고, 18일에는 아무런 수정안 제출도 허용되지 않은 채농촌개발 상임위원회에 회부조차 되지 않고 구두 표결로 통과됐다이로써 매우 충격적이고 비민주적인 선례가 남게 되었다헌법에 따라 부여된 국민의 권리조차언제든 의회의 구두 표결만으로 철회될 수 있게 된 것이다.

정부는 언제나 그렇듯 새 법안의 내용을 왜곡하며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정부는 새 법안이 MGNREGS의 100일보다 더 많은최대 125일의 고용을 보장하기 때문에 이전보다 낫다고 주장한다그러나 정작 정부가 숨기고 있는 것은이 법이 MGNREGS에 25일을 더하는 것이 아니라 MGNREGS 자체를 완전히 폐기했다는 점이다따라서 고용을 요구할 권리 자체가 사라졌다수요 기반이었던 기존 제도는 이제 전적으로 중앙 정부의 재량에 따라 공급되는 체제로 전환되었다.

이 변화는 여러 방식으로 나타난다첫째고용 제공 지역이 농촌 전역이 아니라 중앙 정부가 지정한 특정 지역으로 한정된다따라서 모든 농촌 가구에 100(또는 125)의 고용이 제공된다는 개념은 성립하지 않는다둘째중앙 정부는 각 주의 고용 수요와 관계없이 자의적으로 지원 예산을 책정할 수 있다셋째자금 조달 비율이 기존에는 중앙 90%, 주정부 10%였던 반면이제는 중앙 60%, 주정부 40%로 바뀌었다그러나 현재 모든 주정부는 극심한 재정난에 처해 있다예컨대중앙 정부가 어떤 주에 60루피를 제공하겠다고 결정했을 때해당 주가 재정적 한계로 인해 20루피밖에 조달하지 못한다면 전체 프로그램 예산은 100루피가 아닌 80루피로 축소된다이처럼 중앙 정부는 고용 부족의 책임을 주정부에 떠넘기는 동시에프로그램 규모를 축소하는 효과를 노릴 수 있다.

따라서 고용 일수를 125일로 늘린다고 해도 실질적인 의미는 없다새 고용 제도는 수요 기반이 아닌 공급 기반이기 때문에, MGNREGS가 보장했던 국민의 권리를 완전히 폐기한 셈이다.

NDA 정부의 헌법 공격은 고용권의 폐지에 그치지 않는다연방주의에 대한 공격도 포함된다정부는 각 주의 재정 상황을 잘 알면서도 사전 협의 없이일방적으로 주정부 부담을 10%에서 40%로 인상했다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각 주의 총 예산 규모지출 지역고용 프로젝트 선정 등 모든 의사결정을 중앙 정부가 독점하게 됐다심지어 주정부가 자발적으로 더 많은 지출을 하려 해도중앙이 정한 기준에 따라야만 가능하다.

주정부는 더 많은 지출을 강요받으면서도지출 내용과 방식에 대해서는 아무런 권한도 행사할 수 없게 됐다이는 헌법이 상정한 연방주의 질서를 완전히 무시하고주정부를 중앙 정부의 하위 기관처럼 취급하는 처사다.

지방 자치단체(Local Self-Governing Institutions)의 역할도 크게 약화했다기존 MGNREGS 사업은 지방 자치단체가 기획했으나이제는 중앙 정부가 이를 일방적으로 결정하게 됐다이는 헌법 제73차 개정으로 보장된 민주적 분권 원칙에 대한 또 다른 중대한 위협이다.

VB-GRAM G 법안은 단지 농촌 빈민을 겨냥한 공격에 그치지 않는다이는 인도 헌법에 대한 전방위적이고 중대한 공격이다농촌 빈민은 인도에서 가장 가난한 계층으로, MGNREGS는 이들에게 생계의 생명줄과도 같았다특히 팬데믹 기간도시에서 쫓겨난 수많은 노동자가 고향으로 돌아가 MGNREGS의 고용권 덕분에 생존할 수 있었다. MGNREGS의 철폐는 이들의 권리와 삶을 동시에 무너뜨리는 행위이며헌법 자체에 대한 정면 공격이기도 하다.

이 권리의 폐지는 농촌 빈민을 자유로운 국가의 자랑스러운 시민이 아닌절박한 구걸꾼으로 전락시킨다이들의 삶이 악화할수록 중앙 정부는 모디(Narendra Modi)의 사진이 인쇄된 일부 시혜성 보조금을 흘리며 자신이 은인인 듯 행동할 것이다실제로는 더 가난해졌지만이들은 받은 적은 혜택에 감사를 느끼게 된다이처럼 노동계층을 시민에서 은혜에 감사하는 민중으로 전락시키는 것이 모든 파시즘 정권이 추구하는 궁극적 목표이며이는 반드시 지도자 숭배(cult of the leader)와 함께 진행된다.

헌법에 대한 공격 역시 이러한 과정의 일환이다인도의 헌법은 반식민 투쟁의 성과로, ‘국민이라는 주체를 중심에 두고 구성됐다헌법 아래에서 정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그러나 파시즘 정권은 이 관계를 완전히 전복시킨다. ‘국가는 지도자와 동일시되고국민은 지도자에게 충성을 바치며 끊임없이 재선시켜야 할 대상으로 전락한다국민의 권리를 폐지하고이들을 지도자의 시혜에 의존하는 신민으로 만들며이와 동시에 헌법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은 민주주의에서 파시즘적 권위주의로 전환되는 과정의 일부다. MGNREGS라는 세계 최대 규모의 고용 프로그램이 철폐된 지금인도는 그 전환의 중대한 단계를 밟고 있다.

[출처] An Outrageous Assault On The Indian Constitution | Peoples Democracy

[번역] 하주영 

덧붙이는 말

프라바트 파트나익(Prabhat Patnaik)은 인도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이자 정치 평론가다. 그는 1974년부터 2010년 은퇴할 때까지 뉴델리의 자와할랄 네루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경제 연구 및 계획 센터에 몸담았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