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밀 타격(precision strikes)”이라는 언어는 하나의 허구로 기능한다. 이스라엘과 미국은 이란의 산업 기반을 해체하고 있다.
2026년 3월 7일, 미국-이스라엘의 대이란 전쟁 중 공격을 받은 테헤란 남부의 석유 저장 시설에서 불길이 치솟고 있다.
2월 28일, 테헤란에서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Ali Khamenei)의 거주지에 대한 이란 전쟁의 개시 공격 이후의 모습을 담은 영상들이 온라인에 공개되었다. 파스토르 거리에서, 즉 해당 거주지에서 몇 골목 떨어진 곳에서 촬영된 한 영상에는 연기가 기둥처럼 하늘로 솟아오르는 장면이 담겼다. 방향 감각을 잃고 극도로 불안해 보이는 한 젊은 여성이 화면을 가로질러 지나가며 휴대전화에 대고 “엄마, 집에서 나와”라고 소리쳤다. 누군가 “어디를 맞은 거야?”라고 묻자, 카메라 뒤에 있던 여성은 걱정 속에서도 약간의 흥분을 내비치며 “바이트(Bayt), 지도자의 거주지야”라고 답했다. 불과 잠시 전, 그 여성은 거주지 인근의 한 주거 건물을 가리키며 걱정과 경외 사이에서 흔들리듯 “왜 집을 공격한 거지?”라고 중얼거렸다.
이 영상들은 또한 파편적으로나마 서사 전쟁의 붕괴를 포착했다. 폭탄 하나하나가 떨어질 때마다 제국의 허구는 가루와 먼지로 부서졌다. “정밀 타격”, “인간 방패”, “불가피한 희생.” 3월 7일, 지금까지 테헤란에서 가장 참혹한 밤 가운데 하나였던 그날 밤, 한 주민은 “테헤란에 두 개의 태양이 떠올랐다… 밤이 낮이 되고 낮이 밤이 되었다”라고 적었다. 이스라엘과 미국이 수도의 서로 다른 네 곳에 있는 네 개의 석유 저장 시설을 공격하면서, 거대한 불길과 재가 하늘을 뒤덮었다. 그날 밤, 도시 외곽 산기슭의 저장 시설에서 흘러나온 석유가 배수로를 따라 불길에 휩싸인 채 흘렀다. 천만 명의 주민들이 새벽에 일어나자 하늘은 흑요석처럼 검게 변해 있었고 공기에는 유황과 독성 가스의 냄새가 가득했다. 그리고 마치 전쟁이라는 연극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듯, 검은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 비는 악명 높은 테헤란의 교통 체증 속에 갇힌 자동차 행렬을 적셨고, 도시를 떠나지 않았거나 떠날 수 없었던 사람들이 일터로 향하고 있었다.
폭탄이 떨어질 때마다, 미국과 이스라엘에 이란 공격을 요청했던, 텔아비브의 도발자로 행동했던, 메시아적 정권 교체와 자유, 번영, 그리고 서방의 인정을 약속했던 가짜 왕 레자 팔라비(Reza Pahlavi)의 약속은 하나씩 무너져 내렸다. 마치 그 스스로가 그 끊임없는 폭발 속에서, 그 연기 기둥 속에서 타들어 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낮은 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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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에 대해 불법 전쟁을 시작한 이후, 이란 인권 단체 HRANA에 따르면 1,407명 이상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으며, 그중에는 214명의 어린이가 포함된다. 최소 18,551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란 적신월사는 아파트, 상점, 주택, 학교를 포함한 민간 건물 81,000채가 피해를 입었으며, 이 가운데 19,000채는 상업 시설이고 61,000채는 주거 시설이라고 보고했다. 또한 전국에서 제약, 의료, 보건, 응급 시설 275곳이 심각한 피해를 입었고, 490개의 학교가 직간접적인 공격을 받았다. 적신월사의 자체 시설 17곳도 심각하게 파괴되었으며, 구급차 19대를 포함한 응급 차량 21대가 운용 불능 상태에 놓였다.
이란에서 — 그리고 레바논과 팔레스타인에서 — 살해와 파괴의 비극이 전개되는 동안, 제국의 중심에서는 동시에 견디기 어려운 희극이 세 개의 막으로 상연되고 있다.
첫 번째 막은 언론과 사회관계망 전반에서 널리 논의된 팔라비 지지자들과 전쟁 지지 이란 디아스포라다. 전쟁이 시작되기 몇 달 전, 인권 변호사이자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시린 에바디(Shirin Ebadi)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란을 공격해 달라는 편지를 썼다. 이제 에바디는 자신이 원했던 것은 하메네이의 죽음뿐이었고, 이후 벌어진 (피할 수 없었던) 전면전은 원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그가 여전히 추가 폭격을 주장하는 팔라비의 법률 자문으로 참여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이 진영의 나머지에 대해서 말하자면, 이 전쟁의 향방을 실제로 결정할 서방 권력의 최고위층 누구도 1979년에 축출된 샤의 아들을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은 처음부터 분명했다. 팔라비 홍보팀이 우크라이나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와의 회동을 포함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그를 서방의 일원으로 미국과 유럽 대중에게 설득하는 데는 실패했다. 무엇보다도 그의 아버지, 이른바 왕중왕은 미국으로부터 더 많은 재정 지원을 얻기 위해 1962년 의회 합동회의에서 이란이 서구 문명의 일부라고 선언했던 인물이다.
어떤 나라도, 특히 우리의 지정학적 위치에 있는 나라는 중립을 유지할 여유가 없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통치 체제, 문명과 문화, 생활 방식과 사고방식이 유사한 국가들과 운명을 함께하기로 결정했다. [박수] 우리는 이제 좋든 나쁘든 자유 세계와 함께하기로 결정했다. [박수]
그 아들에게 이 동맹은 분명히 “나쁜 쪽”으로 작용했다. 전쟁이 시작된 이후 <뉴요커>는 “트럼프와 그의 보좌진은 팔라비를 ‘패배한 왕자’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이 희극의 두 번째 막은 식민적 지식 생산의 재연이다. 폭격으로 파괴된 건물들의 이미지를 보며, 서구의 관찰자들은 질서정연한 거리와 고속도로를 가진 테헤란이 그렇게 “현대적”으로 보인다는 사실이나, 이스파한(Isfahan)이 과거로부터 이어진 그렇게 “아름다운” 건축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표한다. 언제나 그렇듯 식민적 지식은 파괴를 통해 전개된다. 미사일이 떨어진 자리에 뒤늦게 인식적 호기심이 따라온다.
또 다른 “발견”은 알리 하메네이를 암살한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정권 붕괴”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정부가 유지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루홀라 호메이니(Ruhollah Khomeini)의 최고지도 체제와 하메네이의 지도 체제 사이의 차이에 있다. 호메이니는 혁명의 열기 속에서 권력을 장악한 카리스마적 지도자였으며, 그의 관료들과 시민들과의 관계는 거의 열광적인 감정적 결속에 기반하고 있었다. 전통적으로 종교 지도자의 거처를 의미하는 호메이니의 바이트(Bayt)는 제도로서 크게 확장되지 않았다. 반면 하메네이는 다른 경로를 따랐다. 그는 전임자의 카리스마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제도 중심적으로 움직였다. 1989년 집권 이후 하메네이는 바이트를 거대한 기구로 확장했고, 이를 통해 체제 내부의 추가적인 제도 구축을 형성하거나 주도하면서 정부의 지원을 받지만 일정한 자율성을 지닌 군사·종교·경제 조직들의 네트워크를 공고히 했다.
그 결과 이란 국가는 다층적인 구조로 발전했다. 이는 단일한 중심 인물에 의존하지 않는 현대 국가로, 제도의 권위가 유지되는 한 작동하는 체제다. 주류 분석은 이러한 제도적 성격을 대체로 이해하지 못했고, 대신 지도부 제거를 통한 정권 교체라는 환상을 반복해 왔다. 실제로 서구 언론 전반에서 이란 국가를 “정권(regime)”이라고 부르는 집요한 관행은 — 이를 다수의 권력 중심을 가진 복합적 체제가 아니라, 얇은 폭군 지배층으로 상상하는 방식은 — 같은 종류의 승인된 무지를 드러낸다.
이 희극의 세 번째 막은 황제 자신의 모습이다. 망상에 빠져 있으면서도 강력하고, 벌거벗은 채 분노에 사로잡힌 도널드 트럼프는 서아시아 전역에서 자신의 살상 기계가 발휘하는 순수한 힘을 만끽하며, 한 호흡으로 파괴를 위협하고 평화를 약속한다. 쉽게 지루해하는 이 황제는 언제나 다음 목표를 노리고 있다. 트럼프는 최근 섬뜩할 정도로 노골적인 표현으로 자신이 “쿠바를 차지할 영광을 얻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선언했다. “내 말은, 내가 그것을 해방시키든, 차지하든, 나는 거기서 무엇이든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그는 그것을 차지할 수 있다. 그는 파괴의 권력을 갖고 있다. 트럼프는 자신을 죽음을 명령할 수 있는 황제로, 기반시설을 폭격하고 탈식민 이론가 아실 음벰베(Achille Mbembe)가 말한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영구적 상태”를 이란 국민에게 가할 수 있는 존재로 자랑한다.
그러나 제국주의자의 오류는 언제나 고통을 부과하는 것만으로 자신의 의지를 강요할 수 있다고 믿는 데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순수한 부정은 지속적인 지배를 만들어낼 수 없다. 호르무즈 해협이 그 사실을 증명한다. 트럼프는 최근 기자들에게 “나와 아야톨라가 함께” 그 해협을 “공동으로 통제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말하며 상상에 잠겼다.
그럼에도 파괴는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이스라엘과 미국은 이란의 산업 기반을 해체하고 있다. 사우스파르스(South Pars) 가스전과 더불어 전국의 산업 지대가 공격을 받았다. 이스파한의 제이(Jay), 케슘의 툴라(Toula), 팍다슈트의 아바스아바드(Abbasabad), 샤리파바드의 셴자르(Shenzar), 카즈빈의 리아(Lia), 파샤푸예의 하사나바드(Hasanabad), 콤의 쇼쿠히예(Shokouhieh), 아라크의 케이르아바드(Kheirabad) 등이 그 대상이었고, 이로 인해 노동자들이 죽거나 다쳤으며 많은 이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농촌 주변 지역과 소도시에서 벌어진 폭격은 충분히 기록되지 않고 있다. 이미 테헤란 외 지역에서는 인터넷 접근이 불균등했는데, 이제는 비용까지 상승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고에 따르면 서부 국경 지역, 남부와 남동부 해안 지역, 그리고 쿠르디스탄(Kurdistan), 서아제르바이잔(West Azerbaijan), 동아제르바이잔(East Azerbaijan) 주도에서 반복적인 폭격이 이루어지고 있다. 현재 이란에서는 320만 명 이상이 국내 실향민이 되었고, 레바논에서는 100만 명이 추가로 실향 상태에 놓였다. 레바논 남부에서는 마을 전체가 완전히 파괴되었고, 피난민들이 탈출할 수 있는 다리들조차 이스라엘군에 의해 체계적으로 파괴되었다. 만약 미국과 이스라엘이 발전소와 같은 민간 기반시설을 추가로 공격하겠다는 위협을 실행에 옮기고, 이란이 이에 대한 보복을 실제로 수행한다면, 서아시아에서 수십 년에 걸쳐 이루어진 발전은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이 지역 사람들은 더욱 깊은 고통으로 내몰릴 것이고, 전쟁은 더욱 끔찍하고 예측 불가능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 것이다.
이제 미국이 호르무즈 해협을 확보하기 위해 지상군 침공을 감행하고, 카르그 섬과 기타 섬들을 점령할 가능성까지 공개적으로 거론되는 상황에서, 이러한 작전이 결코 전례 없는 일이 아니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란 남부에 대한 근대 초기 식민 침투의 가장 이른 사례는 아폰수 드 알부케르크(Afonso de Albuquerque)가 이끄는 포르투갈이 호르무즈와 케슘 섬을 점령했을 때였다. 그들은 호르무즈를 해상 제국의 요새화된 거점이자 무역 통제의 병목 지점으로 변모시켰다. 이는 고립된 거점이 아니라 페르시아만 전역에 걸친 더 넓은 제국주의적 침투의 일부였다. 영국 제국은 해군 우위를 바탕으로 남부 해안 지역을 간헐적으로 점령하며 이 지역을 식민 자본주의의 회로에 편입시켰다. 이러한 침투는 결코 저항 없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1622년에 영국의 지원을 받아 포르투갈을 축출한 사파비 왕조(Safavid)의 군사 작전과 지역 봉기에서부터, 이란 남부의 구전 전통과 민속, 문학적 상상력 속에 축적된 반식민 기억에 이르기까지, 페르시아만은 오랫동안 제국 지배와 저항이 얽혀온 공간이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동일한 전략적 해역을 둘러싸고 첨단 기술 전쟁을 벌이고 있는 지금, 현재의 순간을 단절이 아니라 새로운 조건 아래에서 반복되는 역사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원 추출과 통제를 둘러싼 동일한 지리, 무역 병목 지점을 지배하려는 백인 제국주의의 동일한 환상이, 이제는 위성, 알고리즘, 정밀 유도 무기를 통해 다시 동원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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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첫 96시간 동안 미국은 이란에 5,000발이 넘는 탄약을 투하했다. 외교정책연구소의 분석에 따르면 이는 “현대사에서 가장 집약적인 개전 초기 공중 작전”이었으며, 리비아에서 나토가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던 초기보다 훨씬 강도 높은 수준이었다. 이러한 전례 없는 군사 의사결정 과정의 가속 — 목표 식별, 무기 선택, 피해 평가 — 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은 데이터 마이닝 및 감시 기업 팰런티어(Palantir)가 개발한 메이븐(Maven) 플랫폼이다. 이 시스템은 이른바 ‘킬 체인(kill chain)’ 전체를 조정하는 데 사용된다. 앤트로픽(Anthropic)의 인공지능 모델 클로드(Claude)와 결합된 메이븐은 이란에서의 펜타곤 분석과 작전을 위한 실시간 대시보드를 운영한다. 과거에는 킬 체인 승인에 수시간 또는 수일이 걸리는 수작업 문서 절차가 필요했지만, 이제 이 과정은 몇 초에서 몇 분으로 단축되었다. 학생들과 개발자들이 사용하는 동일한 생성형 인공지능 도구와 대형 언어 모델이 미국과 이스라엘 군대에 의해 한 나라 전체에 파괴를 쏟아붓는 데 사용되고 있다.
사건들은 성급한 추측을 허용하지 않을 만큼 빠르게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이 전쟁의 한 가지 결과는 이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10월 7일은 새로운 군사-인공지능 복합체의 출현을 알리는 출발점이었다. 이 경쟁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중심 기업은 팰런티어다. 이 회사는 중앙정보국(CIA)의 자금 지원으로 설립되었으며, 웬디스(Wendy’s) 공급망에서 사용되던 실시간 물류 시스템을 미 육군의 킬 체인에 적용했다. 팰런티어는 자신이 “미국 정부의 중앙 운영 체제”가 되겠다는 야망을 숨기지 않았으며, 다양한 데이터 분석 및 시각화 시스템을 통해 민간 관료제와 군사 권력을 사실상 연결하고 있다. 또한 2024년 1월, 팰런티어는 이스라엘 국방 기구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발표했다. 구체적인 내용은 불분명하지만, 그 기술이 가자에서 표적 선정에 활용되었다는 증거가 존재한다.
우리는 이란 남부 미나브(Minab)의 여자 초등학교에서 벌어진 학살에 인공지능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확실히 알 수 없다. 그러나 미국의 전쟁 기계가 초인적인 속도로 표적 목록을 구축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는 약 10년 동안 학교 옆에 위치해 있던 이슬람혁명수비대 기지와 해당 학교를 구분하지 못한 채 표적 목록이 갱신되지 않았던 이유를 설명해 준다. 모든 책임을 디지털 암살자에게 돌리는 것이 시스템에 내재된 인간의 가정을 가리는 데 기여한다면, 그것은 의도된 결과다. 이 기계는 확률 점수의 형태로 정보를 생성함으로써 책임을 분산시키고 부인 가능성을 보장한다. 일반적인 인공지능과 마찬가지로 군사-인공지능 산업은 2023년 이후 급속히 성숙해 왔다. 아브너 그바랴후(Avner Gvaryahu)는 최근 <가디언>에 기고하며 “가자는 실험실이었다. 미나브는 시장이다”라고 썼다.
이 모든 점에도 미국과 이스라엘의 첨단 전쟁 방식은 제국주의와의 단절이 아니라 다른 수단에 의한 그 연속이다. 우리는 이전 글에서, 정부가 1월에 이란 시위대를 학살한 직후에 작성한 글에서, 이란이 즉각적인 해결책을 찾기 어려운 정치적 “삼체 문제”에 직면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당시 상황을 규정하던 요소들 — 봉기의 계급적 성격, 팔라비 지지 우파가 시위를 상징적으로 지배한 상황, 제국주의적 공격의 위협 — 가운데 어느 것도 다른 요소들을 압도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 “테헤란에 두 개의 태양이 떠올랐던 밤” 이후, 우리는 그 분석을 수정해야 한다. 이는 오만에 기반한 제국주의 전쟁이며, 상황 전체를 압도해 버렸다.
전쟁에 대한 비판자로 자신을 내세우는 미국 정치인들 대다수조차도 그 전쟁의 실제 성격을 은폐하는 데 적극적으로 기여하고 있다. 주류 언론에서 민주당 상원의원과 하원의원, 전문가들은 트럼프의 “무모함”과 전쟁 “목표”의 “불명확성”을 비판한다. 그러나 실제로 그 목표는 매우 분명하다. 트럼프가 전쟁 개시 이유를 시간마다 바꾸고 있을지라도, 우리가 1월에 썼듯이 이스라엘과 그 서방 동맹의 전략적 목표는 “이란에서 영구적인 내전을 촉발해 가까운 미래 동안 어떤 권력도 재건될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전쟁의 시점 또한 그리 수수께끼가 아니다. 서아시아에서 미국-이스라엘 패권에 불편한 정부 — 수십 년 동안 “정치적 이슬람”과 “이슬람주의 테러리즘”의 화신으로 규정되어 온 정부 — 가 자국민 사이에서 충분히 신뢰를 잃고 “가장 약한” 상태에 있으며, 신속하고 폭력적인 공격으로 무너뜨릴 수 있는 시점에 도달했다고 판단된 것이다.
미국, 특히 이스라엘에게 중요한 것은 기존 이란 국가가 전복되고 다른 정부가 그 자리를 대신하는지 여부가 아니다. 이란은 광대한 영토와 전략적 위치를 가진 국가이며, 막대한 자원을 보유하고 있고, 제국주의에 맞서 안정성과 독립을 유지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다. 이러한 국가는 재래식이든 비재래식이든 어떤 무기를 보유하고 있는지와 무관하게, 이스라엘이 지역에서 절대적 패권을 구축하는 데 장애가 된다. 따라서 목표는 가까운 미래 동안 모든 이란인에게 자기결정권을 부정하는 조건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중국과의 경쟁, 그리고 현재 전쟁으로 위기에 빠진 페트로달러 체제를 유지하려는 시도 역시 같은 체제적 동인에서 비롯된다.
전쟁의 목표는 분명하지만, 전쟁을 시작한 세력은 이를 4일, 혹은 1~2주, 혹은 4주라는 제시된 시간 안에 달성하지 못했다. 목표 시점은 계속 바뀌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이 오만한 초강대국이 어떤 과정을 거쳐 결국 패배를 받아들이게 될지, 그리고 트럼프가 전쟁의 경제적·정치적 비용 앞에서 물러서기 전에 얼마나 더 권력을 과시하고 승리를 주장하려 할지다. 한편 이란 측은 트럼프의 협상 주장들을 부인하고 있으며, 비공식 외교 채널과 제3자 중재, 특히 파키스탄이 물밑에서 움직이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전쟁의 동기는 분명하지만, 그 결과는 아직 아무것도 확정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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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6월 12일간의 이스라엘-이란 전쟁 이전부터, 이스라엘과 미국 당국자들은 반복적으로 자신들의 목표가 이란 “국민”이 아니라 이란 “정권”이라고 이란인들에게 강조해 왔다. J. D. 밴스는 “미국은 이란과 전쟁 중인 것이 아니라 테헤란의 핵무기 프로그램과 전쟁 중이다”라고 주장한다. 이스라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와 트럼프는 일반 이란인들에게 정부에 맞서 “봉기하라”고 촉구해 왔다. 이러한 서사는 이제 수십 년의 역사를 가진 것이다. 2007년, 오늘날 네타냐후에 대한 용감한 비판으로 찬양받는 “자유주의적 인기 인사” 에후드 올메르트(Ehud Olmert) 이스라엘 총리는 한 안보 회의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이란 국민에 대해 아무런 적대감도 없다. 우리는 이란 국민의 적이 아니며, 이란과의 충돌을 원하지 않는다. 과거, 그 나라의 뛰어난 전통과 인상적인 역량을 지닌 국가가 급진적 세력에 의해 장악되기 이전에는 우리는 긴밀하고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이처럼 오랫동안 지속된 홍보 캠페인은 정치인과 언론 논객을 넘어, 이란과 이스라엘 양쪽의 사회적 환경 자체를 직접적으로 — 혹은 그렇게 가장하며 — 끌어들인다. 전쟁이 시작된 이후, 10월 7일 이후 설립된 이스라엘 자선단체 ‘렛츠 두 서밍(Let’s Do Something)’은 “당신이 이란인과 마주 앉는다면 무엇을 말하겠는가?”라는 질문을 던진 이스라엘 시민들의 영상을 온라인에 게시했다. 모든 답변은 동일한 논점을 반복하는 변주에 불과하다. 한 인터뷰이는 텔아비브의 주변을 가리키며 “우리는 당신들이 이 모든 것, 자유, 평화, 민주주의를 갖기를 원한다”고 말한다. 또 다른 이는 이란인들에게 새로운 혁명을 수행하라고 촉구한다. 한 젊은 남성은 자신의 부모가 이란인이라며 이 전쟁은 “분명히 당신들과의 전쟁이 아니라 이란 정권과의 전쟁”이라고 말한다. 한 젊은 여성은 두 나라가 “옛날처럼” 평화롭게 살기를 희망한다.
“이란 국민”과 그들의 정부 사이에 만들어진 이러한 수사적 분리는 — 특히 국가 관료를 완전히 배제한 채 이루어진 버락 오바마의 연례 노루즈(Nowruz) 연설을 통해 대중화된 방식으로 — 진정한 이란 사회가 현재의 정치적 현실과 대립하고 있다는 암시를 담고 있다. 네타냐후는 종종 영상 메시지를 통해 이란의 가뭄부터 억압적인 복장 규정에 이르는 국내 문제를 언급하며 이란인들에게 “직접” 말을 건다. 도널드 트럼프 역시 자신의 “좋은 이란 친구들”을 자랑하며 그들의 찬란한 유산을 칭송하는 한편, 이란 정부 인사들에게는 파괴를 위협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단절은 단순한 수사에 그치지 않았다. 그것은 더 깊이 침투해 이란이라는 개념 자체를 분열시켰다. 이슬람 공화국은 점점 외부 침입자, 이란인들을 인질로 붙잡고 그들의 “진정한” 문화를 부정하며 국가 정체성을 폭력적으로 점유한 이질적 존재로 묘사되었다. 정권에 의해 납치되어 처형된 아버지를 둔 반정부 활동가 가젤 샤르마흐드(Ghazelle Sharmahd)는 12일 전쟁 동안 이 담론을 다음과 같이 집약했다.
이스라엘과 이슬람 공화국 사이에서 전쟁이 전개되는 동안, 언론 헤드라인은 “이란이 공격했다”, “이란이 반격했다”라고 외친다. 그러나 분명히 하자. 이것은 이란이 아니다. 이슬람 공화국은 이란이 아니며, 정부도 아니고, 이란 국민을 대표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외부에서 온 이슬람주의 정권으로, 46년 전 우리 국가를 탈취해 우리의 정체성을 지우고 우리의 미래를 빼앗았으며, 당신이 이 둘을 동일시할 때마다 진실은 묻힌다…. 그것은 매일 이란인들을 살해하는 폭력적이고 이념적인 점령자다.
지난 10년 동안, 검열 속에서 이란 내부 대중에게 필수적인 정보원이 된 일부 망명 이란 언론은 이러한 구도를 체계적으로 강화해 왔다. 그 과정에서 이들은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진 대규모 폭력의 함의를 축소하거나, 때로는 가자에서의 파괴를 부정하거나 사소하게 취급하며, 책임을 이스라엘로부터 돌리는 경향을 보였다. 이러한 서사는 사실상 미국과 이스라엘의 “뱀의 머리(head of the snake)” 가설을 강화했고, 이란 국가를 지역 폭력의 중심 원천으로 규정함으로써 실제 파괴를 가하는 주체들로부터 시선을 돌렸다.
이러한 맥락에서 도덕적·정치적 명확성이 절실히 필요하다. 이 전쟁에 대해 취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입장은, 예컨대 유엔 인권 및 대테러 특별보고관 벤 사울(Ben Saul)이 제시한 입장이다. 그는 이 전쟁을 “국제법의 가장 근본적인 규칙에 대한 위반”으로 규정하며, “국제 질서를 파괴하는 데 능한 두 국가”에 의해 주도되었다고 비판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협상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임박한 위협”이라는 허위 주장이나 — 카메라 앞에서는 — 이란에 “자유”를 가져다준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전적으로 도발 없이 공격을 개시했다.
전쟁에 반대하는 것은 이란이나 이란 국민에 대한 신화적 관념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터전으로서 독립적인 이란을 지키는 것이다. 이란은 제국주의적 포획으로부터 보호되어야 하며, 삶의 조건은 그것을 파괴하려는 살인적인 “가자 교리(Gaza doctrine)”를 내세우는 적에 맞서 보존되어야 한다. 동남부 이란에서 한 발루치(Baloch) 페미니스트 동지가 다음과 같이 썼다.
새해 전야에 한 오토바이 배달 노동자가 폭발의 충격파에 산산이 찢겨 나갔다. 목소리가 떨리는 한 친구가 전화를 걸어왔다. 오늘 차바하르가 “가루가 되었다”고 했다. 나는 원주민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정치적 노루즈(Nowruz)를 떠올린다. 내가 다른 곳에 있을 수 있다면, 나는 이 정치적 노루즈 말고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을 것이다. 인터넷에 잠시라도 접속할 수 있는 순간마다, 나는 우리의 삶에 가해지는 이 뻔뻔한 공격과 그 잔혹함을 폭로하는 것 외의 모든 말은 시간 낭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의 친구들은 우리를 가르치려는 강의를 준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 어떤 “반제국주의”가 가치 있는지 아닌지에 대해 우리에게 훈계하지 말라. 그런 논쟁은 우리에게 아무 의미도 없다. 우리를 가르치려 하지 말라. 이란과 레바논이 비대칭 전쟁 속에서 집단적 학살을 위한 최신 무기와 첨단 기술의 실험실이 되었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려라. 우리는 시리아, 이라크, 리비아, 아프가니스탄의 잿더미 속에서 교훈을 배웠다 — 우리는 그저 당신들이 우리를 가르치려 드는 것을 멈추기만을 바란다. 우리는 사회의 붕괴, 실향, 뿌리 뽑힘, 죽음과 파괴를 직접 겪고 있다. 우리가 세웠거나 세우려 했던 모든 것이 이 노골적인 폭력 속에서 지워지고 망각 속으로 넘겨지고 있다. 만약 이 제국주의 전쟁에 대해 혐오의 목소리를 낼 수 없다면, 적어도 우리를 훈계하는 일은 멈춰라.
이 전쟁 이후 이란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가장 낙관적인 시나리오 — 국가가 내전에 빠지지 않고 국가 체제가 유지되는 경우 — 를 가정하더라도, 폭력적인 억압의 시기가 도래할 가능성을 예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란-이라크 전쟁 말기에 좌파 수감자들과 반정부 조직 MEK 구성원들이 집단적으로 살해된 사건은 뚜렷한 역사적 경고로 남아 있다. 40년이 지난 지금, 이 나라의 사회적 조건은 크게 변화했으며, 국가가 다시 수천 명을 침묵 속에서 비밀리에 처형하는 상황을 상상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폭격이 계속되는 상황에서도 국가에 의한 살해는 이어지고 있다. 지난주에는 1월 봉기 당시 체포된 시위자 3명이 처형되었다. 정치범을 포함한 수감자들의 상황은 매우 우려스럽고, 전쟁이 시작된 이후 수십 명의 시위자가 추가로 체포되었다. 그러나 정보 공개가 극도로 제한되어 있어 이들의 상태에 대해서는 아무런 투명성이 없다.
폭격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고, 인터넷 차단은 추가적인 실업을 초래했다. 식료품 가격 상승은 계속되고 있다. 전쟁 이전에 집단적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국내 반전 운동은 형성되지 않았고, 대신 이란 우파 야권은 전쟁을 부추기며 북을 울려 왔다. 이제 국가가 생존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표현의 자유에 전례 없는 제한이 가해지고, 인구의 상당수가 미사일과 폭격의 직접적인 위협에 놓인 가운데, 국내에서 그러한 목소리가 형성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졌다. 많은 이들은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차기 최고지도자로 지명되는 움직임을, 혁명수비대를 중심으로 한 전시 권력 집중의 실현으로 해석한다. 이는 1979년 혁명의 반왕조적 기원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국가의 정당성을 더욱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만약 의회 의장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Mohammad Bagher Ghalibaf)가 트럼프 행정부와의 향후 협상에서 이란 측 협상 대표로 나설 것이라는 보도가 사실이라면, 이러한 해석은 더욱 힘을 얻게 된다. 동시에 이는 깊은 역사적 아이러니를 수반한다. 전직 이슬람혁명수비대 고위 지휘관이자 바시지(Basij) 준군사 조직 부사령관, 하탐알안비야 건설 본부(Khatam-al Anbiya Construction Headquarters) 사령관, IRGC 공군 사령관, 그리고 이후 국가 경찰청장을 지낸 갈리바프는 오랫동안 이란의 나폴레옹 3세로 불려 왔다. 그는 계급 투쟁이 교착된 조건에서 국가를 보나파르트주의적(강력한 지도자가 위에서 권력을 장악하는 방식)으로 재편할 수 있는 인물로 여겨져 왔다. 마르크스가 자본주의 국가를 부르주아지의 전반적 이익을 조정하는 “집행위원회”로 묘사했다면, 이 시나리오에서 국가 기구는 마이크 데이비스(Mike Davis)가 말했듯이 “자기 자신의 집행위원회”로 변모하여 순전히 자기 자신의 약탈적 이해관계를 위해 권력을 행사하게 된다.
네 차례 대선에서 패배한 인물이기도 한 갈리바프는 — 2004년 첫 출마 당시 모즈타바 하메네이의 측근들에 의해 막판에 밀려났다는 보도가 있었다 — 2024년 대선에서 아마도 이란 정치사상 가장 트럼프식에 가까운 선거운동을 펼쳤다. 그는 “이슬람 공화국 역사상 최초로” 반아프간, 반이주민 수사를 공개적으로 도입해 유권자 결집 수단으로 활용한 후보였다. 갈리바프의 프로그램은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추방과 장벽이다.
동시에 최근 며칠 동안, 지속적인 폭격 속에서도 정부 인사들은 국영 방송에 출연해 신자유주의적 긴축 정책 — 공식적으로는 “국가 축소(downsizing the state)”라고 불리는 정책 — 을 계속 유지할 것이라고 재확인했다. 이는 전쟁 상황에서 교육, 사회보장, 보건과 같은 필수 서비스의 질과 양을 모두 신속히 확대해야 하는 시점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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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전쟁은 폭탄과 미사일로만 수행되는 것이 아니라, 인식의 통제를 통해서도 수행된다. 정치 평론가 리처드 세이모어(Richard Seymour)가 지적했듯이, 우리는 두 개의 중첩된 수준 — 공간적 차원과 심리적 차원 — 에서 작동하는 인지 부조화와 마주하고 있으며, 이 두 차원의 분리와 재구성이 현재 전쟁을 구조화하고 있다. 공간의 차원에서 퍼져나가는 허구는, “표적” — 국가, 바이트, 군사 및 에너지 기반시설 — 을 공격하면서도 그 안에 포함된 삶을 공격하지 않을 수 있다는 주장, 사회적 공간을 폭력의 정당한 대상과 무고한 잔여물로 깔끔하게 분할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 논리는 가자에서 처음 본격적으로 사용되었고, 이후 이스라엘이 레바논에서 “다히야 교리(Dahiya doctrine, 민간 지역까지 포함해 대규모로 파괴하는 군사 전략)”로 체계화했으며, 지금은 다시 레바논과 이란에 적용되고 있다.
테헤란 전역에서 지역 경찰 건물들이 반복적으로 공격받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의 많은 도시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러한 경찰서는 밀집된 주거 지역 한가운데, 일반적인 아파트 단지와 일상적인 도시 생활 속에 자리 잡고 있다. 동시에 이란의 의무 징병제는 국경 군사 기지에 배치된 인원의 상당수가 매우 젊은, 종종 겨우 18세에 불과한 청년들임을 의미한다. 이로 인해 “군인”과 “민간인”의 구분은 즉각적으로 불안정해진다. 발루치스탄(Baluchistan)이나 쿠르디스탄(Kurdistan)과 같은 주변 지역에서도 도시 지역은 공격을 피하지 못했다. 미디어 기반시설 역시 공격 대상이 되었다. 인구 밀집 도시 중심부에 위치한 방송 시설들이 공격을 받았다. 오래되고 밀집된 구역에서는 이러한 공격의 영향이 더욱 증폭되며, 전략적 목표와 민간 공간 사이의 구분은 사실상 유지 불가능해진다.
이러한 불안정성은 이란 사회의 밀도 높은 구조로 인해 더욱 강화된다. 우파 언론의 단순화된 묘사와 달리, 이란 사회는 제도적, 경제적, 공간적 차원에서 깊이 얽혀 있다. 가자와 레바논에서와 마찬가지로 “정밀 타격”이라는 언어는 편의적인 허구로 기능한다. 수백 개의 보건, 의료, 문화 시설이 계약, 행정, 소유 관계를 통해 국가 및 군사 구조와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군사 인력”이라는 범주는 행정 직원, 서비스 노동자, 기술자, 급여를 받는 직원 등 전장을 떠나 일하는 다양한 노동자 집단을 포괄하게 된다.
이러한 공간적 인지 부조화는 그것에 상응하는 심리적 차원이 없이는 지속될 수 없다. 팔레스타인인의 삶을 소모 가능한 것으로 만드는 인공지능의 활용 — 가자에서든 서안지구 감시 체계에서든 — 은 이미 널리 기록되어 왔다. 그러나 이란에 대한 전면전은 이러한 군사화된 게임화 논리에서 새로운 단절을 보여준다. 인지 부조화의 중심은 더 이상 “플레이어”(정착민)와 “적”(토착 팔레스타인인) 사이에 있지 않고, 오히려 이 두 기능이 하나의 주체 안에 동시에 내재하게 되었다. 이 주체는 자기파괴적이면서 동시에 자기 소외된 존재다. 이제 인간 사용자는 예측적 예언과 제국적 환상을 생성하는 분산된 조합체의 하나의 노드로 기능한다. 팰런티어의 운영 체제 안에서 그는 동시에 플레이어이자 플레이되는 존재다. 드론 영상을 지켜보는 병사나 표적을 검증하는 변호사와 같은 인간 개입과 책임에 대한 호소는, 인간이 살상 기계의 초인지에 통합되는 조건 아래에서는 곧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조건에서 제국주의적 폭력은 반드시 노골적으로 부정될 필요가 없다. 그것이 알아볼 수 없게 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민족적 연대가 실패하는 이유는 고통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연대 자체가 허용되지 않는 것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심리적 조건은 일부 이란인들이 외세 개입과 정권 교체를 받아들이게 만들었고, 침략자를 “서구적” 가치를 가져다줄 구원자로 여기게 만들었다. 이는 신(新) 팔라비주의 운동이 미국의 군사 침공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모습에서 드러나며, 일부 이란 자유주의 집단 내부에서도 1월 학살 이후 “다른 모든 수단이 실패한 뒤의 마지막 선택”이라며 외세 개입을 수용하는 태도로 나타난다. 이 두 입장은 모두 대중의 행위성과 자기결정권을 포기하고, 이른바 “자유의 폭탄”이라는 허황된 약속에 맡겨버린다. 이러한 태도는 우리를 살아 있는 군사 기지로, 우리 자신의 몸 위에서 발사되는 로켓으로 만들어버리는 힘에 의해 사로잡힌 심리 상태를 보여준다.
이 새로운 인지 질서가 초래하는 대가는 전쟁의 종말론적 분위기를 강화하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다. 미국 지휘관들은 이란과의 전쟁이 예수에 의해 “기름부음 받은” 것이며, 그의 재림과 아마겟돈의 징표라고 병력에게 말했다는 보도가 있다. 펜타곤의 “성전 전사”로 알려진 피트 헤그세스는 매주 친이스라엘 성경 공부 모임을 연다. 네타냐후와 다른 이스라엘 지도자들 역시 오랫동안 문명 충돌에 관한 종말론적 담론을 활용해 왔다. 그리고 1월 시위 이후 레자 팔라비는 이슬람 공화국과의 “최후의 전투”를 언급해 왔다.
이러한 흐름에서 메시아적 수사를 제거하면, 훨씬 더 연속적인 어떤 것이 드러난다. 감시, 분류, 통제의 기술이 식민지화되고 점령된 인구를 대상으로 먼저 시험된 뒤, 다시 제국 중심으로 되돌아오는 장기적 제국 통치성의 흐름이다. 이런 의미에서 전쟁은 파괴적일 뿐만 아니라 생산적이기도 하다. 전쟁은 권력이 공간을 가로질러 자신을 재조직하는 수단을 만들어낸다. 우리는 세계가 반드시 들어야 할 발루치 동지의 경고로 돌아간다. “이란과 레바논은 비대칭 전쟁 속에서 집단적 학살을 위한 최신 무기와 첨단 기술의 실험실이 되었다.” 이 전쟁이 어떻게 끝나든, 식민주의의 부메랑은 이미 되돌아오고 있다.
[번역] 이꽃맘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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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 간지(Iman Ganji)는 이란 출신의 작가이자 번역가, 정치 이론가다. 바하르 누리자데(Bahar Noorizadeh)는 이란 출신의 영화감독이자 연구자, 작가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