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의 눈>어떤 나무 심을까

나무 심는 식목일에 어떤 나무를 심을까? 대추리에 무슨 나무, 도두리에 무슨 나무를 심을까?

일본군 활주로가 소나무 무리를 뽑아냈다. 미군 활주로가 묘지 봉 분을 들어냈다. 지금은 미군 활주로가 된 삼태기 모양 쏙 빼 닮은 옛 대추리 150집 사람들이 집도 없이 절도 없이 겨울을 앞두고 쫓겨났다. 도저로 막 밀어대니 산더미 같은 흙에 집도 무너지고 나무도 쓰러졌다. 깔려죽을 수 없어서 서둘러 빠져나왔다. 논도 밭도 구들장도 못 내오고 서까래 몇 장 각목 세 자루 겨우 차고 1952년 그렇게 강제로 쫓겨났다. 옆집 방가네 뒷집 홍가네 건너 집 민가네도 사촌도 시누이도 코흘리개도 핏덩이도 앞동산도 뒷동산도 강아지도 사랑채도 콩 다발도 팥 다발도 살 붙은 시신도 살 빠진 뼈들도 추억도 기억도 뿌리 뽑혀 쫓겨났다.

몸도 마음도 추방당한 옛 대추리 사람들은 뒷동산 너머 아산만 넓은 뻘만 내려다 뵈는 야산에다 굴을 파고 뙷 장을 얹은 위에 짚 섶을 깔고 지붕도 없이 엄동설한을 났다. 노인네들은 섣달이면 들어오던 옘병으로 죽고 어린애들은 홍역으로 죽었다. 그렇게 으지짠헌 사람들은 죄 쓸려갔다. 살기 위해서 뻘을 간척했다. 지게로 가래로 손마디가 부르트도록 일궜다. 세 사람이 막으면 세카래원 다섯 사람이 막으면 다섯카래원이 됐다. 그렇게 살아왔다. 어떻게 살았냐면 무슨 말로 다 못한다. 그렇게 고생고생해서 이제야 먹고 살 만하니까 또 이 지랄들 한다.

고향을 또다시 떠나간다는 건 생각하기도 싫다. 평택에만 나가도 사람들은 보상받아 좋겠다 한다. 미칠 노릇이다. 그래서 요즘 어디 나가기가 싫다. 술이나 먹어야 잠이 든다. 땅에 대해서 사람들은 잘 모른다. 그저 돈으로 값을 매길 줄이나 안다. 거래 대상으로나 생각한다. 그게 아니다. 땅은 내 모든 것이다. 이 땅이 바로 나다. 큰 돈 못 벌고 밥벌이나해도 자식들 식량 대주고 양념거리 대주고 제법 부모노릇하며 살아왔지 않은가? 고향 땅에서 수 십 년 사귀어온 불알친구들 여기 다 있다.

나이 일흔 먹어서 어디 가서 어떻게 산단 말인가? 농사짓다 말고 이 나이에 어디 가서 취직을 할 건가 뭘 할 건가? 그렇다고 자식들한테 가? 싫다. 이제껏 내 맘대로 못 살아온 삶인데 죽는 거나마 내대로 죽고 싶다. 죽어도 저 일 벌어지기 전에 죽어야 한다. 거동조차 못하고 방에서 딩굴딩굴하는 노인네들 맨 그 생각이다. 왜 이렇게 흔들어놓는가? 왜 이 모든 것 뿌리 뽑으려 하는 건가? 제발 이대로 살고 이대로 죽게 해주면 좋으련만. 나무 심는 식목일에 어떤 나무 심을까? 꿈속에나 밟아보는 옛 대추리 샘물가에 주민들은 미군이 뽑아내 버린 다섯 아름 참나무를 다시 심고 싶다. 삼태기 마냥 생긴 마을 우긋한 속에다가 떡갈나무도 심고 싶다. 어린 시절 헤엄치던 방죽 안에 밤나무, 뛰놀던 뒷동산 앞동산에 물푸레나무 갈매나무 심고 싶다. 배깥 양반 묻힌 미군활주로 자리에 왕솔 나무를 심고 싶다. 하지만 지금은 못 들어간다. 못 들어가지. 쫓겨나더라도, 그 자리에 댐을 짓거나 군사기지를 지으면 들어가 볼 수가 없다. 주민들은 대추나무 대추리에, 도토리나무 도두리에 심고 싶다. 어린 나무 엄마 땅에 단단허니 야무지게 심고 싶다. 내 뼈를 묻는 심정으로 이 흙 속에 나무를 심고 싶다. 어린 나무 검고 풍성한 어머니 땅에 뿌리내리듯, 떠나간 엄마 품에 돌아가고 싶다.


두시간(유랑단 평화바람)
덧붙이는 말

미리 소개드렸던 오두희님을 대신해, <인권의 눈>을 집필해 주실 두시간님은 유랑단 평화바람의 단원입니다. 두시간님은 평택에서 불어오는 평화바람 소식을 전해주실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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