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의 눈>보이지 않으니,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호주에서는 매년 1만 명 이상의 참가자와 50만 명 이상의 관광객들이 찾는 마디그라 축제가 열린다. 세계 최고의 동성애자 축제인 마디그라(Mardi gras) 축제는 호주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개최되고 있으며, 호주 최고의 관광 상품이기도 하다. 호주에 거주했던 경험이 있는 레즈비언들은 한국 상황에 비해서 호주는 '동성애자들의 천국'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얼마 전, 호주의 한 초등학교 교사가 5-6학년 학생들이 듣는 성교육 강의에서 자신을 레즈비언이라고 밝힌 뒤 동성애에 관한 교육을 실시했다는 이유로 해고당했다. 해당 강의를 수강한 학생들로부터 강의 내용을 전해들은 학부모들은 학교측에 성교육 담당 교사의 윤리 의식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했고, 학교는 그녀를 해고했다. 5년째 한국에서 레즈비언 권리 운동을 하고 있는 입장에서 이번 호주에서의 레즈비언 교사 해고는 충격적이었다. 이 소식을 접하고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호주의 상황이 저러하니, 우리는 얼마를 더 가야 하는 것일까'였다.

레즈비언 권리 운동을 해오면서 레즈비언이과 게이 권리문제에 있어 가장 시급한 것이 정보의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수많은 동성애자들이 자신의 동성애자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혼란을 느끼고, 동성애자 정체성을 부정하고, 벽장 속에 갇혀 나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은 동성애자 정체성을 이유로 한 각종 차별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으면서, 피해를 입어도 피해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없는 현실에 놓여 있기도 하다. 이는 동성애자 정체성에 관한 그 어떤 정보도 접할 수 없는 한국 사회의 현실에 기인한다. 제도교육 안에서 우리는 동성애자 정체성에 관한 어떤 교육도 받은 바 없다. 언론이나 텔레비전에서 우리는 이성애자들에 의한, 이성애자들 만을 위한 이성애 정보만을 접해왔다.

상황이 이러하니 동성애자 정체성으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동성애자 정체성을 건강하게 받아들일 리 만무하고, 동성애자 정체성으로 괴로워하는 자녀를 둔 부모들의 충격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지경이 된다.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드러나면 조직에서의 불이익은 물론이거니와 강간 등 범죄의 피해자가 되더라도 신고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끔찍한 상황을 홀로 견뎌내야 한다. 상담을 원해도, 동성애자 정체성에 대해 무지한 상담가들 뿐이고, 신고를 원해도 담당 경찰들의 동성애 혐오로 이중, 삼중의 심적 고통을 당해야 한다.

동성애자 정체성을 둘러 싼 우리 사회의 혐오와 공포는 동성애와 동성애자에 관한 바르고 체계적인 정보 제공을 통해서 치유 할 수 있다. 동성애자들이 스스로 드러내지 않으니 보일 리 없고, 보이지 않으니 사람들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그러나 동성애자는 셀 수 없을 정도의 인구로 우리 사회에 존재한다. 그들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긍정하고 존재를 드러낼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그들이 드러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동성애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가 금기시 되어서는 안 되며, 나아가 동성애자 정체성도, 이성애자 정체성도 당위가 아닌 선택 가능한 것임을 깨닫도록 하는 정보를 체계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세계 최고의 동성애자 축제인 마디그라가 열리는 호주. 호주에서의 레즈비언 교사에 대한 인권탄압은 충격이었다. 하지만 그녀와 또 다른 그녀들이 그와 같은 인권탄압에 맞서 싸울 것임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녀들은 제도 교육 과정에서의 동성애자 정체성에 관한 교육의 필요성을 호주 사회에 끊임없이 알려나갈 것이다. 그렇게 세상은 변화될 것이다.

박김수진(레즈비언 인권 연구소 연구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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