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의 눈> 명절연휴를 선택할 권리를 찾고 싶다

여성 2명중 1명이 명절 증후군으로 시달린다고 한다.



처음 이 단어가 나왔을 때 많은 사람들, 특히 남성들의 반응은 차가웠다. 게으른 여성들이 일하기 싫어서 만든 꾀병이라거나 나의 가족에게 있는 것이 아닌 아주 열악한 가족환경에 처해있는 소수의 여성들에게 나오는 증상으로 치부해 버렸다.

그러나 지금은 최소한 상황인식은 되고 있으나 여전히 여성들만의 넋두리로, 어쩔 수 없는 사회현상으로 치부되고 있다. 그나마 평등명절 보내기 운동이 점차적으로 여론화 되면서 구체적 실천과제들이 보여지고는 있으나 이상하게 아니, 당연하게 세대와 세대가 모이면 그것도 말짱 도루묵이 되곤 한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들이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고 있는 것 또 경계해야할 지점이다.
기혼여성이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여성단체 활동가로서 다가오는 추석 명절 증후군은 피부로 느끼고 있다. 멋모르고 보낸 20대 때 명절연휴를 보내러 올라가는 나의 인사는 “명절 잘 쉬고 오세요”였고 아차 싶은 순간 되돌아오는 언니들의 답은 “ 쉬긴 어찌 쉬겠니, 너도 결혼해봐라”였다. 그래서 요즘은 “조금만 일하다 오세요”로 바뀌었다.

물론 맘 같아선 이러저러하게 원칙적 평등명절을 부르짖고 싶지만 현실세계에서 혈연으로 똘똘뭉친 가족 속에서 찍히는 며느리가 된다는 것은 여전히 개인의 노력과 용기가 요구되기 에 현실의 벽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나 역시 여성운동을 하는 사람으로 여성문제에 대해 목에 핏줄 서게 이야기 하고 다니지만 유전적으로 같은 피를 나누고 있는 내 가족들을 변화시키는 것이 다른 이들을 변화시키는 것 보다 몇배의 에너지와 더딘 변화를 체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합리적이고 배려심(?)이 강하신 우리 어머니조차도 며느리 이야기만 나오면 역시 시어머니 버전으로 돌변하시는 모습 속에 사회적 변화 없이 개인의 변화를 일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임을 다시한번 느껴본다.

어느 글에선가 자신은 어머니에게 더 나쁜 아들이 될 거고 지금의 아들은 자신보다 더 나쁜 아들이 되었으면 한다는 글을 읽었다. 왜 우리는 자꾸 나쁜 며느리, 나쁜 아들이 되어야 할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어느 누구도 가족의 이름으로 일방적 의무를 강요받아서는 안 되는 것이고 그 잣대로 나쁜, 혹은 좋은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명절의 한자어가 명분과 절의의 함축어이고 명절이 전통적으로 해마다 지키는 즐거운 날이라고 풀이되어 있다. 그 즐거운 날에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부엌 한켠에서, 어느 방구석에 선택의 권리를 빼앗긴 구성원이 있다면 그 가족은 가족의 이름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고 본다.

내가 며느리든, 시어머니든, 기혼이든, 비혼이든, 남성이든, 여성이든 그 즐거움을 어떤 형태로든 평등하게 나누고 선택하는 그런 명절연휴가 되었으면 한다.

평등한 명절의 첫 출발은 내가 어떻게 보내고 싶은지 서로 이야기 나누는 것부터 시작이 아닐까 싶다.


이기원 / 수원여성회 대표
태그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다산인권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