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의 눈>인권의 교육현장, 더디더라도 한걸음씩

난 6년차 초등학교 교사이다. 그다지 섬세하거나, 예민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갈수록 불평불만이 늘고 있어 걱정이다. 조금은 늘 스스로에게 부끄럽긴 하지만 누군가에게 '인권'이 내 삶의, 내 가치관의 기준이라고 말하면서부터 더욱 그랬던 것 같다. 흔히들 '인권'교육의 중요성을 말할 때 '권리'를 가르치면 '의무'도 가르쳐야 한다고들 한다. 아니 '의무'부터 가르치고 '권리'를 가르쳐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권리'를 잘 이해하고 행사하는 사람은 자연스레 다른 사람의 권리에도 민감하고 책임을 지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운동회가 있었다. 꼭두각시, 부채춤, 차전놀이, 탈춤 등... 아이들이 준비해야하는 옷만 해도 학년마다, 혹은 남학생, 여학생 단체종목마다 천차만별이고 턱없이 부족한 예산 탓에, 아니 당연히 아이들의 몫으로 돌아갔다. 어떤 학년은 문방구에서 8000원짜리 꼭두각시 옷을 샀고, 5학년과 6학년 여학생들은 몇 만원씩을 주고 한복을 빌렸으며 부채를 사고, 댕기를 샀다. 몇 몇 선생님들의 항의가 있었지만, 그런 생각들이 이해되는 분위기도 아니었다. 할 수 없이 다른 쪽의 예산을 끌어와 남학생들에게 옷을 사주었다. 아주 '특별한' 경우였지만 다른 아이들에게는 '혜택'이 돌아가지 않았다. 운동회 예산은 그야말로 뽀대있는 운동회를 위한 '준비'에 쓰여졌다. 운동회에 대해 말하자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너무 많아서 끝도 없을 것 같고, 이렇게 흥분할 수 있는 내가 정말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학교행사나 교육활동에서 본인이 준비한 물건이라야 아이들이 그 소중함을 안다고 말한다. 한 번 쓰고 말건 데 학교에서 사줄 필요 없다고도 한다. 하지만 아이들 입장은 생각하질 않는다. 프로그램이나 준비물에 대하여 아이들의 의사를 물어본 적이 없는, 일방적인 운동회이다.


초등학교는 의무교육기관이고 아이들 각각의 형편에 상관없이 교육받을 수 있어야 한다. 운동회가 교육적 의도를 가지고 미리 계획된 학교 행사라면 그에 필요한 물품은 학교에서 준비해줬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나아가서 아이들과 교사가 함께 기획하
고 준비하는 운동회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단번에 바꿀 수는 없겠지만 이런 불평불만들이 그 변화를 앞당길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수업시간에도 다른 반과 진도를 맞추기는 너무 힘이 든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아이들과 충분한 토론을 하다보면 시간이 훌쩍 흘러가 버린다. 2학기 사회 첫 시간, '우리나라의 민주정치'라는 단원을 시작하며 '민주주의'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자연스레 반대 개념이 뭘까 물었는데 아이들은 모두 입을 모아 '공산주의'라고 외쳤다. 북한도 민주주의 국가라고 한다며 정식 명칭-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가르쳐주었더니 아이들은 갸웃거린다.

공산주의의 본래 뜻과 민주주의의 뜻을 생각하며 그러한 사회를 실현하는 방법을 생각해 보자고 했더니 사회보장제도에 대해 말하는 아이들이 나왔다. 하지만, 한 아이는 '왜 내가 번 것을 나눠야 하느냐? 돈이 많은 사람이 잘 사는 것은 당연한 건데 게으른 사람들과 나눌 수 없다'며 '다 자기 팔자다.'라고 하는 것이다. 사실 그 다음부터는 무척 흥분해서 그 아이를 설득하느라 시간을 다 보낸 것 같다.

누구나 행복할 권리가 있고 모든 사람이 똑같은 출발선에 있다면 목적지에 얼마나 빨리 도달할 수 있느냐는 능력의 문제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출발선을 다르게 해놓고 능력을 탓할 수 있겠느냐는 이야기에는 동의하는 것이다.

아이들의 생각은 부모님들의 생각을 많이 닮아 있다. 그래서 쉽지 않고 가정에서의 교육과 함께 가야하는 길이지만 무상의료, 무상교육의 적극적인 사회보장제도에 크게 공감하는 아이들을 보며 또 조금씩 변화의 조짐들을 본다. 아이들과 함께 모두가 행복하고 다 같이 잘 사는 세상을 그려나가려 한다.

강현정 / 서울 창도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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