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세칼럼] 누군가는 시설에 있는 것이 마땅하다?

소연의 '세상에서 가장 나쁜 별, 차별' 세번째 이야기


 얼마 전까지 1년에 한번 씩은 꼭 방송되었던 심지어 인기도 많았던 국민 프로그램으로  ‘미스코리아 선발대회’가 있었습니다. 당시 수상 소감으로 단골로 등장했던 말이 있습니다.

 “저는 나중에 고아원을 지어서 좋은 일하고 싶어요.”,
 “시설에 가서 장애인을 돕고 싶어요.”

 중학교 2학년 때 학교에서 봉사를 나간다고 지역에 있는 장애인시설에 가서 서너 시간 정도 장애인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나도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너무 불쌍하다. 나중에 내가 원장이 되어서 이런 사람들 꼭 도와야지!’ 지금 생각하면 내가 만난 그 사람이 여성인지 남성인지 나이가 몇인지 이름을 물어봤는지도 잘 모르겠고 또 그런 것들을 궁금해 했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그곳에 있던 사람들을 장애인이라는 이름으로 통칭하며 불과 서너 시간 만난 것으로 도와줘야할 사람으로만 규정짓고 말았습니다. 왜 그곳에 있는 것일까라고 단 한순간도 생각해보지 않았었습니다.

 하지만 작년 내내 시설을 다니면서 그 곳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보니 ‘시설에 가서 사람들에게 봉사하고 살아야지’라는 생각이 얼마나 오만했던가를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건 정말 내 입장에서만의 착한 행위였습니다. 봉사한다면서 시설로 가는 사람들은 그저 몇 시간 할애하는 것으로 좋은 일 한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 시설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그곳을 선택하였거나 타인의 선택으로 강제적으로 그곳에 있었을 뿐 누구도 시설생활을 하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사회가 시설로 들어갈 사람들을 만들어내고 그 사람들은 당연히 그 곳에 들어가야 한다고 전제하고 있었으며 그 전제하에 봉사하는 사람과 봉사 받는 사람을 구분 짓고 있었습니다. 그럼, 시설에 들어갈 사람들은 누구인가? 나와 다른 모습을 무능력 또는 부적응으로 부르며, 그 사람들은 시설에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아침 5시 기상, 6시에 아침식사, 12시에 점심식사, 6시에 저녁식사 꼭 정해진 시간에만 식사 가능. TV 켜주면 보고 아니면 하루 종일 천장보다 바닥보다 일과 마침. 외출? 시설 5m 밖에 있는 가게도 이용 못함. 왜? 돈 없음. 위험하다고 길 잃어버린다고 나가지 못하게 함. 외부 후원 인사 오면 웃으면서 사진 찍어줘야 함. 수급권자라서 나오는 돈은 관리 못한다는 이유로 시설에서 가져감. 한방에서 열 몇 명씩 생활. 사생활 전혀 없음.

 나라면 위와 같은 시설에서 살고 싶을까? 아닙니다. 나는 아닌데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오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알고 싶다’,  ‘PD수첩’에 단골로 등장하는 비리 시설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 하나하나가 관리 통제받고 있는 시설 생활 자체가 문제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 본연의 온전한 모습으로 자율적으로 생활하지 못하는 시설 구조 자체야말로 인권침해의 온상인 것입니다.

 시설이 인권침해의 온상이었음에도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정부, 시설운영자, 장애인의 가족, 국민 등 4자간 침묵의 카르텔 때문입니다. 정부는 거액의 예산을 들이거나 제도의 미비점을 보완하지 않고서도 장애인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에 시설의 인권침해문제를 외면한 채 침묵하였습니다. 일반 국민은 손쉽게 별다른 부담도 없이 장애인들을 우리 주변으로부터 격리할 수 있기 때문에 침묵하였습니다. 시설운영자는 사회적으로 아무런 관심과 지원이 없는 어려운 상태에서 그나마 장애인들을 위해 봉사해왔다는 동정론에 기대며, 장애인들을 영리의 수단으로 활용해왔습니다. 장애인의 가족은 국가의 지원이나 보조가 없는 상태에서 저렴한 비용으로 장애인가족을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수용할 수 있기 때문에 침묵하였습니다.  

 이 4자간 침묵의 카르텔을 깨고 자신의 삶에 당당한 주인이 되고자 시설에 살고 있던 많은 장애인들이 시설 밖으로 나와 지역사회에서 생활하려는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착한 일이라는 허울로 자신의 삶을 옥죄고 있는 시설에서 더 이상 살수 없다고 나오고 있습니다. 자립생활운동, 활동보조인제도화투쟁, 탈 시설 운동 등은 모두가 맥락을 같이하면서 ‘장애인을 안 보이는 곳에 숨겨놓고 격리시키려는’ 우리 사회에 진지한 고민거리를 던지고 있습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사회봉사를 한다는 의미로 장애인시설이나 아동시설 등 각종 시설에 가서 거기에 있는 사람들에게 식사 보조도 해주고 놀아도 주고 목욕봉사도 해주면서 바쁜 일상에서 그나마 그곳을 방문하여 봉사하였다고 뭔가 좋은 일을 했다면서 자위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잘 곱씹어 보면 우리의 그런 행동들은 어쩌다 한번 나들이하면서 동물원에 가서 우리에 갇혀 있는 야생 동물들을 구경하면서 과자 하나 던져주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는 시설에 가서 좋은 일을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시설이 꼭 필요한가에 대해 깊은 의구심을 가질 때인 것 같습니다.  
 
 시설에 누군가가 있어 그 사람을 도와주어 좋은 일을 했다는 착각을 주는 사회가 아니라 시설이 없어지고 다함께 지역사회에서 복닥복닥 거리고 살면서, 그 좋은 일 하나가 없어진 사회에서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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