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민을 가진 아이

[다세칼럼]땅콩 엄마의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 네 번째 이야기


이밝은진


 열흘 전 땅콩과 땅콩엄마는 대추리 빈집으로 이사를 왔다. 곧 시작될 주택에 대한 강제철거를 막기 위해서 맘먹고 들어 온 엄마 때문에 구체적인 동의절차 없이 땅콩은 졸지에 최연소 대추리 도두리 지킴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 이후 땅콩의 일상은 심심함의 연속이다.
 바깥 세상에 있으면 엄마 눈치를 보면서도 ‘짱구도 못 말려’도 보고 ‘아따 맘마’도 보면서 더운 여름을 버텨 볼 텐데, 엄마와 함께 살게 된 빈집에는 텔레비전도 없고 인터넷이 되는 컴퓨터도 없어서 그저 심심할 따름이다. 엄마가 빈집에 살기 위해서 필요한 세간(큰 주전자, 파리채, 밑반찬 등등)을 적고 있는 종이 위에 땅콩은 “이것도 필요해”라고 말한 후, ‘친구들’이라고 대문짝만하게 적어 놓았다.
 땅콩은 자신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서인지 며칠 전부터 눈독을 들인 친구가 있었다. 바로 평화바람 집의 문대추리가 낳은 4남매 강아지였다. 엄마가 보기에는 강아지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10미터 바깥으로 도망가는 겁쟁이 땅콩이 강아지를 키운 다는 건 정말 아니올시다지만, 땅콩이 백프로 동의하지도 않은 곳으로 끌고 온 죄도 있고 하니, 그래 네가 하고 싶은 데로 하자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강아지 양육에 동의를 했다.

 그래서 대추리 우리 집에는 식구가 한 마리 늘게 되었다. 이름 하여 ‘푸근이’. 어느 종과 섞였는지 알 수 없는 그저 귀엽기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앙증맞은 강아지가 식구가 된 것이다. 인간을 사귀는데도 남녀노소 구분하며 유별 까다롭기로 유명한 땅콩은, 아직 젖을 못 떼었기 때문에 더 있다 데려가라는 평화바람 언니들의 말에 엉엉 대성통곡을 하면서 결국 제 고집대로 데려온 강아지를 앞에 두고, 인간도 아닌 다른 종류의 생명체를 앞에 두고, 심각한 고민에 빠진 표정이다.
 강아지가 혀로 핥고 이로 깨물고, 다리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꼴이 생경스럽고 두려워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것이 하나, 동그란 까만 눈동자와 축 처진 귀가 너무 작고 예뻐서 죽겠다는 표정이 하나.
 강아지가 온 첫날, 어두컴컴한 집에 강아지만 두고 갈 수 없다는 땅콩의 주장에 의해 문대추리의 아들 정푸근이는 그 유명한 대추리 평화공원의 촛불집회에도 참석했다. 그리고 땅콩과 푸근이는 둘 다, 난생처음 해본 것이 너무 많은 그 날이 고단했는지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하지만 사건은 다음날에 터졌다. 엄마를 잃은 푸근이는 새벽 이른 시간부터 통곡과 같은 울음을 울기 시작했고, 새벽에는 업어가도 깨지 않는 땅콩도 그 울음을 듣고 이른 시간부터 깨어 푸근이의 곁을 지키다가 그 옆에서 쭈그린 채 잠이 들었다. 그리고는 오히려 암시랑토 않는 푸근이를 보면서 하루 종일 ‘푸근이가 너무 불쌍해’를 입에 달고 있었다. 엄마를 그리워하는 아가의 이심전심으로 땅콩은 하루가 내내 고달팠던 것이다.  드디어 외로움에 지쳤는지 눈을 뜨고서도 움직이지 않는 힘없는 푸근이를 위해 땅콩은 커다란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다. “푸근이가 죽을 지도 몰라. 대추리한테 아가를 데려다 줘 보는 건 어떨까?”

 그래서 푸근이는 엄마 곁을 떠난 지 하루 만에 다시 대추리 곁으로 돌아갔다. 엄마에게 돌아간 푸근이의 곁을 한참동안 떠나지 못했던 땅콩은 다시 보러 올께라는 인사를 뒤로 하고서야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푸근이를 먹이려고 담아 놓은 개 밥그릇을 보면서 눈물을 글썽인다. “푸근이가 튼튼한 강아지가 되면 다시 데리고 오자. 꼭”이라는 다짐을 잊지 않는다.
 푸근이를 소유하려는 마음보다 푸근이의 외로움을 연민하는 마음을 앞세운 아이는 자신이 권력을 소유한 사람이 될 수도 있음을 깨닫는 중이다. 그리고 또한 권력의 행사가 인간과 소외된 것들에 대한 연민을 동반해야하는 것임을 배운다. 땅콩이 푸근이를 연민하는 마음은 작은 것이지만, 욕심이 많은 사람들, 많이 가진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사람들의 것까지 빼앗아 가기 때문에 불행해지는 세상사를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자기 안의 권력에 끊임없이 도전하며 다른 사람과 자연에 대한 연민의 마음으로 살아가게 되기를 소망한다. 그러한 연민은 원래 약탈당하지도 소외받지도 않아야할 사람들과 자연의 권리에서 나온다는 것을 가르쳐줄 생각이다. 이런 배움은 땅콩을 레바논을 폭격하는 이스라엘의 비행기를 막는 사람, 평택 땅을 도적질하려는 미군과 한국정부의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으로 키워줄 것이다.

이밝은진님은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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