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세칼럼] 함께 크는 엄마

땅콩엄마의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 다섯 번째 이야기


박진  


 남들처럼 살뜰하게 챙겨줄 능력도 시간도 없는 내가 땅콩을 키우면서 잘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라고 생각했다. 땅콩과 친구가 되는 것. 엄마나 어른이라는 권위를 앞세우지 않고 매 순간 내 안의 권력을 경계하며 땅콩과 인간으로 마주 대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어디 쉽나. 오랜 시간 가부장 사회에서 살아온 개인이 전면적으로 괜찮은 인간이 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고 무엇보다 7살 어린이의 세계관과 36살 엄마의 세계관이 늘 같을 수는 없는 일. 그리고 땅콩과 관련된 일을 결정할 때나 땅콩을 위한 일을 수행할 때 우리의 갈등은 첨예해진다. 이른바 보호의 입장과 참여의 입장이 충돌하는 일이 이젠 점점 더 많이 생기고 있다.

 땅콩을 돌보는 날. 일 때문에 엄마는 어딘가를 꼭 가야한다. 예전에는 엄마가 가는 곳이면 어디라도 좋다고 하던 땅콩이 이제는 ‘난 집에 있겠다’를 선언하는 일이 종종 생긴다. 설득도 하고 강요도 해 보지만 끄떡도 않는다. 이렇게 해서 결국 엄마가 일을 포기하는 경우도 이제는 종종 생긴다. 하지만 땅콩의 거취와 관련한 일을 결정함에도 엄마는 늘, 결정 무게의 중심을 자신의 일에 두는 것을 포기하지는 못한다.

 땅콩의 취향에 대한 간섭도 적잖이 있다. 일단 엄마는 분홍색이 너무 싫었다. 분홍색은 ‘나는 여자라는 것을 만인에게 선언하는 식’이라 싫었던 것이다. 여자애는 분홍색, 남자애는 푸른색이라는 식으로 고착화된 것이 싫었다. 하지만 땅콩은 분홍색의 열혈 팬이다. 머리끈에서부터 신발까지 공주님이 그려진 분홍색이 아니면 땅콩은 절대 착용하지도 갖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장난감 가게 앞에서, 신발가게 앞에서 싸움을 했었다. 하지만 결국 선택은 땅콩의 몫이다. 그녀의 것은 그녀에게 속한 것임을 어떻게 부정할 수 있겠는가. 아무리 분홍색이 싫다하더라도. 하지만 여전히 나는 땅콩과 의견이 같지 않을 때, 윽박지르거나 권위를 이용해 엄마에게 유리한 쪽으로 결정하는 버릇을 버리지는 못한다.

 부모 인권교육 강의를 할 때, 엄마들은 이와 비슷한 고민을 종종 털어 놓는다. 갈등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를 묻는다. 그리고 보호를 위해서 참여권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지 않느냐고 의견을 말한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누구의 입장에서 갈등을 해결할 것인지, 쌍방간의 관계가 평등하게 풀리고 있는지를 묻는 말은 아니다. 이미 분홍색과 관련된 엄마의 정보의 양과 땅콩 정보의 양은 차이가 나는데, 이것을 무작정 강요한다고 땅콩의 취향이 여성남성 차별 없는 것으로 가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처한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기준은 아무리 정당한 것이라도 폭력적일 때가 있다. 그리고 그 보다 많은 순간 보호의 논리로 인권은 사장된다. ‘너를 위해서 공부하라는 거잖아. 너를 위해서 머리를 단정히 하고 어른 말을 잘 들어야하는 거야’ 어른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가치관으로 잘못된 기준을 강요하기도 한다.

 “하지 마라” “이걸 해야지” “말 잘 듣는 아이가 착한 아이”라는 생각과 행동을 수정하는 것은 어렵다. 어른의 기준과 어른의 시각을 아이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습관을 버리기도 쉽지 않다. 아무리 원칙이고 옳더라도 강요하지 않고 기다려 주는 것.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함께 커가는 나를 늘 발견한다.


*박진님은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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