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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으로서의 정체성 찾기

76호 특집

봄의 상징인 개나리가 피어 거리를 거니는 사람들의 눈을 자극하는 요즘, 그 개나리를 한가롭게 쳐다볼 마음의 여유도 시간적인 여유도 없이, 바삐 거리를 지나치는 나를 발견하곤 할 때 아직도 낯설어 진다. 요 몇 년 사이 거리에서 예전에 비해 장애인들을 많이 볼 수 있다. 특히 전동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중증장애인들을 말이다.

중증자애인의 자립생활

중증장애인이 자립생활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극히 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아직 시스템조차 갖춰져 있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중증장애인이 자립생활을 한다는 것은 모험과도 같다. 자립생활에 대해 중증장애인이 단순히 주변의 동정과 시혜의 도움을 받으며 홀로 살아가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2002년 10월 나는 우연하게 정립회관을 알고, 자립생활이념을 알게 되었다. 어릴적부터 뇌성마비1급 중증장애를 앓은 나는 학교도 다니지 못했고, 남들 앞에선 말도 제대로 못했다. 집에서 조용하게 TV와 음악을 듣는 취미가 고작인 장애아이였다. 어릴적 내 또래 애들은 "공부 좀 해라"라는 말을 제일 듣기 싫어했겠지만, 나는 그 말을 제일 듣고 싶어했다. 어느 누가 내게 그 말을 해준 사람이 없었으니까… 내가 경험한 것은 복지관에서 제공하는 월 1회의 나들이 서비스, 주 1회 컴퓨터교육, 자원봉사자가 해주는 가정학습지도가 전부였다.
그러던 중 서른 살이 다 되어서 전화상담으로 '자립생활이념'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그때부터가 세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짓의 시작인지도 모른다. 자립생활기술훈련을 통해 처음으로 대중교통인 지하철을 타는 날, 겨울이 춥다는 걸 알았고, 그만큼 세상이 매섭다는 걸 알았다. 우리 집에서 7분 거리인 행당역을 뒤로하고 그나마 편의시설이 되어있는 지하철역을 찾아 2,30분씩 길도 위험한 신금호역, 왕십리역까지 가야했던… 그래서 우리 동네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 설치를 요구하기 위해 역무원들과 싸워야했을 때, 장애인이동권 보장을 위해 싸우고 있는 현장에서 전경들에게 둘려 쌓였을 때, 그때서야 왜 장애인들이 세상 밖으로 배제되어 있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2003년 4월부터 정립회관내 장애여성자조모임에서 회장을 맡고, 나름대로 열심히 활동을 했다. 그러나 막상 내 힘으로 밖에 나가 열심히 활동을 해도, 어떤 소외감이 들었다, 나처럼 중증장애여성에 언어장애가 있고 정규교육을 못 받으면, 어떤 거대한 조직에 하나의 작은 부속품에 불과하다는 걸 느꼈다. 그래도 오기가 생겨 나를 둘러싼 수식어들을 깨고 싶었다. 그래서 더욱 악착같이 혼자 밖에 나온 기쁨도 잘 모르면서 개인적인 시간도 없이, 열심히 활동을 했다. 그러다가 몸이 안 좋은 상태가 되어 병원에 실려가 생전 처음 수술을 하게 되었고, 퇴원해서 그 다음날 갑작스러운 어머님의 죽음으로 나는 그야말로 자립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동안 활동으로 인해, 많은 동료들이 어머님 문상객으로 와주었고, 동료들의 도움으로 형제들에게 부담스러운 존재도 아닌, 시설에도 가지 않고, 당당한 인격체로 지역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를 받으며 생활하고 있다.

자립생활을 위해 필요한 것은 이념이 아니라 실천

중증장애인의 자립생활,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모험이지만 누군가는 먼저 시작을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당당하게 자기 목소리로 자기가 거주하고 있는 지역을 개선시키며… 더 나아가 잘못된 세상, 불평등한 세상을 올바르게 할 수 있게끔 해야 하며 그것이 사회변혁이고 자립생활이념일 것이다. 그것을 일깨워주고, 가르쳐준 곳이 정립회관이었다.
정립회관 시설 민주화를 위한 농성 투쟁 231일을 보낸 나는, 다시 자신에게 물어보고 싶다. 왜 이토록 이 투쟁에 열심히 결합했었는지를… 자기 몸을 차가운 시메트 바닥, 푸석 푸석한 스트로폼 위에 의지해 잠을 자고, 자기 살을 짓이겨 가며, 우리가 왜 이 투쟁에 열심히 해야 했었는지를… 시설민주화, 관장 연임이, 우리 중증장애인이용자에게 뭐가 그리 중요한 문제일까라고…
정립회관은, 우리나라 최초로 장애인이용시설로써 30년 전통을 가졌고, 중증장애인 당사자의 목소리를 담은 자립생활이념을 전파 시켰다. '과연 우리나라에서 중증장애인이 자립생활을 할 수 있을까' 라고 의구심을 가진 사람이 아직 대부분일 것이다. 그러나 정립회관은 최초로 그걸 가능케 했다.
그러나 내가 시설민주화를 부르짖고 있을 때, 알게 모르게 압력이 들어왔다. 2003년 6월부터 2004년 6월까지 나는 정립회관에서 제공하는 활동보조서비스를 받으며 자립생활을 하고 있었다. 중증장애인에게 자립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자기결정권과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겠지만, 그에 따른 서비스가 뒷받침해주고, 어느 정도의 시스템이 갖춰져야 된다, 즉 활동보조서비스, 전동휠체어, 주택개조… 아직 우리나라에서 활동보조서비스가 제도화되어 있지 않아, 중증장애인이 자립생활을 하는데, 사회활동을 하는데 많은 제지를 받고 있다. 예를 들어, 중증장애인이 외출을 해야 하는 경우 (외출준비는 시간이 많이 걸리고 힘들어도 혼자 할 수 있다 쳐도) 전동휠체어에 혼자 올라 탈수 없어 태워주는 사람이 없이는 외출이 불가능하다. 중증장애인자립생활에 있어서 활동보조서비스는 그만큼 중요한 요소를 차지하고 있다,
나는 정립회관에서 활동보조를 못 받아서 밖에 나오지 못해 활동을 못할까봐, 불편한 점이 있어도 최소한의 내 의견만 표출했다. 활동보조인과 트러블이 안 생기려고, 가급적 서로 배려를 하려고 했다. 그러나 어떤 활동보조인은 내 활동을 이해 못해 집회에 나갈 때마다 꺼려하고 울고 힘들어했다, 어떤 활동보조인은 코디네이터에게 일일이 보고하는 형식으로 이어져 나를 이따금씩 숨막히게 했다.

정립회관 시설민주화 점거가 있기 전에 사측과 노측 사이에 나는 많은 생각과 갈등을 했다. 자립생활 이론만 앞세우고 서비스만 제공하는 사측, 자립생활은 실천이라며 같이 현장에서 싸우고 장애인 인권을 위해 열심히 결합했던 노측. 나는 정립회관 투쟁을 통해 많은 걸 보고 느꼈고 배웠다. 자본주의의 생태와 미소 뛴 얼굴 뒤에 숨겨진 가식적인 모습들… 가진 자들의 횡포에 맞서려면 목숨을 바쳐야 한다는 걸 알았다. 이제 나는 정립회관에서 제공하는 보여주기 식 서비스를 탈피해, 진정한 나의 자립생활을 위해 무엇에도 얽매지 않는 주체적인 모습으로 당당하게 서비스를 요구하며 자립생활 이념을 실천해 나가고 싶다. 아니, 그래야만 할 것이다. 남들보다 조금은 일찍 시작했다는 책임감으로… 그 책임감이 지금의 나를 성장 시켰듯이, 앞으로 나의 자립생활을 위해 얼마나 노력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진정한 룰모델이 되어 자립생활패러다임 안에서의 중증장애여성의 자립생활에 작은 보탬이 되고 싶다.

자립생활에서 자립생활운동으로 나가고 싶다

지금 우리나라 현실에서 중증장애인이 자립적인 자기 목소리를 낸다는 것, 이중의 고통이 뒤따른다고 생각한다. 갑자기 거리로 나오면 사람들의 빤히 쳐다보는 시선과, 내가 남들보다 늦고 뒤떨어진다는 생각에, 자신의 한계에 부딪쳐 슬럼프가 오게 될 시점과 맞닥뜨리게 된다. 지금 나는 그 한계의 슬럼프를 느끼면서도, 그냥 외면하고 싶다. 주저앉아 한계의 슬럼프에 빠질 만큼, 그만큼의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자립생활이 중증장애인의 '홀로서기'로만 얘기한다면, 이제 나는 자립생활 운동을 하고 싶다. 처음에 장애인이동권에 결합했을 때, 동료들의 피 터지게 싸운 대가에 '무임승차'하기 싫어 운동을 시작했다면, 이제 내 개인적인 한계를 뛰어넘어 함께 하면서 주체적인 내 싸움으로 가져갈 수 있는 운동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