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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법안 관련 노사정협상 평가와 전망

78호 커버스토리

비정규법안 관련 국회 노사정 협상 경과

4.6 노사정대표자회의 재가동과 위태로운 협상테이블
2004년 3월 중앙위원회에서 노사정 사회적 교섭을 추진하기로 결정한 뒤 민주노총은 이를 둘러싼 논란과 갈등에 휩싸였다. 그로부터 1년 뒤인 2005년 3월 15일, 대의원대회 무산으로 상황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대의원대회 의결을 유보하고, 노사정 사회적 교섭을 추진하기로 한 것이다.
"첫째, 국회에 계류되어 있는 정부의 비정규개악안을 국회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서 노사정 교섭이 필요하다. 둘째, 이를 통해 4월 임시국회에서의 강행처리를 저지하고 전조직적 총파업준비를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확보한다. 셋째, 협상과정에서 민주노총 요구의 정당성을 대내외에 홍보하여 조합원의 관심을 높이고, 국민적 명분을 획득한다."
이런 근거로 노사정대표자회의를 재가동하고 비정규법안 협상을 제안했다. 그러나 4월 5일 노사정대표자회의에서 비정규법안을 국회 밖으로 끌어낸다는 것과는 달리 국회 환노위에서의 노사정협상이 결정되었다. 4월 임시국회 처리유보를 전제조건으로 요구했으나, 4월 8일 국회 환노위 여당간사가 주관하는 노사정 실무회의에서 4.13, 4.16, 4.20 세 차례의 협상일정이 결정되었다. 정부여당은 4월 25일경 환노위 법안심사소위를 비롯한 그들의 국회일정 내에서 협상일정을 잡아가고 있었다. 노사정 협상이 이런 방식으로 흘러가는 데 대해 노사정교섭에 동의하는 입장 내에서도 강한 문제제기가 나타났다.
여기에 4월 13일 노사정 협상 테이블에 제출할 노총과의 노동계 단일안 논의가 실패했다. 한국노총이 민주노총의 파견제철폐안을 동의할 수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국회 내의 노사정 교섭 막바지에 정부여당은 수정안을 내고 한국노총이 이 안을 받을 가능성이 점점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었다. 정부안을 약간 수정한 수준으로 정부, 경총, 한국노총이 4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한다는 사실상의 잠정합의가 이미 되어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결국 2:1의 구도도 안되는 상황에서 민주노총은 협상테이블에 앉았다. 노무현정권의 비정규개악안 문제는 이미 2년 가까이 끌어 온 것이기에 노사정교섭으로 조합원들의 이목도 별로 집중시키지 못하는 가운데, 정부여당은 법안처리의 절차적 명분을 차근차근 쌓아가는 형국이었다.

4.14 국가인권위원회 결정과 반전
1차 실무협상이 열린 4월 13일만 해도 끝이 뻔히 보이는 노사정 협상 수렁에 빠져든 민주노총에게 마치 한가닥 빛과도 같은 사건이 발생했다. 4월 14일 국가인권위원회가 정부의 비정규법안이 반인권적이라는 권고결정을 한 것이다. 인권위원회 결정을 끌어내기 위해 민주노총 집행부가 많은 공을 들인 이 사건을 계기로 협상분위기는 급반전되었다. 4월 임시국회 일정에 맞춘 협상테이블로 민주노총을 끌어들여 여유만만하게 밀어붙이던 김대환, 이목희 등 정부여당 인사들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민주노총은 인권위안을 중심으로 정부안에 대한 공세의 고삐를 잡게 되었다.

민주노총 수정안 논의
4월 21일 민주노총 11차 중집에서 집행부는 인권위안을 중심으로 하는 양노총 단일안 마련을 제안했다. 한국노총의 발목을 잡기 위해 인권위안을 중심으로 양노총 단일안을 결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양노총 위원장의 단식투쟁 돌입을 병행한다는 안도 제안했다. 그러나 양노총 단일안 제안배경에는 다른 이유도 혼재되어 있었다. 일부 중집위원들로부터 인권위 결정으로 인해 정부개악안저지투쟁 국면에서 개선안 쟁취투쟁 국면으로 변했기 때문에 공세적인 수정안을 제출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이에 대해 공공연맹, 금속연맹 중집위원 등이 수정안 결정에 반대의견을 제출했다. 현재의 협상구도로 볼 때 정부안을 일부 수정하여 강행처리하거나, 6월 이후로 넘어갈 가능성이 많은 데 민주노총이 양노총 단일안 형식으로 파견제철폐를 포기하는 수정안을 내는 것은 원칙적으로나 실리적으로나 타당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결국 11차 중집에서는 수정안을 내지 않기로 결정하고, 교섭석상에서 인권위안을 최저수준으로 공세를 펴는 것으로 확인했다.

'양노총 공통안'
4월 24일 6차 실무협상부터 인권위안을 중심으로 한 '양노총 공통안'이 제출되었다. 민주노총 중집에서는 양노총 단일안 형식의 수정안 제출을 하지 않기로 했지만 협상테이블과 협상결과보고 등을 통해 만들어진 '양노총 공통안'이라는 용어는 사실상의 민주노총 수정안이 되는 과정이었다.

'의견 접근' 보고, 그리고 4월 임시국회 처리유보
4월 29일 10차 실무협상 뒤 민주노총은 '의견접근'을 보고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큰 틀 의견 접근, 사용자의 차별 입증 책임 명기 의견 접근, 파견허용업종·기간 현행유지 의견 접근, 불법파견 고용의제(또는 고용의무) 의견 접근, 파견노동자 사용기간 뒤 고용의제 의견접근 등이 그 내용이었다. 이로 인해 언론은 협상타결 가능성을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그러나 이 의견접근 보고는 많은 문제를 야기했다. 비정규연대회의에서는 민주노총과의 간담회 석상에서 파견제철폐를 포기하는데 대한 항의와 '고용의제'와 '고용의무'의 차이를 간과하느냐에 대한 항의성 질의가 거세게 제기되었다. 불법파견시 정규직으로 고용되었다고 간주하는 '고용의제'와 별도로 고용계약을 체결해야 정규직이 되는 '고용의무'는 전혀 다르다. '고용의무'라고 하지만 불이행시 벌금조항으로 사용자를 강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5월 2일 11차 협상에서 노사정 각 입장의 차이를 확인하고, 실무협상 중단 및 4월 임시국회에서의 법안 처리유보를 결정했다.

노사정 실무협상 결과

5월 2일 11차의 실무협상 종료 이후 다시 노사정대표교섭을 재개하기로 하고, 지금까지의 실무협상에서 합의되거나 의견접근 된 내용 등은 '이후 노사정교섭 및 입법과정에서 존중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그렇다면 실무협상에서 합의되거나 의견접근 된 내용이란 무엇인가?

정부안은 얼마나 달라졌나?
협상 과정에서 의견접근으로 보고된 부분은 정확히 표현하면 정부안의 변화라기 보다 경총안의 변화이다. 경총이 동의하는 선에서 동일노동 동일임금 명시, 파견업종과 기간의 현행유지 정도의 변화가 있었다. 이 중 파견업종을 정부안의 네가티브 방식에서 현행 26개업종 포지티브 방식으로 수정하는 것은 이미 협상 전 당정 정책협의회에서 결정되어 있던 것으로서 협상 성과와는 별개의 것이다. 인권위결정의 영향으로 변화된 부분은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명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경총이 동일노동의 기준으로 '동일한 자격, 능력, 성과'를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실효성이 없다.

민주노총 협상안은 무엇이 달라졌나?
민주노총은 수정안을 내지 않기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양노총 공통안'이라는 이름으로 안의 변화가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파견제철폐안 대신 파견업종·기간의 현행유지안으로 바뀌었다. 기간제는 사용기간 1년에서 2년으로 바뀌었다. 민주노총은 인권위안을 최저수준으로 한다고 했지만 협상안으로 인해 정부안이 최저수준이 되고 인권위안이 최고수준의 안으로 되어버렸다.


노사정 협상 중간평가

성과
5월 2일 끝난 노사정 협상을 평가하기에는 이르다. 5월 2일 협상결렬을 선언하지 않았고, 이후 노사정대표자회의에 넘겨 계속 협상하기로 하여 아직 협상국면이 끝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내에서 노사정 실무협상에 대한 공식적 중간평가는 없었다. 그러나 5월 1일 노동자대회에서 민주노총은 인권위안을 중심으로 한 노사정 협상을 통해 4월 임시국회 강행처리를 저지하고, 정부안을 사실상 무력화시켰음을 선언함으로써 중간평가에 대신했다.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결과적으로 4월 임시국회 강행처리를 유보시켜 낸 성과가 있었다. 그리고 동일노동동일임금, 기간제 사유제한 등을 중심으로 정부개악안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고, 사회적 여론을 반전시키는 성과가 있었다는 평가에 인색할 이유는 없다.

되돌아봐야 할 문제점은 없는가?
가장 중요한 것은 민주노총의 안이 사실상 수정되었거나, 수정될 상황에 있다는 점이다. 아직 대의원대회에서 결정된 안을 수정하는 공식적인 의결은 없었기 때문에 민주노총 수정안은 없는 상태이다. 중집에서 양노총 단일안 형식의 수정안 제안은 폐기됨으로써 분명히 확인된 바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민주노총 중집에 '양노총 공통안' 형식으로 민주노총의 수정된 협상안이 보고되었다. 언론보도에 힘입어 세상은 대체로 그것이 민주노총 안으로 알고 있는 상태가 되었다.
파견제철폐 부분은 비정규투쟁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비정규 노동자들의 실질적인 투쟁이 특수고용노동자와 함께 파견노동자들의 투쟁이다. 앞으로 이 투쟁은 현장투쟁의 주축이 될 것이다. 또 하나 한국사회에서 비정규노동자투쟁은 이른바 네덜란드 모델과 같이 비정규직화를 인정하는 선에서 차별완화투쟁으로 선회하지 않는 한 파견제철폐는 매우 중요한 지표이다. 단순히 노사·노정 역관계만을 보고 단기적으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800만 비정규노동자들이 이제 투쟁을 시작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규직노조인 양노총이 대리하여 정규직화포기를 선언할 수는 없는 일이다. 더구나 앞으로 계속하려는 노사정 협상에서 정부안이 크게 바뀔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작금에 횡횡하는 노동운동의 실리주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별 실리없이 원칙만 훼손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노사정 협상은 투쟁을 조직하기 위한 것이라 했다. 협상이 진행되고 있을 때 현장에서는 비정규노동자들의 투쟁이 처절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하이닉스 매그나칩, 울산지역건설플랜트, 덤프트럭 등 비정규노동자들의 투쟁이 그것이다. 비정규노동자들의 투쟁의 최선두에 서있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의 투쟁이며, 새롭게 투쟁의 중심으로 서고 있는 파견(하청)노동자들의 투쟁이다. 그런데 협상 과정에서 특수고용노동자 문제는 뒷전으로 밀려났고, 파견제는 요구안이 후퇴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과정에서 이 투쟁대오를 민주노총이 하나로 묶어 세우는 데 적극 나서지 못했다. 협상으로 이목이 집중되는 가운데 수 십명이 연행·구속되고, 고공농성투쟁으로 목숨을 걸고, 견결하게 투쟁하는 충북지역본부를 유린·고립하기 위한 경찰도발이 버젓이 자행되었다. 총파업투쟁전선은 어떤가? 내용도 불분명한 '의견 접근' 보도가 계속되는 가운데 현장의 긴장감은 떨어져 갈 뿐이었다. 비정규 노동자의 현장투쟁도, 민주노총의 총파업 투쟁전선도 '교섭활용'으로 강화되지 않았다.

전망과 과제

엄밀히 평가할 때 비정규법안의 4월 임시국회 강행처리 유보는 노사정협상 자체의 결과가 아니라 국가인권위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를 무시하고 노사정협상의 전술적 의미를 확대해석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후 재개될 노사정대표자회의에서 민주노총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구체적 방침이 밝혀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노사정대표자회의에서 비정규법안 문제와 더불어 노사정 교섭기구 구성 문제까지 논의될 가능성이 많아 보인다. 그렇게 되면 이제 모든 중심은 사회적 교섭기구 구성논의로 자연히 옮아갈 것이다. 그 와중에서 비정규법안문제는 노무현정권에 의해 '적당히' 강행처리 됨으로써 민주노총 차원의 비정규투쟁전선은 급속히 약화되고 투쟁의 짐이 고스란히 현장으로 떠넘겨지는 최악의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5월 2일 노사정 실무협상 종결 이후 노무현정권은 인권위 결정으로 다소 불리해진 국면을 반전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복지기금 유용과 관련한 한국노총 사무총장 체포영장발부, 현대자동차 입사비리 수사 등으로 노동운동의 도덕성에 타격을 가할 것이다. 5월 7일 '노사관계 대책 태스크포스'를 발족하고, 울산지역건설플랜트노조의 시위자 및 주동자 전원 사법처리, 하이닉스 매그나칩노조의 불법행위 엄단, 덤프트럭노조 불법행위자 처벌을 결정했다. 비정규투쟁의 핵을 그 싹부터 도려내겠다는 것이다. 이런 정지작업을 거쳐 5월 8일 열우당 이목희 의원이 기자들에게 밝혔듯이 '협상과정에서 노사의 의중을 읽고' 강행처리할 기회를 노리고 있다. 따라서 인권위안 수준으로 후퇴한 민주노총의 비정규요구안을 원상회복하고 시급히 투쟁체제로 들어가야 한다. 진행중인 비정규투쟁을 묶어 세워 민주노총의 투쟁전선으로 만들어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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