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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어 점거투쟁을 선택했습니다

"끝장을 보자는 각오로 올라왔어요"
10월 4일. 아침 일찍 조합원들을 집결시키고 서둘러 버스에 태웠다. 버스가 출발함과 동시에 지회장이 엔텍 본사를 점거한다는 내용을 조합원들에게 공지했다. 조합원들은 점거농성에 대해 근심보다는 '이제 뭔가 끝장을 보겠구나!' 하는 생각들로 가득차 있었다.
오후 1시.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위치하고 있는 (주)엔텍 본사에 도착했다. 엔텍지회 동지들은 발빠른 움직임으로 순식간에 본사 2층 사장실·기획실·전략연구실을 점거했다. 직원들을 밖으로 내몰고 문을 잠궜으나, 걸어 놓은 문을 열고 들어오려는 사측 관리자들과 한 시간 가까이 몸싸움을 전개했다.
오후 3시. 조용했다. 그렇게 날뛰던 사측 관리자들도 엔텍지회 동지들의 투쟁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점거 첫날 저녁은 끊임없는 구호와 노래로 밤을 지샜다.
다음날 아침. 김영자 여성부장은 "끝장을 보자는 각오로 올라왔기 때문에 무서운 것이 없었어요. 날뛰는 관리자들을 보니 더욱 분노가 치밀어 오르더라구요"라며 점거에 대한 심정을 말했다. 그랬다. 이들에게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월급을 못 받은 지도 어느덧 반년의 시간이 흘렀다. 하루하루 먹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지난 시간들은 만만치 않은 시간이었다.

그동안 참을 수 없었던 서러움
(주)엔텍은 주방기구인 후드를 생산하는 회사로서, 충북 영동군 농공단지 내에 공장이 있다.
작년 매출액이 600억이었고, 올해에는 매출액 목표를 800억으로 상정할 정도로, 소위 주방기구업체에서는 알아주는 회사이다. 그러나 600억 매출을 자랑하는 엔텍에서 일하는 엔텍지회 조합원들의 한달 임금은 최저생계비에 살짝 넘는 67만원 정도 수준이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쥐꼬리만한 임금만큼이나 힘들게 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작업장내에서의 서러움이었다.
김영자 여성부장은 한숨을 쉬면서 말한다. "젊은 관리자들이 우리가 만든 제품중에 자칫 잘못해서 불량품이 하나라도 나오거나, 조금이라도 늦게 출근하면 우리에게 '이 년아, 저 년아!'하며 욕을 해요. 어찌보면 내 아들 뻘 되는 사람들인데, 나도 다 큰 자식이 있는 몸으로서 정말 그럴 땐 서럽고 눈물이 나더라구요."
이러한 사측의 젊은 관리자들의 횡포는 남성 조합원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그동안 사측은 노동자들에게 조기출근과 퇴근시간을 늦추도록 강요해왔다. 그러나 이에 대한 합당한 임금책정은 한 푼도 없었다. 혹시라도 이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면 가차없이 "짜르겠다"는 협박만을 할 뿐이었다. "우린 그동안 노동조합이 뭔지 몰랐다"는 김종욱 조직부장의 말처럼 이들은 노동자로서 행사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조차 모른 채, 적은 월급이지만 먹고살기 위해서 그동안 꾹 참고 일해 왔던 것이다.

엔텍 자본의 노동조합 탄압 그리고 방관
작업장내에서의 억눌린 서러움과 저임금 등에 대한 처우개선을 요구하며, 4월 5일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다음날 보고대회를 했다. 4월 11일 상견례 자리에서 사장과 기획실장은 노동조합 사무실과 집기 등, 노동조합 운영에 대한 모든 것들을 제공해 주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4월 18일 3차 교섭을 앞두고 돌연 사측은 교섭에 응하지 않고, 충북경총에 위임했다는 팩스 한 장 딸랑 보내고는 그 날부터 정문 출입을 허용하지 않았다. 22일 사측은 지회장에 대한 징계건을 통보해왔다.
엔텍지회는 5월 4일 조합원 총회를 통해서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진행했다. 조합원 72명 중 66명이 투표에 참여해서 56명의 찬성으로 5월 11일 전면파업에 돌입했다. '혹시나 이러다가 영영 공장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 속에 속앓이 했던 이들이 부당한 처우개선과 임금인상 등을 주장하며 거리로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사측의 노조파괴 공작도 만만치 않았다. 조합에 가입한 사람들에게 협박과 회유를 자행했고, 이로 인하여 노조 창립한지 3주만에 30여명의 조합원들이 탈퇴했다. 그리고 사측은 5월 16일 밤늦게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사측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계속적인 투쟁을 전개하다
5월 23일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있는 엔텍 본사 상경투쟁을 전개했다. 사측은 조합원들이 건물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많은 경찰병력을 배치하도록 사전에 준비했을 뿐만 아니라, 조직폭력배까지 불러왔다. 그러나 지역의 동지들이 내일처럼 여기고 많이 연대해 주어서 건물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첫 서울상경투쟁을 잘 진행할 수 있었다.
6월 1일부터는 영동공장 앞에 천막을 설치했다. 그리고 매일 오전과 오후에 영동시내를 휘젓고 다니면서 엔텍지회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든 이유와 엔텍의 부당함을 군민들에게 알려내었다. 생전 처음 시위 피켓을 들고 거리를 활보했다. 15년 일했는데 월급 67만원이라는 사실을 처음에는 군민들이 좀처럼 믿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매일 같이 엔텍 노동자들의 거리 선전전은 군민들로 하여금 호응을 갖게 했다.
또한 6월 7일부터는 한 달여간 서울 동작구 흑석동에 있는 박유재 회장집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했다.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에도 조합원들은 조를 나누어서 돌아가며 아랑곳 하지 않고 피켓을 듣고 시위를 했다. 4일차 되던 날, 박유재 회장을 만나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 만큼 줬으면 됐잖아! 더 뭘 바래. 그리고 죽어도 노조는 안돼!" 였다.
박유재 회장 당신이 70만원으로 한 달을 살아보지! 쉬지도 못하고 일한 대가는 휘어진 손가락뿐인데, 뭘 얼마나 줬단 말인가!

우리는 끝장을 보기 위해 점거농성에 돌입했다.
오늘로서(10월 9일) 본사 점거농성 6일째 되는 날이다. 처음 올라올 때의 마음가짐처럼 엔텍지회 노동자들은 전혀 흔들림이 없다. 오히려 천막에서 지내는 것보다 사무실 안이 더 편하게 느껴진단다.
엔텍지회 노동자들이 점거농성을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노동조합을 인정하고, 성실 교섭을 촉구하는 것뿐이다. 그들은 사측이 말하는 것처럼 회사를 망하게 하기 위해서 노동조합을 만든 것이 아니다. 부당한 처우개선과 열악한 저임금에서 벗어나서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고 싶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엔텍 자본은 거액의 돈을 충북경총에 주면서 노동조합 파괴에만 힘을 쏟았을 뿐이다. 사측이 교섭에 성실히 참여한 적도 한번도 없다.
더군다나 본사점거 3일째 되던 날, 사측은 노조의 요구인 교섭에 응하기보다는 영동에서 구사대를 조직해서 올라오게 했다. 물론 구사대 침탈은 없었다. 구사대 침탈이 있을 것이라는 소식에 지역의 많은 동지들이 올라왔기 때문이다. 사측은 그 날 저녁에 조합원의 점거로 인하여 막대한 손해를 입고 있다며 '퇴거명령'이라는 문구가 담긴 종이 한 장을 붙여 놓았다. 대체 엔텍 자본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할 뿐이다.

여전히 사측은 성실교섭에 응하지 않고 있다. 쉽게 교섭이 이루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구사대에 의해 혹은 공권력에 의해서 끌려나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의 엔텍지회 노동자들은 여기서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다. 지금 엔텍 동지들은 하루하루가 즐겁다. 본사점거를 하면서 매일 새로운 민중가요를 배우고, 연대 동지들로부터 자신의 투쟁경험이나 투쟁사례들을 접하면서 굳은 결의와 의지를 도모하고 있다.
그동안 얼마나 서러움 속에서 살아왔는가. 장시간 노동과 열악한 임금조건속에서 남은 것은 뒤틀려지고 휘어진 손가락뿐이다. 우리는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으면서 다시 현장에서 일을 하고 싶다.
투쟁하면서 연대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연대한 동지들의 뜻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결코 엔텍 자본에게 무릎을 꿇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민주노조가 어떤것인지 저 오만한 엔텍 자본에게 보여줄 것이다. 그것이 지금 엔텍 노동자들이 할 일이며, 점거농성을 하는 이유일 것이다. 엔텍지회 노동자들의 투쟁에 많은 동지들이 지지와 관심, 그리고 연대를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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