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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호 성폭력사건 그 후 3년, 내 이야기 (1)

김원호 사법처리

성폭력 생존자들이 자신의 피해경험을 '말하는 것'은 상처의 치유과정이다. 그동안 억눌렀던 감정을 쏟아냄으로써 생존자들은 자신을 찾아가는 첫걸음인 것이다. 생존자의 말하기는 성폭력을 당하고 난 뒤의 혼란과 치욕의 과정에서 자신을 다시 사랑하게 되고 스스로를 채워나가는 과정이다. 또한 생존자로서 당당하게 설 것이라는 선언의 의미도 있다.
2003년 3월, 노동자의 힘에서 처음으로 성폭력 대책위가 꾸려졌다. 당시 노동자의 힘은 큰 혼란에 휩싸였다. 처음으로 공식화된 '성폭력 사건'이 가져다주는 혼란함과 이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고, 어떻게 봐야하는지, 무엇이 문제인지 회원들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2차 가해가 발생하기도 했고, 조직문화를 혁신하기 위한 움직임도 생겨났다. 그러나 그 사건을 해결하는 것에 있어 대책위의 힘만으로는 부족했다. 결국 가해자는 '가해자 프로그램 이수'를 거부했고, 노동자의 힘에서 제명되었다. 생존자는 노동자의 힘을 탈퇴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났다. 김원호성폭력사건의 피해자는 「노동자의 힘」을 통해 '말하기' 시작했다. 3년이라는 기간동안, 노동자의 힘이 침묵하는 동안 생존자는 표현할 수 없는 고통에 시달렸을 것이다. 그 고통의 상처를 이제 노동자의 힘을 향해 말하기 시작했다. '생존자의 말하기'는 치유의 과정이지만, 그녀가 「노동자의 힘」을 통해 쉽지 않은 '말하기'를 선택한 것은 노동자의 힘을 향한 날카로운 비판을 하기 위해서다. 그녀가 하는 말에 귀 기울여보자. 그리고 반성하자. 이것은 조직을 혁신하는 길이기도 하다.
-편집자

2003년 3월. 오래 전 일을 다시 들춰낸다. 노동자의 힘 노동부장으로 상근활동을 했지만 늘 모자란 내 역량에 자괴감을 갖고 활동에 적응하지 못했던 난 결국 상근 1년을 채우지 못한 채 활동을 정리, 잠수했다. 6개월만에 조직국장이었던 김원호를 만났고 난 그에게 나의 힘겨움을 토로하며 조직탈퇴의사를 밝혔다. 그 날 정신 없이 술을 마셨고 정신 없이 울었다. 그리고 만취한 난 성폭행 당했다.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자에 대한 신뢰가 컸기 때문에, 활동을 정리한 이후 아무도 안만나다 운동을 정리하겠다는 고민을 얘기하려고 만난 자리였기에, 그만큼 신뢰했던 선배였기에 그자가 나에게 어떻게 이런 일을 저지를 수 있는지 감당하기 어려웠다. 어떻게 김원호가… 그 상황의 내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인간적 신뢰가 깨지는 고통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성폭력 사건의 70%이상이 아는 사람에 의해 발생하고, 운동권에선 그 빈도가 더 높다는 걸, 권력관계에서 발생한다는 걸,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왜곡된 성인식이 내면화된 것이라는 걸 머리론 이해했지만 내 사건으로 돌아오면 정리되지 않았다.
그렇게 04년, 05년을 보냈다. 너무나 고통스러웠던 노동자의 힘 상근 시절 그나마 따뜻하게 배려해줬던 그자의 모습과 성폭력 가해자란 사실이 오버랩 돼 감정정리가 되지 않았고, 심지어는 그자가 운동 정리한 것에 대한 안쓰러움이란 피해의식까지 복합적인 감정으로 남아 나를 괴롭혔다.
2차 가해자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과는 대조적으로 가해당사자에 대해서는 꽤나 온정적이고 무기력한 태도를 취했다. 그것조차 나를 괴롭혔다. 결국 나는 그자에 대한 내 감정에 대해 탐색하기를 거부했다.

05년 11월 여성단체에서 여는 '성폭력생존자말하기대회'에 다녀왔다. 그곳에서 나는 사건당시 피해자치유프로그램 때문에 만났던 여성단체 활동가를 만났다. 그녀는 당시 나에게 왜 가해자 사법처리를 하지 않았냐고 물었고 나는 강한 거부감을 느꼈다. 그녀의 질문은 나에겐 위협이었고 모욕이었다. 나는 너무나 당당하게 "운동권은 운동의 방식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권력에 의존하고 싶지 않다"고 답하고 피해자치유프로그램을 받지 않았다. 내겐 '조직적 해결'만이 유일한 해결방식이었다.
05년 11월 그녀를 다시 만난 이후 사건 당시 그녀와 나눴던 대화가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 대화의 무엇이 나를 이렇게 괴롭힐까. 김원호 사법처리에 대해 지금 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나. 내가 원하는 게 뭘까. 내게 풀리지 않은 무언가가 있는 걸까. 김원호에 대한 감정을 들여다보자…
난 그녀의 질문을 받기 전까지 사법처리는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다. 그녀의 질문은 내겐 충격 그 자체였다. 왜 충격이었을까. 나 역시 조직중심주의자였다. 사법처리는 운동사회의 치부, 조직의 치부를 공권력에 드러내는 거라고 생각했다. 운동권은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우월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던 거 같다. 과연 그럴까. 지금은 그런 생각 안 한다. 그리고 그건 도덕의 문제도 아니다(도덕이란 표현도 정말 싫다).
그땐 성이 정치투쟁의 영역이란 걸 몰랐다. 그리고 개인적이지 않다는 것도 몰랐다. 지금의 나라면 사법처리한다. 이미 공소시효도 지났고, 사법처리의 증거도 불충분하다. 사법부의 가해자중심성을 보면 산 넘어 산이다. 그러나 사법처리는 그자가 쇠고랑 차고 안차고의 문제가 아니다. 과정에서의 무수한 논쟁, 그 자체가 투쟁의 영역이고 그것이 내가 사법처리를 중요하게 보는 이유다.

성폭력은 성적자기결정권에 대한 침해다. 만취한 여성, 항거불능 상태의 여성은 성행위를 '선택'하고 '결정'할 수 없다. 나는 평소 그자를 섹스파트너로 생각해본 적도 없고, 그 날은 운동을 정리하고, 조직도 탈퇴하겠다고 펑펑 울던 심리상태였다. 내가 원한 건 상처받은 감정에 대한 이해와 배려였지 '섹스'가 아니었다. 난 성행위를 '선택'하고 '결정'하지 않았다. 그건 '강간'일 뿐이다.

인식의 변화가 있다면 감정의 변화도 있다. 김원호에 대한 감정적 혼란, 피해의식까지 겹쳐 정리하지 못했던 감정을 하나씩 정리했다. 난 이제 그자에 대한 안타까움, 미안함을 갖지 않는다. 이제야 그자에 대한 분노를 갖는다. 사건 발생 3년 만에 그자에 대한 무거운 감정을 떨쳤다. 사건을 객관화하는데 3년이 걸렸다. 사법처리는 그자에 대한 분노의 표현이고 나에겐 그런 큰 의미가 있다.
피해생존자의 분노는 즉각적으로 나타나지 않기도 한다. 분노는 오랜 시간 잠복기를 거쳐서 몇 년이 흘러 나타나기도 한다. 무기력한 상태를 거쳐 어느 순간, 어떤 계기를 통해 솟구쳐 오르기도 한다. 그래서 성폭력, 특히 강간사건의 피해자인 경우 초기 산부인과 대응이 중요하다. 당시에는 법적 대응에 대한 의지가 없는 무기력한 상태일 수 있으나 나중에 시간이 흘러 피해생존자가 법적 대응을 하겠다는 의지가 생기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난 당시에 아무것도 몰랐다. 그냥 몸을 씻었고, 대책위가 소집된 것도 수일이 지나서였고, 당시 대책위도 그런 지식은 없었던 것 같다.
지금 내게 남은 증거는 아무것도 없다. 그런 면에서 나는 무기력하다.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그자가 작성한 사건에 대한 인식을 다시 보았다. 동의 없이 여관에 데려갔기에, '성관계'를 했기에 성폭력이라고 인정한다고 밝히고 있다. '폭력이나 억압적인 행동은 하지 않았고', '강제로 관계를 맺은 기억은 없지만', '술에 취한 생존자가 여관을 가는 것에 대해 동의하지 않았기에 성폭력입니다', '생존자가 자신의 동의 없이 여관을 갔고 성관계를 한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등의 내용이다.
지속적으로 사용되는 표현은 '성관계'다. '성관계'라고? '성관계'는 서로가 동의하는 성적관계를 말하는 것이지 '강간상황'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만취한 여성에게 물리적 '폭력이나 억압, 강제'적 행동을 취할 일은 없었겠지만 그 자체가 '폭력'이고 '억압'이고 '강제'적 행위다.
김원호가 성폭력이라고 인정한 것은 내가 그렇게 말하고, 술에 취한 내가 여관에 가는 것을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이지 강간 상황 자체에 대한 언급은 회피한다. 그자가 과연 성폭행이라고 인정한 것인지, 무엇이 성폭행인지 알고 있는지 대단히 의심스럽다. 김원호는 "끝까지 기억나지 않는다"로 일관했다.

난 '동의 없이 여관에 데려갔기에' 성폭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동의 없이 여관에 갔지만 그냥 잠만 자고 나왔다면 아무 문제없었다. 여관에 간다는 것이 꼭 섹스를 전제하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이유로 여관에 간다. 잠만 잘 수도, 대화를 원할 수도, 술을 마실 수도, 술을 깨러 갈 수도, 애무만 원할 수도 있다. 다양한 가능성이 있음에도 '여관=섹스'가 전제되는 통념을 깨야한다. 그것에 문제제기 해야 한다.
여관에 가서 무방비 상태의 여성에게 일방적인 성행위를 한 것이 문제였다. 그것이 성폭력이었다. 가부장제사회는 여성에게 안전하지 않다. 왜 안전하지 않은지, 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을 무시한 그 원인에 문제제기 해야지 주변 환경을 문제 시 하는 건 동의하기 어렵다.
여성은 밤길을 자유롭게 나다닐 수도 있고, 남성과 여관에 갈 수도 있고, 만취할 수도 있다. 나는 꼭꼭 숨어 살고 싶지 않다. 성폭력으로부터 안전하기 위해 통제되고 싶지 않다.

다음날 아침 내가 택시에 타려고 하자 김원호는 내게 "너 돈 없어. 내가 어제 여관비 냈어. 금방 찾아다 줄께 기다려"라고 말하며 은행으로 달려갔다. 난 굴욕감을 느끼며 그자를 기다려야 했고, 이는 그자가 여관비 낼 때 멀쩡한 정신이었음을 말해준다. 그러나 김원호는 이 사실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렷이 기억한다. 다음 날 아침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늦었다"고 나를 깨우던 그자의 목소리가 들리고, 너무나 태연하게 "아침 먹고 가자"던 그자의 목소리 톤까지 기억난다.
그자는 3년이 지난 지금도 내가 생생하게 기억하는 그 날 아침의 상황을 끝까지 "기억나지 않는다", "피해자가 그렇다면 그게 맞겠지요"로 일관했다. 그자의 "기억나지 않는다"는 강간이 아닐 수도 있다는 수많은 억측을 만들어냈다. 나는 그렇게 난도질당했다. 그자는 그렇게 내게 칼을 꽂고 고고하게 사라졌다. 나는 김원호를 용서할 수 없다.

사건발생 이후 무기력한 나날의 연속이었다. 자신감을 잃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두렵고 우울한 감정 때문에 힘들기도 하고 내가 한없이 작아 보여 집에만 틀어박혀 있는 시간이 많았다.
3년하고도 몇 개월이 지난 지금 난 김원호 성폭력사건을 다시 끄집어낸다. 관련된 자료를 또다시 들춰내 꼼꼼히 읽고 재해석하며 내 감정을 들여다본다. 나에겐 쉽지 않은 과정이다. 감정의 평온을 잃고, 술과 담배와 초코렛을 달고 살면서도 이 사건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내 안의 '분노' 때문이다.
내가 살기 위해, 자유로워지기 위해 난 글쓰기를 시작한다.

이 과정은 내 안의 새로운 힘을 찾고, 확인하는 과정이며, 치유의 과정이기도 하다. 분노를 표현하는 것, 그것은 치유의 방법이기도 하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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