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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도시 조성과 시민자치공동체

도시에 대한 느낌과 이미지는 그 도시에 살고 있는, 또는 그 도시를 거쳐가는 시민들이 그 도시와 관계하는 방식에 따라 달라진다. 도시 거주자라 하더라도 도시를 중심으로 일상생활을 꾸려가는 이들과 밤늦게 들어와 아침에 출근하면서 그 도시에서 잠만 자는 이들은 도시에 대해 지니고 있는 이미지가 매우 다르다. 또한 도시 외부에서 도시계획을 입안하고 실행시킨 이들과 도시 내부에서 도시를 지속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이들이 도시에 대해 지니는 느낌과 이미지도 사뭇 다르다.

도시와 시민

낮과 밤의 관계, 구체적인 기능과 커다란 형태의 관계, 또는 사고와 행동처럼 도시의 내·외부도 각각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상호작용을 한다. 도시의 계획(의 입안과 실행)이 도시 거주자들의 삶을, 또 도시 거주자들의 삶이 도시 계획을 고무하고 규정한다. 그러나 이 두 부분의 상호관계가 수평적이고 상보적으로 전제되지 않고, 도시성장(결과)이 도시계획이라는 원인으로 환원주의적으로 설명되거나 단선적인 인과관계로 제시될 때, 그리고 설계자(위에서의 결정)ㅡ사용자(아래에서의 수용)의 수직적 위계질서로 배치될 때, 도시는 권력을 정당화하는 경관으로 전락하거나, 경제적 이윤을 확대하는 도구로 이용될 수 있으며, 도시 거주자의 개별적인 삶이 지니는 사회적 가치나 의미, 목적 등을 설명하기는 매우 어려워진다. 자본과 권력의 시각을 확장하려는 도시 계획에서 도시에 거주하는 개인들을 파편화하고 일시적이며 익명적인 존재로 상정하기 때문에 도시거주자들의 사회적 연대감 형성이 극히 취약해진 사례들은 급조되는‘신도시’건설을 통해 익히 알고 있는 바이다.

따라서 활력있는 도시에서는 한 편으로 권력의 남용과 집중화, 자본의 편중이 견제되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 거주자들의 삶이 사회적 맥락을 획득하여야 한다. 모든 것을 총체화하는 권위적 구조 속에서는 일상의 경험이 가치절하되고, 개인들의 냉소주의와 소외감, 무력감이 심화되면서 삶에서 더 많은 불안을 느끼고 경계심을 풀지 못하게 되기 때문에 개인들의 삶을 사회적으로 조명하는 공론장이 도시의 활력을 제공하게 된다. 개인으로서의 도시거주자들과 그들의 삶을 관장하는 기구들 사이에 놓인 심연을 이어줄 매개구조가 시민사회이다. 도시의 활력성을 위한 시민사회의 역할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사회연구를 통하여 시민자치적 공동체(시민사회)가 발달되어 있는 지역일수록 수평적 연대의 집단적 호혜주의가 효과적으로 작동하고, 시민들의 삶에 대한 만족도가 월등하게 높으며 자기계발 능력이 뛰어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도시 계획이 궁극적으로 거주자들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정부가 공공선을 실현하기 위한 이상적이고 공평한 매개자로서 기능하려 하기 보다는, 자발적이고 자치적인 시민사회를 통하여 적대적이고 비적대적인 갈등과 협력이 유동적이고 개방적인 방식으로 작동하여야 효율성이 증대될 것이다.

전문성 이데올로기를 넘어

‘문화’와 ‘도시’의 결합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오래된 도시이거나 새로운 도시이거나 모두 문화를 활용하여 도시를 미화하거나, 도시에 대한 특정 이미지를 생산해 왔기 때문이다. 이 경우 ‘문화’나 ‘도시’나 모두 위대한, 탁월한 차원의 전문성과 그리고 그 전문성을 보유한 특수층과 관계한다. 고급문화만이 도시계획의 필요에 부응하며, 도시를 만드는 능동적 변형자인 전문인들은 개발대상지의 거주자들 문제를 비껴갈 수 있다. 전문주의에 의존한 문화도시는 도시의 미래에 대한 일방적인 낙관만을 중시하면서, 사회적이고 윤리적인 배려는 생략하기 일쑤이다. 이에 따라 문화의 고급성이 분열적이고 억압적인 사회정책을 조정하여 도시에 유순함과 기능성을 제공하는 사례는 전세계적으로 무수히 많다. 문화 영역이 ‘미적 질’이라는 차원에서 비전문가들이 결코 평가할 수 없는 전문가 영역을 확보해주면서, 도시 조성에서 첨예하게 맞부딪칠 이데올로기적 논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에 사회적 통제의 수단으로 세련되게 활용되어 온 것이다. 자본이나 권력과 공모하여 사회적 차이들을 물신화하는 문화적 작업들 대부분이 일반 대중들의 접근을 제한하는 것(‘들어가지 마시오!’‘만지지 마시오!’ 등등)도 대중들이 능동적인 행위자로서 사회에 개입하고 참여하는 것을 집요하게 방해해 왔다

그러나 최근 우리 사회에서도 대중이 가지고 있는 잠재적 저항과 능동성에 주목하는 이들이 늘고 있고, 나아가 대중의 문화실천을 사회적으로 조직화하려는 문제의식이 널리 확산되고 있어, 비전문가집단이나 일반 대중 모두를 향해 보여준 전문가들의 일방적인 시혜적 태도는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다. ‘문화도시’를 조성함에 있어 문화를 특수하고 전문적인 영역으로 분리시켜 일반적이고 비전문적인 접근을 금지시킨다면, 도시는 그 자체 독자적인 꼴을 갖추고 제한적인 기능을 수행하겠지만, 시민들의 일상생활과는 멀어질 것이고 도시는 다양한 사회적 교류를 제공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사회적 통제를 만들어왔던 전문성 이데올로기의 벽을 허물고, 지배문화의 일방적 화법을 해체시키는 일이야말로 ‘문화도시’ 조성의 기초작업이다. 갈등과 모순을 다양한 시각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읽고 풀어가는 과정을 통해서야 ‘도시’는 비로서 경직된 전문성과 상투적인 권위주의를 넘어 대중적인 개방성과 역동적인 실험성을 독려하고 촉발하는 진취적인 ‘문화도시’로 구성될 수 있다.

‘문화도시’와 시민자치공동체

‘광주 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에 대한 논의도 자칫 전문가 대 시민이라는 양극화되고 상호배타적인 방식으로 진행될 수 있다. 광주문화중심도시 조성과 특수한 이해관계를 맺고 있는 집단과 다수 일반 시민들이 대치할 수도 있고, 광주 안팎에 존재하는 도시 전문가 집단들 사이에도 서로 다른 접근방식이 대립할 수 있다. 이런 대립과 충돌 가능성 때문에 많은 이들이 시민사회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시민사회가 대립과 충돌을 완화하고 서로 다른 이해집단, 또는 개인들을 합의에 이르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시민사회가 결코 중립적인 것은 아니다. 시민사회가 갈등없는 화목한 공간, 동질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단결하는 공간이 아니라는 말이다. 시민사회 구성원들은 이타심이나 선한 본성에 기대기보다는 시민교육을 통해 단결하며, 시민적 태도와 참여를 보장하는 제도들에 의하여 공공성을 추구하고 공공적 행위를 하는데, 이때 시민사회 각 개인은 ‘주어진 이해관계들 사이에 단순한 동맹을 정립하는’ 것이 아니고, 그들의 정체성을 실질적으로 변화시켜 ‘새로운 정치적 정체성’을 생성하게 된다. 때에 따라 정치적으로 갈등을 증폭시키기도 하고, 다양성의 사회를 지향하면서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 간에 가로놓인 경계를 무너뜨린다는 점에서 시민자치공동체의 시민은 전통적인 의미의 시민과 달리 다중적이다.

시민사회가 다분히 국가의 권위와 개인적 자율성 사이에 놓인 중간지대, 징검다리라는 오해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다중적 주체’라는 확장된 시각을 통해 이전에는 정치적인 것으로 간주되지 않았던 문화, 교육, 가족 등의 영역, 그리고 성적 소수자, 외국인노동자, 양심적 병역거부자, 노숙자, 환경론자 등의 이슈들을 비판적 독해와 대안 추구의 사회적 공론장(공공영역)으로 확대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의 시민사회가 ‘풀뿌리 보수주의적 경향이 두드러진다’(김호기)는 지적이나, ‘장기간의 권위적 권력구조의 그물망의 복제판’(손호철)이라는 비판처럼 시민사회 양적 팽창이 오히려 보수주의의 구상을 강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불식시킬 수 없다. 따라서 정치적인 것을 협소하고 현실적으로만 받아들이는 보수주의적 시민사회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은유적이고 실질적인 ‘새로운 정치공간들’을 통해 시민적 대화가 제도들 바깥에서 자라날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을 창출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이것은 특히 대중들의 잠재력을 제한하고 있는 문화적 요인에 주목함으로써 일상의 재조직을 통해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때에도 개인의 집중적인 자율성 추구가 사적 이익에의 몰입으로 연결되는 퇴행은 견제되어야 한다. 다양한 의견들이 지니는 고유한 가치를 인식하기 위해서 개별적 경험과 사회적 실재간의 상호관련성을 강조하는 접근이 문화주의의 폐쇄성을 넘어서도록 적극 개발되어야 한다. 시민사회가 공공영역 같은 시민적 대화의 장을 매개해야 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시민적 권리에 대한 일원론적, 또는 보편주의적 이해에 균열을 낼 수 있는 역동적이고 새로운 문화적 재현과 사회적 실천이야말로 형식적이고 절차적인 민주주의를 실질적이고 내용적으로 확장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되고 있다. 이 가능성을 우리는 문화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도시의 성장이 도시 거주자들의 삶과 연계되듯, 문화도시의 조성은 문화민주주의의 실현과 밀접히 연계되어 있다.

사회문화적 공간의 정치화

‘광주 문화중심도시 조성’에서 시민사회의 역할은 추진체를 보조하는 기능보다는, 공동체의 요구에 보다 민감하고 유연하게 반응하여 문화민주주의의 원리에 따라 시민들의 사회적 삶을 더욱 적극적으로 조직하고, 사회문화적 공간을 정치화함으로써 문화도시로의 성장을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보장하는 일이다. 수많은 영역에 존재하는 단일문화의 억압적 신화를 깨트리고자하는 욕망들에 목소리를 실어주는 일, 주류 영역 바깥에 있는 집단들의 문화생산을 매개하고 시민적 대화의 범위를 확대하는 일, 시장의 무절제와 국가의 통제에 구속되지 않고 문화적 관점에서 공공적 이슈를 개발하는 일, 비대칭적 권력관계와 적대로부터 자유로운 참여공간을 마련하여 시민적 논의를 통해 시민들이 공동체 사안에 관여하고 결정된 선택들을 효과적인 공공정책으로 전환되도록 하는 일 등을 통하여 시민참여의 전통을 가지고 있는 ‘광주’에서 시민사회가 진보적으로 성장하는 것이 문화도시를 광주 ‘안’에 고정시키지 않고, 광주와 ‘더불어’ 광주 ‘밖’으로 확대하는 길이기도 하다. 이러한 노력에 따라 시민사회의 규범과 네트워크가 문화도시의 다양한 제도적 형태들을 만들어내고 협력적 행위를 촉진함으로써 사회발전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임정희, 연세대 겸임교수/ 문화이론·미술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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