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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 권하는 사회

오늘 날 대학은 기업의 소유

대학생들이 캠퍼스를 나서고 있다. 7-80년대의 대학생들은 짱돌을 들고 독재에 맞서기 위해 캠퍼스를 나섰지만, 오늘의 대학생들은 말쑥하게 차려입고 회사에 출근하기 위해 캠퍼스를 나서고 있다. 소위 ‘인턴’이라는 이름으로 기업에 들어가서 ‘알바비’도 안 되는 돈을 받거나, 혹은 식대 외에는 전혀 월급을 받지도 않으면서 자발적으로 일하는 학생들이 많다. 표면적 이유는 사회 경험을 쌓기 위해서지만, 진정한 이유는 인턴 경력으로 그 회사 혹은 더 좋은 회사에 취직하기 위해서, 다시 말해, ‘인턴’으로 들어갔다가 ‘레지던트’(resident)가 되기 위한 것이다. 사실은 ‘싼값에 임시로 쓰는 비정규노동력’이면서도 어쩐지 ‘인턴’이라는 말이 붙으면 뭔가 달라 보인다. 그래서일까. 실상에 비해 엄청나게 부풀려진 이미지 탓에 학생들이 몰리고, 잘 나가는 재벌기업의 인턴쉽에 소위 ‘3류 대학’의 학생들이 합격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대학생들이 기업체의 인턴쉽에 기를 쓰고 달려드는 현상은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90년대 중반 정치적으로 형식적이나마 민주화를 달성하면서 학생운동의 동력이 현저하게 떨어진 이후, 학생들은 마스크 대신 넥타이를, 짱돌 대신 노트북을 들고 다른 미래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민주화가 오면서 세계화도 왔고, 세계화가 오면서 청년실업도 함께 왔다. 캠퍼스에 군화발은 사라졌지만, 이제 각종 기업의 홍보 포스터가 나붙고, 기업설명회가 상례화되고, 기업이 대학을 인수하면서, 대학은 점점 자본에 먹혀 들어갔다.


오늘날 대학은 완전히 기업의 소유라 해도 그리 틀린 말이 아니다. 경제부총리였던 이를 교육부장관에 앉힌 대통령의 말처럼 “대학은 산업”이라면, 그 산업 속의 어떤 기업은 부도가 나서 망할 수도 있기에 대학은 살아남기 위해 살벌한 경쟁체제 속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7-80년대 대학을 짓밟았던 것이 독재의 군화발이었다면, 오늘날 대학을 지배하고 있는 권력은 ‘자본’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대기업의 사고방식’이다. 기업에서 중요한 것이 대학에서도 중요해졌고, 기업에 필요한 인재가 대학에서 길러내야 할 인재상이 되었다. 자본축적에 도움이 안 되는 인문학은 대학에서도 힘을 잃어가고 있고, 기업입사에 필요한 토익과 연수경력은 대학생들의 필수과목이 되었으며, 복잡하고 다양한 의사결정이 요구되는 기업환경은 여러 전공을 동시에 이수하는 게 가능해진 학부제를 낳았다. 대다수 대학생들의 삶을 규정하는 것은 ‘정치’가 아니라 ‘자본’이고, 대학생들은 그 현실을 살아내기 위해 자신의 청춘을 쏟아 붓고 있다. 대학생들이 인턴쉽에 몰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인턴쉽이 대학생을 착취하면서 포섭하는 기업의 뻔뻔한 전략이라면, ‘박카스 국토대장정’으로 대표되는 ‘국토대장정’의 난무는 대학생의 영혼까지 제 것으로 만드는 기업의 교활한 속임수다. 자본은 적은 돈을 들여 학생들에게 ‘국토대장정’을 시키고 그 장면들을 편집해서 기업 홍보물로 살짝 되바꾼다. 땀 흘리는 대학생의 정열, 그게 바로 우리 기업의 정열 그 자체라는 것이다. 또한 ‘국토’니 ‘대장정’이니 하는 심하게 진지한 단어들을 통해 국경 없는 자본의 자유를 살짝 가리면서 애국심으로 포장하기도 한다. (신화 속의 ‘박카스’(Bacchus)가 술과 환락의 신 디오니소스의 별명인 것과는 정반대의 이 아이러니!) 학생들은 학생들 나름대로 ‘국토대장정’의 포스터 문구를 따르는 것 같지만 이 ‘올바른’ 경력을 한 줄 이력서에 남김으로써 자신이 학점이나 취직에만 눈 먼 무식한 대학생은 아님을 보여줄 수도 있을 것이다. 인턴도 국토대장정도 아닐 때는 구청 알바나 동아리 활동, 심지어 대학원 진학까지도 기업에 제출할 수 있는 하나의 경력관리 대상으로 전환되고 있는 듯하다. 이는 회사원들이 회사돈으로 외국어학원을 다니는 것이 자기 이익인 듯 보이면서도 궁극적으로는 회사에 더 많은 이윤을 가져다주는 행위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것과도 통한다.


교묘한 상징작용으로 대학생들의 노동력(인턴)과 문화(국토대장정), 나아가 대학총장의 직함(“나는 우리 대학의 CEO요”)까지도 포섭하는 이러한 자본의 행태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화와 따로 떼어놓고 설명할 수 없다. 대학생들이 비판적 지식 대신 취업을 걱정하면서 토익과 인턴과 알바와 국토대장정을 해야‘만’ 하는 상황은 우리 모두가 여가를 즐길 틈도 없이 끝없는 노동과 피로에 시달려야 하는 상황과 정확히 일치한다. 문제는 인턴도, 알바도, 국토대장정도 아니고, 우리에게 노동과 경쟁을 부과하면서 끊임없이 달리라고 채근하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시스템인 것이다. 이 시스템을 그대로 인정하면서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발버둥치는 우리네 대학생의 영악함만을 비판할 수는 없다.


대다수의 대학생들이 인턴으로, 알바로, 국토대장정으로, 토익공부로, 어학연수로 바쁜 오늘에도, 세상의 흐름을 거스르며 우리를 바쁘게 만드는 거대 시스템과 한 판 붙으려는 일군의 대학생들이 역시 바쁘게 살고 있음을 발견하는 것은 기쁨이다. 생태주의자, 생협활동가, 여성주의자, 꼬뮌주의자, 한총련, 문화활동가, 맑스주의자, 야학교사, 독립영화활동가, 동성애인권운동가 등이 학내 곳곳에서 여전히 프랑카드를 걸고, 세미나를 조직하고, 운동을 하고, 봉사를 하면서 활발히 살아가고 있다. 수많은 기업포스터와 기업설명회, 그리고 기업의 입맛에 맞는 맞춤형 노동자를 길러내려고 고민하는 대학본부의 거대한 물결 속에서 다양한 활동가들이 만든 촌스러운 포스터와 급진적 문구들이야말로 아직 청년은 죽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자본이 점령해버린 대학의 공기가 아직은 맑은 이유다.




문강형준, 무크지 <모색>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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