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연대 뉴스레터 문화빵

문화산업 3법과 문화적 권리

자본의 성장 속 창작자, 향유자의 문화적 권리가 거친 숨을 내몰고 있는 형국

문화·관광·레저·스포츠 산업의 경제규모는 90년대 이후 지속적인 성장을 해왔다. 04년 기준으로문화산업의 총 매출규모는 117조원, 총 고용규모는 261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흔히들 문화산업을 미래형 산업이라 부르지만, 문화산업의 여러 지표는 이미 문화산업이 오늘의 산업을 지배하는 핵심 영역임을 웅변한다. 그러나 한류의 눈부신 성장, 주 5일제 도입, 웰빙 추구 등 문화산업에 대한 낙관적 전망을 가능케하는 조건들이 확대되고 있지만, 핵심자원 부족, 산업기반 취약 등 경쟁력을 잠식하는 요인이 상존한다는 지적 또한 타당하다. 정부 주도하에 추진되고 있는 ‘음반 및 비디오·게임물에 관한 법률(이하 음비게법)’ 폐지 움직임은 규제 중심으로 짜여있는 문화산업 관련 법·제도 체계를 진흥 중심으로 개편해야 한다는 업계의 요구를 반영하고 있다.

음비게법은 문화산업의 핵심적 콘텐츠인 비디오물, 음반, 게임 등을 하나의 법률 체계로 묶고 있으며, 진흥과 규제의 내용을 동시에 담고있다. 사실 ‘음비게법’의 폐지와 장르별 산업진흥법안 마련의 요구는 오랫동안 제기되어온 해묵은 과제이다. 따라서 지금 추진되고 있는 ‘음비게법’ 분법과 장르별 산업진흥법 체제는 문화산업의 성장과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의 문화산업 확대·육성을 위해 법률 환경을 새로이 한다는 의미가 있다.

외면되는 창작자와 향유자의 권리

그러나 문화산업에 대한 열렬한 호명이 창작자와 향유자의 문화적 권리를 향상시킬 것이냐는 질문의 답은 문화산업 장르별 진흥법 제정으로는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이는 지금 제출되어 있는 각각의 법률안(음악산업진흥법안, 게임진흥법안, 영화 등의 진흥에 관한 법률안, 이하 문화산업 3법)의 구체적인 내용을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음비게법 분법 이후 제정되는 문화 3법은 모두 별도의 위원회를 포함한 기구를 갖게 하고 있다. 그러나 각각의 기구들은 산업 진흥을 위한다는 것 외에 어떠한 위상과 내용이 정리되어 있지 않다. 강력한 법적 근거를 갖추고 예산과 행정력을 동시에 갖는 기구의 등장은 전혀 예상치 못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게임진흥법안에서 규정하고 있는 게임진흥위원회의 경우 게임물을 지도/단속하는 권한을 갖는데, 이는 게임진흥위원회가 현재의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그런 것처럼 수사기관의 권한을 갖게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또한 음악산업진흥법안의 경우 음반심의에 관한 권한을 위원회에 주고 있다. 이는 사실상 음반심의를 부활하는 것이다. 산업 진흥을 위해 엄청난 예산과 인력을 들여 위원회를 구성하는데, 그 위원회의 활동은 창작자와 향유자의 권리를 단속하고 심의·검열하는 웃지 못할 논리의 충돌이 문화산업 3법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청소년 연령과 등급/심의의 문제

음비게법 폐지 이후 제정될 문화산업 3법은 모두 청소년 연령 기준에 있어 청소년보호법을 기준으로 하고 있는데, 이럴 경우 현행 18세로 되어있는 성인물 기준이 19세로 상향 조정된다. 이로 인해 약 13만명의 청소년들이 어제까지 향유하던 콘텐츠를 입법 이후에 향유하지 못하게 된다. 또한 청소년 연령의 상향 조정은 전반적으로 심의의 보수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문화 3법이 통과된다면, 사회 전반에서 이뤄지고 있는 청소년 보호 논리 강화와 문화 보수주의의 영향이 실질화 될 것으로 예상되며, 실제로 각각의 법안에도 이런 내용이 담겨있다. 게임의 경우 등급보류 조항의 신설되며, 음악의 경우 심의가 부활하게 된다. 영화의 경우 등급보류가 위헌이라는 헌재의 결정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비디오물의 등급 보류 조항이 삭제되지 않았다.

적절한 청소년 연령이 몇살인가를 둘러싼 논쟁은 쉽사리 해결날 수 있는 논쟁은 아니다. 지난 수년간 이와 관련한 완전히 상반된 논리들이 충돌해왔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직접적인 ‘행위’와 ‘재현’은 분명히 구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위험한 것은 음주를 하는 것이지 소설을 읽는 것이 아니다. 문화적 권리의 연령은 지금보다 훨씬 낮아져야 한다. 전쟁 영화를 보지 못하는데 군대는 갈 수 있는 부조리함이 지금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청소년 연령을 둘러싼 심의/등급 정책의 현실이다.

문화적 권리의 확장을 위하여

음비게법 폐지와 관련 법률 체계의 개편을 고려하고 있는 지금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별다른 검증없이 자본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법률을 만드는 것이다. 지금 시급한 것은 문화적 권리의 확장을 위해 어떻게 법률 체계를 개선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다. 문화적 권리의 문제에는 여러가지 쟁점이 있겠지만, 결국 현실적 논의의 접점은 등급제도와 심의의 문제로 귀결될 것이다.

우선, 등급과 관련해서는 현행 ‘의무 등급제’를 ‘선택 등급제’로 전환해야 한다. ‘선택 등급제’는 크게 두 가지 내용으로 요약할 수 있는데, 우선 반드시 등급을 받는 것이 아니라 선택적으로 등급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절대적인 하나의 기준이 되는 등급이 아니라 상대적인 기준이 되는 다양한 등급을 마련해야 한다. 등급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의 신설은 체제 바깥의 콘텐츠를 유통시킬 수 있는 권리를 요구하는 것이고, 다양한 등급에 대한 요구는 일방적 기준에 의한 선택의 강요를 넘어 다양한 기준에 의한 주체적 선택의 권리를 돌려받는 일이다. 또한 등급 보류라는 가당치 않은 제도를 완전 박멸해야 한다. 이와 함께 등급조정위원회나 등급 항소제 등과 같은 등급관련 합의, 조정 단위 및 제도를 신설해야 할 것이다.

심의의 경우, 사전심의를 완전히 폐지해야 한다. 지금과 같은 위상의 심의 기구를 폐지하고 민간자율등급제를 시행하고 사전심의를 완전 폐지해야 한다.(문제가 되는 컨텐츠의 경우 사후적으로 형법에 의해 관리하면 된다.) 또한 심의를 하는 방식을 완전히 새롭게 해야한다. 성기가 몇 초간 노출되었는가, 성기의 어디까지 노출되었는가와 같은 지극히 말초적인 이미지와 자극 중심의 심의에서 전체적인 내러티브의 효과나 맥락을 파악하는 심의로 바뀌어야 한다. 또한 민간 전문가, 시민사회, 관련 기관 등의 참여 제도화와 공개 공청회 개최 등의 방법을 통해 심의 기준을 구체화하해야 한다.

문화산업 3법, 이해관계 반영에 불과

음비게법 폐지와 문화산업 3법 체제의 등장은 결국 문화산업의 성장에 대한 호들갑에서 비롯된 과잉 입법의 전형이며, 내용 역시 합리적이거나 체계적이지 못하다. 산업적 이해 관계만을 반영하여 형평성 역시 심각하게 부족하다. 문화를 제도를 통해 견인하려는 노력은 근대국가 이후에 끊임없이 계속되어왔다. 그러나 시대정신을 견인하는 문화는 결코 제도 안에 기생하지 않으며 오히려 제도를 넘어서는 상상을 사회에 제공해왔다. 자본의 무한한 성장속에서 창작자와 향유자의 문화적 권리가 거친 숨을 내몰고 있는 형국이며, 문화산업 3법도 결국 이러한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화산업 3법은 전체적으로 엉성하고 결정적으로 낡았다. 문화적 권리의 확장을 규제하겠다는 낡은 발상으로는 결코 산업도 진흥할 수 없다. 그것이 문화산업 3법이 엉성할 수 밖에 없는 필연적 이유이다.


완군, 문화연대 활동가
태그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완군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