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겨울도 어김없이 여의도 국회 앞에는 천막농성이 한창 입니다. 그리고 또한 어김없이 올 겨울도 지난 겨울과 마찬가지로 춥고 쌀쌀할 듯 합니다. 이어 내년의 연말 풍경을 그려 봅니다. 국회 앞에 여전히 늘어서 있는 천막과 농성단이 보입니다. 노동자와 농민이 보이고 수년째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고 있는 장애인도 보입니다. 소수자의 권리가 외면받고 있는 상황에서 앞으로도 여러 해 국회 앞에 늘어선 천막을 우리는 목격하게 될 겁니다. 익숙해진 풍경으로 지나치기보다는 느리지만 '전진'이길 바래 봅니다. 이번 기획에서는 장애인문화의 현실과 과제를 짚어보고, 법 제정에 난항을 겪고 있는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대한 장애인들의 목소리를 들어봅니다. [편집자]
흔히들 21세기를 문화의 세기라고 한다. 비장애인에게 있어 이 말은 한낱 수사적 표현도 과장도 아니다. 이제 문화는 사치품이 아니다. 문화는 개인적인 면에서나 국가적인 면에서나 풍요롭고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필수·핵심 요소로 자리 잡게 되었다.
향유(享有)란 만인이 자유와 풍요를 향유하는 사회, 혹은 그 사회를 누려서 가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장애인은 향유가 가능한가? 가고 싶어도 못가고, 하고 싶어도 못하는 장애인의 현실에 ‘만인’이라는 단어가 포함될까? 사람들은 저마다 다양한 문화를 즐기며 산다. 기본적으로 자신이 누리고 싶은 문화를 즐기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영화관람, 연극공연, 뮤지컬, 스포츠관람 등 문화를 향유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문화를 보고 누구나 다 접할 수 있는 문화라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싶다.
장애인의 60%, 문화활동에 참여하지 못하거나 한 달에 한 번 참여
2000년 ‘장애인 문화욕구 실태조사’에 의하면 장애인의 28.7%가 문화 활동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영화6.8%, 스포츠4.8%, 전시·공연장 8.2%등) 2005년 한국장애인문화협회가 장애인 202명을 대상으로 한 장애인 문화욕구 실태조사에서도 장애인의 문화활동이 크게 증가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번 조사에서 한달에 3번 이상 문화활동을 즐기는 장애인은 전체 응답자의 16.5%였다. 또한 장애인의 60%가 한 달에 한번 문화활동에 참여하거나 혹은 한번도 참여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95%가 문화활동 참여 의사를 밝혀 문화활동 참여에 대한 욕구는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 직업, 학력 등은 문화생활을 하는 데 있어 밀접한 관계가 있다. 장애인이건 비장애인이건 소득수준에 맞춰 문화생활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애인들은 이동할수 있는 권리 / 노동할수 있는 권리 / 교육받을수 있는 권리 / 문화시설을 이용할수 있는 권리 등 전반적인 권리가 사회 곳곳에서 철저하게 배제된다.
대부분의 장애인들이 문화생활을 즐기지 못하는 것을 자신의 문제로만 인식하면서 살아간다. 결국 장애인의 문화향유는 필수도 아니고 선택도 더욱 아니게 되었다. 일방적이고 주입식인 문화가 지금의 ‘장애인문화’이다. 2005년 장애인 문화욕구 실태조사에서 장애인의 28%가 가장 참여하고 싶은 문화활동으로 ‘여행’을 꼽았지만 6개월간 ‘여행’활동을 했던 사람이 7%에 불과한 것을 보면 장애인문화가 얼마나 일방적인지 알 수 있다.
선택권이 없는 수많은 장애인들은 간혹 특별한 행사 때마다 베풀어지는 여러 가지의 장애인들을 위한다는 공연과 나들이, 동정과 시혜를 베푸는 이들에게 사진 한번 폼 나게 찍어주고 한날 신나게 놀다가 때가 되면 또다시 갇히어 언제 또 베풀어질지도 모를 동정과 시혜의 나날을 무작정 손꼽아 기다려야 하는 삶을 산다. 이렇듯 장애인들의 지금까지에 삶은 이렇게 일방적 주입식 문화였다.
장애인은 단순 문화소비자가 아니다
장애인문화에 대해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겠다. 하나는 문화를 즐기는 소비자의 입장에서, 다른 하나는 문화를 만드는 생산자의 입장이다.
대부분의 비장애인들은 장애인들을 사회적-문화적 동반자로 인식하기보다는 장애인을 일방적인 문화적 시혜와 동정의 대상으로만 바라본다. 공연장에 앉아 멍하니 전문예술인의 공연을 바라보며 박수만 치는 장애인들의 현실과 장애인이 문화표현을 하면 ‘인간승리’라고 생각하는 의식이 있는 상황에서 장애인은 ‘특수한 단순 문화소비자’로 인식된다. 장애인도 한 인격체를 가진 인간으로서 이것저것 다 접해보고 싶고 경험을 쌓고 싶어한다. 단지 그동안 장애란 이름 안에서 참아왔고 억눌려 왔을 뿐이지 장애인도 똑같이 문화를 향유하며 자신의 발전과 꿈을 이루고 나아가 자신만의 문화를 갖고 싶어한다.
그러나 소비자로서 문화를 즐기기에도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장애인은 영화 한 편을 보기 위해 편의시설이 되어 있는 이름있는 대형극장을 찾아가야 한다. 주위에 있는 중.소형의 극장들은 장애인들에게 산과 같은 수많은 계단과 턱들이 도사리고 있으며, 장애인 화장실조차 없는 곳들이 많기 때문이다. 연극도 마찬가지다. 극장이 대부분 지하여서 편히 관람할 수 있는 공간이 전혀 없다. 아예 연극을 관람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무엇 하나 제대로 배우려고 해도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을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렵다. 설사 어렵사리 공간을 찾았다 해도 장애인에 대한 왜곡된 인식과 편견 때문에 장애인들이 문화를 접하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장애인도 적극적인 문화 참여자로 나서야
이동, 교육, 노동, 문화. 그 중 문화가 장애인 입장에서 가장 올라가기 힘든 나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수많은 나뭇가지가 함께 어울려 있는 한 나무에 다양한 문화들은 저마다 즐기라고 가지를 흔들지만, 장애인은 나무만 쳐다 볼 뿐이지 어떤 문화인지조차 모르고 만다. 알아야 경험이 쌓이고 그러한 경험으로써 자기의 삶이 누릴 수 있는 문화로 될 텐데 그러하지 못하는 세상의 구조적 모순, 장애인에 대한 왜곡된 인식과 편견의 문화만이 있다.
이러한 사회에서 문화적 활동은 장애인들을 소외 대상 혹은 단순 소비자의 형태로 전락시키고 더욱더 수동적인 삶에 길들여지도록 강요하고 있다. 이제는 장애인들도 적극적인 문화 참여자로서, 생산적 문화 활동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자본이 만들어 놓은 소비 위주의 문화를 생산적 문화로 바꿔 나가고 장애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이 문제인지를 하나하나 이끌어내어 세상 밖으로 알려내야 한다.
장애인 당사자들이 모여 장애인 관련 문화정책을 생성하는 경우가 최근 들어 활성화가 되고 있는 시점에서 보는 문화에서 탈피하고 찾아가는 문화, 당사자의 실천적 문화, 일상적인 문화가 진정한 ‘장애인 문화향유’라고 할 것이다. 장애인 비장애인 구분 없이 누구나 자신을 위한 문화를 만들어 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려면 정책적 기반마련이 필요하다.
또한 그저 환상 속에서나 느낄 수 있는 문화들을 장애인 대중공간으로 가져와 다양한 문화를 생성해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사회나 일상생활 속에서 장애인이 생산적인 문화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문화적 정책과 내용을 더 넓게 다져가는 계기를 만들고, 지금까지 소외되어 온 ‘장애인 문화권리’를 찾아야 할 것이다.
최재호, 장애인문화공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