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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에 TV 방송국을 세우다

이탈리아 공동체TV 운동

김희정 ㅣACT!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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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이탈리아 최대의 자동차 생산업체인 피아트(FIAT)의 한 사업장. 대량해고로 파업이 계속되던 이 현장에서 한 가지 재미있는 사건이 발생한다. 연일 파업의 폭력성과 해고의 불가피성을 들먹이는 주류 미디어의 작태에 분노한 활동가 대여섯 명이 <텔레파브리카(Telefabrica)>라는 이른바 해적 텔레비전 방송국을 만든 것이다. 방송국 장비라 해봐야 송신기와 안테나, 텔레비전이 전부였지만, 이곳에서 이들은 파업현장 소식과 노동자들의 입장을 담은 인터뷰 영상을 최소한의 편집만으로 인근 텔레비전 채널에 방송했다.

낯설지 않은, 새로운 경향: 텔레스트리트

2002년부터 한창 붐을 이루고 있는 이탈리아 해적 TV 운동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이 텔레파브리카의 사례는 텔레비전 채널을 저항 미디어로 새롭게 활용한 흥미로운 시도였다. 비록 3일간의 방송을 끝으로 당국에 의해 폐쇄당했지만 이곳에서의 실험은 전국의 수많은 해적 방송국이 벤치마킹하면서 게릴라전을 시도한 기폭제가 되었다.

이탈리아 미디어 운동의 한 양상인 텔레스트리트(Telestreet) 운동은 현재 이탈리아에서 활기를 띠고 있는 소출력 공동체 방송국을 통칭하는 말이다. 스트리트 텔레비전(street television), 다시 말해 길거리에 세워진 텔레비전 방송국을 의미의 이 용어는 자본의 집결체인 ‘방송국’이라는 물적 토대로부터의 이탈, 그리고 권력과 법의 테두리에 종속되지 않는 자유와 저항의 의미를 담보하는 ‘거리’의 미디어를 상징적으로 대변한다. 소규모 독립 공동체 미디어의 새로운 가능성이자 합법의 영역을 벗어난 해적 방송국으로서의 한계를 동시에 갖고 있는 텔레스트리트, 현재 그 수가 전국적으로 수백 곳에 이른다고 하니 어림잡아 동네마다 이른바 방송국이 한두 개쯤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탈리아 해적 방송의 역사

사실 이탈리아 미디어 운동사에서 해적 방송국의 역사는 상당히 뿌리가 깊다. 70년대 이탈리아를 주축으로 전개되었던 아우또노미아 운동의 한 영역이었던 독립 미디어 운동 속에서 이미 미미하나마 해적 채널은 시도되었다. 최초의 스트리트 TV는 1972년 이탈리아 북부, 비엘라(Biella)라는 마을에서 문을 열었다. 하지만 방송이 채 정착되기 전인 73년에 당국에 의해 폐쇄되었고, 이 사건을 기화로 가속화된 표현의 자유 논쟁은 74년 법원으로부터 당시까지 미디어 영역을 장악하고 있던 공영방송 RAI의 독점이 위법이라는 판결을 이끌어냈다. 이 판결은 이후 해적 채널의 수가 본격적으로 증가하게 된 원인이 되었으며, 90년 대까지 (볼로냐), (로마 등), 등 다양한 소출력 방송국이 지역에서 공동체 방송 운동을 시도했다.

텔레스트리트 방송국이 본격적인 네트워크 운동으로 확대된 것은 2002년 볼로냐에서 <오르페오(Orfeo) TV>가 개국하면서 부터이다. 70년대부터 해적 라디오 방송으로 유명했던 <라디오 앨리스(Radio Alice)> 채널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오르페오 TV>는 작은 송신기 하나와 안테나, 텔레비전 한 대로 지역방송국을 실현할 수 있음을 좀더 현실적으로 증명해보였다. <오르페오 TV>의 사례는 이후 여러 공동체의 모방 견본이 되어, 파업 현장에 방송국을 연 <텔레파브리카>를 비롯, 장애인 활동가들이 주축이 된, < 디스코 볼란테(Disco Volante)>, <텔레오트(TeleAut)>와 같은 수많은 방송국이 문을 여는 계기가 된다. 2005년 현재까지 이탈리아에는 200여 곳의 텔레스트리트 방송국이 존재하며, 이들은 전국적으로 하나의 네트워크(www. telestreet.it)를 이루고 정기적인 전국 모임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이탈리아 소출력 방송국은 실제 어떻게 만들어질까? <오르페오 TV>의 사례를 통해 살펴보면 대강 이렇다.

텔레스트리트 방송국 만들기

텔레스트리트 방송국을 실현하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충족되어야 할 조건은 3가지다. 일단 저렴할 것, 설치가 쉬울 것, 다른 송신 장비나 사용자를 가능한 한 방해하지 않을 것.

a. 장비와 비용, 채널

우선 필요한 장비는 앞서 언급한 대로 안테나와 케이블, 송신기가 전부이다. 송신 범위를 좀더 확대하고자 할 때는 여기에 (전파) 증폭기 정도가 더 필요하다. 주로 인근 전파상에서 구할 수 있는 이런 장비는 이탈리아 물가로 약 500유로(65만 원)에서 1000유로면 마련할 수 있다. 보통 건물 옥상에 설치하는 안테나로 송신할 수 있는 범위는 150m 이내에 불과하지만, 좀더 비싼 송신기와 증폭기를 부착할 경우, 지역에 따라 약 1킬로미터 이내에서 여건이 좋을 경우 3킬로미터까지 송신 범위를 확장할 수 있다. 주파수는 주류 방송국의 송신시설이 미치지 못하는 영역을 활용했다. 이를테면 건물이나 언덕, 산과 같은 자연지리적인 장벽 때문에 생기는 이른바 ‘음영 지역(shadow zone)'에 소규모 송출기를 세워 주류 방송의 신호가 잡히지 않는 빈 채널로 프로그램을 내보내는 식이다.

b. 제작 주체와 컨텐츠

텔레스트리트 채널을 생산하는 주체나 컨텐츠의 스펙트럼은 매우 다양하다. 초기에는 미디어 활동가 학생이 주축이 되었지만, 현재는 이주노동자나 장애인 그룹, 노동조합 등과 같은 특정 목적을 띤 운동세력뿐만 아니라 동네 반상회 같은 일상을 소개하는 주민들의 채널 또한 많아지고 있다. 심지어 최근에는 일부 기독교 집단까지 공식적으로는 불법인 소출력 해적 방송국을 운영하고 있으니 해적 방송의 대중화를 짐작할 만하다.

방송 시간이나 편성 또한 천차만별이다. 극소수의 방송국만이 24시간 방송을 하고 있으며, 대부분은 하루 몇 시간, 혹은 일주일에 한두 번만 방송을 한다. 물론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게릴라 채널을 지향하며 비정기적으로 게릴라 프로그램을 내보내는 곳도 다수다.

이탈리아 미디어 시장

한편, 텔레스트리트 방송국이 현 시점에서 더욱 난립(?)할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로 이탈리아의 기형적인 미디어 시장구조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앞서 말한 1974년 법원의 판결, 즉 공영방송의 미디어 독점이 위헌이라는 결정은 독립 미디어 방송의 활성화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쳤지만, 상대적으로 자본이 풍부한 사영방송이 본격적으로 활개를 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현 이탈리아 총리이자 정,재계 실권자인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등장한 것도 이러한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유망한 사업가였던 베를루스코니가 미디어 시장으로 눈을 돌린 것은 80년대 중반, 이때부터 그는 주요 사영 채널 4곳 중 3곳인 <카날레 5>와 <이탈리아 우노>, <레테 파트로> 등을 사들였고, 이를 ‘미디어세트(Mediaset)'라고 칭하면서 사영방송 독점체제를 구축했다. 재력과 미디어 권력을 바탕으로 94년 총선에 승리하면서 베를루스코니는 최초의 재벌 총리가 되었고, 권력을 바탕으로 이후 국영방송인 RAI(1,2,3)까지 장악하면서 전국 시청자층의 90% 이상을 자신의 통제 하에 두게 되었다. 잦은 실정과 부정에도 불구하고 그가 2001년 5월, 재선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대부분의 여론조사를 조종할 수 있는 그의 미디어 장악력 때문이다.1)

지상파 방송을 베를루스코니가 장악하고 있다면 이탈리아 유료 위성채널은 세계적인 미디어 재벌 루퍼트 머독이 거의 장악하고 있다. 전세계 미디어 시장을 독식하면서 이미 소유한 미디어 채널만으로도 전 지구인의 1/4이 그의 미디어를 소비해야 하는 머독의 미디어제국은 이탈리아에도 이미 그 세력을 뻗쳤다. 국내 가장 큰 유료 텔레비전 채널 두 곳, 즉 가장 규모가 큰 Stream의 지분 50%를 소유하고 있으며 또 다른 유료 채널인 Telepiu도 최근 인수했다. 여기에 베를루스코니와 머독의 암묵적인 공조체제가 더욱 공공해지고 있으니 이탈리아 미디어 시장을 황폐화는 시간 문제다.

이런 차원에서 볼 때 텔레스트리트 운동은 이탈리아 미디어 시장의 구조적 모순에서 잉태된 필연적 산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본과 권력의 미디어가 더욱 상업적이고 폭력적으로 변질되면서 사람들은 볼거리를 잃어갔고, 권력과 결탁한 정치적 공세에 물리기 시작했다. 질적으로 하락한 방송과 눈과 귀를 막는 정보 편중이 가속화되면 될수록 점차 스스로의 미디어 생산에 매력을 느낄 수밖에 없다.

다양한 가능성, 실험은 계속된다

세계화가 가속화될수록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 분야는 더욱 성장하고, 이와 맞물려 미디어와 권력, 자본과의 결탁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 때문에 정보의 정치가 중요해지면 질수록 자율적인 커뮤니케이션 인프라 구축과 대안적인 정보 배포를 통한 대응전략이 요구된다. 최근 텔레스트리트 네트워크는 단순히 실험적인 방송국을 만드는 차원을 넘어, 방송 컨텐츠를 더욱 안정적이고 유기적으로 공급하는 방안에 대해 고심하고 있다. 미디어 액티비즘이 단순히 대안적인 정보를 생산해내는 과정일 뿐만 아니라, 실제로 커뮤니케이션 이슈를 만들고 대립 지점을 부각시키는 과정이라고 볼 때 각 지역의 이슈를 공유하고 공동 대응 방안을 모색하는 운동이 중요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참여하는 주체의 정체성이나 컨텐츠의 내용, 방송에 대한 시각의 측면에서 볼 때 현 시점에서 텔레스트리트 운동을 급진적인 미디어 운동 영역만으로 한정할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자본의 유혹과 폭력이 난무하는 이탈리아 미디어 구조 속에서 영상세대 시청자들은 더 이상 수동적인 수용자 입장에 머물기 거부한다는 것이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주류 미디어가 독점하고 있는 정보 생산과 배포를 거부하고 정보 공유와 소통을 통한 대안적인 내러티브 생산에 흥미를 느끼고 있다. 다음은 이러한 텔레스트리트 운동의 한 경향을 대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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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외곽의 산 로렌조(San Lorenzo) 지역, 빈민가로도 유명하며 전통적으로 급진적인 사상이나 예술 운동이 많이 일어났던 이 지역 일대에서 최근 미디어 재벌 머독의 뒤통수를 친 사건이 벌어졌다. 사건은 이탈리아 챔피언십 경기가 열리던 날 밤, 유로 채널인 <스카이 이탈리아>(머독 소유)에서만 독점으로 중계되어야 할 결승 경기가 이 일대 빈 채널이었던 UHF 21번에서 무료로 전송되었다. 주범은 바로 TeleAut를 비롯한 이 일대 텔레스트리트 그룹, 이들은 경기가 열리기 얼마 전부터 치밀한 계획 하에 위성방송의 신호를 해독, 재송신하는 방식으로 지역 전체에 경기를 무료로 방송해버렸다. 더욱 재밌는 것은 중간중간 광고 타임에 머독의 미디어 독점체제를 비판하는 광고와 지역투쟁 소식까지 곁들였다는 것이다. 주민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한 것은 불 보듯 뻔하지만 동시에 머독의 심기를 건드리면서 이 사건은 다음 날 온 나라의 신문지상을 장식했다. 축구에 대한 열정이 어느 나라보다 강한 이탈리아에서 챔피언십 경기는 온 국민의 눈을 사로잡는 이벤트다. 관람 티켓은 불티나게 팔리고 미처 구하지 못한 사람들은 지상파 중계에 목을 매I야 한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미디어재벌 머독이 소유한 <스카이 이탈리아>가 축구 중계권을 손에 넣으면서 TV로 축구를 보기 위해 최소 47유로를 내고 유로채널을 신청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가난한자들은 스포츠를 즐길 수 없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이날 산 로렌조에서의 텔레스트리트 방송은 이러한 자본과 권력의 현실에 대한 파괴를 꿈꾸는 유쾌한 실험이었다. 어찌되었건 텔레스트리트는 더욱 대중화되었고 사람들은 축제를 즐겼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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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의 미디어 장악은 비단 방송국 채널만이 아니다. 최대 발행부수를 자랑하는 잡지 <파노라마>, 최대 출판업체인 <몬다도리>, 인터넷 미디어 그룹 <뉴미디어>, 최대 상영관 매체인 <시네마 5>, 비디오 대여 체인인 <블록버스터>, 그리고 명문 축구단인 등을 포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