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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공동체 FM 4개월의 역사

정수경ㅣ성서공동체 FM 대표

2004년 11월 16일 방송국 임시사무실은 시범사업자로 선정되어 환호성과 축하인사로 정신이 없었다.

‘앞으로 우야노?’ 라는 주변의 걱정은 뒤로하고 ‘내일부터 걱정해도 늦지 않았으니 오늘만은 마음껏 자축하자’고 하면서, 서류작성하고 면접하고 초조하게 기다린 2달여 기간의 피로를 기분 좋게 풀었다. 그로부터 4개월여 시간도 참으로 빨리 지나갔다.

이 시간은 안개 속을 걷듯 한발 한발 더듬더듬 걸어온 역사(?)였다.

최초의 시도! 이것은 복병처럼 숨어있는 수많은 난관을 시도 때도 없이 만나는 과정이었고, 더욱이 가르쳐주는 사람 없이 온전히 자력으로 해쳐나가야 된다는 난망함이었다. 그래서 최초로 공동체 라디오를 시도한다는 역사적 사명감도, 공동체라디오의 그 지극한 매력도 아직은 충분히 느끼지 못한다.

1) 4개월의 성서 공동체 방송국 만들기 역사

‘이 방송국은 인터넷 방송국이 아니고 KBS나 MBC처럼 지상파 방송국이예요’

최소한 운영할 수 있는 조직적 단위를 만들어 방송국 첫 사업으로 지역에 ‘공동체 라디오’를 알리는 지역설명회를 2004년 12월 7일 개최하였다. 100여정도가 모여 적어도 공동체 라디오의 기본적인 개념을 잡았던 것 같다. ‘신기하네. 아! 이런것도 가능 하구나’

‘음식이 모자라 혼쭐나다’

우리방송국의 경우 재정지원이 상대적으로 용이한 지자체나 대학이 포함되어 있지 않은 시민사회단체로 컨소시엄이 구성되어 있어 재정의 문제는 또 다른 난관이었다. 2005년 1월 21일 재정마련을 위한 후원의 밤을 개최하였다.

800여명에 이르는, 예상보다 너무 많은 사람이 오는 바람에 음식이 이른 시간에 떨어져 끝나는 시간까지 음식조달 하느라 혼쭐이 났다. 사람들에게 고맙고 미안한 후원의 밤이었다.

‘끼 많은 45여명의 자원봉사자들’

후원의 밤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프로그램 편성하고 자원봉사자들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다. 주부, 전,현직 방송인들, 인터넷 방송 했던 분들, 노무사, 변호사, 연극인, 음악인, 대학 강사, 일반직장인, 대학생, 고등학생, 그리고 이주노동자들 대부분 방송경험이 없는 초보자들이다. 이 사람들이 하고 싶은 프로그램, 그리고 시간을 낼 수 있는 정도에 맞게 인력을 배치하여 기획회의 하고, 큐시트 짜고, 대본 쓰고, 음악선정하고, 녹음 연습하고 신났다. 이 열정과 끼들이 초 시간 까지 계산해내야 하는 방송을 일년 내내 지치지 않고 즐겁게 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교육만이 살길이다’



방송초보자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교육을 배치하였다. 제작교육, 작가교육, 진행자교육, 장비교육, 공동체 라디오 운동에 관한 교육 등을 적절하게 배치하였다. 2개월여 기간 갈고 닦은 실력을 3월 25일 각 프로그램 별 시간에 맞게 오디오파일시스템 교육을 받을 것을 토대로 송출까지 한번 시험해볼 생각이다. 기대된다.

지역주민과 시민사회단체의 활동가들을 대상으로 한 상시적이며 일상적인 교육, 특화된 대상을 위한 교육 -이주노동자, 장애인-을 기획할 생각이다.

2) 최초의 시도가 감당해야 할 댓가 그리고 쟁점거리

‘공동체라디오 방송국에 이런 장비를 구축해야 되는가’

방송장비를 구입하면서 가장 큰 고민과 혼란스러움은 공동체 라디오에 이런 장비가 ‘정말’ 필요한가였다. 그러나 기준은 오로지 기존 방송국뿐이었다. ‘그래도 방송국인데 최대한 안전하고 신뢰성 있는 장비를 구입해야 한다.’는 논리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그러나 장비의 문제는 단순히 재정만의 문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공동체 라디오의 정체성과 연관되어 있는 쟁점이었다. 적어도 이 방송국이 공동체 라디오라면 사회적으로 그리고 미디어로부터 소외되어 있는 약자들의 것이어야 하고, 그러면 장비는 최대한 저렴한 가격으로 구축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장비구입을 같이 고민하던 우리 방송국의 기술 감독과 내년에 처음으로 하는 사람들에게 최대한 저렴한 가격으로 최적의 방송장비를 구축할 수 있게 자문할 수 도록 올해 한번 연구해보자는 이야기를 하기도 하였다.

‘공동체 라디오와 지상파 방송국’

기존 방송국의 방송인들은 ‘좋은 방송은 기술이 아니라 기획이다’라고 조언을 한다. 그리고 방송은 ‘유익해야하고 재미있어야한다’ 지극히 일반적인 말이기 때문에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이 공동체 라디오와 조우하게 되면 정말 고민되는 문제이다. 왜냐하면 8개 시범사업자들의 방송국은 공동체 라디오이면서 지상파 방송국이라는 이중적 규정을 동시에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공동체 라디오의 경험은 없다.
공동체 라디오가 동네 밀착형이라면 프로그램에 동네의 자잘한 정보와 동네의 일상의 사연을 소개해주면 되는 것인가? 혹 우리가 편성하고 있는 프로그램이 기존 지상파 방송국이 담아내지 못하는 사각지대의 그 무엇을 담아내는 것은 아닌가?
형식과 내용 모두를 기존방송국을 따라가는 것은 아닌가? 등 의심되고 고민된다.

공동체가 풀뿌리 민주주의와 상호 교통할 수 있는 개념이라면 그리고 이것을 방송으로 매개하는 것이라면 방송내용 그 자체만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방송내용이 공동체 형성에 도움주고 사람들의 생각들을 서로 소통하게 하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위계 짓지 않고 평등하게 만들어가는 민주주의 훈련의 문제를 일상생활 속에서 제기하는 것이리라. 이것을 방송내용으로 어떻게? 그리고 방송내용 밖에서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만들 수 있지?

‘우리는 청취할 수 있어요?, 언제 개국해요?’

이런 질문은 우리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곤혹스런 질문중의 하나이다.

출력 1W는 아무리 동네 방송국일지라도 방송국으로서 제대로 기능할 수 없다. 그리고 환경에 따라 지역별로 가청권역은 매우 유동적이다.
송출되는 순간 제일 먼저 부딪혀야 하는 쟁점이다.

최근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언제 개국해요?’ 이다. 4월 쯤 개국할 예정이라고 이야기 해놓았으니까. 숨 가쁘게 개국준비를 하던 우리에게 주파수 허가 문제를 둘러싼 의외의 쟁점으로 개국 일정이 미루어지다, ‘지상파 방송국’ 이냐 ‘실용화시험국’ 라는 방송위와 정통부의 입장차이 끝에 적절한(?) 수준에서 합의점을 도출해냈다.

이러한 문제는 제도적 장치가 독자적으로 마련되어 있지 않는 공동체 라디오의 현주소를 있는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첫 출발부터 독자적인 법 마련의 문제는 미룰 수 없는 현실적 과제가 되었다.

3) 공동체라디오의 지극한 매력

올림픽에는 금메달!
성서공동체 FM 라디오 방송국에는 금란!
'달려라 라디오 성서공동체 탐방 리포터 박금란입니다.

매주 월요일에서 금요일 오후 3시 10분부터 20분까지 공동체 모임이 있는 곳에 저 금란이가 도대체 누가, 어떤 일이, 어떻게 벌리는지 낱낱이 밝혀드리겠으니 두 귀 쫑긋 세우시고 들어봐 주세요. 두 번째 방송인데도 여전히 떨리네요! 청취자 여러분들께 저에게 응원을 보내 주십시오. 파이팅! 오늘 제가 찾아온 곳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모범적인 민간도서관으로 15년 역사를 자랑하는 성서의 새 벗 도서관입니다 ”

이것은 성서지역에 공동체를 찾아다니면서 소개하는 프로그램인 ‘달려라 라디오 성서공동체 탐방’의 연습 대본이다. 이 프로그램의 작가, 리포터, MC, PD 모두 아줌마들이다. 방송경험이 대부분 없다.

MC:(불랑카 성대모사) 안녕하세요.블랑카 입니다. 저 한국에 온지 10년 됐어요. 봉숙이 만나 결혼도 했어요 그런데 한국말 아직 잘 몰라요. 이게 뭡니까. 한국말 어려워요.

MC: 안녕하세요. 블랑카 한국말 어려워요. 한국말 어려우면 지금부터 저와 함께 한국말 같이 배웁시다. 저는 '블랑카 한국말 잘해요' 진행을 맡은, 파키스탄에서 온 굴입니다. (파키스탄말로 반복 설명한다)

이 프로그램은 이주노동자들에게 한국말을 가르치는‘블랑카 한국말 잘해요.’프로그램 대본이다. 진행을 맡은 굴씨는 성서에서 파키스탄 음식점을 운영하며 초등학교 딸이 있는 파키스탄 아줌마이다. 작가겸 PD는 현재 방송국 구성작가이며 한국진행자는 대학생 자원봉사자이다.

빨간 램프에 ‘방송중’이라는 불이 들어오면 낭랑한 진행자의 목소리에 노동자뉴스와 임금체불에 대한 상담, 동네 아줌마들의 수다소리, 장애인들의 인권에 관한 소식, 이주노동자들이 자신의 말로 전하는 본국소식과 한국소식들 그리고 제 3세계 민중가요와 우리나라 민중가요, 가끔씩 노동가수와 지역의 인디가수들을 방송국에 초대해 라이브 공연도 해보고...

일전에 인도네시아 이주노동자 진행자가 믹서기를 능숙하게 다루면서 장윤정의‘어머나’를 배경음악으로 어깨춤을 추면서 본국소식을 전하기 위해 연습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1년 내내 시범사업이기 때문에 감당해야 하는 수많은 난관도 이 기쁨보다는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