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적미디어운동연구저널 Act!

한국 공동체라디오, 자카르타 방문기

아시아 태평양 공동체라디오연합 첫 총회를 다녀오다

하주영ㅣ공동체라디오연구모임 씨알

지난 2005년은 라디오운동 특히 한국공동체라디오운동에 있어서는 참 의미있는 한 해로 기억될 것이다. 그 첫 번째는 두말할 것도 없이 8개의 공동체 라디오 방송국 출범과 다양한 라디오운동의 본격적인 시작이고, 그 다음으로 꼽으라면 바로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 공동체라디오연합의 시작과 동시에 첫 번째 총회에 회원으로써 참가하였다는 것이다. 공동체라디오연구모임 ‘씨알’과 한국커뮤니티라디오방송협의회는 아시아 태평양 공동체라디오연합의 회원으로 이번 회의에 참가하게 되면서 한국 공동체라디오방송국의 존재를 세계적으로 알린 계기가 되었다.

몇 차례 ACT!를 통해서도 소개된 적 있는 AMARC은 캐나다에 본 사무소를 두고 있는 세계공동체라디오연합으로 공동체라디오방송국뿐만 아니라 라디오운동단체와 활동가들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곳이다. 아막(AMARC)은 각 대륙별로 꾸려진 아막 회원들의 총체로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북아메리카, 유럽, 아시아-퍼시픽에 각각의 지역회원들이 선출한 대표와 지역사무소가 있다. 전체연합의 대표는 스티브 버클리로 2004년 4월 24일 미디액트에서 주최한 <공동체 라디오 운동 활성화를 위한 국제 토론회>에 초청되어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이번 아시아-태평양 공동체라디오연합의 첫 번째 총회가 의미가 깊은 것은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아막 회원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지역 대표 및 운영위원회를 선출하고 첫 번째 선언문을 채택했다는 데 있다. 이 글은 이번 총회를 다녀온 결과를 여러분들께 전해드리기 위해서 총회의 개략적인 내용에 대한 소개와 함께 날짜별로 진행된 워크숍과 회의의 내용을 알려드리겠다.

우선 간략하게 어떤 이슈들이 다뤄졌고 어떤 이들이 참석했는가 알아보자.
이번 회의에는 총 19개국의 공동체라디오 및 미디어 활동가, NGO 대표, 미디어 및 커뮤니케이션 학자, 국제기구 및 후원기관 등이 참석하였으며, 아시아 각 지역의 공동체 라디오의 상황을 검토하고 법제화와 변호, 여성과 성, 발전을 위한 정보통신기술, 능력 향상 및 커뮤니케이션 권리 등에 대한 이슈들을 함께 논의하는 자리였다. 또한 큰 이슈로 잡고 있는 것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규제의 문제인데, 한국 상황과는 맥락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여전히 전쟁과 군부, 자본의 미디어 잠식이 심각하게 아시아 전역에서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한편 아시아 태평양 공동체라디오연합 회의는 인도네시아 공동체라디오협의회, 연합자원협회, 인도네시아 출판 및 방송 협회, TIFA 재단 등이 조직하였으며, 이 이외에 회의를 지원하는 단체로는 포드 재단, 노비브(Novib), 유네스코와 EED가 있었다.

대충 이정도 귀뜸해 두고 본격적인 본론에 한번 들어가 보자. 명색이 기행문이 아닌가벼..



[제1회 아시아 퍼시픽 공동체라디오연합 총회]



# 11월 23일 자카르타, 난생 처음으로 적도 가까이 다가가다

아직 여름해가 뜨거울 때 미디액트 조동원 실장에게 이메일을 한 통 받았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 아막 총회가 11월 말경에 인도네시아에 있을 건데, 준비를 해서 한번 가보자고. 거기다가 무려 회의지는 발리!라고 한다. 이후 발리의 폭탄테러의 영향으로 회의지가 자카르타로 변경이 되었지만, 발리라는 휴양지 떡고물에도 정말 관심이 많았던 나로서는 아쉬움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그래도 한참 추워질 무렵에 따뜻한 남쪽나라로 가서, 난생 처음 해외에서 진행되는 국제회의에 참가할 생각을 하니 기대와 긴장으로 기다려진 것도 사실이다.

11월 23일, 예년보다 추위가 한층 더 기승을 부린다. 가벼운 옷차림은커녕 외투와 목도리로 완전 무장하고 인천 공항에 도착했다. 조동원, 이진행, 하주영 이렇게 셋이 오후 비행기에 몸을 싣고 자카르타 공항에 도착한 것은 이미 한밤중. 기내식의 부족한 양 때문에 다들 주린 배를 움켜잡고 호텔로 향했다. 공식 일정은 24일부터지만 23일에도 AMARC과 ISIS 주최의 오디오 스트리밍에 대한 교육이 종일 진행되었다. 한국에서 출발한 일행은 공식일정에만 참여하는 관계로 이날의 교육 프로그램에는 참가하지 못했다.

동남아시아의 따뜻한 여름 밤 향기에 취한 것도 잠시, 공항에서 도심의 매연과 시내로 들어서는 황량한 도로 풍경에 약간 쓸쓸한 맘까지 들었더랬다. 한 시간여 차를 타고 도착한 호텔에서 참가자 접수를 위해서 이번 회의를 조직한 인도네시아 공동체라디오활동가와 첫 만남을 가졌다. 서투른 영어지만 사람들과 인사하고 첫 만남의 반가움을 전하기란 어렵지 않은 일이다. 회의 일정과 숙식에 관한 정보들을 받아 안고 방으로 오르려는 찰나, 낯익은 얼굴이 보인다. 안면이 있는 아막 의장 스티브 버클리와 짧은 인사를 나누고 숙소에 짐을 풀었다.

자정 무렵, 배고픔에 결국 우리 셋은 호텔 로비를 서성이게 되었다. 자카르타 도심의 치안이 좋지 않기 때문에 호텔 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호텔 직원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비싼 호텔 커피숍의 가격을 떠올리고선 결국 호텔 밖으로 나서게 되었다. 한국의 밤거리와는 비교되지 않게 어두운 거리, 간간히 지나다니는 오토바이와 차들, 호텔과 쇼핑센터의 야간 경비원들 그리고 밤거리를 누비는 젊은이들이 보인다. 호텔 건너편 포장마차에서 인도네시아식 볶음밥인 ‘나시 고랭’을 맛있게 먹고서는 아주 만족스럽게 자카르타의 첫 밤은 이렇게 흘러갔다.



# 11월 24일, 첫 총회의 시작, 아시아 태평양 공동체라디오의 발전과 도전 그리고 젠더

공식 일정 첫 날. 24일부터 27일 나흘간 눈코뜰새 없이 바쁜 일정이 시작되었다. 오전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빡빡하게 짜여진 일정과 영어로 소통되는 모든 회의의 부담감은 첫 날 가장 힘든 부분이었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호주, 필리핀을 제외한 어느 국가에서도 영어를 공식적으로 사용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염두하면 모두에게 영어를 쓰는 일은 곤욕스런 일이었을 것이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민족과 그 언어들이 존재하고 있는데, 어쩔 수 없이 영어로 소통해야 하는 상황이니 언어적인 전달은 결국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일이기도 하다.


오프닝을 장식한 인도네시아 가수


개회의 시작은 회의 조직위원회에서 초청한 인도네시아 민중가수의 ‘Air my owner let's go community radio’라는 축가와 인도네시아 민요를 함께 듣고 부르면서 문을 열었다. 인도네시아에서 회의가 개최되는지라 대부분의 참석자가 인도네시아 공동체라디오방송국에서 온 활동가들이었고, 이들이 인도네시아어로 함께 부르는 노래는 회의장을 가득 채우면서 회의 시작의 분위기를 한층 고무시켰다. 이어 스티브 버클리 세계공동체라디오연합 의장이 아시아 태평양 지역 공동체라디오연합의 출발을 축사가 이어졌다.

첫 번째로 열린 총회 개막 세션에서는 <아시아 태평양 공동체라디오의 발전과 도전>이라는 큰 주제로 1) 커뮤니케이션과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발전, 전세계적 관점에서의 공동체라디오 : 스티브 버클리 2) 공동체라디오, 발전을 위한 정보통신기술, 그리고 GATS :로베르토 베르졸라 (필리핀 그린스) 3)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커뮤니케이션 권리, 인권과 미디어 - 수피니아 크랑나롱(태국 민중미디어개혁 캠페인) 4) 젠더, 커뮤니티라디오, 그리고 MDGs - 마빅 카브레라 벨라즈(필리핀)의 발표가 있었다. 개별 발표 모두 굵직한 내용들로 사실 각각의 주제들로도 많은 이야기를 풀어갈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간단하게 현재의 상황들을 짚어가면서 발표는 이어졌다. 기조 발제에 해당하는 스티브 버클리의 발표 내용을 간단하게 정리해보고 넘어가자.

…라틴 아메리카의 광산 노동자 라디오를 시작으로 북 아메리카 지역의 해적 라디오 운동 그리고 유럽에서는 1983년 프랑스의 공동체라디오 규제 마련, 2004년 영국에서의 규제 마련의 과정을 겪어왔으며 아프리카는 1985년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수백개의 방송국이 생겨났다. 1991년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공동체라디오는 다시 그 부흥기를 맞았다. 아시아에서는 1973년 인도네시아에서 시작되어 이후 태국, 인도 등지로 이어졌으며 아시아 공동체라디오연합은 2002년에 시작되었다. …방송통신의 융합과 디지털 디바이드 등 미디어 환경 변화에 맞추어 공동체라디오도 변화해야 하며, 인터넷의 발전에 따라 인터넷에 대한 접근이 공동체라디오의 새롭고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또한 공동체와 유기적인 관계를 가지고 법적 규제를 철폐하며 주파수 확보 등의 법제도와 공적 지원에 대한 활동을 지속해야 한다. 따라서 법적 정비와 그 틀을 잡는 작업을 계속 진행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활동은 일국적으로 진행됨과 동시에 지역적 네트워크와 함께 그리고 나아가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통해 연대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커뮤니케이션과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발전, 전세계적 관점에서의 공동체라디오 : 스티브 버클리, 정리 : 이진행, 하주영>

이미 우리가 익히 알고 있고 내용들이고 한국에서도 이런 여러 과제들을 풀어가기 위해 공동체라디오를 둘러싼 여러 노력들이 진행되고 있지만, 아시아 태평양 지역 대부분이 처한 상황들이 비슷하다는 사실이 이 기조 발제에서도 다시 한번 확인되는 바였다. 이어서 필리핀 사례를 가지고 진행된 발표에서는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농부들이 처한 미디어 환경과 필리핀 농부들을 대상으로 한 공동체 프로젝트의 소개 그리고 GATS로 대표되는 거대 미디어의 독점에 대한 우려와 현상황을 점검하였다. 한편 태국에서는 정부의 공동체라디오 폐쇄와 활동가 구속 등의 상황을 중심으로 커뮤니케이션 권리에 대한 중요성을 다시 한번 확인하였다. 개막 섹션의 마지막은 젠더에 관한 내용으로 이번 회의 내내 이 주제가 무엇보다 중요하게 다뤄졌는데, 이 발표에서는 유엔의 MDGs(Millennium Development Goals) UN development group의 밀레님엄 선언(http://www.undg.org/content.cfm?id=502) (2000년 UN에서 채택된 의제로, 2015년까지 빈곤을 반으로 감소시키자는 범세계인 약속. 2000년 9월 뉴욕 국제연합 본부에서 개최된 밀레니엄서미트에서 채택된 빈곤 타파에 관한 범세계적인 의제이다. 당시에 참가했던 191개의 국제연합 참여국은 2015년까지 빈곤의 감소, 보건, 교육의 개선, 환경보호에 관해 지정된 8가지 목표를 실천하는 것에 동의하였다. 주요 내용으로 ①극심한 빈곤과 기아 퇴치, ②초등교육의 완전보급, ③성평등 촉진과 여권 신장, ④유아 사망률 감소, ⑤임산부의 건강개선, ⑥에이즈와 말라리아 등의 질병과의 전쟁, ⑦환경 지속 가능성 보장, ⑧발전을 위한 전세계적인 동반관계의 구축을 들 수 있다.(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 필자 주)가 언급하는 여성에 관한 항목의 문제점과 공동체라디오가 젠더 및 여성 이슈를 다루는데 있어 중요함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점심 시간 이후 이어진 첫 번째 전체회의에서는 1) 공동체라디오를 활용한 여성 임파워링, 조망 : 샤론 (VP WIN) 2) 규제 환경의 변화와 제3섹터로서의 공동체라디오의 인식 - 쿠쿠 산요토(인도네시아) 3) 재해 방지, 구호, 부흥 활동에서의 공동체라디오 활용 - 알비니아 페레이라(동티모르)의 내용이 다루어졌다. 이 전체회의에서는 일반적인 내용들이 각 국가 중심의 활동을 기반으로 소개되었다. 특이할 만한 것은 인도네시아에서는 법제로 공동체라디오가 언급되고 있지만 그 구체적인 규제 내용이 없는 상황이었다. 이것이 공동체라디오의 형성과 설립에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최근에는 거대 미디어의 독점으로 인해 여러모로 위협적인 요소들이 자리잡고 있다고 한다.

두 번째 전체회의는 여성과 젠더 이슈를 주제로 세 개의 발표가 있었다. 1) 평화 구축과 투쟁 결의에 있어서의 여성 참여 증진을 위한 공동체 라디오의 활용 : 샤론 바그완 롤스(펨링크 퍼시픽) 2) 커뮤니케이션 권리를 이용하여 입법, 젠더와 공간 만들기 : 소니아 (말레이지아) 3) 여성에 대한 폭력에 맞서는 기재로써 공동체 라디오 : 카하르 누르하야티(인도네시아 보이스 오브 우먼 라디오)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아시아에는 아직 여성이 처한 상황이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심각한 문제로 제기되고 있었다. 폭력과 폄하 등에 일상적으로 노출된 여성과 젠더의 문제가 사회적 의제로 다뤄지고 있지 않은 아시아 국가들에서는 이러한 문제가 생존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음을 절감할 수 있었다. 이러한 활동들이 공동체라디오를 통해 소통되고 여성들 스스로 조직해내는 사례에 대한 발표가 있었는데, 단순히 방송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라디오를 통해 실제 여성의 삶을 재조직화하는 데 보다 중요한 의미를 두고 있다.

…변호사나 상담원,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여성들을 보호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단순히 방송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들의 치유를 위한 제반 활동들을 같이 하는 것이 중요하다. HIV를 위한 라디오 캠페인, 여성 정치 참여 캠페인도 하고 있다.……2000년에 여성 활동과 라디오 활동을 위한 다큐먼트를 작성하였다. 현재 상황에 직접적으로 부딪히고 충돌하는 것에 집중하기보다는 재조직화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샤론 바그완 롤스 : 펨링크, 정리 : 이진행)

첫 날 길고긴 회의 속에서 정신없이 지나간 하루 일정의 마지막은 인도네시아 조직위원회에서 준비한 환영 만찬이 남아있었다. 만찬이라고 해서 거창할 것 없이 같이 저녁식사를 한 후에 한 잔씩 하면서 새로운 활동가들과의 만남과 네트워킹을 위한 자리라고 할 수 있다.



# 11월 25일, 아시아 태평양 각국의 공동체라디오의 현황과 동아시아 지역회의

역시나 빠듯한 일정으로 오전 9시부터 회의는 시작되었다. 따뜻한 남국의 기운을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었으나, 전 일정이 호텔 안에서 진행되는 관계로 에어컨의 위력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가지고간 옷들을 껴입고 회의장으로 향했다.

이 날은 온종일 각국의 공동체라디오 현황에 대한 얘기들로 이루어졌다. 전체회의를 통해 파키스탄, 인도, 일본, 인도네시아, 네팔, 한국, 호주의 공동체라디오 현황을 짚어보고, 오후에는 각 지역별로 총회에서 채택할 각 지역의 선언문 내용을 논의하였다. 한국은 동아시아 지역으로 분류되어 일본 교토 FM의 마츠우라 테츠오와 함께 논의의 자리를 가졌다.(사실 동아시아라고 하면 대만, 몽골, 홍콩, 중국, 북한 등도 포함되어야겠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이들 지역의 공동체라디오방송국에 대한 직접적인 정보는 없는 상태다.)

각 국가의 공동체라디오 현황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보다 풍부한 정보들로 이후에 보다 자세히 정리하여 별도로 기술하기로 하고 여기에서는 한국의 발표와 당시 제기된 여러 질문들을 중심으로 정리해보도록 하겠다. 한국의 사례 발표는 미디액트 조동원 정책실장이 발표하였으며, 그 내용은 한국의 미디어환경과 미디어 운동의 역사와 상황들에 대한 개괄, 한국 공동체라디오의 시작과 그 동력이 되는 시민사회와 미디어 운동 그리고 제도적인 도입과정, 2004년 도입이 본격화된 공동체라디오 실험 방송의 상황을 언급하였다. 또한 현재의 법제화 문제와 새로운 공동체 라디오의 실험들 그리고 다양한 뉴미디어 기재의 활동 등에 대한 다양한 이슈에 대한 발제가 있었다.


11월 25일 각국 공동체라디오현황 사례 발표


11월 25일 동아시아 지역 회의, 일본과 한국


한국의 사례 발표 이후 회의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놀라워한 내용은 바로 1W 출력의 문제였다. 아무리 실험방송이라고는 하지만 어떻게 이 정도의 출력으로 사업이 유지될 수 있을지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는 활동가들이 적지 않았다. 정말 이 자리에 정보통신부 관계자와 방송위원회 담당자가 함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했다. 실제로 1W로 방송하고 있는 국내 8개 사업자들도 가장 큰 문제로 지적하고 있는 것이 바로 출력이기도 하지만, 이토록 다른 국가들의 공동체라디오 활동가들에게 놀라움을 안겨주는 이 충격적인!! 1W 방송의 심각성을 다시 한번 절감한 자리였다.

한국 공동체라디오의 출력 문제뿐 아니라 공적 지원과 함께 앞으로 생겨날 다양한 이슈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는 동아시아 지역 회의에서 일본 활동가와의 자리로 이어졌다. 한국과 비슷한 사회/미디어 환경을 가지고 있는 일본 역시 출력의 문제를 가장 큰 이슈로 꼽았다. 현재 20W까지 제도적으로 허용하고 있지만, 쿄토같이 건물이 높고 많은 곳에서는 집안에서 듣기 힘들다고 한다. 일본에서 공동체라디오방송은 재해 방송을 기본적으로 하고 있는데, 방송 전파가 건물에까지 들어가기 힘든 상황에서는 재해 방송의 역할을 하기 힘들다고 언급하였다. 지난번 일본 니가다에서 지진이 발생했을 때, 지방 조례에 근거한 특례법에 따라서 재해시 출력을 높일 수 있어서 자체적으로 50W로 출력을 높인 사례가 있다고 한다. 또한 공동체라디오방송국의 운영과 유지를 위한 지원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공동체라디오방송국에 대한 공적 지원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모두가 공감하였다. 그러나 일본과 같이 지방 정부의 지원으로 인해 생겨나는 여러 가지 부작용에 대해서는 그 선례를 유념해야 할 것들이 있었다. 일본은 전체 재정의 20-30%를 지방 정부로부터 받고 있지만 이에 따라서 인력 선발, 방송 내용 등의 간섭과 요구가 심해지고 정치적인 이슈에 대한 논평 특히 선거에 대한 방송국의 논평이나 의견 등을 말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고 한다. 사실상 재정적인 의존으로 인해서 생겨나는 지방 정부의 간섭과 그 권한의 한계를 명확히 해야 할 필요성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하루 일정이 마무리되는 저녁에는 의미있는 행사가 한차례 진행되었다. 2005년 11월 25일부터 12월 10일까지 진행되는 '여성에 대한 폭력 근절 캠페인‘을 기념하여 회의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숙소인 호텔 정문에서 촛불 집회를 가졌다. 참석한 모두 촛불과 플랭카드를 손에 들고, 10여 개국의 여성 활동가들이 직접 작성한 각 국의 여성 폭력에 대한 발표문 (발표 내용은 http://wiki.amarc.org/index2.php?action=shownews&id=569&lang=EN&style=win&site=win을 참조할 것. 한국은 이진행 미디액트 활동가가 여성 연쇄살인에 대한 정부와 미디어의 선정적인 대응 방식에 대한 비판을 주된 내용으로 발표하였다. -필자 주)을 낭독할 때 그 촛불을 하나씩 끄면서 행사를 진행했다. 그리고 참석한 모든 여성들에게 장미꽃을 나눠주면서 호텔 안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에게 여성 폭력 근절의 메시지를 꽃과 함께 전달하자는 실천 지침(?)이 전해졌다. 우리 일행은 저녁 식사를 한 식당에서 장미꽃은 낯선 인도네시아 여성에게 전달하였다.



# 11월 26일, 인도네시아 공동체라디오방송국 Radio Kamunitas Kanal muara 방문

어제 있었던 지역별 회의의 내용을 발표하는 자리를 가졌다. 이때 발표된 내용은 간결하게 수정하여 아시아 태평양 공동체라디오방송연합의 첫 번째 선언문인 <자카르타 선언>에 그 내용을 포함시켰다.

26일에는 많은 활동가들과 개별적인 만남을 통해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짬짬히 나는 점심 시간, 휴식 시간을 이용해서 캄보디아, 피지, 동티모르, 필리핀, 스리랑카,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 각 국의 공동체라디오 현황과 주요 이슈에 대한 질문들을 던졌는데, 이 내용은 각 국의 공동체라디오 현황에 대한 내용과 함께 별도로 여러분에게 전달하도록 하겠다.

사실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자카르타에서 3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인도네시아 공동체라디오방송국을 방문한 일이다. 저녁 7시경 인도네시아 활동가들과 함께 찾아간 곳은 까날 무아라 공동체라디오방송국이다. ‘무아라’는 지역 이름이고 ‘까날’이라는 뜻은 ‘완벽한’이란 뜻이라고 한다.


Radio Kamunitas Kanal muara 입구


택시 2대에 나눠 타고 도착한 곳은 강가에 위치한 마을이다. 높은 빌딩은커녕 2층짜리 건물도 찾아보기 힘든 어촌 마을이었다. 차가 다니는 큰 길가에는 밤늦도록 어시장이 열려있고 그 뒤쪽으로는 고기잡이배들이 빼곡히 정박해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나마 이 어시장의 불빛으로 마을은 어둠에서 벗어나 있었다. 그 어시장 중간쯤, 주택가로 들어가는 골목으로 들어서자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났다. 여느 가정집과 비슷해 보였지만, 여기가 바로 우리가 방문할 방송국이었다. “아! 여기가 바로 말로만 듣던 진짜 동네 방송국이구나” 하는 생각이 그 곳에 들어서는 순간 온몸으로 느껴졌다. 한 켠에는 유치원이 있고 그 옆 작은 공간에서는 젊은 청년 둘이서 한 참 방송을 진행 중에 있다. 보통 방과 다를게 없는 이곳이 바로 스튜디오였다. 간단하게 탁자위에 놓인 믹서와 마이크 2대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1층짜리 건물위로 쏟아있는 안테나... 정말 그 정겨운 모습에 홀딱 반해버렸다.


Radio Kamunitas Kanal muara 스튜디오


Radio Kamunitas Kanal muara 중계기


집 주인 부부와 두 아기가 함께 살고 있는 이 공간은 부인이 운영하는 유치원과 남편이 운영하는 방송국이 살림집과 공존하고 있었다. 이리저리 기웃거리며 방송국과 유치원을 살펴보던 일행에게 주인장은 간단히 먹을 음식을 준비할 테니 마을을 구경하고 오라고 한다. 주택가는 강과 바로 인접해 있고 그 한가운데는 마을 사람들이 매일 저녁 모이는 오두막 같은 곳이 있다(아직 거기에는 마을 사람들을 소집할 때 두드려서 소리를 내는 대나무 막대들이 있었다.). 동네 한바퀴를 돌고나서 방송국으로 돌아와서는 마당에 모두 둘러앉아서 삶은 홍합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생방송 중에 자발적으로 긴급! 출연한 조동원


마을 사람들이 모이는 오두막. 소집용 대나무 막대


2000년부터 시작한 이 방송국은 처음에 근처에 있는 동사무소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관공서에서 지원하는 방송같다고 하여 공무원들이 옮겨달라고 했다고 한다.

이런 저런 사정들이 있어서 현재 가정집과 함께 있는 방송국은 오후 4시부터 자정까지 방송하고 있으며 5명의 레귤러 프로그램 진행자와 자원활동가들로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아직 정식 방송국 면허는 없지만 지금 신청 중에 있고 200W 출력으로 방송한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방문한 해외 참가자들은 완전히 놀래버렸다. 특히 한국!!과 일본! 이렇게 큰 출력으로 방송할 수 있는 것은 인도네시아 방송환경과 조건에 의해서 그것이 가능한 것이지만, 그래도 마냥 부러웠다. 하지만 안테나가 낮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가시청 범위는 5km 정도라고 한다. 한편 이 동네 방송국의 위력은 공동체의 관심이 대변해주고 있었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이 방송은 한달 평균 100여명 이상이며 방송이 나가지 않을 때는 방송국으로 찾아와서 왜 안나오냐고 물어보러 온다는 것이다. 주된 방송 내용으로는 지역 뉴스와 엔터테인먼트 방송을 하고 있다고 한다. 지역의 주요한 이슈는 아직 문맹률이 높은 곳이기에 읽고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고 보다 연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겠다고 한다.

이렇게 인도네시아의 공동체라디오방송국을 다녀오면서 신선한 충격과 함께 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현재 인도네시아 공동체라디오연합에 가입된 방송국은 500여개가 되지만 전국적으로 파악되지 않은 곳까지 합치면 2000개가 넘을 것 같다고 한다. 아직 정부에서 빈 주파수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단속을 하지 않기 때문에 지역마다 서로 협의하여 출력과 가시청 범위를 정하고 있다고 한다. 아! 놀라워라~



# 11월 27일, 자카르타 선언 채택, 운영위원회 선출 투표


분홍색 투표 자격 용지. 공동체라디오연구모임 ‘씨알’ 하주영과 인도네시아 공동체라디오연합 지역의장 보우 우소도


27일 아시아 태평양 공동체라디오연합 대표단 선출 투표 진행


드디어 공식일정 마지막 날.
앞서 언급한 지역별 회의의 결과로 나온 여러 과제들 중에 해당 국가의 정부에 요구할 내용을 정리하여 이 자카르타 선언문에 포함시키고 회원 모두가 검토, 결정하는 자리를 가졌다. 한국과 일본은 공통으로 50W 이상의 출력과 공적 지원 구조의 확립이라는 두 가지 큰 이슈를 요구안으로 채택하였다.

그리고 가장 핵심적인 대표단 선출이 이어졌다. 회원 자격을 가진 단체나 개인에게는 분홍색 카드가 하나씩 주어졌다. 이 카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단체를 대표해서 선거인 명단에 올라가게 되고 이들이 각각 아시아 태평양 공동체라디오연합 의장과 부의장, 해당 지역 의장, 재정 담당, 여성위원회 대표를 선출할 수 있다.

선거 결과는 다음과 같다.

○ 의장 : 아시시 센 Ashish Sen(인도)
○ 부의장 : 쏘냐 란드하와 Sonia Randhawa(말레이시아)
○ 재정 담당 : 세인 엘슨 Shane Elson(호주)
○ 여성위원회(WIN) 의장 : 비앙카 미글리오레토 Bianca Miglioretto(ISIS)
○ 지역 의장
- 남동아시아 : 그웬돌린 롱기드 Gwendolyn Longid(필리핀)
- 동아시아 : 마츠우라 테츠오 Matsuura Tetsuo(일본)
- 태평양 지역 : 샤론 바그완 롤스 Sharon Bhagwan Rolls(피지)
- 남아시아 & 서아시아 : 라그하 마이나리 Ragha Mainali(스리랑카)


제1회 아시아 퍼시픽 공동체라디오연합 총회에서 선출된 1기 대표단

모든 일정을 마치고 이제 이별의 순간이 다가오면서 모두의 마음은 느긋해졌지만, 우리 일행의 마음은 급해졌다. 인터뷰를 마지막까지 진행하면서 보다 많은 공동체라디오에 대한 내용들을 활동가들에게 직접 들으려고 애썼다. 마지막 만찬의 시간 이후에는 모두 음주는 아니지만 가무에 한참 열을 올렸다. 여성들이 주도하여 각국의 민요들을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각 나라의 말로 부르는 이국적인 노래와 몸짓에서 새삼 아시아의 정취가 듬뿍 넘치는 것이 느껴졌다. 자카르타에서의 마지막 밤, 많은 이야기와 정보들이 오간 내용을 정리하고 또 남겨두고 온 일들을 처리하기 위해서 새벽이 되도록 우리 일행은 잠들지 못했다.



# 11월 28일, 자카르타 슬쩍 보기, 그리고 한국으로

인도네시아의 인구 대부분이 무슬림인 영향으로 음주에 대해서는 굉장히 엄격한 사회적 분위기가 존재하고 있었다. 한국 같으면 회의 한번 끝나고서 거나하게 한잔 하는 것으로 연대의 정을 돈독히 할 것이지만, 자카르타에서는 그것이 쉽지 않았다. 밤 늦게까지 문을 연 가게도 거의 없을뿐더러 편의점도 찾아보기 힘들고 일반 가게에서는 술을 팔지 않는 곳이 많았다. 이런 저런 상황에서 결국 선택한 것은 24시간 문을 여는 호텔 커피숍에서 비싼 맥주를 마시는 수밖에 없었지만, 몇몇 동년배의 활동가들과 함께한 새벽의 술자리는 사실 회의 기간 동안에 나눌 수 없었던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간 자리이기도 했다.

자카르타를 떠나는 날 낮에는 처음으로 자카르타 시내를 낮 시간동안 돌아다닐 기회가 있었다. 적도 근처라고는 하지만, 우기인 탓에 비도 내리고 우울한 느낌이 가득 묻어 있었다. 회색빛 가득한 콘크리트와 아스팔트 사이로 주변 나지막한 건물들과 어울리지 않게 올라선 대형 빌딩들. 거대 자본의 손길이 지나간 곳에는 거만한 높은 건물들이 비집고 들어서 있다.

며칠간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공동체라디오에 대한 많은 사례들과 과제들을 확인하면서 동시에 공동체가 묻어있는 미디어의 모습도 확인할 수 있었다. 많은 부분을 담아내지 못한 아쉬움과 동시에 현지에서 만난 다양한 공동체라디오의 사례를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내용과 교훈들을 짚어볼 수 있는 고민들이 깊게 진행되지 못한 아쉬움은 남는다. 이번에 소개한, 방만하게 그리고 두서없이 풀어간 자카르타 아시아 퍼시픽 공동체라디오연합 1회 총회 참가기에 이어서 조금 정리된 내용으로 각 국가별 현황들을 여러분께 계속 소개할 수 있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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