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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트특집][공동체라디오 기획총론]

지금, 여기, 있는 공동체라디오

ACT! 편집위원회는 공동체라디오 방송 시범사업 2주년을 맞아, 서울 관악, 서울 마포, 분당, 영주, 나주, 광주, 대구 성서, 금강 등 전국 8개 시범방송국을 대상으로 2주년 운영 자체 평가를 기획-청탁하였다. 영주와 나주, 금강, 서울 마포는 각각의 사정으로 싣지 못했지만, 나머지 서울 관악, 분당, 광주, 대구 성서의 소중한 평가서를 모을 수 있었다. 더불어 각 방송국들의 전반적인 상황을 살피면서 지난 11월 29일에 있었던 공동체라디오 사업 공청회에 대한 평가도 함께 다루는 기획총론을 싣는다.

1. 꿈을 꾸는 공동체라디오

‘평범한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삶의 냄새가 나고, 사소하고 소박한 일상이 특별하게 취급되고,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단한 일상에 한 뼘 기대될 수 있는, 어깨를 빌려주어 위안이 되는 방송을 꿈꾼다. 내가 꾸는 꿈이 헛되지 않고 ‘함께’ 찾아가는 희망이 되는 방송을 꿈꾼다.‘
- 정수경 성서FM 대표의 글 중에서

지난 2004년 11월 16일 8개 시범방송 사업자로 선정되고 그 다음 해 3월부터 지금까지, 공동체라디오 방송을 준비했던 이들은 모두들 열심히 달려왔다. 저마다 지역에서 위치한 모습과 활동과 방송운영은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공동체라디오 방송이라는 기본적인 틀과 그 위로 만들어가려는 각각의 소망은 비슷할 것이다. 그 소망이란, 앞서 정수경 성서FM 대표의 글에서 표현된 일상적인 삶의 특별한 모습이기도 하고, ‘단전소식, 단수소식, 교통통제, 보건소 위치, 재산세 납부.,혼식 소식 등등……. 어떻게 보면 그게 무슨 방송꺼리냐고 핀잔을 받을만한 시시콜콜한 내용들을 다루는(분당FM)', 오밀조밀한 동네에 스며있는 작은 매체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렇게 공동체라디오는 꿈을 꾼다. 공동체를 위해 구성원들이 직접 제작과 운영에 참여하는 것을 꿈꾼다. 그리고 기존 정규출력 라디오와는 달리 지역에 밀착한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좁은 지역 공동체에 작은 출력으로 방송하는 비영리공익매체이자, 공동체를 대표하는 운영주체가 주민자치의 연장선상에서 운영하는 지역 대표매체가 되는 것을 꿈꾼다.
비록 공동체라디오가 꿈꾸는 것을 모두 이뤄낼 수 있는 시범사업기간 3년은 아니었지만, 자체평가서를 보면 공동체라디오가 지역에 들어서면서 유의미한 변화들이 있었음을 볼 수 있다.

‘....놀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지원했다. 월급을 받는 것도 아니고 자기 시간 내서 인터뷰하고, 제작하고, 녹음하고, 진행하고, 모든 것이 자발적인 참여인데도 이들은 방송을 좋아한다는 단 하나의 명분으로 FM분당을 찾아왔다.’
- FM분당
‘기존의 방송에서 주류일 수 없는 사람들이, 그래서 상대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절실한 사람들이, 어떤 것에도 방해 받지 않고 자유스럽게 이야기를 하는 것이 공동체 라디오의 매력이다. ...(중략)... 마을 도서관 만들기를 주민들 스스로 기획하고, 발로 뛰어 주민들을 만나고, 주민 토론회를 개최하고 이 모든 과정을 [주민발언대]라는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서 공론의 장을 만들어간다.’
- 성서공동체FM
‘지역의 변화 없이 세상의 변화는 없다. 지역의 변화에 있어서 공동체라디오만큼 이 짧은 시간 동안 가능성을 낳은 사례가 있었을까.’
- 관악FM

멀리에서는 알 수 없는 지역의 이야기를 공동체라디오는 감지할 수 있었고 스스로 그 이야기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지역에 따라 조금씩은 다른 모습을 보이겠지만, 어느 공동체라디오는 지역의 이주노동자, 중증장애아를 키우는 부모, 장애인, 청소년들이 스스로 제작과 운영에 참여하고 있으며, 또 어느 공동체라디오는 지역이라는 물리적 한계를 장점으로 만들면서 인터넷과 연계 사업을 만들기도 하였고, 공공단체와의 연대 사업을 이끌어내기도 하였다. 혹은 이 짧은 자체 평가서들에서는 확인할 수 없을지라도, 지난 3년의 수고로움이 만들어낸 소소한 결과들이 각각의 공동체라디오 방송국에 결코 적지 않게 쌓여 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저마다 다른 보폭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지역매체로서 각각의 공동체라디오는 지역 안으로 조금씩 자신의 걸음을 내딛고 있는 것이다.


2. 제자리걸음

‘광주시민방송의 2년을 제자리걸음이라 칭하는 이유는 그동안 성공도 실패도 없었기 때문이다. 2년의 평가를 단순히 성공이냐 실패냐 구분지어 표현하기 어렵지만, 지역미디어 기능을 충분히 실현하기엔 그 시도조차 어려운 현실을 꼬집어보고 싶다.’
- 설연수 광주시민방송 제작팀장의 글 중에서

하지만 어느 부분들에서 공동체라디오는 분명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었다. 그런 제자리걸음의 원인으로 네 개의 원고가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것은 낮은 출력과 불안정한 재정의 문제였다. 그리고 이는 시범사업을 별다른 고민 없이 진행해 온 방송위원회에 대한 비판으로 그대로 연결된다.
현재 1W의 낮은 출력으로 방송을 하고 있는 공동체라디오 방송국은 자체 평가서에 의하면 가청권역을 반경 500m(관악FM)부터 2km(FM분당) 정도로 파악하고 있다. 구청의 담당부서를 통하면 관내 90% 이상의 주민들에게 홍보를 할 수 있지만, 1km 가청권역 바깥에 사는 주민들의 항소를 염려해 그조차 하기 힘들다는 설연수 광주시민방송 제작팀장의 말은 1W의 낮은 출력에 대한 씁쓸함을 그대로 대변한다. 현재 법적으로 규정된 10W 이하의 출력으로도 방송위가 청취권역으로 제시한 반경 5km에 도달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공동체라디오는 그 10W의 출력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지역과의 소통을 가장 기본적인 전제로 두고 있는 공동체라디오가 그 존재의 의미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청취권역과 대상을 가지고 있어야 하지만, 실제로 공동체라디오는 이를 보장받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송위원회의 외면 속에 낮은 출력을 유지해온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 사업이 어떠한 재원을 가지고 운영될 수 있는 모델인지 실험을 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엉성하게 시범사업을 운영한 것에 대한 책임을 전혀 지려하지 않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관악FM)' 일이었다. 자체적인 수익구조를 만들기 어려운 낮은 출력 등의 방송환경은 외면한 채 3년 동안 진행해 온 방송위원회에는 분명한 책임이 있다. 하지만 오히려 방송위원회는 공동체라디오의 정식사업화 이후 공적지원을 끊으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공동체라디오 방송국의 재원이 주로 자발적인 지역 공동체 구성원들로부터 나오는 것이라 할지라도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공동체라디오 방송국의 발전을 위해서는 공적지원이 지속-확대되어야 하는데도, 외려 지속되는 것은 방송위원회의 책임방기가 전부인 듯하다.
이러한 방송위원회의 자세는 공동체라디오 공청회에서도 그대로 확인할 수 있었다.


3. 공동체라디오 공청회

2007년 11월 29일, 방송위원회는 공동체라디오 공청회를 통해 다시 한 번 자신들의 무책임함을 드러냈다.

‘주파수 가수요조사, 주파수를 쏴서 5km에서 측정하라는 게 아니고, 사용할 주파수가 있는지, 주파수가 비어있는지를 확인해 오라는 것이다. 방송위와 정통부가 협의해서 하라면 불가능하다. 오랫동안 준비하신 분들, 취지를 이해할 수 있는 분들과 갈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 김우석 방송위 지상파방송부장, 공동체라디오 공청회 녹취 중에서

방송위원회는 ‘5km에서 측정하라는 건 아니고 다만 주파수가 비어 있는지만 확인하면’ 되는 거라고 친절하게 설명해주지만, 그 말에는 친절함이 없다. 책을 빌리기 위해 도서관에 가서 몇 번 서가 몇 번 책꽂이에 그 책이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하라면, 실은 그마저도 사서가 해야 하는 일일지라도, 책을 빌리기 위한 그 정도의 수고로움은 별 거 아닐 수 있다. 하지만 가용주파수 사전 수요조사는 그런 문제가 아님을 우린 모두 알고 있다.
공동체라디오 정식사업을 위한 주파수 조사와 확보는 방송위원회와 정보통신부의 기본적인 역할인데도 이들은 그 역할을 공동체라디오 사업자들에게 전가했다. 또한 처음에는 이러한 사전 수요조사 기간을 공청회가 있고 한 달 뒤인 12월 말까지로 제시하면서 공청회의 토론자들과 함께 자리했던 다른 사람들에게 많은 비판을 받았다. 가용주파수를 조사하기 위해 서울지역의 경우 30개 정도의 기존 전파를 피해야 하며 지역의 경우 15개 정도를 피해야 하는 등 조사하는 것이 만만치 않을뿐더러, 공동체라디오를 시작하기 전 여러 단체가 합의에 이르러야 하기에는 12월 말까지의 한 달이라는 기간은 너무나 짧았던 것이다. 하지만 방송위원회는 전체회의에서 2008년 1월 10일로 일정을 10일 정도 연장하는 것으로 가용주파수 사전수요조사를 강행하였다.
사전 수요조사는, 검토 결과 가용주파수가 없다고 나오거나 출력 1W 이하로 나올 경우에는 신규사업자 신청조차 할 수 없다는 점에서 또한 문제가 된다. 방송위가 신규사업자 허가추천 심사를 재허가 추천 심사기간인 3년과 일치시키면서 이 문제는 증폭되는데, 사전 진입 규제가 되어버릴 사전 수요조사 결과로, 이번에 허가받지 못하면 3년을 기다려야 하는 어려움이 생긴다. 특히 2008년에 허가 받지 못한다면 그 다음은 2011년인데, 이는 디지털 전환을 앞둔 시기라는 점을 상기할 때 이에 대한 구체적인 정책의 고민이 부재하였음을 의심할 수 있다. 때문에 일본 공동체라디오를 전공한 김경환 씨의 지적대로 매년 새로 신규사업자를 모집하는 일본과는 달리 방송위의 3년 신규사업자 선정은 다름 아닌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의 산물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가용주파수 사전수요조사도 그러하지만, 신규사업자 심사기준에도 여러 가지의 문제점이 드러난다. 사업주체가 실질적으로 지역을 대표하고 진정한 공동체 사업자인지에 대한 검토의 과정이나, 지역성을 넘어서는 다양한 정책적 목표를 확인할 수 있는 과정이 현재 방송위의 정책 방안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또한 심사 방향에서도 재정적인 부분이 크게 고려되면서 정말 원하는 사업주체보다는 돈 많고 안정적인 사업주체 위주로 선정될 가능성이 있다. 이렇듯, 공공영역으로서 공동체라디오가 적극적으로 발전시켜야 하는 지원의 영역임에도 불구하고 허가에만 집중하는 방송위원회의 공동체라디오에 대한 마인드 부재는 시범사업을 기초로 한 구체적인 정책 수립이 부재하는 결과까지 이어졌다.


4. 내부의 시선

‘공동체라디오를 하면서, 외부와의 관계 속에서 느낀 게 있다면, 그건 바로 ‘고립’이다. 이것은 8개사가 자초한 일이기도 하며, 동시에 손 써볼 틈도 없는 빡빡한 굴레에 걸려든 공동체라디오의 현실을 반영한 일이기도 하다.‘
- 안병천 관악FM 방송국장의 글 중에서

공동체라디오 시범방송을 어떤 부분에서 제자리걸음하게 만들었던 원인들 가운데 네 개의 원고가 공통으로 지적했던 두 가지, 낮은 출력과 불안정한 재정의 문제를 앞서 이야기했고, 그에 대한 보다 근원으로서 방송위원회와 정책(적 고민)부재의 문제를 이어서 이야기했다.
하지만 안병천 관악FM 방송국장은 자체 평가서를 통해 이와는 다른 방향에서 질문한다. 그럼 시범사업 8개사는 이에 대해서 책임을 어떻게 물을 것이며, 정식사업자 이후를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8개사에게 이러한 것을 해낼 내부적 준비나 결단은, 그리고 동력은 있는가? 외부에서 찾아야 하는가?(관악FM) 그는 그 동력을 내부에서 찾을 것을 제시한다. 그가 보기에 시범방송 8개사의 정식사업자로의 전환은 방송위원회의 제작비 지원이 끊기고 광고비가 허용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한다. 그리고 그 점으로 인해 그는 그의 원고에서 8개사의 연대를 더욱 종용한다.(자세한 것은 관악FM의 원고를 읽으시길)
글의 마지막에 와서 고백하자면, ACT! 편집위원회가 처음 기획했던 [공동체라디오 시범사업 2주년 평가]는 공동체라디오가 맺고 있는 ‘외부와의 관계’를 조명하는 것만 목적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 ‘빡빡한 굴레’와 함께 안병천 관악FM 방송국장이 ‘자초한 일’이라 표현한 그 무엇이 있었다면 그것까지도 포함하여 이야기하고 싶었다. 외부의 문제에 대해서는 ACT! 편집위원회도 민감하게 대응하려고 노력했지만, 내부에 대해서는 편집위의 고민이 미치지 못하였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각 공동체라디오 방송국에 자체 평가서를 의뢰한 것이기도 하다.
그와 비슷한 맥락으로, 하나의 방송국에 국한되거나, 혹은 전체 공동체라디오 방송과 그에 대한 외부의 정책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현재 공동체라디오 시범사업 8개 방송국 내부에 시선을 둔 이야기라는 점에서 안병천 관악FM 방송국장의 말은 의미가 있다. 그의 제안대로이든 아니든, 공공영역으로서 공동체라디오를 지켜내고 확대하기 위해서는 8개 시범사업자와 추가될 신규사업자에 내부의 시선을 두고 서로 공유하며 연대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5. 지금, 여기, 있는 공동체라디오

공간이 있다. 2층으로 이루어진 크지 않은 공간이다. 그곳 1층에는 북카페가 있어서 동네 사람들이 오가며 한 쪽에서 차를 마시거나 책을 읽고, 다른 쪽에서는 교과서에 대한 학부모의 모임을 갖기도 한다. 그리고 2층에는 사무실과 라디오 스튜디오가 있다. 라디오는 매일 동네 사람들과 이야기를 한다. 동네 슈퍼에 무슨 일이 있었고, 누구의 생일이며, 일상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라디오는 이야기한다.
지난 5월 다산인권센터를 찾아 인터뷰를 했을 때 다산인권센터 측은 마지막으로 그들이 꿈꾸는 바를 이렇게 설명했었다. 주민들과 함께 살아가는 2층의 동네 인권센터. 그 때 다산인권센터에서 들었던 그 꿈이 지금 공동체라디오가 바라보는 그것과 많이 닮아 있음을 느낀다.
하지만 꿈이 아니다. 지금, 여기, 공동체라디오는 있다. 다만 우리는 지금보다 건강하고 확장된 무선의 파동을 계속해서 꿈꿔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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