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적미디어운동연구저널 Act!

[ACT! 75호] 제길. 이것이 ‘영화’가 아니라 다큐멘터리라니

불편하더라도 꼭 ‘바라 봐야’ 할 현실, 다큐멘터리 [하얀 정글]

"진료비 확인 요청을 했더니 비급여로 3400만원이 나왔다. 병원이 불법 비급여 청구를 했다. 1990만원이 부당 진료비로 확인됐다. 민원을 걸자 병원은 민원을 취소하라고 설득했다. 어떤 의사는 "기껏 살려줬더니 뒤통수친다"고 했고 다른 의사는 "다시 재발해서 입원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돌려서 얘기하더라. 의사의 문제가 아니라 행정적 문제다. 보험이 되는 진료를 보험 안 되게 바꾼 거니까. 의사도 직원이다. 직원이 월급 받는데 회사 방침을 따르지 않기란 힘들다. 의사만의 탓은 아닐 수 있다." - 다큐멘터리 [하얀 정글] 중

아버지가 몇 년에 걸쳐 항암 치료를 받는 동안 우리 가족은 매 순간, 몇 번이고 무력감에 시달려야 했다. 모든 것을 병원에 일임할 수밖에 없는 무력감.
독점된 의학 지식 앞에서, 수술이 필요하다 하면 수술을 받았고, 검사가 필요하다 하면 검사를 받았다. 아버지 몸으로 들어가는 무수한 약과 주사가 어떤 성분인지, 갑자기 아버지의 증세가 악화되면 다만 상태가 안 좋아진 건지 잘못된 처치의 문제인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냥 무조건적으로 의사‘선생님’과 병원을 믿는 것 뿐 이었다. 의심하지 않고, 말 잘 듣고. 그들이 얼마나 우리의 믿음을 지켜주거나 이용했는지는,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그 때 내가 느꼈던 가장 큰 억울함은 ‘아픈 것도 서러운데.’였다. 왜 아픈 우리는 약자일 수 밖 에 없는가. 떳떳하게 아프고, 건강해지기 위해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권력(이미 이것은 권력이 되었다)이 우리에게 없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권력을 가진 그들을 미워하기도 했다. 의사‘선생님’들은 아버지를 ‘사람’이 아닌 환자로 대했다. 하루하루가 불안하기만 한 아버지의 상태를 물어볼 수 있는 시간은 24시간 중 회진 도는 3분 동안 정도였다. 입원 해 있는 오랜 시간 동안 우리가 당했던 부당함과 억울함이야 수도 없이 많지만, 행여 아버지를 ‘정성껏’ 봐주지 않을까봐 늘 아무 말 못한 채 넘어가곤 했다.

나는 그들이 권력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동생은 좋은 ‘의사‘가 되기 위해 진로를 바꿔 의학대학원에 진학을 했다. 나는 전공과 상관없는 의료생협으로 직장을 옮겼다. 떳떳하게 아플 수 있는 권리와 적절한 치료를 받을 권리에 대해 얘기하고, 현 보건 의료 현실을 비판했다. 그리고 나는 결코 그들이 권력집단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의사들 또한 그들을 고용한 대형 병원의 경영 수지를 위해, 하루 숨 돌릴 틈 없이 300명 이상의 환자들을 진료해야 하고, 비싼 의료기기들의 사용을 권유해야하는, 다만 이 거대 자본주의 의료 산업의 노동자에 지나지 않았다. 원무과에 일하는 직원들 역시 수익 창출만이 목표인 구조 안에서 매일 매일 인간성과 양심의 상실을 겪어내며 일하고 있는 것이었다.
모두가 불행하다.
모두가 행복하지 않고, 모두가 약자인 사회.

다큐멘터리 [하얀 정글]은 이 정글 같은 사회 층층의 여러 사람들을 한 데 묶어 보여준다.

  <하얀 정글>❘ 송윤희 ❘2011
감독은 현재 의료 시장의 구조를 의료수급권자에서부터 수급권자가 되지 못한 사람, 일반인, 그리고 이들로부터의 권력 우위에 있다고 생각되었던 병원 관계자, 의사, 하물며 의과 대학 교수까지 차례로 등장시켜 얘기하게 한다. 그리고 보여준다. 실은 아무도 권력을 가지지 못했다는 것을. 이 거대한 자본주의 톱니바퀴 안에서 환자도, 의사도 모두 피해자일 수밖에 없다, 라고 한 단계 한 단계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 복잡한 이야기를 지치지 않고 끌고 간 감독의 끈기가 놀랍다. 주변 인맥을 이용해 평소 쉽게 듣기 어려운, 시스템 안의 사람들 얘기까지 담아낸 걸 보면, 또 인터뷰이들은 얼마나 용기를 냈을까 싶기도 하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이 [하얀 정글]이 다큐멘터리라는 장르로서 빛을 발하는 부분이다. 모두가 각자 입장을 얘기하게 만들고, 우리로 하여금 모두의 얘기를 듣게 한다. 그리고 그들 입에서 흘러나온 ‘말도 안되’는 얘기들이 실제 현실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말도 안되’는 현실 이야기

이 ‘말도 안되’는 현실을 만들어 낸 것은 산업화된 의료서비스이고, 그 끝에는 의료민영화가 있다. 모두에게 주어져야 될 ‘복지’로서의 의료서비스가, 자본과 결합해 ‘의료산업’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되었다. 대기업과 정부는 이 ‘의료산업’의 발전을 위해 병원을 영리법인화하고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자본력 있는 대기업이 병원을 만들어 이윤을 추구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환자는 더 이상 아픈 사람이 아니라 돈이며, 의사는 아픈 이를 치료하는 사람이 아니라 ‘돈’을 버는 직원이 된다. 좋은 점도 있다. 시장 경쟁을 통해 환자들이 ‘더 높은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제공받게 될 것이란다.
하지만 여기서 ‘높은 수준의 의료서비스’는 누구의 것인가.
분명한 건 우리들의 몫이 아니라는 것이다. ‘특정한 누군가=비싼 사보험에 매달 고액을 붓고 있는 사람’, ‘천만 원 이천만원의 병원비는 가볍게 지불할 수 있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병원이 돈 되는 환자를 고르게 되면, 그냥 서민인 평범한 우리들은 치료받을 수 있는 병원을 찾아 거리를 헤매게 될지도 모른다.
정부와 시장이 ‘의료민영화와 병원의 영리법인화를 통해서 모든 사람이 질 높은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라고 우리를 현혹시키는 동안, 부양자가 있다며 수급대상에서 제외된 노인은 자살하고 의료민영화 법안은 ‘건강관리서비스 법안’으로 이름을 바꿔 국회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의사인 감독이 메스 대신 카메라를 들고 온갖 사람들을 만나러 절박하게 뛰어다닐 만하다. 의료민영화가 되면 이런 의료 시장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더욱 양극화될 것이며(의사 또한 마찬가지다), 의료소비자 뿐만 아니라 서비스 생산자인 ‘의료인’들마저도 돈벌이 기계가 되어 부속품처럼 쓰이게 될 것이다.
아무도 주체가 되지 못한다. 아무도 제대로 된, ‘적절한’ 의료 서비스를 받지도 제공하지도 못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답은 ‘연대’

누군가 이 현실을 믿기 힘들어 한다면, 다큐멘터리 [하얀 정글]에서 보여주는 것으로 충분하다. 의사들은 매일 휴대폰에 당일 예약환자수가 문자로 전송돼오고, 아침회의에서는 수익을 많이 낸 순서대로 줄 세워지며, 비싼 검사/ 비싼 의료기기 사용 권유를 강제 받는다. 당연히 좀 더 많은 환자를, 좀 더 많은 수익을 내는 것을 목표로 할 수 밖에 없다. 아픈 사람들이 큰 병원 가서 ‘30초 진료’를 받는 이유다. 원무과 직원들은 수납 없이 진료를 받게 할 경우, 시말서를 써야 한다. 난치병을 가진 아이 아빠가 사랑의 리퀘스트에 나가 모금을 요청해야만 하는 이유다.

  다큐멘터리 <하얀 정글>의 한 장면


이 구조에서 권력을 독점하여 환자를 소외시키고 군림하는 ‘적‘은 의사와 원무과 직원들인가. 아니다. 우리의 진짜 적은 의료를 산업화 하는 이 거대한 자본이다. ‘산업’이란 이름을 가진 현재 시장중심의 의료 시스템이 환자도, 의사도 누구도 스스로의 ‘주체’가 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병원은 의사를, 의사는 환자를 착취하고, 환자는 의사와 병원을 불신하게 만들어 서로를 갉아먹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감독은 말한다. ‘너와 나는 다르지 않다.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그렇다. 실은 다르지 않다. 모두를 도구화하는 이 거대한 시스템 안에서 우리는 동지다. 그러니까, 서로를 불신하고 도구화하며 단절된 채 살아갈 필요가 없다. 혼자 버텨가는 세상은 버겁고, 막막하기만 하니까. 우리는 ‘연결’ 되어있으니까.
불통(不通)의 고리를 뛰어 넘어, 우리는 연대할 수 있다. ‘같은 편’이 되어 서로의 어깨를 두드리며 함께 싸우면 된다. 산업으로서가 아닌, 복지로서의 의료를 위해.
아픈 사람들은 부자건 가난하건 마음 놓고 치료받을 수 있고, 의료인들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눈앞의 환자에게 가장 적절한 치료를 할 수 있다. 병원 관계자들은 더 이상 양심에 괴로워하지 않아도 되고, 보호자들은 내 가족을 맡긴 병원과 의료인을 신뢰할 수 있다.
꿈같은 일이 아니다, 실제로 이런 관계를 꿈꾸고 만들어 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지난 94년부터 생겨나기 시작한 의료생협(의료생활협동조합 http://medcoop.or.kr)은, 주민과 의사가 연대하여 만든 공동체이다. 의사와 환자 간의 신뢰할 수 있는 관계를 실현시켜 나간다.
단순히 아플 때 치료해주는 의사가 아닌, 평소 건강을 지킬 수 있게 도와주는 주치의가 되고자 노력한다. 환자는 스스로 건강의 주체가 되어 몸을 관리하고, 의사의 말과 처치를 믿어주며 따른다. 병원 또한 함께 운영하며 병원 안에서만이 아닌, 지역 사회 보건․예방 활동을 활발히 펴나간다.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서로를 신뢰하며 함께 건강을 지켜가는 관계. 연대한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굳이 ‘의료민영화’ 따위 되지 않아도, 지금의 산업화된 시스템을 조금만 바꾸면 될 일이다.
그러니까.

제발, 봐라
어디서든 봐라





중요한 것은, 이 [하얀 정글]을 보는 것이다.
외면하고 싶은 것들, 알고 있어도 굳이 ‘보고’싶지 않은 것들이 있다. 그것은 마주하면 더 이상 남 얘기가 아니게 되기 때문이다. 뛰어들게 된다. 그래서 나는 정말 권하고 싶다. 이 다큐멘터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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