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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76호] 이주민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자!

제 6회 이주민 영화제

소통의 창구, 영화제의 시작



  이주민 영화제의 사회를 맡은 나하나(왼쪽), 아웅틴툰(오른쪽) [출처: 이주민방송(MWTV)]
이주민 2% 시대라고 한다. 이주 노동이 제도화 되고, 결혼이주로 많은 이주민들이 한국사회에 함께 살게 됐다. 단일민족에 대한 신화는 눈앞에서 깨어지게 된 이 상황. 한국인들은 이를 ‘다문화 사회’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TV 프로그램에 등장한 이주민들은 한국말도 서툴고, 행동도 어리숙하게 그려졌다. 불법체류자에 대한 선정적인 보도는 이주민들이 사회에 혼란을 가져온다는 여론을 불러일으키곤 했다. 하지만 2006년 이래로 미디액트, 이주노동자의 방송(MWTV, 현 이주민 방송), 지구인의 정류장 같은 곳에서는 이주민을 대상으로 한 미디어 교육을 지속해왔다. 이주민이 자신을 스스로 표현할 기회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선주민의 눈으로 이주민을 대상화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삶은 이렇다!” 라고 이주민 스스로가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영상 작품을 만든다는 것은 매우 전복적인 일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대중들에게 상영한다는 것 또한 큰 의미 갖고 있었다. 언어나 노동환경, 사회적 조건 등의 이유로 고립되기 쉬운 이주민들의 소통의 창구가 열리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제6회 이주민 영화제 포스터
그렇게 이주노동자 영화제가 2006년 처음 시작되었다. 현재 버마의 민주화를 위해 활동하고 있는 ‘버마액션’의 대표 뚜라 씨가 제1회 집행위원장이었고, 영화 [반두비] 주연으로 잘 알려진 마붑 씨, 감독 겸 이주민 밴드 보컬로 활발히 활동하다가 2년 전 강제출국을 당했던 미누 씨 또한 이주노동자 영화제의 집행위원장을 맡았던 분들이다. 작년에 이어 올해에는 이주민 방송의 대표 아웅틴툰 씨가 집행위원장을 맡았다. 지금까지 여섯 차례를 거치면서 영화제는 이주민들의 삶을 다룬 영화, 이주민들이 직접 만든 영화들을 상영하며, 매스미디어의 시선에 의해 이주민들의 삶이 부당하게 왜곡되는 것을 반대하고 이주민들의 시선을 한국사회에 알려왔다. 그리고 2011년에는 더 많은 이주민들의 목소리가 대표될 수 있도록 이주민 영화제로 이름이 바뀌었다. (*주1)

올해 영화제의 슬로건은 ‘꿈꾸는 이들의 오케스트라’이다. 다양한 악기들의 연주로 감동적인 오케스트라가 완성되듯이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이주민들과 함께 한국사회가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할 수 있기를 꿈꾼다는 의미라고 한다. 밝은 미래를 기대하는 슬로건만큼이나 포스터도 발랄해 보였다. 그렇다면 영화제 상영작들의 면면은 어떠할까?

개막작은 이주민이 직접 만든 영상‘들’

  로시아디 감독의 [내 인생 한국에서]의 한 장면 [출처: 이주민방송(MWTV)]
올해 이주민 영화제의 개막식에서는 총 7편의 단편이 묶여서 상영되었다. 단편을 만든 감독들도 이주민들이었다. 보통 가장 잘 만들어진 작품 한 편을 상영하는 영화제의 관례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작년 영화제에도 이주민들의 작품은 개막식에서 공동상영 되었다. 집행위원장 아웅틴툰 씨는 “이주민들의 작품을 개막작으로 선정하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어느 한 편만 상영할 수가 없었다.”며 공동 상영의 의미를 되새겨 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개막작으로 선정된 [나 홀로]와 [내 인생 한국에서]는 이주노동자 감독들이 한국 사회에서 겪고 있는 삶을 차분한 시선으로 보여준다. 비극을 과장하거나 헐리웃 영화와 같은 극적 구성은 크게 드러나지 않지만, 이야기의 진정성이 돋보였다. “공장에 가면 나 혼자 일한다. 사장이 돈을 아끼기 위해 다른 사람은 고용하지 않았다. 심지어 관리하는 사람도 없다. 집에 가도 나 혼자다. 고국을 떠나 일을 하러 한국에 왔기 때문이다. 밥도 혼자 먹는다.” 이보다 더한 고립감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이처럼 영화를 통해 이주민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그 어떤 연설보다도 진실된 메시지를 전해주는 것 같았다.

역시 개막작인 [명하 이야기]와 [오프사이드]에서는 결혼이주여성과 다문화가정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명하 이야기]는 필리핀에서 한국으로 온 레이젤 씨가 미디어 교육을 받고 직접 만든 작품이다. 자신의 딸인 명하를 통해서 이야기를 풀어 가는데, 한 가정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필리핀 공동체인 ‘아이다 마을’까지 다루고 있다. 이처럼 고립되지 않고 집단을 이루며 행복하게 사는 이주민들의 이야기도 있다는 것을 들려준다. [오프사이드]는 고양시의 다문화 가정 축구단을 보여주었다. 아이들이 한국 사회에서 즐겁게 공부하고 운동하고 생활하는 모습을 그려내는 모습을 보니 차별의 그늘이 결코 들어서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주민들이 만든 수준급의 뮤직비디오도 개막식을 통해 선보이게 됐다. 마붑 감독의 [메로가오]는 네팔 민요와 한국 민요가 만나 한데 어우러지는 감성적인 연출을 통해 두 민족 간의 소통, 나아가 다문화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 사람들 간의 소통을 아름답게 그려내었다. 아웅틴툰 감독의 [꽃이 너를]과 소희, 로빈 감독의 [내가 갈 때까지 기다려줘]는 네팔 출신 이주민
가수인 로션 씨의 노래를 위해 만든 뮤직비디오이다. 특히 [내가 갈 때까지 기다려줘]는 이주민 아티스트 네트워크의 사람들이 함께 공동제작 및 출연을 했는데 작품의 완성도도 놀라웠지만, 앞으로 이들의 작업이 기다려지기에 인상에 깊게 남았다.

  권미정 감독의 [샤방샤방 샤랄라]의 한 장면 [출처: 이주민방송(MWTV)]
개막작 외에도 [블루스를 부르는 시타]나 [투명인간], [더티 프리티 씽]과 같은 외국 작품들과 한국 감독들이 연출한 [샤방샤방 샤랄라], [다솜아 사랑해], [이빨 두 개] 등의 작품도 함께 상영되었다. 서로 다른 국가에서 만들어진 작품이다 보니 같은 이주민에 대한 영화라고 할지라도 접근하는 주제나 소재 등이 정말 다양했다. 때문에 한국 이주민의 삶에 있어서도 특정 주제에만 천착하지 않게 되고, 외국 이주민들은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어떤 문제를 갖고 있는지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관객과의 대화 중인 [동행]의 김이찬 감독 [출처: 이주민방송(MWTV)]
그 중 김이찬 감독의 [동행]은 2003년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올해 영화제에서 초청 상영되었다. 감독과의 대화에서 그 이유를 들어볼 수 있었다. “영화는 8년 전의 이야기를 다루지만, 임금체불의 현실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김이찬 감독은 현재 안산의 ‘지구인의 정류장’에서 지역 이주민들에게 영상 미디어를 교육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한국어나 기본적인 생활방법, 노동문제 상담 등 여러 면으로 이주민들을 도우며 동시에 함께 생활하고 있다. 남의 시선으로 촬영되는 것보다 당사자의 목소리로 스스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보고 있는 분인 만큼 영화제 관객과의 대화에서도 미디어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외부의 규정이 아니라 이주민 분들이 자기 삶을 스스로 얘기하는 것.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돕는 것. 그런 게 중요한 거 같아요.”


제 7회 이주민 영화제를 꿈꾸며

영화제 집행위원장 아웅틴툰 씨는 다음 해에도 영화제를 하면 좋겠지만 당장은 엄두가 나질 않는다고 말했다. 이번 영화제만 하더라도 다른 외부지원이 거의 없이 치러졌던 탓에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기 때문이다. 재정 상 스태프를 고용할 여력이 되질 않아서 손에 꼽는 이주민 방송의 내부 인력으로만 영화제 자원활동가들을 관리했다. 하지만 영화제 직전에 관리 책임을 맡던 이주민 활동가가 원래 살던 나라로 급하게 돌아가 버리는 일이 발생했다. 설상가상으로 일이 몰아칠 때가 되니 많은 자원활동가들에게서 연락이 끊겨버렸다. 결국 새로 자원활동가를 모집하고 영화제 시작 4일 전에 오리엔테이션을 새로 하게 되었다. 그 책임과 부담은 모조리 영화제를 기획했던 이주민 방송에서 떠안게 된 것이다.

그리고 제1회 영화제 때부터 시행한 무료상영의 원칙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 경제 사정 때문에 보러오지 못하는 이주민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영화제 기간 대관료나 준비 비용은 대부분 정기/비정기 후원을 통해 충당이 된다. 게다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서울 이주민 영화제’가 끝나면, 서울 근교 이주민들이 많이 살고 있는 지역(이를테면 마석, 김포 등)을 돌며 상영회가 시작된다.

어떻게 보면 ‘맨땅에 헤딩’을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영화제를 끈질기게 해오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직 손을 놓기에는 다문화 사회가 제대로 정착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얼마 전에 열린 씨지브이(CGV)에서 주최한 ‘제 3회 다문화 영화제’는 ‘다문화’를 전면에 걸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에 살고 있는 이주민의 삶과는 전혀 무관했다. 그저 외국영화를 싼 값에 상영하는 수준에 그쳤다. 한국의 다문화 정책은 어떠할까.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라고 해서 사회경제적인 지원을 해주는 정책도 있지만, 부모 둘 다 외국인인 경우에는 그 가정과 아이는 단 한 푼의 지원도 받지 못한다. 한국 사회에서 다문화 가정이 되려면 부모 둘 중 한명은 한국인이어야 한다. ‘다문화’라면서 이런 아이러니가 어디 있을까?

그렇지만 다문화 사회 한국에는 아이러니가 곳곳에 널려있다. 달리 말하면 이주민들이 해야 할 말이,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사소해 보일지 몰라도 이주민들의 일상 하나하나는 정말 재밌는 때론 서글픈 한 편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인종, 국적 등으로 섣불리 가치나 우열을 판단하기 전에, 혹은 그렇게 판단했더라도, 이주민 영화제와 같은 열린 창구를 통해 이주민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는 것은 어떠할까? 우리가 옆집에 사는 사람과 낯설 듯이 이주민과 낯설지도 모르겠지만, 딱 그만큼만 낯설 뿐임을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

* 주1 - 2011년 이주노동자 영화제에서 이주민 영화제로 이름이 바뀌었다. 영화제 주최 측인 이주민 방송도 원래 이름은 이주노동자의 방송이었다. 왜 이렇게 바뀌었을까? 그것은 이주아동, 결혼이주여성 등 수많은 배경을 가진 이주민들이 한국사회에 함께 살게 되면서 방송국과 영화제가 포괄해야할 대상이 ‘이주노동자’라는 말로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판단으로 2011년 이주노동자의 방송 총회에서 이주민 방송, 이주민 영화제로 수정하는 것이 의결되었다. 또한 편의상 영어 약자를 기존의 MWTV(Migrant Worker's TV)에서 수정하지 않는 방향으로 해서 최종적인 영어 명칭은 Migrant World TV가 되었다.

* 제 6회 이주민 영화제 지역 상영회 일정
- 마석: 09/17, 창원: 09/23-25, 안산: 10/9, 고양: 10/14-15, 부천: 10/30, 김포: 11/6

* 문의
- 이주민방송(MWTV) http://mwtv.kr 이주민영화제 http://mwff.org

[필자소개] 미르(ACT! 편집위원회)
2009년 미디액트 독립다큐멘터리제작과정 13기를 수료하고 2010년에는 이주노동자의 방송(현 이주민 방송 MWTV)에서 뉴스 / 다큐제작 자원 활동을 했다. 2011년부터 편집위원으로 하나씩 배워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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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 , MWTV , 이주민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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