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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79호 이슈와 현장] 우리는 어떻게 희망을 만들어 가는가

작년 이맘때다. 2011년 핫이슈였던 ‘희망버스’가 처음 부산 영도로 출발했던 것이. 그 때 나는 밭에서 농사일을 하고 있었다. 생활교육공동체 공룡(이하 공룡)도 참여 제안을 받았지만 선뜻 가지 못했던 건 마을 활동을 지향하는 단체인 공룡이 ‘왜?’ 희망버스에 참여할 것인지 정리를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 ‘왜?’라는 물음은 사실 ‘어떻게’ 참여할 것인지에 대한 물음이었다. 활동가들 각각이야 마음속으로 120% 동의한다고 해도, 그저 일회성으로 참여하고 끝날 활동이라면 지금 이곳에서 해야 할 일들을 하는 게 먼저였다. 비정규직・정리해고 문제는 우리 삶과도 맞닿아 있으며 자본주의에서 벗어난 삶을 실험하는 공룡의 일이기도 하지만, 실제 그것을 해결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공룡이 지키고자 하는 몇 가지 원칙이 있었다. 일단 얼굴 맞대고 함께 살아가는 지역, 마을을 중심으로 활동하기. 이름만 걸지 않기. 그리고 ‘치고 빠지지’ 않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 안에 고립되지는 말자는 원칙 또한 갖고 있었다. 그 배경은 공룡이 처음 만들어질 때 ‘용산 참사’ 현장에 연대하는 활동을 했던 것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9년 재개발 광풍과 폭력진압으로 용산참사가 일어났다. 공룡은 우리가 살아가고자 하는 사직동이 재개발 대상지였기 때문에라도 용산참사를 당사자의 일처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공부모임에서 시작해 단체를 구성하는 시기였던 그 때, 밖으로 드러난 공룡의 첫 활동은 지역에서 ‘용산 참사’를 알리고 힘을 모아 후원금을 만들었던 것이다.
우리가 지역에서 살아간다고 해도 우리가 부딪치게 되는 문제들은 국내 혹은 전 세계적 문제에 닿아 있고 결국 우리가 지향하는 가치라는 것이 지역에만 한정될 수 없다는 것, 살아가는 배경은 마을이지만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만들고자 하는 가치들은 전국적이고 세계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확실했다. 때문에 자본주의 사회의 문제점에 대한 예민한 감수성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 지역 안에 갇히는 것이 아닌 지역 밖으로 열려진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 우리가 추구하는 삶의 가치는 보다 넓은 관계들을 만들어 가야 한다는 등등의 고민을 바탕으로 한 첫 발걸음이었다.

그렇게 우리의 연대 활동은 이어졌다. 그러니까 치고 빠지지 않고, 이름만 걸지 않고, 지역에 기반해 더 열린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면 되잖아!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그럴 수 있는 방법으로 주로 택하게 된 것이 퍼포먼스 같은 형태의 직접 행동들이었다. 우리 삶의 공간이 아닌 곳에서 벌어지는 연대 활동을 지역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단순 참가 이상으로 지역에서 함께 준비할 수 있는 거리를 만들어내고자 했던 것이다.
그리고 공룡은 마을 안에서의 활동과 삶을 기반으로 실제 살아가는 방식으로서의 공동체를 지향하기 때문에 이론적 활동이 아닌 직접적인 활동, 선언과 천명이 아닌 수많은 과오와 시행착오를 반복한다고 해도 직접적으로 실험하고 살아가며 체득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삼는다. 때문에 명분만 세우는 연대가 아닌, 실질적으로 공룡의 지향을 드러낼 수 있는 직접 행동을 중심으로 연대 활동을 전개하자고 했다. 뭘 하나 해도 공룡스럽게 하자는 이야기를 우리 스스로 많이 되새겼다.
5차 희망의 버스까지 우리는 탑승했고 매번 지역 사람들과 함께 준비하고 직접 행동할 수 있는 거리들을 찾으려 노력했다. 취지에 동의하고 함께 하고자 한 사람들은 우리가 상상했던 이상으로 힘을 모아주고 함께 부산으로 향해주었다.
2차 희망의 버스에서는 밥차를 했다. 연잎밥과 묵밥, 부침개와 직접 만든 맥주로 장대비와 최루액으로 흠뻑 젖은 사람들과 함께 지친 새벽을 달랬다. 청주에서 함께 갔던 분들과 공룡 모두 옴팡지게 고생을 했지만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사실 초면인 분들이 많았는데 함께 호흡을 맞춰 뭔가 만들어 나눌 수 있다는 것에 살짝 놀랍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 이후로 자전거 선전전, 소금꽃 나무 책 나눠 읽기 등을 청주에서 진행했고, 3차 4차 5차에 걸쳐 길거리 희망 라디오라던가, 소원 연등 만들어 달기라던가, 조남호 잡기 놀이터 운영, 지역 간병노동자 투쟁을 알리는 소금꽃 계란 나누기 등등의 활동을 만들어 갔다. 함께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다음엔 어떤 액션을 할 것인지 아이디어를 모으기도 했고, 어떤 액션을 할 것인지가 정해지면 지역 사람들에게 알리면서 후원을 받기도 했다. 김치나 잡곡, 계란 같은 식재료를 가져오는 사람들도 있었고, 직접 함께 부산으로 가지는 못해도 물품 준비나 음식 준비를 도와주러 오신 분들도 있었다. 또한 부산에 내려가서도 매번 현장 상황의 급박함 때문에 난관에 부딪히고 그때마다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경험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생겨난 것이 우리에게는 가장 크게 남는 것이었다. 자연스럽게..라고 하면 거짓말이고 다분히 의도적으로 ‘청주소금꽃’이라는 희망버스 후속 모임이 만들어졌다.

  상단 왼쪽부터 1차 희망버스 ‘청주 시내 자전거 선전전’, 2차 희망버스 ‘희망의 묵밥’, 3차 희망버스 ‘연대의 연등’ [출처: 청주 소금꽃]


청주소금꽃은 정리해고 비정규직 문제에 관해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활동을 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느슨한 형태의 모임이다. 가입 절차나 회원 자격은 따로 없고 희망버스에 오른 모두가 승객이었던 것처럼 함께 행동할 때 누구나 청주소금꽃 멤버라고 생각하고 있다. 처음에 모임을 만들 때는 정말 한 달에 한 번 음료수 사들고 지지 방문 가는 정도라도 좋겠다고 이야기 나눴는데, 생각했던 것 보다 청주소금꽃 사람들은 조금 더 자주 만나게 됐다. 모임을 만들던 즈음 쌍용차에서 정리해고 이후 19번째 죽음이 발생했고 사람들이 희망텐트라는 이름으로 모이고 있었다.
우리는 손쓰지 못했던 용산의 죽음이 있었고, 천신만고 끝에 살아 내려온 김진숙이라는 투쟁하는 이의 목숨이 허공에 있었다. 그리고 쌍용차 정리해고 바람에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다. 희망버스에서 외쳤던 ‘해고는 살인’이라는 구호가 완벽한 현실이라는 것을 새삼 오싹하게 느낄 수 있었다. 1박 2일 일정으로 열리는 쌍용차 1차 포위의 날에 ‘희망까페’와 ‘소원 연등 달기’를 하기로 하고 사람들에게 알렸는데, 이야기를 꺼내면 자기도 애태우고 있었다며 선뜻 나서는 사람이 금방 10명 남짓이 모아졌다.

쌍용차 1차 포위의 날에는 눈이 많이 왔다. 눈 오는 날 노숙은 물론 쉽지 않았지만 서로 감정적으로 주고받는 것이 컸던 것 같다. 비정규직 정리해고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는 생각과 죽음만은 막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게 되었지만, 따뜻한 커피를 찾아 모여든 사람들과 나누었던 수다가 참 좋았고, 함께 걸었던 소원 연등이 무척 아름다워 보였던 것도 사실이다. 공장 앞이라는 공간이 주는 무게감에도 서로 뿜어낸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던 것과 쌍용차 투쟁 노동자들과 만나 면대 면으로 전해들은 이야기 등이 우리가 계속 활동을 이어나가게 되는데 영향을 준 것도 맞는 것 같다. 2차 포위의 날에는 더 열심히 해보자고 용등 만들기를 시도하게 되었고, 지역 사람들로부터 연대메시지가 적힌 용 비늘을 받아 모았다. 2차 포위의 날 당일에는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용 만들기에 성공해 ‘비정규직 철폐용’과 ‘정리해고 반대용’ 을 지부 사무실 위에 설치할 수 있었다. 쌍차 지부 노동자들이 매일같이 드나드는 지부 사무실 위에 용 두 마리를 달아 놓으니 혹시라도 귀찮은 물건을 가져다 놓은 건 아닌지 한편으로 걱정되기도 하고, 더불어 공장 앞의 하루하루가 궁금해졌다. 한 번 다시 오겠다고 약속한 것이 이후 활동으로 이어졌다.

청주소금꽃이 쌍차에 연대하러 간다. 맛있는 음식과 깨알 같은 공연을 준비해서. 이것이 ‘고갈비 프로젝트’와 ‘희망텃밭’의 내용이다.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모이는 포위의 날이 아니라 평일에 늘 지부에서 생활하는 쌍용차 동지들을 면대 면으로 만나러 간 것이다. 20번째, 21번째, 22번째 죽음이 이어지는 와중이었다. 분위기는 무거웠고 선뜻 무언가를 제안하기 조심스럽기도 했지만 다행히 쌍차 지부 동지들은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고 밤새 노래 부르고 이야기 나누면서 서로 힘을 주고받았다. 청주소금꽃이라는 이름으로, 말도 안 되는 정리해고와 죽음 앞에서 안타까워하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한 사람이 아니라, 함께 움직이고 무언가 만들어 내고 힘이 되어줄 수 있는 여러 명으로 쌍차 동지들을 만날 수 있었던 우리도 큰 힘을 받았다.

그 밖에도 지역 선전전이라든가 분향소를 통해 정리해고 문제를 알리는 활동을 하기도 했고, 희망광장 떡메치기 퍼포먼스에서 전국 각지의 투쟁하는 사람들과 만나기도 했다. 때로는 상황이 주는 무게감을 극복하기 위해 밝아지려 노력했고 때로는 내용 없는 이벤트로 흘러가지 않도록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아마 희망버스에 참여한 사람들이건 쌍용차 분향소를 찾는 사람들이건 비슷한 경험들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희망버스를 이야기할 때 자주 나오는 ‘즐겁게’라는 말은 이런 경험들을 포함하는 말이어야 할 것 같다.

  상단 왼쪽부터 희망텐트 ‘정리해고 반대 용등’, ‘희망텃밭’, ‘고갈비 프로젝트’ [출처: 청주 소금꽃]


‘희망’으로 이야기되는 일련의 과정을 겪으며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것은 어떤 운동적 가치나 의의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함께 하기 위한 전제조건처럼 운동의 의의들이 거론되고 그 가치들이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제시되기는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안에서 여전히 살아가고 또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 희망버스를 진행하면서 그 안에서 살아가는 한진중공업 노동자들과 그 가족, 그리고 희망버스를 타려는 많은 사람들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 희망텐트에 참여하면서 쌍차 노동자들과 가족들, 그리고 언제나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참여자들을 바라보며 활동들을 전개해야 한다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어쩌다보면 놓치기도 쉬운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죽음 앞으로 내몰리는 사람들에게 그래도 생명의 끈을 지켜야 한다는 것과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살고자 하는 희망과 또 그것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연대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것을 나름의 방식으로 고민하고 표현해왔다.
여전히 초기의 고민은 이어지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공간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어떻게 비정규직 정리해고 문제를 함께 공유하고 해결해나갈 것인지, 우리 삶을 어떻게 바꾸어 나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과 동시에 지속적인 연대 활동은 어때야 하는지, 의무감이 아니라 자발적인 욕구와 에너지로 일을 하되, 다른 이들의 삶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도 함께 하고 있다. 희망버스가 멈추지 않고 이어지는 것과 같이 우리의 활동도 이쯤해서 정리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고, 그 고민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 중에 있다. □

* 관련 사이트
청주 소금꽃 http://blog.jinbo.net/cj85


[필자소개] 김설해(생활교육공동체 공룡)
진주시민미디어센터, 용산의 촛불미디어센터 레아, 독립다큐 땅의 여자 조연출을 거쳐 지금은 생활교육공동체 공룡에서 활동 중입니다. 공룡에서는 주로 노는 것과 연대 활동, 교육 등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공룡 블로그: http://gongryong.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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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 희망버스 , 소금꽃 , 공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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