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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81호 이슈와 현장] 미디어교육지원법과 교육 현장의 사이에서

미디어교육 교사의 활동 전망 찾기

[편집자 주] 지난 9월 20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는 ‘미디어교육 활성화를 위한 법제정비 방안 1차 토론회 - 시민사회와 미디어센터의 미디어교육 법제 방향에 관한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본 원고에는 토론회에 대한 짧은 소회와 경희령 미디어교육 교사가 생각하는 지원 방향에 대한 의견이 진솔하게 담겨있습니다.

  2012. 9. 20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 / 미디어교육 활성화를 위한 법제정비 방안 1차 토론회


미디어교육지원법에 대한 1차 토론회 이후 벌써 두 달여의 시간이 흘렀다. 처음 법안이 발의되고 미디어교육을 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마다 법안 이야기가 회자되었을 때, 나 또한 미디어교사로서 미디어교육지원법이 어떤 내용이냐, 무슨 지원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냐 등 그 동안 사느라 바빠 한 켠에 묻어 두었던 미디어교육과 미디어교사에 생각들이 머릿속에 정리되지 않은 채 맴돌았던 것 같다.

토론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냥 한 사람의 미디어 교사로서 그 자리에 앉을 것이 아니라 좀 더 많은 사람의 의견을 듣고 같은 생각을 가진 여러 사람들의 힘을 모으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었다. 법안이라는 것이 잘 뜯어보지 않으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말들로 쓰여 있어서 사람들이 내용을 이해하고 생각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도 했지만, 서로 다른 교육 현장을 지켜야하는 입장의 교사들이 함께 고민을 모아내기가 무척 버거웠던 것 같다. 나 역시 토론회가 끝난 뒤 법안에 대한 고민과 생각을 또 다시 ‘먹고사는 문제’를 핑계 삼아 우선순위에서 내려놓았다. 지금 내 우선순위는 교육현장에 있다. 현장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게 업이니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미디어교사로서 이게 지금 우리들의 한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법안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면서 주변에서 자주 마주치는 미디어 교사들과 미디어교육지원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면서 미디어교육을 실행하는 주체로서의 ‘우리’에 대해 새삼 생각해 보았다. 오랜 시간 동안 미디어교육을 하면서 네트워크다 뭐다 생각과 고민을 풀어 놓을 모임도 많았고, 교육을 함께 하면서 혹은 공감대와 관심사가 같아서 친해진 사람들도 많은데, 왜 ‘한 사람의 미디어교사’로서만 존재하고 힘 있게 행동하는 ‘우리’가 되지 못하는 걸까.

처음에는 토론회를 준비하면서 비슷한 일을 하고 비슷한 처지에 있는 여러 사람들의 생각을 확인하고 모을 수 없어 답답한 마음이 컸기 때문에 이런 궁금증이 떠오른 게 아닌가 생각했다. 하지만 토론회가 끝나고 다시 생각해보니 미디어교육에 대한 기본적인 철학이나 기존 교육 현황에 대한 부분이 법안에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았던 것에 대한 나름의 반응이었던 것 같다. 각자 ‘그 동안 자신이 해왔던 활동이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게 아닐까?’ 하는 의심과 회의, 그리고 앞으로 교육 활동 외에 미디어 교사로서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에 대한 자각, 그와 더불어 이런 법안이 자칫 ‘앞으로의 활동이나 생계를 위협하지는 않을까?’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등이었을 것이다.

법안을 꼼꼼히 읽은 미디어 교사라면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현장에서 지키려고 노력했던 미디어교육의 철학과 방향은 다 어디로 갔나?’, ‘미디어교육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 아닌가? 그런데 왜 학교 교육만 왕창 지원하는 거지?’, ‘학교 교육 잘 받아도 시간당 3만원인데, 내 임금은 누가 어떻게 보장해줄 수 있는 걸까?’

그 외 다양한 고민과 질문이 꼬리를 물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법안을 만든 사람들이 그동안 미디어교육 영역에서 활동해왔던 사람들의 노력과 성과를 전혀 알지 못한 채 법안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무려 10년이나,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전국에서 무진장 열심히 해 왔는데 어떻게 그걸 모를 수 있는지 알 길이 없지만 말이다. 참 힘 빠지는 일이다.

2005년 미디어교육을 처음 시작한 뒤 지금까지 미디어교사로서 했던 경험, 다른 교사들과 이야기 나누며 공감했던 교육에 대한 생각, 그리고 교육 현장에서 함께했던 사람들에 대한 기억. 돌이켜보면 미디어교육 현장은 내게 새로운 영역에서 새로운 활동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내가 주체가 되어 활동을 함께 꾸려가고 있다는 자부심을 주었다. 미디어교육이 비민주적인 사회적 소통의 구조를 바꾸어보자는 운동의 차원에서 시작된 것이라는 점도 내가 미디어교육에 대해 가지는 자부심 중 하나였다. 내가 미디어교육 교사로서 가지고 있는 이 자부심이 활동을 직업으로 이어가게 된 원동력이 된 것이다.

하지만 이 자부심을 지키기가 참 힘이 든다. 작년에 처음으로 미디어교사와 관련된 연구에 참여하면서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러 교사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기존에 지역에서 활동하시던 분들도 있었고, 양성 과정 등을 통해 미디어교육 교사를 이제 막 시작하려던 분들도 있었다. 인터뷰 내용에 당장 눈앞의 교육 현장에서 입에 풀칠하며 버티기도 힘들다, 미디어 교사를 교육 활동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단순 강사로만 여기는 현장이 많다, 사명감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직업으로 하기 어렵다, 일정한 수준의 지위를 보장 받거나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등 공감 가는 내용들이 많았다.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기자재를 이고 싸고 동동거리면서 살아가는 시간당 몇 만 원짜리 시간제 노동자, 말이 좋아 프리랜서지 학교 가면 학교 교사의 비위를 맞추고 기관 가면 기관 담당자의 비위를 맞추어야 하는 언제 일이 끊길지 모르는 비정규직 노동자, 교육이 활동으로서의 의미를 갖기 위해 또는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사전 모임이다 회의다 평가서다 다양한 시간 외 노동을 하면서도 ‘활동’과 ‘생계’의 미묘한 경계에서 헛발질 하지 않기 위해 진땀 흘리며 열심히 버텨야 하는... ... 사실, 냉정하게 말하면 이게 바로 우리의 현실이다.

최근 2~3동안 현 정권의 영향으로 미디어교육에 대한 지원이 주춤하면서 다양한 영역에서 펼쳐지던 미디어교육활동이 침체기였는데, 그 때문에 미디어교육네트워크나 이런 저런 모임들도 덩달아 주춤하면서 교사들이 혼자 현장에서 고군분투해왔던 것 같다. 다 같이 어려워도 가장 어려운 것은 현장을 꾸려가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서로 소통하고 변화해야하는 교육 현장을 꾸려가는 교사들이 조건이 나쁘다고 혹은 상황이 어렵다고 포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보조교사가 없어도, 강의료가 턱없이 적어도 교육 현장을 보전하기 위해서, 사람들과의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서 또는 정말 할 수 없이 생계를 꾸려가기 위해서 적어도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교사들은 그 어려운 현장에서 어렵게 버텨왔을 것이다. 몇몇 사람들은 너무 힘들다고, 직업적으로 할 수 없다고 떠나가도 말이다.

이제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미디어 교사들은 왜 ‘나’에서 ‘우리’가 되지 못하는 걸까?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미디액트를 비롯하여 다양한 네트워크를 통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애썼는데도 교사들의 모임이 보다 더 활성화되지 못했던 것은 현재의 구조-자발적 모임이 아닌 필요에 의한 ‘조직’, 혹은 예산 및 인력 부족으로 지속적으로 이어지지 못한 미디어센터 교사 지원 구조-에서는 어려운 일이라는 뜻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디어교육지원법은 꼭 필요한 법인지도 모른다. 다만, 그 모양새가 지금과 같아서는 안 된다. 오해가 있을지 모르니 말해 두지만, 미디어교사 모임이 필요한 것은 미디어 교사들의 권익을 보장하고 옹호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1차적 목표는 아니다. 어떤 현장에서든 미디어교육이 제대로 실행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조건이 미디어 교사들의 역량이기 때문이다. 똑같은 교안과 교육 주제로 교육을 진행해도 어떤 교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이해와 교감의 정도가 달라지기 마련이다. 그 때문에 여러 기관과 단체에서 진행했던 미디어 교사 양성 과정에서 빠지지 않고 언급되었던 것이 교사로서 미디어교육의 철학에 공감하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열린 자세를 갖는 것이라 하지 않았던가. 미디어교육이 누구에게나 필요하고, 민주적 소통에 대한 확산이 절실하다면 현장을 만들고 꾸리고 이어가는 미디어 교사를 확실한 미디어교육의 주체로 인정해주어야 한다.

법안에 이와 관련된 고민의 흔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미디어교육사’라는 형태로 교사 양성의 중요성을 일자리 창출(혹은 보장)과 엮어 설명하고 있는데 그 지위가 애매하다. 모양새는 평생교육사와 유사한데 내용은 문화예술교육사와 비슷하다. 말로만 체계적으로 양성하고 책임진다 하지 말고, 적어도 기존에 있는 법인 문화예술교육사 보다는 나은 법을 만들어주면 좋겠다.

특히 학교 미디어교육 지원과 관련하여 미디어교육 교사가 학교장이나 담당교사의 권한에 휘둘리지 않도록 독립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주고, 사회 미디어교육 지원과 관련하여 미디어교육사를 1~2년제 계약직으로 기관에만 배치할 것이 아니라 독립적인 활동가능성을 담보하는 독립적 활동가를 지원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제 곧 12월, 다들 바쁜 와중에 대선을 앞두고 법안이 어떤 방향으로 가게 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디어교육 진영에서도 앞장서서 몇몇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있고, 교사들도 네트워크모임을 통해 자기 의견을 전달하고 있다. 정말 어렵기는 하지만 좋은 법이 만들어져서 미디어교사들이 어깨 펴고 맘껏 활동할 수 있다면 가장 좋겠고, 이도저도 아니라 법이 만들어지기 어렵다면 미디어교육에 발 담그고 먹고사는 우리들부터 좀 달라져야 할 것 같다. 미디어교사들이 지금보다 더 자기역량에 욕심을 가지고, 교육의 질에 관심이 많아지고, 활동 전망을 가진 자기 현장이 늘어날 수 있게 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각자 한 번 생각해보자. 그리고 법 만드는 사람들에게 더 적극적으로 힘 있게 어필하자. 창의적으로!

자, 그럼... 숨 한 번 크게 쉬고,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상상하며 삼삼오오 ‘우리’가 되어보길. □

[필자소개] 경희령(미디어교육 교사)
2005년 미디어교육을 시작해 지금까지 다양한 현장에서 교사로 활동하고 있다. 한때 주안영상미디어센터에서 스텝으로 일 하기도 했고, 창업지원으로 미디어교육 집단을 운영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부천 지역 미디어교육 활동가들과 함께 ‘다락’이라는 모임을 통해 교육과 삶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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