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적미디어운동연구저널 Act!

[ACT! 83호 Me,Dear] 나의 미디어교육 원정기

태어나서 한 번도 교사가 되어 학생들을 가르치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지만, 어쩌다 보니 교육학과에 들어갔고 지금은 영화를 만든다는 걸 핑계로 영화반이나 UCC제작반 강사로 활동 중이다. 살아오며 미디어운동에는 특별한 관심이 없었지만 그동안 개인 작품 활동을 하거나 학생들의 영상제작을 도와주며 늘 강조한 것이 '말하고 표현하고 싶은 것을 찍자'였으니 딱히 미디어운동과 동떨어진 삶을 산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 기회를 통해 내가 10년간 학생들과 만나며 해왔던 일들을 정리하며 미디어운동이 그리 거창하거나 생활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걸 말해볼까 한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2002년 2월, 서울 종로YMCA에서 주최한 청소년영상제작워크숍에서 자원봉사자를 모집하기에 지원했다. 5일간 초중등학생들이 영상제작을 배우는 동안 강사처럼 멘토처럼 도와주는 역할이었는데, 과외를 제외하곤 누군가를 가르쳐본 경험이 없었으면서도 무모하게 지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 담당 학생들은 같은 중학교 방송반 친구들이었기 때문에 다른 모둠들보다 친해지고 함께 움직이는 데 훨씬 수월했다.
우리 모둠은 어른들이 학생들을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게 다 어른들 탓이다'라는 내용의 단편영화를 제작했다. 학생들이 지하철 무임승차를 하고,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고, 친구들의 돈을 빼앗는 내용이었는데 찍고 나서 가편집본을 보며 너무 심심하다고 느낀 나는 지도교사의 본분을 잊고 연출자의 자세로 조언을 했다. 아마 다음날 전체 시사회 시간에 맞추기엔 추가촬영이 힘든 여건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미 찍은 건 어쩔 수 없으니 내레이션과 프리미어의 필터 기능을 이용해 조금 손을 보자고 말하고는 전체 영화를 좌우반전시켜서 거울에 비친 모습으로 바꾸고 어른들을 꾸짖는 내레이션을 추가했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모습을 그대로 흉내 내는 거울 같은 존재라는 메시지의 영화는 결국 <거울>(*주1)이라는 이름으로 완성됐고 시사회 후 GV 시간에 제작한 학생들의 설명이 있기 전까지는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심심하고 난해한 영화를 만들기에 이르렀다.

* 주1) 1년 뒤 김성호 감독의 <거울 속으로>란 영화가 개봉했다.

  사진반 활동 모습
2002년 4월, 4학년이 되어 교생실습을 나갔다. 하필 지도교사의 담당 동아리가 사진반이라 한 달간 사진반 보조교사 역할까지 해야 했다. 사진이야 자주 찍었지만 여행이나 행사가 있을 때만 찍는 정도였지 작품 활동으로는 생각하지 않았던 터라 사진반 활동은 꽤 낯설었다. 게다가 사진과 동영상은 카메라로 찍는다는 속성을 빼곤 너무도 다르지 않던가. 담당교사가 나에게 수업 전체를 맡겼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수업 전날 부랴부랴 사진책을 뒤져서 추려낸 딱딱한 사진이론과 재미있게 찍어보자는 뻔 한 말뿐이었다.
하루는 학교 안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고, 다른 날은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인근 관공서 건물로 찾아가서 봄날의 기운을 한껏 담았다. 당시는 디지털카메라가 극히 드물 때라 당연하게도 필름카메라로 찍었고, 다음 시간이 되어서야 각자가 찍은 사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찍어온 사진은 꽃 접사 사진이나 친구들 얼굴이 대부분이었다. 특별히 사진을 통해 무언가를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는 발견하지 못했다. 아무 것도 없진 않았을 테지만 그 안에 담긴 그들의 재미있고 소중한 순간들을 내가 무심하게 바라봤을 수도 있고, 어쩌면 미디어제작은 예술을 하거나 대단한 사회적 발언을 하는 사람만 하는 것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진실은 알 수 없지만 명확한 건 이때의 난 미디어교육에 대해 아무 생각도 갖고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2003년, 대학 졸업 후 영화를 만든다고 큰소리치며 가정용 캠코더로 친구들과 지인들을 데리고 영화를 찍기 시작했다. 몇 번을 찍어도 나아질 기미가 없자 영화를 가르쳐주는 강좌를 들으며 반년쯤 공부를 했다. 그러나 졸업 작품을 찍은 이후에 오히려 나의 상상력과 제작 능력 사이의 간극을 절실히 느끼며 자꾸 움츠러들었고 언젠간 찍겠지란 막연한 생각을 하며 단편영화 시나리오 쓰기에만 몰두했다. 주변에서 보기엔 뭔가 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었겠지만, 실제로는 그냥 백수였다. 결국 돈이 필요해서 입사한 스포츠 관련 콘텐츠 업체에선 축구동영상 강좌도 만들고 경기도 찍었지만 둘째 달부터 월급이 밀려 세 달째에 그만두기도 했다. 이래저래 내 인생의 암흑기. 미디어교육 따윌 생각할 겨를은 없었다.

우연 혹은 필연

2006년, 교육학과 출신이다 보니 교사인 친구들이 꽤 있는데 한 친구가 방송반을 맡았다고 도와줄 수 있냐고 물었다. 뭐가 필요하냐고 했더니 방송반 학생들에게 동영상 편집을 알려달라고 했다. 강사비는 없었지만 재미있는 기회라 생각하고는 하겠다고 대답했다. 일주일에 한 번, 파주에서 노원구까지 두 시간씩 걸려 찾아가서는 프리미어 사용법을 가르쳐주었다. 수업에서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선생님도 세 명쯤 참석해서 열 명이 넘는 학생들을 두고 강의를 진행했다. 모두가 능숙하게 프로그램 조작법을 익힌 것도 아니고 학교에 있는 컴퓨터가 편집을 위한 최적의 상태도 아니었던 지라 여러 모로 부족했지만, 방송반 학생들은 스스로 촬영부터 편집까지 할 수 있게 되었고 나도 가르치는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다음해엔 친구가 특별활동 시간에 단편영화반을 만들어서 본격적으로 영화제작을 가르치기도 했다. 물론 이번에도 강사비는 없었고 친구가 밥을 사주는 것이 전부였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조금 괘씸하지만 이후에 미디어교육을 하게 된 계기를 마련해주었으니 퉁 쳐도 될 것 같다.
학교로부터 장비 지원은 전혀 받지 못했다. 방송반에는 캠코더와 편집용 컴퓨터가 있었지만 영화반에는 프로젝터와 스크린이 달린 시청각실은 제공됐어도 촬영을 위한 장비는 전무한 상태였다. 꼭 제대로 된 장비가 있어야만 뭔가를 만들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에 학생들의 집에 있는 장비를 조사했고 몇 명의 학생들 집에 장롱 캠코더가 고이 모셔져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기본적인 조작법 수업은 디지털 카메라로 진행하고 실습작품은 캠코더로 찍었다.
신기하게도 학생들이 만드는 영화의 주제는 대동소이했다. 남학생들은 학교폭력과 쌈박질이 등장하는 시나리오를 써냈고, 여학생들은 개인적 고민이나 짝사랑, 친구간의 갈등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아직까진 아이들의 상상력은 교문을 벗어나지 못했다. 두 학기 간 몇 편의 실습작품과 <소심한 평화주의자>란 졸업 작품을 만들면서 2006년을 마감할 수 있었다. 미디어교육에 발을 들이게 된 계기는 이렇게 갑자기 찾아왔다.

2007년 여름, 처음으로 강사비를 받는 일을 시작했다. 동네 청소년문화의집에서 방학 동안 활동할 특별활동 강사를 모집하길래 다른 학교를 제껴두고 북산고에 간 서태웅의 심정 (*주2)으로 지원했다. 마침 UCC란 단어가 사회 전반을 흔들고 있을 때라 'UCC완전정복'이란 이름의 강좌를 개설하고는 학생들을 모집했는데 초등학생들과 다른 수업의 강사로 활동 중인 대학생 한 명이 참가해서 10명가량과 함께 한 달간 12회의 수업을 진행했다.
학생들을 가르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수업 내용, 강사의 자질, 학생의 수업태도, 시설과 장비 등 많은 요소가 있겠지만 몇 년간 가르쳐온 경험에 비춰볼 때 가장 절실한 건 무엇보다 '참여 동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아무리 훌륭한 강사라도 억지로 끌려오거나 전혀 관심이 없는 학생까지 가르치는 건 어려운 일일 테고 반대로 배우고 싶은 동기가 충만한 학생들과 함께라면 현실적인 제약은 그저 부수적일 뿐 얼마든지 재미있는 수업을 만들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UCC반에 온 학생들 중 절반은 원래부터 컴퓨터로 뭔가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학생들이었다.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고 웃기는 동영상이 있으면 따라서 만들고 싶어 할 정도의 의지가 넘치는 학생들은 강사의 입장에서 무척 반가운 존재였다. 반면에 방학 때 학원을 가거나 돈이 많이 드는 프로그램에 들어가진 못하지만 집에서 자식이 가만히 노는 꼴을 보지 못하는 엄마를 가진 아이들은 억지로 무언가를 배워야 했는데 그런 연유로 찾아온 몇몇 학생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많은 아쉬움을 자아냈다.
자기를 소개하는 영상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서 문화의집 마당에 있는 개미와 꽃을 찍거나 직접 그림판에서 그린 만화를 일일이 사진으로 저장한 뒤 무비메이커에서 묶는 등 완성도가 그리 높진 않아도 학생들 자신이 할 수 있는 수준에선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 몇 개의 동영상을 만들었고, 마지막 수업시간에는 가족과 친구들을 불러 강당에서 상영회까지 가졌다. 이후 수강생들이 계속 작품 활동을 이어갔을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한 달 동안에는 재미있는 시간이었으리라 스스로 생각해본다.

* 주1) 슬램덩크 中 "(북산고에 간 이유는) 안선생님 때문인가?" "(집에서) 가까우니까."

  UCC반 수업모습


2008년 초, 인근 신설 고등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영화토론반 강사를 모집하는데 지원하겠느냐 묻는 전화였다. 어떻게 알고 전화를 했냐고 물으니 문화의 집에서 추천을 해주었다고 했다. 학교 교실은 교생실습 이후 처음인지라 잔뜩 기대하며 들어갔지만 곧 실망하고 말았다. 나름 다양한 영화를 보고 함께 의견을 나누는, 말 그대로 영화'토론반'을 대비해서 수업자료를 만들어 갔건만 내 앞에 앉아 있는 학생들은 그저 두 시간 동안 영화를 보고 집에 가려는 생각만 가득한 학생들이었다. 그럴 만도 한 게 학교에서 영화를 틀어주는 건 시험이 끝난 이후의 한가한 시간을 위한 것이거나 선생님들이 바쁜 일을 처리하기 위해서 학생들을 방치할 목적이 지배적이지 않았던가. 그런 이유로 공부에 지친 학생들은 부서명에 영화란 이름이 붙은 것을 보고 평소에 시간 내기 어렵던 영화감상을 하던가 아니면 엎드려 편히 자려는 생각에 온 것 같았다. 그들을 탓하긴 힘든 문제였다.
학생들에게 색다른 재미를 주고자 단편영화,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 깐느광고제 수상작 등 다양한 영상을 보여주며 어떻게든 그들의 흥미를 끌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은 고전영화(*주3) <다이하드1>뿐, 나머진 무덤덤한 반응만 보였다. 토론은커녕 영화소감문도 이모티콘과 초성체를 제외하면 세 줄을 넘기 힘들었다. 이대로 영화토론반을 계속 하는 건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시간 대비 강사비가 꽤 짭짤했으니….

* 주3) 학생들은 대부분 90, 91년생이고 <다이하드3> 개봉일이 1995년이니 그야말로 고전영화.

  영화토론반 소감문 모음


업 클로즈 앤 퍼스널

  영화제작반 활동 모습
2009년, 학교에 수업의 성격을 바꾸겠다고 알리고는 '영화토론반'을 '영화제작반'으로 바꾸었다. 학생들이 스스로를 표현할 기회를 주는 것이 수동적인 영화 관람보다 나을 거라는 판단에서였다. 다행히도 전년보다 줄어든 16명의 학생들은 잘 따라왔고 UCC, 광고, 뮤직비디오, 다큐멘터리, 극영화 등의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자신들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주제나 소재도 다양해졌다. 처음에는 일진 이야기, 연애 이야기, 야자 탈출 이야기 등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머물더니 자신감이 붙은 이후에는 학교 밖 공간들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고민과 상담 같은 심리적인 소재를 다뤘으며, 장르도 스릴러, 추리물, 액션, 다큐멘터리 등으로 다양해졌다. 다만 격주로 진행되는 수업의 한계 때문에 수업의 연속성이 떨어지고 과제를 내줄 경우 제대로 해오는 일이 드물다는 아쉬움이 남았으며, 컴퓨터반과 방송반을 제치고 컴퓨터를 쓸 수 없다는 점 때문에 극소수의 학생들을 제외하곤 편집에 관심을 갖거나 손을 대지도 못했다는 점이 안타까웠다. 어쨌든 매해 11월 학교 축제에선 자신들이 만든 영상을 강당의 큰 화면으로 상영하였고 그렇게 4년간 영화제작반 활동은 지속됐다.

2011년, 수업의 성격을 조금 바꿨다. 전반적인 과정과 내용은 이전과 동일했지만 장비를 디카와 캠코더에서 스마트폰으로 바꾼 것이다. 그럴 만도 했던 것이 그동안엔 스마트폰을 갖고 있는 학생이 절반도 안 되었는데, 2010년 말부터 그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 2011년엔 8,9할의 학생들이 스마트폰이나 카메라 달린 학습용 기기를 갖고 있었다. 이유는 더 있었는데 스마트폰을 활용하면 그동안 컴퓨터 사용이 어려워 내 손을 거치거나 일부 남학생들에게 집중되었던 영상편집을 누구나 할 수 있다는 무시할 수 없는 장점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스마트폰을 도입하자 의도하지 않은 변화도 일어났다. 그것은 바로 일상의 이야기를 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간의 내 수업방식이 너무 고루했던 탓일 진 몰라도 아이들은 늘 영화를 만드는 데 부담을 느꼈고 장비를 직접 만지고 목소리를 많이 내는 보직이 아닐 경우 소외되는 경우가 많았다. 당연히 뒤로 물러서서 방관하는 학생이 늘었고 작품을 만들더라도 자기 작품이라는 생각이 희미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에 스마트폰으로 소수의 모둠을 이루어 활동을 시작하자 작품의 수가 늘어나는 것은 물론 서로 의견도 많이 내고 카메라를 들이대는 곳도 다양해졌다. 책가방이나 실내화, 학교 안에서 자기만의 명당으로 생각하는 곳, 친구들의 수다 등…. 만듦새만 보면 영화라기보다는 인터넷에 흔하게 올라오는 UCC 수준의 영상일 뿐이지만 학생들이 자기 목소리를 스스로 내기 시작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1학기말에 세 편의 단편 다큐멘터리를 촬영했는데 마침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학생부문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세 편 중 편집이 끝난 두 편을 옴니버스로 묶어 <나를 보는 두 가지 방법>(*주4)이란 작품으로 출품했다. 방학 중에 본선에 진출했다는 소식을 접했고 영화제가 열린 9월에는 학생 3명이 출품자의 자격으로 참가해서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무대에 서는 기회까지 갖게 되었다. 비록 수상하진 못했지만 이후 비전공 학생들의 영화제 진출이란 특이성 때문에 MBC에서 취재도 나오고 지역 신문에도 소식이 실리는 등 영화제작반의 활동에 대해 학생들과 학교의 관심을 불러 일으켜 잠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나를 보는 두 가지 방법> 엔딩 크레딧
* 주4) 휴대폰으로 친구에게 사랑한다는 문자를 보낸 이후 반응과 이유를 알아보는 <친구야 사랑해>와 태블릿에 달린 카메라로 인터뷰이의 얼굴을 거울처럼 보여주며 각자의 느낌을 묻지만 관객은 영화가 끝나기 전까진 무슨 사진을 보는지 알지 못해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은밀한 사진>으로 이루어진 옴니버스 영화.

나비효과

2010년부터 인근 도서관 컴퓨터 강사를 2년간 했다. 마우스도 처음 만져보는 수준의 중년층 이상의 어르신 학생들을 대상으로 컴퓨터 기초와 활용법을 가르쳤는데 몇몇 우등생들이 쉬는 시간마다 진도와는 상관없이 휴대폰이나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어떻게 컴퓨터로 옮기고 자식들에게 보내는지에 대해서 물어보곤 했다. 그래서 그들을 위한 강좌를 도서관측에 제안했고 2011년 여름에 '재미있는 UCC 만들기'란 4회짜리 강좌를 개설했다.
젊은 학생들과는 다르게 신문물에 익숙하지 않은 어르신들에게 너무 많은 걸 알려드릴 순 없었다. 무비메이커도 너무 어렵게 느낄만한 수준이었다. 그래서 자기가 가장 친숙한 기기를 사용해서 사진을 촬영한 뒤 알씨의 슬라이드쇼 만들기 기능을 활용하여 아주 단순한 수준의 동영상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수업을 진행했고 열 명 가량의 학생들 중 절반 이상이 졸업 작품을 제출했다. 평소에 즐기는 산책로나 여행 사진, 손주 사진을 한 데 묶어서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을 배경으로 깐 동영상들은 내용과 만듦새만 가지고 판단하기 어려울 정도로 소중한 영상이었고 의미 있는 결과물이었다. 아쉬운 점은 나로서는 최대한 쉽게 알려드린다고 했지만 그것조차 어렵게 느낀 어르신 몇 명이 중도탈락을 했고, 홍보가 잘 안 되었는지 상영회에 참석한 사람이 열 명이 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이때의 경험은 다양한 연령과 계층의 학생들에게 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참가자의 높은 참여 동기뿐만 아니라 가르치는 사람에게도 좀 더 세밀하고 충실한 준비와 성찰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비단 미디어교육의 경우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겠지만.

몇 년 전 동영상 제작 때문에 인연을 맺게 된 지역 청소년상담복지센터에서 잠시 상담 관련 활동을 하기도 했는데, 그때 소개했던 영화제작반 학생들의 단편영화 <톡!>이 좋은 반응을 얻어 이후 청소년 대상 상담프로그램에서 곧잘 상영되기도 했다고 한다.(물론 나에게 허락은 받았다) 전문가들이 공들여 만든 결과물보다 여러 모로 부족할 진 모르지만 청소년들이 자신들의 이야기와 상담에 대한 솔직한 시각을 투영해 만들었기 때문에 더 의미가 있다고 판단해서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만든 학생들은 그런 의도와 용도까지 생각하진 않았겠지만 지금도 어디선가 누가 자기 작품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기분이 어떨까.

2013년, 우연히 발을 들이게 된 Act! 편집위원 활동은 나에게 자극이 되었고 그 여파로 2013년의 활동 계획에 수정을 가져왔다. 새 학기를 시작하는 영화제작반을 미디어제작반으로 바꾸고 영상제작 뿐만 아니라 인쇄매체나 팟캐스트, SNS 같은 다양한 유형의 매체를 다루기로 결심한 것이다. 아직 수업은 시작하지 않았지만 이전보다 폭넓은 창작활동을 하며 학생들이 스스로를 표현하고 주변을 돌아보고 관심을 갖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하고 있다. 또 새 둥지로 이전한 청소년상담복지센터에 미디어관련 프로그램을 제안하고 있다. 아직 확정되진 않았지만 계획대로 프로그램이 운영된다면 주변 사람들에게 자기를 표현하는 데 서툴었던 학생들이 자기 입맛에 맞는 표현매체를 찾아 자신을 드러낼 수 있을 것이고, 주변 사람들이나 지역공동체에도 관심을 갖는 상담적인 차원의 효과까지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이크로 특공대

미디어 관련 교과 교사들에게 특강이나 개인 교습 형식으로 동영상 제작에 대해 가르쳐본 경험이 있는데 그때 느낀 점은 아직까지 많은 이들이 동영상 제작에 대해 어려워 한다는 것이었다. 글, 미술, 사진 등은 역사도 깊고 취미 이상의 실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많아 낯설지 않게 수업에 접목시켜왔지만, 동영상은 소비자로서는 익숙할지 몰라도 생산자로서는 너무도 생소하고 최종결과물을 내기까지 필요한 기술들이 어렵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21세기에 가장 각광받고 있고 활용 가능성이 높은 표현매체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몇 가지 한계가 교사나 학생 모두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해도 무방했다. 난 그때마다 스마트폰이야말로 그런 어려움을 타개할 구세주라고 강조했다. 비록 전문적인 장비에 비해 제약도 많고 너무 가벼워 보일지는 몰라도 촬영과 편집, 심지어는 중계까지 가능한 움직이는 방송국 수준의 장비를 각자의 주머니에 하나씩 갖고 있다는 건 엄청난 축복이라고까지 말했을 정도였다. 일상을 기록하고 표현하는 개인적인 차원의 창작활동뿐만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 꺼내서 촬영할 수 있고 짧은 시간 내에 편집해서 다수의 사람들에게 전파하고 공유하는 행위는 그간 미디어운동이 꿈꾸던 궁극적인 모습이 아닐까. 20세기 중반 알렉산드르 아스트뤼크가 '카메라는 만년필이다'라고 말했다면 21세기를 막 시작한 지금 '스마트폰은 만년필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건 아닐 것이라 믿는다.
그동안 내 자신이나 학생들은 자신이 미디어활동가라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고 활동해왔지만 넓게 보면 이 모든 것들이 미디어운동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꼭 특정한 이슈를 건들거나 익히 알려진 경로를 통해서 활동하지 않더라도 자기 생각과 느낌을 타인에게 표현하고, 자기만이 아닌 공동체까지 톺아보는 계기가 된 것만으로도 충분히 미디어운동의 목적과 가치에 부합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다만 앞으로는 혼자서 혹은 특정 무리만이 아닌 많은 사람과 소통하며 함께 연대하는 차원의 활동까지 이어진다면 더할 나위 없는 미디어운동의 주체가 될 수 있으리라. □

[필자소개] 주일(ACT! 편집위원회)
해양학자-프로그래머-경찰-소설가를 거쳐 지금은 창작자라는 꿈을 10년 넘게 포기하지 않고 있다고 전해진다. 영화를 비롯한 각종 영상제작을 하고 있으며 가끔 학교안팎에서 젊은 학생과 늙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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