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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83호 인터뷰] 성북 마을 방송으로 와보숑!

- 이소영 함께하는성북마당(함성) 공동대표 인터뷰

서울 성북구 종암동 초록새나무어린이집.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간 조용한 어린이집으로 들어선 이소영 함께하는성북마당(이하 함성) 공동대표는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들고 온 현수막을 펼치고 2층과 3층을 오가며 촬영하기 좋은 곳을 찾았다. 낙점된 곳은 어린이집 2층. 3층은 소리가 울린다는 이유로 제외됐다. 아직 쌀쌀한 3월의 늦은 밤. 이소영 대표를 분주하게 만든 건 다름 아닌 성북 마을방송국 ‘와보숑TV(티비)’다.
와보숑TV는 지난해 서울시 우리마을미디어문화교실에 참여한 ‘함성’이 준비하고 있는 마을 방송국으로 오는 4월 개국을 앞두고 있다. 이 날은 개국 방송인 ‘아빠들의 수다’ 촬영이 있는 날. 이번 방송의 주제가 아빠들의 어린 시절이라 어린이집을 장소로 정했다고 한다. 바쁘게 촬영 준비를 마친 이소영 대표와 함께 아이들이 쓰는 작은 의자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촬영을 앞둔 이소영 대표의 상기된 얼굴과 어린이집이 잘 어울렸다.

  이소영 함께하는성북마당 공동대표


ACT! : 함께 하는 성북 마당(이하 함성)은 어떤 곳인가?

이소영: 성북 지역 네트워크로 2012년 7월 20일에 정식으로 발족했다. 준비 모임을 7개월 정도 했기 때문에 사실상 1년 정도 됐다고 볼 수 있다. 성북구의 복지관이나 지역아동센터, 사회적기업, 생협, 시민단체 등 65개 단체가 참여하고 있고, 개인 회원도 받고 있다.

ACT! : 그간의 주요 활동은?

이소영: 한 달에 한 번 정기회의를 하는데, 사실 회의 준비에 품을 안 판다. 전화도 안 하고 메일만 보내는데도 2~30명 정도 참여한다. 지난해 우리마을미디어문화교실과 마을 축제를 진행했고, 최근에는 함성 내 협동조합들이 모여 성북구협동조합협의회를 창단하기도 했다.

ACT! : 이 대표님이 지역 활동을 계속 하는 이유가 있다면?

이소영: 그러게 말이다. (웃음) 큰 이득도 없는데 지역 활동을 하니까 국회의원이나 시의원, 구의원 같은 정치인들은 이해를 잘 못하기도 한다. 사실 나도 잘 이해가 안 된다. (웃음)
과거 운동을 했었다. 내 삶의 중심을 좀 더 나은 사회로 변화하는 데 두는 것이 올바른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 혼자만 앞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여럿이 함께 잘 살아야 한다는 신조가 있다. 잠시 쉬더라도 지역 작은도서관에서 책을 읽어주는 등 계속 끈을 갖고 있었다.
나이가 들면 ‘장’ 자리로 가기도 하는데, 체질에 안 맞는다. 현장이 좋다. 판만 벌려주면 그 역할은 후배들이 하면 된다. 계속 그렇게 해왔었는데, 생협 이사장은 후배들이 한밤중에 찾아와 어쩔 수 없이 맡게 됐다. 안 맡아서 그렇지, 맡으면 책임감 있게 하는 편이다.
박원순 시장의 마을 만들기 사업의 경우, ‘박원순표 새마을운동’이라고 욕하기도 하는데, 중점 사업인 마을 만들기가 그렇게 가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마을 만들기는 이 도시라는 삭막한 곳에서 살아가는 개인이,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목적이다.

ACT! : 미디어에도 관심이 있었나?

이소영: 개인적으로 영화광이다. 엄청 좋아한다. 죽기 전에 10분짜리라도 영화 한 편은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카메라도 사고 교육도 받았었다. 바쁘게 지역 활동을 하면서도 꿈은 늘 갖고 있었다. 그래서 감이 좀 있었던 것 같다. 작년에 서울시 지원으로 진행한 우리마을미디어문화교실이 좋은 계기가 되기도 했다.

ACT! : 우리마을미디어문화교실에는 어떤 분들이 얼마나 참여했나?

이소영: 10대부터 60대까지 모두 있었다. 그래서 너무 재밌었다. 나도 60대다. (웃음) 소속도 다양했는데, 복지관이나 시민단체, 생협, 노조 같은 지역 단체 말고도 일반 직장에 다니시는 분들도 있었다. 상반기에 진행한 1기에는 18명, 하반기에 진행한 2기엔 16명이 참여했다. 다른 지역보다 많은 편이라고 들었다.

ACT! : 참여자가 많았던 이유는?

이소영: 함성이 공동으로 했기 때문이다. 연대의 힘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느꼈다. 한 단체가 18명을 모으긴 어렵지만, 지역 네트워크인 함성이 함께 진행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각 단체에서 1명씩 참여했다. 사실 신청이 더 많았지만 1명으로 제한을 뒀고 2명까지는 봐주기도 했다. (웃음) 한편으로는 사람들에게 영상에 대한 로망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출석률도 8~90%로 매우 높았다.

ACT! : 바쁜 단체 활동가가 참여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이소영: 나도 놀랐다. 각 단체별로도 일이 많지만 작년 상반기에는 함성을 꾸리느라 일이 더 많았다. 후배가 영화 좋아하시면 우리마을미디어문화교실을 한 번 해보시는 게 어떠냐고 물었을 때도 과연 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래서 함성 회의 때 이 안건은 맨 마지막 기타에 있었다. 그런데 막상 제안을 하니 사람들의 표정이 확 달라졌다. 자기도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도 많았다. 물론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마침 그 자리에 있던 한 분이 다큐멘터리를 제작하시는 이재수 선생님을 소개해줬고 준비 모임을 3~4번 한 후 지원 신청을 했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해 15명을 모집했는데, 19명이 신청했다. 신청이 더 있었지만 간식 준비하기도 힘들 것 같아 더 뽑지 않았다. (웃음)

  2012 우리마을미디어문화교실 ‘시끌시끌 성북이야기’ 현장 [출처: http://scmedu2012.tistory.com/30]


ACT! : 우리마을미디어문화교실은 어떻게 진행됐나?

이소영: 내가 기획운영을, 이재수 선생님이 주교사를 맡았다. 초기 이재수 선생님의 역할이 컸다. 판을 잘 깔아주셨다. 즐기면서 네트워킹도 되고 영화도 만들 수 있게 해주셨다. 1기 때 조별로 3편의 영화를 만들었는데, 그 중 사회적 경제를 주제로 한 <네모의 꿈>이라는 작품이 작년 8월 익산공공영상미디어센터에서 열린 지역영상미디어센터 연합워크숍 우수 시민영상제작 콘텐츠 공모전에서 장려상을 받았다. 순식간에 구성하고 편집해서 10분짜리를 만들었는데 덜컥 상까지 받은 것이다. 그게 또 동력이 되기도 했다. 9월엔 성북구청 앞에서 ‘시끌시끌 성북이야기’라는 영상콘서트를 진행했는데, 거기서 1기 작품을 상영했었다. 주민들이 신기해하기도 했고, 자기 이야기라 그런지 반응도 좋았다. 그러면서 하반기에 2기를 진행했는데, 3편의 영화가 모두 업그레이드 됐다. (웃음)

ACT! : 제작은 모두 처음이었나?

이소영: 그렇다. 카메라도 만질 줄 몰랐던 사람들이었다. (웃음) 1기 때 <네모의 꿈> 촬영 때문에 한 마을 기업을 간 적이 있었다. 카메라를 설치하는데 영화 관련 일을 하시는 분이 뭘 찍으려고 하시냐고 물어보셨다. 우리 때문에 황당하셨던 것 같다. 한 명은 전체 모습을 찍고 다른 사람은 부분을 찍어야 하는데, 촬영하는 3명 모두 그걸 전혀 몰랐다. 아무것도 모르는데 깔깔대면서 너무 재밌게 촬영을 하니까, 처음엔 이것저것 알려주려고 하셨던 그 분이 ‘그냥 즐기세요.’하면서 물러나셨다. 정말 황당하게 시작한 것이다. (웃음)

  2012.10.19 서울 성북구청 바람마당 함께하는성북마당 마을 축제 [출처: http://www.sbnet.or.kr/xe/focus2/2644]


ACT! : 성북 마을 방송국 ‘와보숑TV'는 어떻게 시작됐나?

이소영: 우여곡절 끝에 우리마을미디어문화교실 1기, 2기를 끝낼 즈음 마을 방송국을 해보자는 얘기가 나왔다. 그게 발전이 된 것이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멋모르고 시작한 거다. (웃음) ‘와보숑TV’라는 말이 너무 장난스러워 바꾸자는 의견도 있었다. 도장을 파러 갔는데 “와보숑요?” 라고 되묻기도 했다. (웃음) 우리가 함께 나아갈 길도 만들었는데, 그게 바로 ‘다락방’이다. ‘다(多)’는 나, 너 우리의 다양한 이야기를 담는 방송, ‘락(樂)’은 유쾌하고 발랄하게 마을을 풀어가는 방송, ‘방(方)’은 우리 손으로 만들고 참여하고 공유하는 방송이란 뜻이다. 'UFO(유에프오)가 떴다!’도 있는데, 그건 U Media(유 미디어), Funny Media(퍼니 미디어), Open Media(오픈 미디어)라는 뜻이다.

ACT! : 협동조합으로 운영할 예정이라고 들었다.

이소영: 어떤 조직 형태로 갈까 많이 논의했다. 마을 방송국은 개인이 아니라 여럿이 함께 만드는 것이고, 지역 내 필요성과 공공성이 있다는 점에서 협동조합으로 가기로 했다. 일단 4월 말에 개국 방송을 한 후 구체화 할 예정이다. 그 전에는 개국 프로그램을 많이 만들어 놓으려고 한다.

ACT! : 개국 준비는 어떻게 되고 있나?

이소영: 설립준비위원이 10명 정도 있다. 기획팀, 기술팀, 운영팀이 있는데, 기획팀은 방송 제작, 기술팀은 팟캐스트 등 배포를 담당한다. 나는 운영팀인데 제작에도 참여한다. 모두들 조금씩 겹쳐있다. 개국 방송인 ‘아빠들의 수다’를 2편 제작했고 오늘 3번째 촬영이다. 그 외 구청이나 단체에서 영상 제작을 의뢰하기도 했다. 과거와 달리 총회 같은 곳에서 영상으로 발표하는 경우가 많아 요청이 더 있을 것 같다.

  2013. 3. 14 서울 성북구 종암동 초록새나무어린이집 - 성북 마을 방송 와보숑TV ‘아빠들의 수다’ 제작 현장


ACT! : 어려운 점이 있다면?

이소영: 제일 어려운 건 편집이다. 도와주는 분이 있지만 여전히 스트레스다. 하지만 계속 하니까 자신감은 좀 있다. 다른 하나는 모두들 다른 일을 한다는 점이다. 나도 이것만 하면 잘 할 자신이 있으나, 협동조합이나 마을 네트워크 등 걸린 일이 많다. 빨리 안정화시켜서 기획팀에서 신나게 방송만 만들고 싶다. (웃음) 마지막으로 운영비도 고민 중이다.

ACT! : 미디어가 마을 활동에 도움이 됐나?

이소영: 물론이다. 마을 공동체 만들기 사업으로 영상은 큰 도움이 된다. 영상 작업은 혼자 할 수 없다. 여러 명이 같이 해야 한다. 또 세대를 초월해 네트워킹 한 것이 행복했다. 손주 뻘인 10대와 작품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으며 공동 작업을 하면서 폭넓은 관계망을 가질 수 있었다. 마을의 좋은 인연이 많이 생긴 것. 그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ACT! : 마을 미디어는 뭐라고 생각하나?

이소영: 우리마을미디어문화교실 2기 때 북정마을을 촬영했다. 그 북정마을을 보면서 마을 방송을 꼭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북정마을은 성북구의 장수 마을 같은 곳인데 2기 때 만든 걸 동네잔치 때 틀었었다. 주민 분들이 너무 좋아하셨다. 내 얼굴과 내 이웃이 나오고, 우리 마을이 나오자, 일반 영화보다도 더 신기하고 좋아하셨다. 그게 바로 마을 방송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들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것. 우리들의 이야기를 표현하고 담아내는 것. 그게 바로 마을 미디어의 목적이고 방향인 것 같다. 저 먼 곳에 있는 얘기가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를 재밌게 주고받는 게 마을 미디어라고 생각한다. 또 사회 참여도 해야 한다. 마을 공동체를 통해서 사회 문제에 대한 목소리를 내야 하는데 그 때 미디어가 필요하다.

ACT! : 이 대표님이 생각하는 마을은 어떤 것인가?

이소영: 옛날 시골에선 남의 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 알듯이, 마을을 만든다는 건 이웃과의 소통을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북정마을 어르신들은 개발을 싫어하신다. 거기서 3~40년을 사셨고 죽을 때까지 같이 사는 게 소원이시다. 나는 그게 마을인 것 같다. 동네 이웃들과 같이 사는 것. 서울은 그렇지 못하다. 이사를 오늘 갔는지 내일 갔는지 모르고, 옆집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른다. 공동체를 회복하는 것이 마을이다.

ACT! : 마지막으로 마을 미디어를 준비하시는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이소영: 작년에 우리마을미디어문화교실을 진행하면서 힘들었던 단위도 많았다고 들었다. 함성은 출석률이 높았는데, 그 안에는 놀고먹자는 팀도 있었다. 나는 우선 즐겁고 재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안 보면 보고 싶어져야 하는데 억지로 막 뭔가 해야 한다가 되면 안 될 것 같다. 또 각 구마다 이걸 꼭 하라고 전도하고 싶지도 않다. 작년에도 각 단위별로 모두 달랐고 그렇게 그 지역에 맡게 하면 될 것 같다. 성북은 여건이 잘 맞았다. 하지만 어렵긴 어렵다. 어떤 분은 편집하다 어깨가 빠진 분도 있다. 나 역시 편집할 땐 이 미친 짓을 내가 왜 하나 싶지만 하고 나면 만족스럽고 뿌듯하다. 빨리 내 영화를 만들고 싶다. □

  2013. 3. 14 서울 성북구 종암동 초록새나무어린이집 - 성북 마을 방송 와보숑TV ‘아빠들의 수다’ 제작 현장


인터뷰를 마친 후 촬영을 시작하자 조용했던 어린이집이 떠들썩해졌다. 카메라 3대가 동원된 초특급 세트에서 30대, 50대, 60대 아빠들의 수다가 이어졌다. 엄마들이 아닌 아빠들의 수다를 기획하게 된 계기를 묻자, 카메라를 든 한 분이 “그간 아빠들이 수다를 못 떨어서 가만히 있었던 게 아니”라고 답해주셨다. 수다가 느슨해지자 이소영 대표는 잠시 촬영을 멈추고 세대별 특성이 더 드러나게 얘기해보자고 제안한다. 그 사이 3대의 카메라는 구도와 소리를 점검한다. 다시 시작된 촬영은 밤늦도록 이어진다. 곧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만나게 될 성북 마을 방송 ‘와보숑TV’. 즐겁고 힘찬 출발이 기대된다.

* 관련 사이트

- 함께 하는 성북 마당 (함성) http://www.sbnet.or.kr
- 우리마을미디어문화교실 http://scmedu2012.tistory.com/
- [ACT! 81호 인터뷰 2012.11.13.] 서울이 시끌시끌해진다! 서울시 우리마을미디어문화교실 사업단 정은경 인터뷰
http://www.mediact.org/web/media/act.php?mode=emailzine&flag=emailzine&subno=2697&subTitle=%C0%CE%C5%CD%BA%E4&keyno=2708
덧붙이는 말

2003년 첫 발을 뗀 [ACT!]는 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가 발행하는 온라인 저널로 국내외 미디어운동 관련 이슈를 기획, 발굴하고 있습니다. http://actmediact.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