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적미디어운동연구저널 Act!

[ACT! 84호 Me, Dear] 대안미디어에 관한 논의는 어디쯤?

[편집자 주] ‘Me,Dear’은 일상에서 느낀 미디어와 관련된 소소한 이야기들을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미디어에 대한 나의 단상이나 인상을 담는 공간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Me,Dear를 통해 작지만 소중한 이야기들을 소박하게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얼마 전 대안미디어에 관한 토론회에 다녀왔다. 시민사회단체와 학회에서 공동주최한 이 토론회는 미디어운동 현장에서 꾸준히 활동해온 사람들을 주요 발제자와 토론자로 섭외했기에 현장성에 기반하면서도 그것을 좀 더 이론적인 관점에서 논의하는 좋은 기회로 보였다. 진보적 미디어운동 연구저널을 표방하는 ACT!의 발행 목적도 그런 것이겠지만, 현장 활동만큼이나 연구 활동도 미디어운동에 꼭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대안미디어에 관한 최근의 논의 경향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여겨졌다. 그래서 조금 과장하자면 약간은 설레는 마음으로^^, 비록 발제를 놓치고 토론자들의 토론 내용밖에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지각해버렸지만-.-;;, 부지런히 이날 토론회에 찾아갔다. 그래, 요즘에는 대안미디어에 관해 어떤 얘기들이 오가고 있을까?

“대안언론 잘 디자인 해봅시다”라는 제목의 이 토론회는 나름 대안미디어의 다양한 주체들을 모아놓고 대안미디어에 관해 새로운 논의를 시도하려는 자리처럼 보였다. 새로운 논의의 계기는 무엇보다 뉴스타파나 국민TV 등 작년 12월 대선을 전후해 새롭게 부상한 신생 대안언론들이었다. 이들은 ‘나꼼수’ 이후 대안미디어에 관한 대중의 높아진 관심을 반영하는 최근의 가장 핫(hot)한 사례들이었다. 발제자를 비롯해 다른 토론자들도 이들에 대한 기대와 관심을 주요하게 나타냈고 나 또한 풍문으로 듣던 그들의 존재가 몹시 궁금해서 이 자리를 찾아온 터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들이 제공하는 새로움이란 게 도대체 무엇일까? 주로 논의된 점은 이들이 나꼼수처럼 기성 언론에 대한 대중의 불신과 불만을 이어받으면서도, 나꼼수와는 달리 언론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주요 기치로 내걸고 있다는 점이었다. 공정성과 객관성에 대한 강조는 이들의 출신 배경 또는 탄생과정에서 그 원인을 짐작해볼 수도 있다. 아시다시피 뉴스타파는 MBC와 YTN 등에 속해있던 해직 언론인들이 만든 인터넷 언론으로, “주류 미디어가 다루지 못한 뉴스”라는 모토로, 2012년 1월 17일 첫 방송을 시작해 현재 세 번째 시즌에 접어들었으며 전문 탐사저널리즘을 지향하고 있다. 최근 뉴스타파는 조세피난처 특종으로 한창 주가를 올린 바 있다.


▲ 뉴스타파


그리고 국민TV는 대선 이후 “‘불량 TV뉴스’를 바꿔야 한다는 시대적 대의 속에서 논의를 시작”해 2013년 3월 3일 창립총회를 열고, “미디어협동조합”으로 출범, 현재 4월 1일부터 국민TV라디오 방송(1일 12시간 본방)을 실시하고 있다(국민TV 홈페이지; 김동원 7쪽에서 재인용). 국민TV가 짧은 기간 동안 6,000명에 가까운 조합원을 모을 수 있었던 것은 나꼼수의 영향이 주요하게 작용했다. 하지만 이들은 나꼼수와의 차이도 강조한다. ‘나꼼수’와 국민TV의 관계를 해명하는 홈페이지 게시물에서 이들은 그들이 기성 언론과 한 묶음이 될 수 없다는 점에서는 서로 닮았지만, 조합원이 추동하는 집단 지성 결합체로서의 언론은 국민TV가 처음이라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차이가 난다고 설명한다. “단지 또 하나의 언론을 건설하려고 했다면 구상조차 안 했을 것”이라며 “15개의 화면에서 한 관점, 한 목소리의 뉴스만”이 나오는 현재의 “불량 TV뉴스”를 바꾸기 위해 국민TV가 내놓은 해법은 기존 매체 플랫폼(지상파, 유료방송)으로의 진입을 거부하고 셋톱박스를 통해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방송을 송출하는 미디어협동조합 시스템이다. 그리고 이러한 독립적 유통 구조를 통해 이들이 유통하고자 하는 방송의 내용은 특정 정치권력이나 자본 권력, 그 밖의 기타 보수 세력에 휘둘리지 않는 공정하고 객관적인 방송이다(이상 국민TV 홈페이지 참조).


▲ 국민TV


토론회에서는 바로 이러한 점들이 대선 국면 이후 주류 언론과 대안 언론의 관계를 새롭게 접근해야할 필요성을 제공하는 것처럼 보였다. 즉, 지난 5년간 이뤄진 이명박 정권에서의 가공할 만한 공공성 파괴와 언론 탄압 결과 이제 대안미디어 지형 내에는 (주류미디어와 대별되는) 독자적 체계와 형식, 역량을 꿈꾸는 대안미디어들 뿐 아니라 전문 언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간직하고 있는 전직 주류 언론 매체나 “객관적이고 공정해야할” 상식적인 언론 매체를 직접 건설하려는 다양한 시민 주체들이 들어와 있다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토론회 당일 패널로 참석한 국민TV와 뉴스타파 측은 토론회에 참석한 많은 사람들이 당혹스럽게도 자신들의 정체성을 대안미디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히기도 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대안 미디어에 관한 논의는 기존처럼 대안 언론의 특징이나 활동에 관한 평가 뿐 아니라 주류 언론계의 특징(또는 가치체계에서 나오는 문제)들도 포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토론회의 주요 결론인 것처럼 보였다. (이상은 필자의 매우 주관적인 요약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논의/주장은 생각해볼만한 여지가 있는 것 같다.)

대안미디어에 관한 논의가 언론 환경 전체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확장되어 논의되어야 한다는 지적은 그 자체로는 매우 적절하다. 대안미디어가 출현하게 되는 배경 또는 동력 자체가 바로 기존 미디어 환경에 대한 불만 내지 공백이기 때문이다. 만약 기존의 미디어 환경이 대중의 욕구를 잘 충족하고 있었다면 새로운 미디어(환경)에 대한 요구는 등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대안미디어의 출현이 기존의 언론 환경 또는 더욱 확장하자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의 어떤 공백이나 문제, 불만을 환기하고 있는지 살펴보자는 것은 매우 타당한 접근법이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토론회의 논의 내용은 대안미디어라는 개념 자체에 대한 혼란을 드러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러한 혼란은 어쩌면 대안미디어를 규정하는 방식에 관해 새로운 논의를 펼쳐보고자 한 발제자의 글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뒤늦게 읽어본 발제자의 글은 대안미디어라는 개념을 규정하는 어려움에서부터 운을 떼고 있었다.

사회 내 어떤 대상을 지칭하는 개념들이 그렇듯 대안 언론 역시 자주 쓰이면서도 정의가 모호한 개념이다. 흔히 대안 언론을 규정할 때, 뉴스 생산과 유통, 그리고 수용이라는 각각의 계기로 나누어 그 특징을 나열하기도 하며, 그 특징들의 공통점을 “콘텐츠, 형식, 조직 및 생산에 관한 지배적인 규칙의 파괴”라고 일반화시키기도 한다(Downing, 2001).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지배적 규칙’의 수행자가 이른바 국가와 시장의 지배 아래 있는 주류 언론(mainstream media)이라면 대안 언론은 더욱 모호해 진다. 대안(alternative)이라는 말 자체가 그렇듯이 “A가 B의 대안이라면, B 또한 A에 대해 대안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Bailey, et. al., 2007). (김동원, 1쪽)

아마도 발제자는 주류미디어와 대안미디어 사이에 이루어지는 관행적인 구분 짓기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보자는 제안을 하려고 했던 듯하다. 아닌 게 아니라 요새 보면 주류미디어와 대안미디어는 다루는 소재나 형식, 관점 등에서 차이점보다 공통점이 더 많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가령 최근 절찬리에 방영 중인 일본 TV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에 대한 패러디가 주류 코미디프로그램 <웃찾사>와 대안미디어 프로젝트 <복지갈구화적단>에 동시에 등장하는 것을 보라.)


▲ 복지갈구화적단2013 제9화 [진격의 학교]

(성남의 대학생 제작단 Detempo & Toplee이 중앙대학교 학과 통·폐합에 대해 다룬 작품)



▲ SBS 코미디 프로그램 ‘웃음을 찾는 사람들’의 새 코너, [진격의 가족]


발제자의 글은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특히 “현 시기 대안 언론을 요청하고 반기는 수용자, 시민들의 요구는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으로 대안미디어를 바라볼 것을 강조하고 있었다. 구체적으로는 뉴스타파와 국민TV 등이 출현하게 된 역사적 배경을 각각 MB 정권 하의 공공성 파괴와 보수/진보 언론이라는 이분법적 담론 지형의 공고화에 대한 화답으로 보면서, 대안 언론의 경우, 지지자들과 후원자들을 포함하여 자신들에게 주목하는 수용자들의 변화와 요구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일 것을 당부하는 것으로 끝을 맺고 있었다. 하지만 대중/다중의 요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요구는 대안미디어에게 지극히 중요하고 또 필요한 조언임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왠지 모를 아쉬움을 남긴다. 그동안 언론의 생산자와 수용자의 이분법적 경계를 파괴하거나 관객과의 관계를 새롭게 고민해보려는 시도는 오히려 대안미디어에서 더욱 두드러졌을 뿐 아니라, 수용자의 요구를 기존의 언론 환경이 제대로 충족시켜 주지 못해서 튀어나온 것이 바로 대안미디어들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안미디어가 미디어 수용자들의 요구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은 대안이든 주류든 미디어라면 당연히 충족시켜야할 어떤 덕목이라기보다는 뭔가 다른 식으로 접근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것은 아마도 발제자가 시도했듯이 이들이 출현하게 된 역사적 배경과 맥락이 지시하는 어떤 사회적 요구의 발현이라고 봐야하지 않을까?

대안미디어 개념의 혼란스러움을 보여준 가장 절정은 앞서 언급했듯이 자신을 ‘대안미디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국민TV와 뉴스타파 패널들의 표명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지난 10여 년간 자칭 대안미디어운동의 흐름을 대표해온 전국미디어운동네트워크 또는 한국미디어센터협의회의 공동체라디오나 서울 지역 마을미디어 사업에 대한 소개가 딱히 대안미디어에 관한 대안적 논의를 제공해주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대안미디어에 관한 진지한 논의를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현재 시점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대안미디어에 관한 논의는 무엇일까? 갑자기 정체성의 혼란에 빠진 사춘기 소녀처럼 이런 원론적인 궁금증을 가지고 나는 ACT! 편집회의에 참석하게 되었다. ACT!에 실리는 글들과 이날 토론회의 논의는 뭐가 어떻게 차이가 나는 것일까? 그날 편집회의에서 우연히 나는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에 다녀온 신진 미디어활동가의 현장 체험기와 사회운동과 미디어운동의 관계에 대해 관심을 보여준 Re:Act 등의 원고를 읽게 되었다.(그밖에 이번 호 ACT!에 실리는 다양한 글들을 참조할 것.) 그리고 이런 게 바로 차이가 아닐까 생각했다. 이를테면 사회운동과 미디어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관심이랄까. 대안미디어운동은 미디어 그 자체보다는 사회운동이나 사회 변화에 지나치게(!) 관심이 많은 것이다. 그리고 그 관심이 하필(!) 미디어라는 분야를 통해 발현된 것일 뿐이다. 이들의 운동이 노리는 사회 변화의 구체적 내용은 주체와 시대별로 매우 다양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이들에게서 미디어는 그 자체로 이미 의미가 결정된 무언가가 아니라 사회적 관계 속에서 새롭게 그 모습과 가능성을 발견해내야 할 무언가이자 활동(행동)의 계기가 된다. 이게 발제자도 조심하려고 노력했듯이 대안미디어에 관한 논의를 추상화하거나 객체화(사물화) 시키지 않는 접근이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쟝 보드리야르의 다음과 같은 말은 미디어활동가들이 중요하게 참조할 만하다. 「대중매체의 진혼곡」(1972)이라는 글에서 보드리야르는 ‘대중매체’ 또는 ‘미디어’라는 개념 자체가 문제라고 보았다. 그에 따르면 사회 통제 및 권력의 체계가 세워지는 것은 대중매체화 과정 자체, 즉 모형 부과와 추상화 작용을 통해서이지, 사람들이 그 매체의 기능에서 소외되어 있다거나 대중매체가 잘못된 내용을 전파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권력은 방영 예정표에 신경 쓸 것도 없이 각 시민에게 텔레비전을 제공할 것”이다(보드리야르, 194쪽). 따라서 그가 보기에 문제해결의 열쇠는 기술적 소통 수단에 대한 요구가 아니라 약호와 전언(메시지), 매개체라는 개념 자체를 증발시키고 관료적인 모형들에 의해 걸러지지 않는 직접적인 의사소통 과정을 회복하는 것이다.

(’68) ‘오월’의 진정한 혁명 매체는 담벼락과 벽보, 유인물 또는 삐라, 발언이 행해지고 교화되는 거리- 즉각적인 게시문이며, 주어지고 되돌려지며, 말해지고 응답되며,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항상 변화하며, 상호적이고 서로 반대되는 모든 것-이다. 이 점에서 거리는 모든 대중매체를 대신하고 전복하는 형태이다... 거리는 재생산을 통해 제도화되고 대중매체에 의해 구경거리가 됨으로써 생기를 잃어버린다. (보드리야르, 200쪽)

이러한 인식에 따르면 대안적 내용의 미디어를 많이 만들어서 퍼트린다고 해서 사회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미디어가 생산되고 배포되는 과정 자체에 대해 사람들이 의문시하고 성찰하는 과정이 더욱 중요해진다. 특히 그가 엔첸스베르거와 같은 사회주의 미디어 이론가들에게 가한 비판은 오늘날 미디어 활동가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큰 것 같다. 그는 사회주의 미디어 이론가들조차 발신자-전언-수신자로 흐르는 지배이데올로기의 의사소통 이론을 암묵적으로 공유함으로써 전략적 오류를 범한다고 말한다. 모든 이가 발신자가 되어 매체에 참여하도록 함으로써 의사소통의 가역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전망은 권력의 작동 과정에 아무런 변화도 일으키지 못한 채 좀 더 유연한 역할 교환 및 피드백 구조 쪽으로 나아가도록 할 뿐이라는 것이다. 이는 오늘날 (무수한 피드백 과정을 대단히 능숙하게 처리하는) 정보 네트워크 미디어를 이용한 자본주의 문화 기획에도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아마 오늘날의 권력은 어플리케이션 기능이나 서비스 내용에 신경 쓸 것도 없이 각 시민에게 스마트폰을 제공할 것이다.□


* 참고문헌

- 김동원, “대선 이후 진보언론의 현황과 대안 모색”, 한국언론정보학회 및 문화연대 공동 주최 토론회 [대안언론 잘 디자인 해봅시다], 2013년 4월 12일

- 쟝 보드리야르, 「대중매체의 진혼곡」, 1972, 이규환 옮김, 『기호의 정치경제학 비판』, 문학과 지성사, 2007.



[필자소개] 김지현(ACT!편집위원회)

2004년 진보적 미디어운동 연구저널 ACT!와 인연을 맺은 후 미디어운동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했다. 이후 4년간 미디액트 정책연구실 생활을 거치며 퍼블릭 액세스, 대안미디어, 독립영화 등에 대한 관심을 키웠고 최근 한국 참여 영상 문화에 관한 논문을 썼다. 미디어운동에 관한 논의가 활발해지는 데 보탬이 되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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