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적미디어운동연구저널 Act!

[ACT! 87호 리뷰] 잔인한 나의, 홈

[편집자 주] “다큐멘터리, 좀 더 즐겁게, 좀 덜 외롭게 해보자구!”라는 모토로 모인 신진다큐모임(이하‘신다모’)은 지난해부터‘오!재미동’과 함께 월례상영회인 ‘재미다큐’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올해 중반부터는 재미다큐에서 상영되는 작품이 상영 뿐 아니라 누군가의 의미 있는 비평도 함께 받으면 좋겠다 싶어 재미다큐 리뷰사업으로 이어지고 있지요. 독립 다큐멘터리 신진 제작자들에 대한 평론가 분들의 애정과 공감이 없었다면 지속되기 어려웠을 재미다큐의 리뷰들을 이번 호부터 ACT!에서도 게재하게 되었습니다. 신다모 내에서만 돌려보기에는 너무 아까운 글들이기도 하고, 이 리뷰들을 시작으로 독립 다큐멘터리 신진 제작자들의 작품에 대해 보다 풍성한 이야기들이 오갈 수 있길 기대하는 바람도 담겨 있습니다.


작품을 보기 전 이 다큐멘터리가 친족 성폭력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는 것을 알고, 선뜻 영화를 보는 것이 쉽지 않았다. 다른 성폭력도 아닌 아버지에 의해 저질러진 성폭력의 피해자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에서 생길 심적 부담감이 미리부터 힘들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는 타이틀이 올라가고 등장한 첫 번째 장면에서부터 나의 기우를 흔들어 놓았다. 아마도 촬영이 막 시작되었을 무렵에 찍힌 부분일 것이다. 카메라를 든 감독을 향해 장난어린 표정으로 브이 자를 그려 보이며 “너무 무책임한 거 아니에요? 대사도 안주구.”라고 말하는 소녀. 이 해맑은 소녀 돌고래(별명)가 이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이었다.

▲ 잔인한 나의, 홈 | 아오리 | 77분 | 다큐멘터리 | 2013


돌고래가 겪고 있는 현실은 영화나 소설 속에서 등장할 법 한 상황이었다. 그녀는 딸만 셋인 집의 첫째 딸이다. 아버지는 돌고래가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부터 그녀의 몸을 만지기 시작했고, 사춘기 무렵부터 그녀가 집을 나오기 얼마 전까지 지속적으로 그녀를 성폭행 했다. 오랜 고민 끝에 어머니에게 털어놓았을 때, 그녀의 첫마디는 “너 즐기지 않았니?”라는 충격적인 말이었다. 그 후 돌고래는 ‘열림터’라는 성폭력 피해자 보호소에서 생활하며 아버지를 대상으로 소송을 벌이고 있었다. 아버지는 성폭행 사실을 계속해서 부인했고, 할머니와 외할머니, 삼촌까지 고소를 취하하라며 그녀에게 독촉전화를 하고 있었다. 그녀의 가족 중 그녀의 편인 이는 아무도 없었다. 2011년 잡년행진에 참여한 그녀는 해방감을 만끽하며 노래에 맞춰 몸을 흔드는 참여자들 속에서 혼자, 울고 있었다.

이런 잔인한 현실 속에서 영화가 또 그녀가 보여주는 삶은 고통과 아픔만 있는 모습이 아니었다. 소송과 관련된 일로 지방에 있는 법원에 내려간 그녀는 여행을 온 것 같다며 신나했다. 다시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수능을 보고 나와선 시험장에서 만난 고3 아이들에 비해 자신이 그렇게 늙지 않았더라며 농담을 했고,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그녀의 모습은 언젠가 그녀가 홍대 거리에서 공연을 하고 있을 모습을 상상하게 했다. 돌고래는 웃기 좋아하고 끼가 많은 20대 초반의 평범한 여자였다. 영화의 첫 장면부터 시작된 이러한 돌고래의 모습은 사실 영화를 보는 내내 일말의 당혹감을 느끼게 했다. 은연중에 상상하고 있었던, 그렇기 때문에 미리부터 영화보기가 힘들게 느껴졌던 “성폭행 피해자”로서의 일관된 모습을 돌고래와 이 영화는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는 <잔인한 나의, 홈>이 선취해 내고 있는 지점이다. 다른 매체에 나오는 성폭행 피해자들의 대부분은 모자이크나 음성변조 처리 후 등장하고, 일관되게 고통과 절망에 차 있는 모습으로 보여진다. 이러한 이미지는 성폭행 피해자에 대한 고정된 관념을 만들어내고, 성폭행 사실을 신고하기 어렵게 만들며, 피해자들로 하여금 “피해자 상(像)”에 스스로를 맞추게 하여 오히려 고통과 아픔 속에서 빠져나오기 힘들게 만들기도 한다. 이러한 현실에서 돌고래는 모자이크 처리를 하지 않은 모습으로 영화에 나왔고, 여느 또래와 마찬가지로 연애와 미래의 삶에 대한 고민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카메라를 향해 커피를 내밀며 웃는 그녀의 모습과 함께 편집된 밝은 기타 선율은 감독 역시 돌고래가 슬픔과 절망 속에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생각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렇듯 <잔인한 나의, 홈>은 기존의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피해자 상像”을 깨어놓는 다큐멘터리이다.

영화를 보는 동안 머릿속 한 켠을 떠나지 않은 또 다른 생각은 어떻게 돌고래가 선뜻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다큐멘터리에 나올 수 있었을까, 라는 점이었다. 영화 초반, 돌고래는 이에 대해 묻는 감독의 말에 다른 성폭행 피해자들보다 주변 시선의 신경을 덜 쓰고, 닥치지 않은 미래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는 편인 본인의 성격에 대한 언급으로 답을 대신했지만 이것만으로는 그녀를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이 질문은 앞서 가졌던 당혹감보다 더 근본적인 지점에 대한 것이었고, 무엇보다 돌고래를 향한 것이었다. 타로카드를 보는 장면에서 감독이 타로카드리더에게 이 영화의 주제가 성폭행이 아닌 다른 거라 말했음도 굳이 솔직하게 이야기하여 감독을 곤란하게 만든 돌고래의 모습을 보면서는, 그녀에게 어떤 노출증이 있는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고백들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그녀가 얻는 것은 무엇일까.

이 지점은 영화의 엔딩크레딧이 오른 후 후기처럼 삽입된 장면을 볼 때, 갑작스런 깨달음으로 찾아왔다. 재판에서 승소한 후, 돌고래는 고등학교 동창게시판에 자신이 겪은 일을 올렸고, 친구들은 그녀를 만나러 와주었다. 화면 속에는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눈물을 흘리는 돌고래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영화 속에서 반복적으로 “믿음”에 대해 이야기 했었다. 살면서 가장 믿고 따를 수 있는 가족으로부터 외면당한 그녀에게 다시 믿을 수 있는 존재와 믿음 자체의 회복은 어쩌면 소송에서 이기는 것 이상으로 절박한 것이었을지 모른다. 가족 중 한 사람이 가해자이고, 나머지 가족 모두가 그녀를 등진 상황에서 열림터 식구들, 감독인 아오리, 고등학교 동창생들, 이 세상을 향해 자신의 고통을 드러내고 그들로부터 공감과 지지를 받는 것은 상실된 믿음을 되찾고, 다시 살고자 하는 필사적인 자기치유의 노력인 것이다. 돌고래는 믿음 그 자체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토록 자신의 아픔을 고백하고 말하고자 했던 것이다.

<잔인한 나의, 홈>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질 수 있으면 좋겠다. 특히 같은 아픔을 공유하고 있는 이들에게라면 더욱 좋을 것 같다. 성폭력은 가까운 이들에 의해 벌어지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성폭력은 폭력의 행위가 남기는 상처, 트라우마와 더불어 타인과 세상에 대한 신뢰 역시 잃게 하기 쉽다. 그러한 이들에게 <잔인한 나의, 홈>과 돌고래가 보여주는 모습은 위로와 용기가 되어, 세상을 향한 믿음을 다시 한 번 품어볼 수 있도록 해주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