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15년|12월|특집] 산재법 개정에 대한 간단한 소고

김혜선 민주노총 제주지역본부 법률원(준) 노무사

요즘 정부의 노동개혁(이라 쓰고 개악이라 읽는)에 대한 노동계의 평가는 거의 일관되게 비판적이다. 그도 그럴 것이 노사정 합의(?) 이후 충분한 노사정 의견을 들어 법안 상정을 하기로 한 합의를 손바닥 뒤집듯 뒤집고, 며칠 만에 정부와 기업의 입맛에 맞는 각종 개정안을 발의하였기 때문이다. 개정안 중 가장 논란이 된 것은 바로 근로기준법 상 '쉬운 해고'와 파견법, 기간제법 상 '비정규직 늘리기'이다. 반면 산재법 개정안은 크게 관심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자라면 안전하게 노동할 수 있는 권리를 정한 산업안전보건법과 노동을 하다가 다쳤을 때 보상받을 권리를 정한 산재보상보험법은 노동자의 건강과 생존에 직결되는 법으로, 무시할 수 없는 중요 법안이다.

그래서 산재법 개정안을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출퇴근 재해의 산업재해 인정'이다. 이는 그간 노동계와 학계에서 지속적으로 문제제기를 하고 법원에서 조금씩 근로자의 출퇴근재해에 대하여 예외적으로나마 산업재해로 인정해오던 것을 법문화 한 것으로, 진일보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개정안에서 인정하고 있는 출퇴근재해는 '근로자의 중과실'이 있는 출퇴근재해에 대해 보험급여를 제한하는 조항을 포함하고 있다. 사실 상 '무과실책임주의(손해발생에 있어서 고의 또는 과실이 없는 경우에도 배생책임을 진다는 주의)' 원칙을 적용하는 산재보상보험법의 근간을 흔드는 큰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나아가 출퇴근 재해의 범위에 '한 취업 장소에서 다른 취업 장소로의 이동'을 포함하고 있어 이미 업무상 재해로 인정되고 있던 '출장 시 재해'마저 '출퇴근 재해'로 오해하여 법을 적용할 여지를 남겨놓았다.

한편 산재보상보험법 시행령 개정안에서는 산재보상보험법 특례 적용대상인 특수형태업무종사자의 확대와 업무상 사유로 발생한 적응장애, 우울병 에피소드를 업무상 질병 인정기준에 포함하는 내용이 들어있다. 물론 산재보상보험법의 적용대상 범위와 업무상 질병의 범위가 확대되는 것은 적극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그 적용대상의 범위확대가 노동자로서 당연히 보장받아야하는 산재보상이 아니라, 개개인이 일부 보험료를 납부하여야만 적용받을 수 있도록 정한 '특수형태업무종사자에 대한 특례'의 형태가 되는 것은 현 사회의 업무분화 속도와 새로운 직업의 발생속도를 여전히 못 따라가고 있음을, 그리고 노동자 전반에 대한 보장 확대가 아닌 특수한 예외 조항으로서 확대 보장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또한 '업무와 관련하여 고객 등에 의한 폭력 또는 폭언 등 정신적 충격을 유발할 수 있는 사건 및 이와 직접 관련된 스트레스로 발생한 적응장애, 우울병 에피소드'가 뒤늦게나마 업무상 질병으로 포함된 것은 다행이다.

하지만 이것이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감정노동자'에 한해서만 적용될 수 있는 조항인 것처럼 선전되고 특정 질병에 한하여 산업재해로 인정하고자 하는 것은 매우 문제가 있다. ("고객응대업무 등 감정노동근로자에게 발생할 수 있는 정신적 스트레스를 원인으로 하는 업무상 질병 인정기준을 개선하는 등 현행 제도의 운영상 나타난 일부 미비점을 개선・보완하려는 것임." - 산재법 시행령 일부개정안 제안 이유 중)

노동자는 누구나 기본적으로 사용자와의 관계, 직장동료와의 관계, 업무상 마주하는 제3자와의 관계에서 자신의 감정을 소모할 수밖에 없는 '을(乙)'이고, 따라서 노동을 제공하는 과정에서 누구나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는 2011년 금속노조 제조업사업장인 유성기업의 노동자들이 회사의 노조파괴 과정에서 얻은 정신질환(혼합형 불안 및 우울병 장애, 적응장애 등)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인정한 사실, 첨단장비로 지속적인 감시를 받던 노동자들이 받은 정신질환에 대해 업무상 재해 인정을 받은 사례(종국 결과는 패소함), KT의 노조탄압으로 인하여 이곳 노동자들에 발생한 정신질환에 대한 민사 손해배상청구 인용 등에서도 일부 확인 된다.)

또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하여 발생할 수 있는 질병은 매우 다양하므로 이중 극히 일부에 해당하는 적응장애와 우울병 에피소드만을 특정하여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하는 기준을 세우는 것 역시 타 정신질환에 대해선 산재인정 여부를 두고 논쟁거리로 남겨놓는 것으로, 문제가 심각하다. 현행법상 '감정노동'이 무엇인지 명확한 개념이 없는 상태도 문제이지만, 섣불리 '감정노동자'와 아닌 자로 나누는 이분법적 사고 역시 매우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산재보상보험법을 제정한 목적은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하며, 재해근로자의 재활 및 사회복귀를 촉진하기 위하여 이에 필요한 보험시설을 설치・운영하고, 재해 예방과 그 밖에 근로자의 복지 증진을 위한 사업을 시행하여 근로자 보호에 이바지하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번 산재법 개정안은 부분적으로 확대된 측면은 있으나 '무과실 책임주의'라는 산재법 기본원칙에 대한 훼손, 기존에 인정되던 업무상 재해의 축소, 전체노동자에 대한 법 적용의 확대가 아닌 일부 노동자에 대한 제한적 적용 등 산재 보상보험법 목적에 맞는 개정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모든 법 개정이 책상에 앉은 국회의원의 펜대에서 일방적으로 나와서는 안 된다. 해당 법의 적용을 받는, 그리고 적용을 받아야만 하는 노동자들의 이해와 요구를 받아서 만들어져야 한다. 그것이 법 개악이 아닌 진정한 법 개정의 출발이다.
태그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한노보연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