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16년|1월|현장의목소리] 반쪽짜리 편집자 윤정기 씨의 고군분투기

부당전보와 노동탄압에 맞서 싸우는 언론노조 서울경기지역 출판지부 윤정기 조합원 인터뷰

이번에 <일터>가 만난 윤정기 씨는 2014년 5월 평소 좋아하는 인문학을 더 많은 독자들과 나누고 싶어 출판인의 길을 선택한 편집자다. 그런데 윤정기 씨에게 올 겨울은 유난히 춥다. 그 이유는 2014년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진 왼쪽이 윤정기 조합원이다

성추행 방지 위해 CCTV 설치?

“CCTV 얘기를 처음 언급한건 전자책(e-book)팀에 있던 김 차장님이었어요. 새로운 플랫폼 사업을 하는데 보안 문제와 함께 당시 쌤앤파커스 출판사에서 발생한 성추행 사건을 언급하며 CCTV를 설치하자고 사내 게시판에 글을 올리더라고요. 대부분 직원들은 반대했죠. 저도 직원들 사생활 침해 소지가 있으니 동의를 구하는 절차를 꼭 거쳐야 한다고 의견을 말했죠. 그런데 어느 날 회사에서 일방적으로 CCTV를 설치하겠다는 공지를 띄운 거예요. 그리고 강병철 사장이 저를 포함해서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직원 3명을 부르더라고요.”

- 신입사원이 의견을 피력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 같은데요.
“신입사원으로서도 참고 넘어가기 힘든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죠. 게다가 면담에서 사장은 ‘좋은 의미로 설치하려고 했는데 너희가 반대하니 달지 않겠다’라더니, 대신 본인 책상을 저희가 일하는 (편집부) 사무실로 옮겨서 일을 잘하는지 지켜보겠다고 했어요. 어이가 없었죠. 어쨌든 결국엔 CCTV 설치도, 사장의 책상 이동도 중단됐어요.”

CCTV 사건이 이렇게 넘어가는 듯했지만 윤정기 씨는 교정만 하는 반쪽짜리 편집자가 되어야만 했다.

“주 1회 기획회의를 했는데 사장이 제 기획안에 대해서 대놓고 면박을 주거나, 같은 기획을 발표해도 제가 하면 통과를 안 시켜주더라고요. 12월부터는 교정교열팀에 배정돼서 정상적인 편집 업무는 못 하고 교정교열만 했어요. 처음 입사했을 때보다 권한도 줄고 업무에서 배제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죠.”

- 그리고 결국 올해 3월 일이 터진 거군요.
“네. 올해 3월에 조직개편이 있었어요. 이때 정은영편집주간이 저를 부르더니 각 팀장들이 저를 까칠하고 비판적인 직원으로 생각해서 아무도 팀원으로 받으려 하지 않으니 권고사직을 하는 게 어떻겠냐고 묻더라고요. 저는 말도 안 되는 이유라며 거부했죠. 편집주간도 일단 알겠다고 다시 얘기해보자고 했는데 다음 날 바로 파주에 있는 물류창고로 인사발령이 나더라고요.”

윤정기 씨는 처음 권고사직 얘기를 듣고, 이를 거부 했을 때 다른 게 돌아오겠다고 예상했는데 역시나,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다음 날 물류창고로 부당전보를 당한 이후 싸워야겠다고 결심한 윤정기씨는 회사 짐을 정리하면서 사내 인트라넷 게시판화면을 캡처하고 그동안 부당노동행위라고 할 만했던 증거들을 모았다.

- 파주 생활은 순탄했나요?
“처음에 갈 때는 재고관리 업무만 할 거라고 했는데, 현장에 가보니 재고 파악도 어느 정도 상황을 아는 분이 할 수 있는 일이라, 저는 박스 포장하고 책 배송하는 일을 주로 했어요. 일도 일이지만 출퇴근이 가장 힘들었어요. 집이 일산이라 파주까지 그나마 가깝기는 했는데, 일하는 곳이 대중교통으로 들어갈 수가 없어서 파주 롯데아웃렛에서 자전거로 20분씩 이동해야 했어요. 게다가 지각하면 시말서를 써야 했거든요. 잠자는 시간 쪼개서 회사와 법적인 싸움도 준비해야 하고 출퇴근도 해야 하니까 그게 제일 힘들더라고요.”


본격적인 싸움을 결심하면서 노동조합과 언론사 문을 두드리다

“부당전보 공지가 있던 날, 저와 2월까지 같이 일하다 퇴사한 선배 A와 어떻게 할지 상의했어요. 결국을 포함해서 그동안 자음과모음에서 있었던 문제를 제보하기로 했어요. 그러고 나서 출판지부 부지부장과 면담하면서 노동조합에도 가입했죠.”

제보 이후 한겨레, 한국일보 등 주요 일간지를 통해 자음과모음의 일이 세상에 알려졌다. 한편, 자음과모음은 제보자들과 사태해결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한 출판지부와 윤정기/퇴사자 A씨를 상대로 형사 고소하고, 한국일보를 상대로는 언론중재위 신청으로 맞대응했다. 뿐만 아니라 자음과모음에서 책을 출판한 저자들에게 윤정기 씨가 평소 행실이 바르지 않은 직원이었다는 인신공격성 메일을 보내며 기사의 본질을 흐리는데 애썼다. 각종 소송에도 위축되지 않고 싸움으로 이어간 윤정기 씨는 2015년 7월 말 현장에 복귀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회사는 윤정기 씨에게 2억여 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이라는 폭탄을 던졌다

“복귀는 했지만 업무는 여전히 교정교열이었어요. 강병철 사장과 정은영 편집주간은 사과 한 마디 없이 그저 분란 일으키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분란이 뭐냐, 하고 물어봤죠. 사무실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편집주간이 저보고 나가라고 하더라고요. 이튿날엔 손배소 고소장을 받았어요. 회사와 책을 내려고 했던 저자들이 저의 사건으로 작업을 못하겠다고 하면서, 회사가 손해를 입었다고 손배 소송을 제기한 거죠. 그때는 정말 화가 많이 나더라고요. 그때까지만 해도 회사에 피해를 주는 건 피해야겠다, 하는 생각이었는데 너무 악의적으로구니까 이젠 정말 확실히 대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다행히 지금 현재는 회사가 모든 소송을 취하했다고 들었습니다.
“최근 정은영 편집주간이 (주)자음과모음의 새 대표 이사로 선출됐어요. 사옥도 새로운 건물로 이사하고요. 그러면서 모든 소송(형사, 민사)을 취하하고 언론에 이 사실을 흘리면서 사태를 마무리 짓는 분위기를 만들더라고요. 출판지부와 출판노동자들이 계속 피케팅하고 집회도 하고 사태가 커지니까 회사가 정리를 한 거죠. 출판사와 관계 맺고 있는 저자들, 일부 출판관계자들이 중재하려고 노력했던 것도 한몫했고요.”


여전히 끝나지 않은 싸움

“소송을 취하하긴 했지만 노동조합에서 줄곧 교섭을 요구했어요. 요구안은 강병철 사장과 정은영 현 대표이사가 사과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라는 거예요. 교섭에서 사과를 요구하는 이유는 사장이 제게 개별적이고 비공식적으로 사과하는 것이 아니라 공식적이고 공개적인 사과를 요구하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재발 방지 대책은 회사에 조합원이 저밖에 없다보니 단체협약은 어렵더라도 취업규칙을 변경하거나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강제하려고 해요. 다행히도 회사가 줄곧 교섭을 거부해오다 최근 처음으로 교섭에 응하겠다는 답변을 보내왔어요. 지금은 교섭 날짜와 시간 등을 조율하고 있고, 2016년 1월 첫 교섭이 열릴 것 같아요.”

현재 회사에서 윤정기 씨가 (주)자음과모음이 직원이 아니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는데 대체 무슨 상황인가요?

“소속 문제는 복잡하지만, 본질적인 발단은 입사 당시 소속을 근로자인 제게 통보도 없이 마음대로 계열사로 정했다는 점이에요. 애초에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으니 저로서는 알 방도가 없었죠. 저는 현재 자음과모음 출판사의 계열사인 ‘더이룸출판사(구 이룸)’ 소속 직원으로 되어 있어요(현재 대부분의 직원들은 (주)자음과모음 소속). 최근에 대표가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제 법적 사용자는 여전히 강병철 사장입니다. 더이룸출판사에는 4명의 노동자가 소속되어 있지만 하는 일은 물류, 교정 등 제각각이에요. 업무에 의한 소속의 구분이 전혀 아니라는 거죠. 단순히 5인 이하 사업장은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지 않으니까 이점을 회사가 노리고 있는 겁니다. 최근 교섭에 응하는 과정에서 회사는 갑자기 제가 (주)자음과모음이 아니라 더이룸출판사 직원이라고 주장하고 있어요. 그런데 형식적 소속이 그럴 뿐이지 저는 지금껏 자음과모음이라는 출판사에서 일한 겁니다. 다만 월급을 더이룸출판사(구 이룸) 명의로 받았는데, 이 때문에 회사에서그렇게 주장하는 거죠. 지노위에서도 제가 자음과모음이라는 하나의 출판사 직원이기 때문에 (부당전직이 아닌) 부당전보를 인정한 건데 말이에요.”

강병철 사장과 정은영 편집주간은 그간 주요 일간지와 인터뷰를 통해, 윤정기 씨의 계열사 근로계약서 작성 문제는 2014년 11월 노동부에서 감사가 나왔을 때 경영지원팀에서 형식적으로 계열사 근로계약서를 제출한 실수였고 이것으로 인해 불이익은 전혀 없다고 말해왔다.

- 지난 1년, 쉽지 않은 길을 걸어왔는데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았네요.
“출판지부 조합원들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못 했을 거예요. 아내도 워낙 힘든 상황인걸 아니까 많이 이해해줬고요. 또 저보다 훨씬 힘들게 노동하고, 싸우고 있는 노동자들이 많은데 오히려 그분들이 저를 지지해주고 함께 연대해주셨던 게 가장 큰 동력이 되었던 것 같아요.”

  윤정기 조합원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주는 조합원들

윤정기 씨는 이번 싸움이 좋은 선례로 남아서 출판노동자들이 다시는 자신과 같은 일을 겪지 않게 된다면, 그것만큼 좋은 일이 없을 것 같다고 말한다. 2016년엔 반드시 승리해서 ‘책’ 만큼이나 ‘책을 만드는 노동자’들의 가치가 존중받고, 반쪽짜리 편집자가 아니라 인문학 편집자 윤정기 씨의 책을 읽고 많은 독자들이 감동을 받는 한해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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