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16년|3월|특집] 유통업 노동자의 건강권 실태와 해결방안

미국에서 가장 열악한 일자리를 부르는 말이 있다. 바로 ‘맥잡(McJob)’이 그것이다. 맥도날드에서 아르바이트하는 노동자를 일컫는 이 말은 1991년 캐나다 출신의 소설가 더글러스 커플랜드가 발표한 소설에서 “명함도 못 내밀고, 체면도 안 서고, 수지도 안 맞고, 장래성도 없는 서비스업”을 지칭하는 말로 2003년 메리엄-웹스터 사전에 실리면서 산업구조의 변화에서 급격하게 늘어난 저임금의 서비스직을 대표하는 말이 되었다.

여기에 인구 증가의 둔화와 성별에 대한 편견은 이러한 일자리에 여성노동자들이 주로 진출하게 하였다. 판매와 돌봄 등에 있어 소위 ‘여성성’이라고 생각하는 친절한 미소, 배려가 판매하는 상품의 (특히, 구매능력이 남성에게 쏠려 있는 상황에서) 가치를 높여주는 감정노동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종진 등이 2015년 국가인권위의 위탁을 받아 실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유통업 매장 판매 서비스 노동자는 남성(29만9천 명,32.9%)보다 여성(60만9천 명, 67.1%)이 2배 이상 많았고, 월평균 임금은 137만 원이었다. 특히 근속기간은 평균 2.7년(1년 미만 45%)에 불과하여 불안정한 노동시장의 특성을 반영하고 있었다. 또한, 이 연구에선 판매직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여성 노동자들이 휴게실, 정수기, 화장실, 식당 등 기본적인 시설조차 마음 편하게 이용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이들 여성 노동자들의 건강권과 노동조건에 대한 관심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더군다나 화려한 백화점과 대형할인점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많은 여성 노동자들 중 대부분은 해당 업체 소속이 아닌 간접고용 노동자이다. 전체 15만 명으로 추산되는 대형 유통업 노동자 중 비정규직이 41.2%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역시 입점 협력업체 종사자 규모가 포함되어 있지 않아 과소평가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화려해 보이는 백화점 매장의 뒤편, 직원들만 다니게 되어 있는 통로에는 매장으로 들어서면서 허공에 대고 90도로 인사를 해야 하는 라인이 있고, 비상구 계단에 앉아 구두를 벗고 지친 다리를 주무르고 있는 여성 노동자들이 있다.

실제 유통업에 일하는 젊은 여성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과 부족한 휴일 때문에 일·가정 양립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여가나 자기 계발 시간의 부족을 호소하고 있다. 여기에 과도한 친절 경쟁 속에 여성 노동자들은 다양한 작업장 폭력에 노출되어 있었다. 김종진 등이 대형 유통업 판매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고객의 폭언을 경험한 경우가 39%, 상급관리자로부터의 폭언을 경험한 경우가 10%가 있었다. 고객으로부터 신체적 폭행과 성희롱을 당한 경우도 1.9%와 3.9%였다.

이러다 보니 유통업 서비스 판매직 노동자를 대상으로 지난 1년간 의사에게 진단받은 경험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족저근막염은 7.3%였고, 방광염은 17.3%, 우울증은 7.0%였다. 특히 우울증의 경우 현재 증상이 있는 경우도 18.8%나 되었고 근골격계로 치료를 받은 경우는 46.3%나 되었다.

이렇게 유통업에 근무하는 여성 노동자는 이중 삼중의 원·하청 구조와 열악한 노동조건에 있을 뿐만 아니라 강요되는 여성성 때문에 심리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가정과 일의 균형을 맞추지 못해 이중·삼중의 부담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여성노동자들의 건강을 위해서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여성의 달이 있는 3월을 맞아 거창하게는 아니더라도 단기적으로 대중적인 관심을 가지고 실천할 수 있는 과제들은 무엇이 있을까?

유통업 여성 노동자들의 상황을 볼 때 가장 시급한 두 가지는 정기 휴일 및 휴점 시간의 확대와 입점 업체 노동자들이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발을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안락하고 출입이 편안한 휴게 공간의 확보라 할 수 있다. 경제 민주화와 여성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위해 이 두 가지를 핵심 의제화 할 필요가 있다.

노동자들의 건강을 생각하고 보호하기 위한노력을 열심히 하는 업체를 이용하자는 소비자 운동을 함께 고민한다면, 이러한 업체를 이용하는 것이 ‘개념 있는 소비자’가 되는 길이라는 시민운동을 같이하면 어떨까? 극도로 유연화 된 노동시장에서 노동자 건강의 문제는 일부 조합이나 시민단체의 의제를 넘어서 지역사회와 시민이 함께 만들어 가야 하는 문제임이 분명하다. 이미 세계보건기구에서도 작업장의 담장을 넘어서서 노동자들이 살아가는 지역 사회접근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처럼,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유통업 노동자들의 건강권 문제를 가지고 지역사회를 만나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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