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10년ㅣ03월ㅣ이러쿵저러쿵] 천천히 깊고 긴 숨을 쉬어야겠습니다



천천히 깊고 긴 숨을 쉬어야겠습니다.



한노보연 운영집행위원 김 인 아


벼르고 벼르던 히말라야에 갔습니다. 지구의 천장이라는 그 곳에 갔습니다. 봄이면 한 가득 야생화가 핀다는 안나푸르나도 아니고, 깊이를 알 수 없는 계곡이 흐른다는 랑탕도 아닌 그저 높다는 에베레스트가 보이는 그 곳으로 갔습니다. 그 곳에서 2009년의 보름달을 보내고 2010년의 해를 맞이했습니다. 고산병으로 머리가 아프고 몸이 붓고 숨도 찼지만 그래도 꾸역꾸역 걸었습니다. 저 멀리 눈으로 뒤덮인 에베레스트도 보이고 눕체와 로체같은 8,000m가 넘는 높은 봉우리를 바라보았습니다.
전 세계에서 날아온 사람들의 짐을 들어주고 여행을 안내해주고, 그들에게 밥을 팔면서 근근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눈에 밟혔습니다. 너무나 크고 깊은 자연의 품에서 긴 호흡을 해가며 바람과 눈을 만났습니다. 심지어 갑자기 쏟아진 폭설에 손목이 부러졌지만 자연의 품 안에서 자유로웠습니다.

예상치 못한 폭설이 쏟아지는 그 곳에서 용산 참사의 타결 소식도 듣고 노조법 개악 소식도 들었습니다. 그 때문에 고생한 동지들이 생각나서 그 순간 히말라야에 있는 내가 너무 미안하기도 했지만 한편 다행이라고도 생각했습니다. 한국에 있었어도, 그 곳에 있었어도 어차피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2009년 평택의 여름처럼 이런 저런 소식에 안절부절 하고 있었을 겁니다. 그 자리에 당장 달려갈 수 없는 스스로를 질책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나마 히말라야 핑계라도 댈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여기저기 장기투쟁 사업장의 한 숨이 깊어지고, 노조법 개악으로 힘들어 하고, 조합원들이 이기적이라 조직을 하기 힘들고, 강이 파헤쳐지고, 지방 선거라고 시끌시끌하고, 과로사로, 폭발사고로 죽어가는 노동자들이 여전히 있고, 정리해고의 칼이 전국에서 번쩍 거리고, 여기저기서 힘들다는 푸념이 터져 나옵니다. 그 어디에서도 산소 같은 희망을 찾을 수 없다고, 숨 쉬기가 힘들다고 아우성입니다. 이런 아우성을 들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활동가라는 사람들도 그저 아우성 속에서 얕은 숨을 받히게 쉬고 있을 뿐이어서 너무 힘이 듭니다.
산소가 부족할 때, 힘이 들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 숨을 너무 빨리 쉬면 우리 몸에는 이산화탄소만 쌓여갑니다. 폐 속 세포 하나하나에 산소를 전달하겠단 생각으로 깊고 천천히 숨을 쉬어야 세포들이 활기를 되찾습니다.

3,000m 이상의 높은 산을 오르는 일은 사실 별로 어렵지는 않습니다. 산소가 조금 줄어들었을 뿐이니 천천히 숨을 쉬면서 천천히 올라가면 우리의 몸은 대부분 잘 적응합니다. 몸이 적응하지 못해서 힘들어하면 좀 쉬면서 몸이 희박한 공기에 적응할 시간을 주면 됩니다.
여전히 산소가 부족해서 힘든 현실이지만, 여기저기 안 힘든 곳이 없는 것 같은 춥고 산소도 없고 눈도 엄청 많이 온 가파른 산을 넘고 있는 것 같지만, 다시 한 번 깊은 호흡을 하며 발 디딜 곳을 잘 살핍니다. 노동자들, 나의 친구와 이웃들, 그들이 살고 있는 땅을 꼼꼼히 살피면서 한 발씩 한 발씩 걸어가려고 합니다. 숨이 차지만 그럴수록 더욱 깊고 긴 숨을 쉬면서 그렇게 가보겠습니다. 그렇게 한 발씩 한 발씩 앞으로 가다 보면 어느새 눈앞에 큰 산이 나타나고 파란 하늘이 나타나지 않을까요? 그렇게 천천히 깊고 긴 숨을 쉬면서 동지들과 함께 가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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