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10년ㅣ03월ㅣ 새세상열기] 1. 장애의 사회학적 이해



1. 장애의 사회적 이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실장 김 도 현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따라 그 해결방법도 달라진다.


이진경의 책 《철학과 굴뚝 청소부》에서 사용하고 있는 하나의 사례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어떤 ‘문제’가 발생하였다. 우리 집 대문 앞에 아무 양해도 구하지 않은 채 며칠 동안 계속해서 주차해 놓은 자동차 때문에 불편을 겪다가 화가 나서 그 자동차의 바퀴에 펑크를 내 버렸고, 이로 인해 자동차의 주인과 싸움이 발생한 것이다. 자, 그럼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즉, 어떻게 문제를 설정할 것인가?
첫째, 왜 나는 바람직한 일이 아님을 알면서도 그 자동차에 펑크를 냈나? 자동차 없는 것도 서러운데, 남의 차가 우리 집 앞에 세워져 고생을 했으니 화가 나서 그랬다는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다. 이 경우 문제의 해결은 심리 치료를 받거나 수련을 쌓아서 나의 심성을 변화시키는 것으로 가능할 수 있다(심리적 문제설정→심리적 해결).
둘째, 불법 주차한 자동차에 펑크를 낸 행위가 불법인가, 아니면 적법인가라는 문제로 이 상황을 바라볼 수 있다. 이 경우 문제의 해결 역시 법정에서 나의 행위에 대한 적법성을 인정받으면 그걸로 해결될 수 있다(법적인 문제설정→법적인 해결).
셋째, 왜 그 사람은 주차장이 아닌 나의 집 앞에 불편하게 주차를 해 두었나? 그건 주차장이 모자라기 때문이며 근본적으로는 도시 교통정책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는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다. 이 경우 문제의 해결은 도시 교통정책의 변화를 통해서 가능하게 된다(사회적 문제설정→사회 정책적 해결).
이렇게 우리의 주변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는 그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접근하느냐에 따라 그 해결의 방식도 달라진다. 매우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어쩌면 당연하기 때문에 중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동정, 봉사, 극복 : 장애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3가지 시각


그렇다면 우리 사회가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각은 어떤 것일까? 결국 장애문제의 해결도 장애와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달라질 터인데 말이다. 이는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 확인할 수 있지만, 가장 손쉽고도 확실한 방법은 우리 시대의 유력한 대중매체라고 할 수 있는 TV와 신문, 그리고 인터넷 등을 들여다보는 일일 것이다.
이러한 매체들에서 가장 많이 접하게 되는 장애인에 관한 이야기는 대략 세 가지 유형으로 묶어 볼 수 있다. 첫째, 장애 때문에 어려움과 비참함을 겪어야 하는 사람들을 모습을 통해 시혜와 동정을 불러일으키는, 시청자와 독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이야기들. 둘째, 그러한 장애인을 위해 봉사하는 이웃들의 아름다운 이야기들, 그래서 우리 사회가 삭막하지만 아직은 인간미가 살아 있는 살만한 곳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이야기들. 셋째, 그러한 봉사에 의존하지 않고 개인의 초인적인 노력을 통해 장애를 극복하고 성공한 장애인의 영웅담.
결국 이러한 시혜와 동정, 봉사, 극복이라는 3가지 키워드와 이미지가 우리 사회가 장애(인)를 바라보는 주류적 시각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역으로 이러한 이미지들은 사회구성원들로 하여금 장애에 대한 특정한 인식을 강화시킨다.





대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사회적으로 규정된다.


그런데 어떤 개인이 장애에 대해 갖는 인식은 결코 그 자신의 선의와 악의에 의해, 명석함과 어리석음에 의해, 즉 그 자신의 임의적 선택에 의해 형성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사람들은 매우 많은 것을 스스로 판단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사회적인 기준과 가치에 따라, 사회적으로 판단한다. 우리가 머리로 생각할 여지도 없는, 감성적이며 본능적인 판단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미(美)의 기준까지도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상기해 보면 이러한 주장이 조금 더 쉽게 납득이 될 것이다.
혹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TV에서 본 적이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아프리카의 한 부족에서는 목이 길면 긴 여성일수록 더욱 아름다운 것으로 간주된다. 그래서 그 부족의 여인들은 어릴 때부터 쇠로 된 고리를 최대한 많이 목에 감아서 목을 늘린다. 우리가 보기엔 이상하지만, 적어도 그 부족의 사람들은 모두가 그러한 모습을 아름답다고 느낀다. 서태평양의 어떤 섬나라에서는 뚱뚱한 것이 여성의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이 된다. 또한 중세 시대 중국의 한족(漢族)은 발이 작은 여성을 아름답다고 생각하여 전족(纏足)이라는 풍습을 지녔다. 어린 여자 아이의 발을 천으로 동여매고, 발에 꽉 끼는 작은 신발을 신도록 하여 발을 더 이상 자라지 못하도록 했던 것이다.
이러한 예들은 미의 기준에 대한 역사성과 사회성을 잘 보여주는데, 시대와 지역에 따라 미의 기준이 달라지는 것은 그냥 그런 것이 아니라 나름의 경제적․문화적 배경을 지니고 있다. 아프리카의 한 부족 마을에서 목이 긴 여성이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것은 사냥이 주된 경제활동인 것과 연관된다. 즉 영양, 얼룩말, 타조, 기린 등 사냥의 대상이 되는 온순한 동물은 목이 길며, 사냥을 하는 주체인 사자, 하이에나, 표범은 목이 짧다. 이러한 이미지가 전이되어 목이 긴 것이 여성성의 상징으로, 아름다움의 기준으로 각인되어 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뚱뚱한 것이 미의 기준인 서태평양의 섬나라에서는 해일이 자주 일어난다고 한다. 모든 것을 쓸어 가버리는 해일이 한번 발생하면 상당한 기간 동안 먹을 것이 부족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 섬나라에서는 일차적으로 생존 능력이 강하여 종족을 번식 시킬 수 있는 여성이, 즉 뚱뚱한 여성이 아름.다운 것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장애에 대해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갖는 시각 역시 개인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이렇게 사회적으로 규정되어진다. 나중에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테니 좀 거칠게 단순화시켜 이야기 하자면, 장애에 대한 인식 역시 기본적으로 현 사회의 정치경제적 구조(특정한 종류의 노동력에 대한 자본의 기능적 필요)와 중심적 가치들(경쟁과 효율성, 개인주의)에 의해 구조화되고, 이 사회의 지배적 문화에 의해 장애가 어떻게 투영되어지는가에 달려 있으며, 우리들의 장애에 대한 인식 역시 그러한 사회구조와 문화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손상은 손상일 뿐이다. 특정한 관계 속에서 손상은 장애가 된다.


현재 우리 사회에 있어 주류적인 장애의 정의는 WHO(World Health Organization : 세계보건기구)에 의해 제시되고 있으며, 이는 손상(impairment), 기능제약․불능(disability), 그리고 사회적 불리(handicap)라는 삼단계의 구별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세 가지 단어가 우리나라 말로는 모두 장애라고도 번역 될 수 있는 것들이다). WHO는 이러한 구분에 기초하여 ICD (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f diseases 국제질병분류기준)를 근간으로 1980년 ICIDH (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f impairments, disabilities, and handicaps : 국제장애분류기준)를 제시하게 된다. 이를 간략하게 그림을 통해 설명하면 오른쪽의 표와 같다.
이러한 주류적 정의에 있어 중요하게 바라보아야 하는 것은 장애의 원인을 어디에서 찾는가이다. 손상(impairment)→기능제약․불능(disability)→사회적 불리(handicap)라는 삼단계 도식에서 장애의 본질과 원인은 결국 개인의 몸이 지니고 있는 손상에 있으며, 따라서 장애인 문제의 해결 역시 이러한 손상을 잘 치료하거나, 치료하다가 안 되면 재활을 통해 소위 잔존 능력을 강화시켜 이루어내고자 한다. 따라서 이러한 장애의 주류적 설명을 장애의 의료모델(Medical model of disability) 혹은 재활모델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장애란 사회적인 것이며 사회적 억압의 한 형태라는 것은 많은 장애 운동 활동가들에 의해 제기되고 주장되어 왔다. 영국의 ‘분리에 반대하는 신체장애인 연합’(UPIAS : the Union of thePhysically Impaired Against Segregation)이 제시했던 장애에 대한 아래의 정의는 이러한 시각을 가장 간명하고도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관점에서 손상(impairment)이 있는 사람들을 장애인으로 만드는 것은 바로 사회이다. 장애(disability)는 사회의 완전한 참여에서 불필요하게 고립되고 배제됨으로써 우리의 신체적 손상에 덧붙여 부과되는 것이다. 즉 장애인은 사회 내에서 억압받는 집단인 것이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체적 손상과 장애라고 불리는 사회적 상태 사이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손상(Impairment)을 사지의 일부나 전부가 부재한 것, 또는 사지, 기관, 몸의 작동에 불완전함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서 정의한다. 그리고 장애(Disability)는 신체적 손상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거의 또는 아무런 고려도 하지 않음으로써, 그들을 사회활동의 주류적 참여로부터 배제시키는 당대의 사회조직에 의한 불이익이나 활동의 제약을 말한다. (UPIAS, Fundamental Principles of Disability, 1976.)


이러한 대안적인 정의는 손상과 장애라는 두 가지 요소에 의해 장애의 사회적 성격을 분명히 드러내어 주고 있다. 즉 하나의 인간학적 속성 내지는 특질(trait)인 손상(impairment)이 특정한 사회적 환경과 조건 속에서 장애(disability)라는 상태(state)로 만들어짐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즉 손상(impairment)―[노동의 상품화, 경쟁과 효율, 개인주의, 물리적․문화적 장벽, 사회적 차별]→장애(disability)의 도식이 형성되는 것이다.
이러한 설명이 얼른 확 다가오지 않는다면 조금 다른 예를 통해 설명을 해보자. 서구 유럽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과 이에 따른 식민 활동이 전개되면서, 아프리카 대륙의 흑인은 19세기 후반까지도 노예로 존재해야만 했다. 즉 그 시대에 흑인은 곧 노예였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흑인이기 때문에 노예가 된 것인가? 노예가 된 원인이 검은 피부색 때문이었는가? 그들은 여전히 피부가 검은 흑인인데 왜 노예가 아니지? 장애의 원인을 육체적 손상에서 찾는 것은 노예가 된 원인을 검은 피부색에서 찾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흑인은 흑인일 뿐이데, 특정한 사회적 관계와 환경 속에서 노예로 존재했다. 동성애는 동성애일 뿐이데, 특정한 사회적 관계 속에서 정신질환으로 취급받았다. 비만은 비만일 뿐이데, 현대의 사회적 맥락 속에서 질병으로 규정된다. 마찬가지로 손상은 손상일 뿐이다. 특정한 사회적 관계 속에서 손상(impairment)은 장애(disability)가 된다! 이는 성(性)의 문제와 관련하여, 인간학적 속성으로서의 섹스(Sex)와 사회적인 성별로서의 젠더(Gender) 개념을 고려한다면, 좀 더 쉽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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