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10년ㅣ03월ㅣ 칼럼] 어떤 이유로도 강요되고 견뎌서는 안 되는 골병

어떤 이유로도
강요되고 견뎌서는 안 되는‘골병’
- 2010년 근골격계 직업병 유해요인조사를 위하여




한노보연 상임활동가 이 훈 구





올해는 근골격계 질환 소위 ‘골병’ 유해요인조사를 하는 해입니다. 이번이 3번째로 사업주는 6월 말까지 조사를 완료해야 합니다. 2004년, 2007년에 이어서 말입니다. 이전에 어떻게 했는지 기억하시나요? 올해 어떻게 할지 계획은 세우셨나요? ‘골병’ 유해요인조사는 2003년 금속 조직노동자들의 집단요양 등 힘찬 투쟁으로 쟁취한 권리입니다. 노동자는 물론이고 사업주와 국가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하다고 공감했기에 법으로 제정한 것입니다. 세상이치상으로도 법적으로도 일하는 이들의 몸이 망가져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골병 유해요인조사를 안할 경우, 산업안전보건법상의 가장 큰 법적책임을 묻습니다. 그만큼 노동자 건강권은 소중한 것입니다. 노동자 건강권은 노동자에겐 삶 자체입니다. 자본에게도 노동자는 돈벌이에 꼭 필요한 존재입니다. 국가적으로도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주권재민의 유력한 주체가 바로 노동자입니다. 때문에 모든 이들이 노동자 건강이 소중하다고들 할 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 도는 이야기는 걱정스럽습니다.
“고용을 지키려면 이정도 쯤이야 견뎌야지, 안 그래?”
“몸이 망가지더라도, 있을 때 확 땡겨야지.”
“너만 아프냐. 일하다보면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
“혹 심하게 아프다면 대충 공상으로 처리하면 되지 뭐!”
“저번에도 한 것 같은데, 뭐 바뀐 게 있어. 이번에도 뻔할 거, 대충해?”
노동자의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현실과 필요가 억눌리거나 왜곡당하고 있는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세상이치가 무너지고, 법적 권리와 책임이란 찾아보기 힘들어 보이는 형국입니다. 말 따로 행동 따로 인 셈입니다. 취지와 뜻은 좋지만 현실이 여의치 않으니 어쩔 수 없고, 너무 원칙만 주장하고 지키려는 것은 현장의 정서에 반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글쎄요?
도대체 현장의 정서는 무엇일까? 노동자의 꿈과 필요를 함께 찾아야지 싶습니다. 노동자의 몸을 멍들게 하는 것들 모두를 속속들이 찾아 나서야겠습니다.
적지 않은 한계가 있긴 하지만, 산업안전보건법 상 자본의 책임이 가장 크다는 것은 노동자에게 매우 중요한 권리라는 의미입니다. 3년에 한번 유해요인조사를 하는 것만이 아니라 유해요인을 발생시킬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하면 수시로 필요에 따라 할 수 있습니다. 노동자의 골병은 늘 발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정기적인 조사를 해야 하는 3년 사이 내내 현장개선은 물론이고 치료와 예방 대책을 실행에 옮겨야 하는 것입니다.
자본의 책임을 명확히 하면서 노동자의 참여를 전제로 하여 골병 유해요인조사를 전개하는 것이 활동의 기본입니다. 골병에 대한 증상조사, 골병을 발생케 하는 유해요인 조사, 치료와 예방관리대책 등 골병과 관련한 전반적인 노동현실을 바꿔나가기 위해서는 어느 누구보다도 현장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노동자들의 참여가 관건입니다. 노조의 사업기획-산보위를 통한 협의 또는 합의-예비조사-본조사-중간발표-최종발표-개선계획안 합의-개선-점검 등 전 과정에 현장 노동자가 얼마나 참여하느냐에 따라, 골병 유해요인조사를 제대로 올곧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참여하는 노동자들의 필요와 꿈을 최대한 수렴하고, 함께 하는 주체로 세우는 과정이야말로 골병 유해요인조사의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실제 제대로 골병 유해요인조사를 하기 녹녹치 않은 현실입니다. 2010년 골병 유해요인조사는 세계적인 경제위기를 빌미로 일할 권리를 협박당하며, 소위 경쟁력 강화와 자본의 돈벌이를 위해 강요당하는 골병에 맞서는 저항입니다. 대부분 노동자들이 생존 그 자체를 위해 스스로 감내하고 있는 골병을 속속들이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조법개악까지 시절이 뒤숭숭한데 뭐가 되겠어?’, ‘현장노동자들이 전혀 움직이지 않으려고 해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냐?’하는 이들이 적지 않아 보입니다. 골병, 정말 견디거나 순응해서는 안 되는 거 아닐까 하면서도 말입니다.
견딜 만하고, 견뎌 내야 하는 골병. TV 유행어인 ‘됐~~~고’라는 말을 하고 싶지만, 쉽지 않아 보입니다. 고용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감내해야 하고, 임금노동을 통해 살아갈 돈을 더 많이 챙겨야 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한 말입니다. 그런 점에서 현장에서 골병을 발생케 하는 노동강도에 순응하는 노동자들에게도 ‘나만 아니면 돼!’라는 태도와 ‘빵꾸똥꾸’같은 요소는 없는지 되물어야지 싶습니다. 빼앗긴 노동과 틀어진 정신 줄 나아가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되찾는 계기로 삼기 위해서는 노동자 주체 내부의 현실 속내에 대한 성찰이 무엇보다 중요하지 싶습니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꼬라지를 볼라치면, 특히 노동자들의 숨, 꿈, 일상 등을 옭죄는 것투성이 입니다. 시절이 하수상하다고들 합니다. 하긴 평안하다고 여길 만한 시절은 없었지 싶습니다.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개인적으로는 집칸이라도 장만하고 먹고 사느냐고 그러했고, 애들이 나보단 더 잘되었으면 해서 그랬고, 부모님 모시냐고 그랬을 터입니다. 눈 뜨고 일어나 출근하기 바쁘고, 골병과 스트레스에 찌드는 노동을 하고 쇠주 한잔이나 수다라도 좀 떨다, 퇴근하면 내일의 노동을 위해 쓰러져 잠자기 일쑤인 대부분의 노동자들의 일상. 가랑비에 옷이 젖듯이, 스멀스멀 우리네 일상사가 되었습니다. 그저 돈이면 다된다고 여기는 세상만사가 우리네 일상을, 숨통을, 꿈을 좀 먹어왔고, 세계 일류국가 운운하며 우리네 노동을 더 앗아갈 요량으로 보이니 참으로 딱하디 딱한 처지입니다.
역사적으로도 2010년 올해는 경술국치 한일합방 100년, 광복 65년, 6.25 한국전쟁 60년, 전태일 열사 분신 40년, 광주민중항쟁 30년이 되는 해입니다. 짧은 시간동안 엄청난 경험을 겪었습니다. 그 경험은 소위 국가발전이라는 명목아래 동원되고 희생을 강요당해 왔던 수많은 민중들의 아픔 그 자체였지 싶습니다. 아픔의 주요한 결과이자 현실 중에 하나가 바로 ‘골병’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사회의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진전을 위해 애써왔던 민중 특히 노동자들의 역사적이고 현실적인 고통 말입니다.
개인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노동자들은 가진 자들의 부와 권력을 위해 희생양으로 희롱당해 왔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나 동시에 억압과 착취에 굴하지 않고 더 이상 병들고 죽지 않고 일할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노동자 건강권 쟁취투쟁을 면면히 이어왔습니다. 지난하지만 정당한 노동자의 몸을 지키려는 저항이 바로 근골격계 직업병 유해요인조사를 법제화한 것입니다. 이윤보다 노동자의 몸과 삶이 중요하다고 온몸으로 저항한 것의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인 것입니다.
전체 노동자의 숨, 꿈, 일상을 관통하고 공감해야 하는 기운은 무엇일까요?
소리 소문 없이 언제 했는지도 모르는 유해요인조사. 노동부 보고용으로 작성하면 되는 유해요인조사. 현장노동자들의 현실과 요구 수렴을 제대로 못하고 전문가들에게 의뢰하는 유해요인조사. 몇몇 담당자들의 활동으로 대신해주는 유해요인조사. 이래서는 안 됩니다. 만성이 된지 이미 오래되었고, 거부하기 힘들고 극복하기에는 너무 힘에 부치는 철의 장막과 같은 현실에 순응해서는 안 됩니다.
골병. 그 원인에 대해 속속들이 들여다봐야 합니다. 골병에 찌들어가는 노동자의 목소리를 드러내야 나눠야 합니다. 노동자의 일상, 꿈, 노동을 꼼꼼하게 살펴야 합니다. 노동자들이 삶의 주인공으로 제대로 숨 쉴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어떤 이유로도 노동자의 몸이 망가져서는 안 된다는 기운이 다수 노동자들의 입에서 입으로 옮겨야 합니다. 노동자의 의연하고 당찬 단결에 기초한 요구와 행동이 필요합니다.
노동자들의 몸과 삶을 지키기 위해서는 ‘골병과 죽음의 현장을 당장 멈춰!’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곱씹어 봅니다. 노동자의 몸과 삶을 지키기 위해 노동자의 정신줄을 올곧게 추스리는 것부터 시작해봅시다. 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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