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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10년 5월-연구소리포트] 현대자동차 영업, 연구 분야 노동자들의 직무스트레스(4)

- 연구 분야 노동자들의 직무스트레스 예방을 위한 제언

 

                                                                                    한노보연 상임활동가  콩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는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의 의뢰로 2007년부터 3년에 걸쳐 《현대자동차지부 판매, 남양 조합원

   직무스트레스 실태조사와 대안마련을 위한 연구》를 수행했습니다. 이 가운데 2007년 제1차 사업주요 결과는 2008년 4월호《연구

   소 리포트》를 통해 소개했고, 이번에는 제2, 3차 사업의 핵심 내용을 간단히 소개합니다. 글 싣는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영업 분야 노동자들의 직무스트레스

    (2) 영업 분야 노동자들의 직무스트레스 예방을 위한 제언

    (3) 연구 분야 노동자들의 직무스트레스 

    (4) 연구 분야 노동자들의 직무스트레스 예방을 위한 제언

 

 

 

- 연구 분야 노동자들의 직무스트레스 예방을 위한 제언


1. 들어가며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 노동자들의 직무스트레스는 과도한 개발기간 단축과 다층적인 과다업무량, 위계적이고 비민주적 운영 및 소통, 업무 책임을 개인에게 할당하는 운영방식, 고과-승진-임금-고용을 통한 일상적 현장통제 등을 통해 형성, 강화되어왔다. 직무스트레스만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과정 전체와 노동자들의 일상이 온통 신차 개발 프로젝트 주기와 경쟁력을 위해 왜곡되어 있는 상태였다(자세한 내용은 일터 2010년 3월호 연구소 리포트 참조).

이번 글에서는 이와 같은 현실 진단을 바탕으로 도출한 결론, 남양연구소 노동자들의 직무스트레스를 예방하기 위한 핵심 실천 과제들을 소개한다. 이 과제들은 곧 직무스트레스를 형성, 강화해온 요인들에 대한 대책이기도 하다. 앞서 ‘영업 분야 노동자들의 직무스트레스 예방을 위한 제언’(일터 2010년 1월호)에서 소개한 것처럼 직무스트레스 예방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직무스트레스의 원인을 개선하는 ‘1차 예방’이다. 즉, 여기에 제시하는 일곱 개의 핵심 실천 과제들이 직무스트레스 예방관리 프로그램의 핵심 요소인 셈이다.

2. 직무스트레스 예방을 위한 핵심 실천 과제


1) 직급제 및 고과제의 폐지와 쌍방향 평가제도의 도입

사측은 남양연구소의 위계적이고 비민주적인 운영 방식과 성과 중심의 고과-승진-임금체제를 이용한 현장통제가 경영목표 달성을 순조롭게 해준다고 믿어왔을 지 모른다. 그러나 이는 겉모습일 뿐, 실제로는 노동자들의 창의력과 열의를 심각하게 떨어뜨리고, 매우 수동적이고 소진적인 노동과정을 초래해왔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 사측이 이런 현실을 직시하고 ‘글로벌 경쟁력’과 ‘신차 개발 일정’을 위해 노동자의 몸과 삶이 훼손되어도 좋다는 기존의 인식을 바꾸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그리고 안정된 삶을 위해, 창발적인 노동을 위해, 미래의 비전과 꿈을 위해 노동자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에 부응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겉만 번지르르한 구호와 선언이 아니라, 구체적인 기획과 재정, 인력을 쏟아야 한다.

그 출발점으로 고려해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직급제와 고과제를 폐지하는 일이다. 이 제도들은 일상적으로 노동의 소외와 소진을 야기해왔다. 그 대신 민주적으로 의사를 수렴하는 과정을 담은 순환 보직제를 마련하고, 성과와 경쟁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예방할 수 있는 연공 서열제를 도입하는 대안을 논의해볼 만하다.

제도를 당장 바꾸기 어렵다면, 우선 형식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평가 제도를 개선하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다. 쌍방향 소통과 공유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고 강화해 나갈 수 있는 방향으로 말이다. 이름뿐인 쌍방향 평가는 의미가 없다. 아무리 아래로부터 의견을 수렴하고자 해도, 조직의 문화와 체계가 권위적 위계질서에 기초해있는 한 현실의 고충을 제대로 드러내기란 불가능하다. 따라서 제대로 된 쌍방향 평가 제도를 정착시킬 수 있도록 익명성을 보장하고, 팀별 평가 대신 평가단위의 규모를 최대한 확대하여 집단성을 확보하며, 평가를 받는 이들에게 불이익을 주는 등급 매기기식의 평가를 폐기하고 내용 중심의 평가 체계를 구축하여 평가에서 제기된 내용은 반드시 민주적 논의를 거쳐 대안을 만들고 꾸준히 개선해나가도록 해야 한다.


2) 적절 인원 충원과 여유인력 확보

신차 개발기간을 줄이는 것은 자동차 산업 자본들의 핵심과제 중 하나다. 현대자동차 자본 역시 신차개발기간을 1980년 7~8년, 2000년 3~4년, 2002년 2년으로 줄여왔고, 2010년에는 18개월로 단축하겠다는 목표를 공언해왔다. 그러나 최근 도요타 사태에서도 알 수 있듯, 이런 무리한 개발기간 단축은 제품의 안전성과 품질을 심각하게 위협할 수 있다. 심지어 도요타의 1/4도 안 되는 인력으로 개발기간을 단축해내겠다며 호언장담해왔던 현대자동차는 오죽하겠는가.

남양연구소 노동자들은 개발기간 단축과 품종 다각화로 인한 업무량 폭증에 시달리는 동시에, 특허 따기, 논문 쓰기, 원가절감 목표량 달성하기 등 수많은 부수 업무들에 치여 살아왔다. 사측이 어떤 목표를 설정하거나 어떤 문제에 직면할 때마다 이를 위해 필요한 온갖 일들을 노동자들에게 하나씩 더해가는 방식으로 대처해왔기 때문이다.

그 결과 개인 업무량은 이제 더 이상 늘릴 수 없을 만큼 한계에 달했고, 업무를 좀 더 효율적으로 배분한다고 해서 해결할 기미도 보이지 않을 정도다. 현재 남양연구소 노동자들이 해내고 있는 일의 양은 현 인원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다. 그런데도 겉보기에는 업무추진에 별 차질이 없어 보이는 이유는 간단하다. 많은 양의 일을 처리하기 위해 업무의 내용과 질을 포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양연구소 노동자들은 ‘심각한 피로를 느끼지 않으려면 31.5%의 업무량을 줄여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한 명의 노동자가 지금 하고 있는 일들 중 3분의 1 정도를 줄일 수 있도록 목표를 설정하고, 그에 필요한 인원을 충원해야 한다. 또한 노동자들은 안정적인 직무교육을 통한 자기계발의 기회를 절실히 요구하고 있다. 사측도 직무교육이나 파견교육을 통해 업무능력을 높이고자 하는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이런 교육을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도록 여유인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렇게 여유인력을 확보해두면 각종 사고와 질병 등 노동재해가 발생할 경우 피재 노동자들의 치료와 재활을 보장하고 동료 노동자들의 업무량 증가를 예방하는 데에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3) 적절한 업무량 실현과 불합리한 업무관행 혁신

신차 개발일정은 신성불가침의 절대적인 잣대처럼 기능해왔다. 그러나 이런 경직성이야말로 내실 있는 신차 개발의 큰 장애물이다. 하늘이 무너져도 몇 월 몇 일까지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강박은 노동자들에게 과로와 스트레스를 강요할 뿐 아니라, 기한을 지키기 위해 제대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다음 단계로 넘어가도 당장 문제가 생기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불합리한 관행을 정착시켜왔다. 특히 일선 중간관리자의 역량과 판단 그리고 업무관행 등이 매우 불균등하여 이런 불합리한 업무관행이 더욱 고착화되어왔다.

이런 문제는 인력충원과 여유인력 확보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사측은 노동자들의 업무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할 수 있는 노동자 중심의 업무가이드라인을 만들고, 그 과정에 현업 노동자들의 의견을 상호 교환하면서 여러 부서와 직종의 공통된 필요를 모아내기 위해 각별히 노력해야 한다. 적절한 업무량을 바탕으로 일하는 이들의 의견에 기초한 업무로드맵을 구성하고, 현장 경험을 통해 꾸준히 개정해나가면서 정착시켜 나가려는 중장기 기획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야 중간 관리자의 역량 불균등과 경쟁적인 부서별 업무관행으로 인한 불합리한 업무관행을 바꿔나갈 수 있다.

현대자동차는 독자적 기술로 LPi 하이브리드 차량인 아반떼 및 포르테 LPi 하이브리드카를 개발했고, 수소연료전지차량을 조기에 실용화하겠다며 친환경 차량 개발에 주력해왔다. 그러나 과도한 업무량과 불합리한 업무관행에 따른 노동자들의 건강과 노동환경 문제에 대해서는 아예 외면하거나 임기응변식 불만해소에 머물러왔다. 친환경 차량 개발 로드맵에 입각하여 새로운 차량을 개발하듯이, 환경안전보건 경영이념에 입각하여 일하는 이들의 안전과 보건을 최우선시하는 업무 로드맵 혁신 역시 시급한 과제임을 사측은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


4) 노동시간 상한제 및 주기적인 휴가 실시

장시간 노동은 직무스트레스를 야기하는 주요 요인이다. 남양연구소 노동자들, 특히 연구직 노동자들이 매우 많은 시간을 일터에서 보내고 있음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지만, 실제로 얼마나 많은 시간을 일하고 있는 지 구체적으로 아는 이들은 거의 없다. 우선 출근 시간을 정확하게 기재하듯이 퇴근 시간 역시 정확하게 기재하여 실제 총 노동시간을 파악하는 일이 시급하다.

그 다음으로는 파악된 실제 노동시간을 법정 노동시간 수준으로 줄여나가기 위한 노사 공동의 노력이 중요하다.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차마 퇴근을 하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많은 현실을 감안한다면, 초기 도입 및 정착과정에서는 현장 노동자들의 동의를 구하여 일정한 강제 조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노사가 합의한 일별, 주별, 월별 상한 노동시간을 초과할 경우 소위 직무스트레스 예방관리 위원회와 같은 노사 공동기구의 논의를 거쳐 초과한 노동시간에 해당하는 만큼 강제로 업무를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 해당 노동자에게 불이익이 없어야 하며, 해당 노동자의 업무하중에 대한 조사를 병행하여 실질적인 업무량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병행해야 실질적인 노동시간 단축을 기대할 수 있다. 실제 남양연구소 노동자들이 경험한 퇴근 버스 막차 배차시간을 앞당겨서 노동시간을 줄이는데 일정하게 기여했던 것처럼, 막차 배차시간을 법정 노동시간을 초과하지 않도록 하거나 연장하더라도 2시간을 초과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일 수 있겠다.

형식적인 리프레쉬 데이(refresh day) 제도는 과도한 업무량과 불합리한 업무방식 때문에 그다지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리프레쉬 데이란 그저 출근을 하지 않고 소진된 노동력을 보전하기 위함이 아니라, 창의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 만큼 몸과 마음의 역량을 재충전할 만한 휴식과 휴가가 되어야 한다.

충분한 휴가 기간을 보장하는 동시에 좀 더 자주 휴가를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글로벌 경쟁력’을 주창해온 현대자동차답게, 휴가 역시 ‘글로벌’하게 1년에 한 달 가량의 안식 혹은 재충전 휴가 제도를 고려해 볼 만 하다. 당연히 이를 위해 충분한 인력과 여유인력 확보, 개발일정 현실화와 부수업무 대폭 축소, 그리고 불합리한 업무관행 개선 등이 수반되어야 한다. 기존 리프레쉬 데이조차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이런 휴가를 누린다고 해서 임금-고과-승진 등의 불이익이 없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며, 자기개발에 필요한 재정지원 등 다양한 지원을 통해 진정한 ‘리프레쉬’를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한편, 부서 회식의 경우 부서 내의 고충을 온전히 해결하거나 친목을 도모하기 보다는 갈등과 고충을 무마하는 도구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이런 회식을 강제하기 보다는, 부서 내 노동자들이 함께 쉬면서 생각을 나눌 있는 여유를 제공하는 공동 프로그램이나 가족이 함께 하는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이 좋다. 본인의 의사에 따라 집단적 프로그램을 이용하거나 개별적 취향과 필요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권한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면서, 실제 프로그램 이용자들의 의사를 수렴하여 꾸준히 개선해나가려는 노력도 중요하다.


5) 보고서 프리데이 혹은 프리 주간 설정과 시행

남양연구소의 ‘업무집중시간’ 제도는 공식적으로 보고서 등을 쓰지 않고 개인 개발에 집중하라는 취지에서 시작된 것이라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시간이 사실상 창의력을 발휘하거나 개인역량을 개발하는 데 활용되고 있다는 평가는 매우 드물다. 업무집중시간이란 다만 각종 회의 등이 소집되지 않을 뿐, 실제로는 밀린 업무를 처리하는데 정신이 없는 시간일 뿐이기 때문이다.

일차적으로는 개인의 업무하중을 실제로 줄여나가는 것이 중요하지만, 이에 더하여 당장 연구소 노동자들이 일상에서 가시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하는 것도 필요하다. 매주 수요일을 가정의 날로 지정하여 운영하듯이, 보고서 없는 ‘보고서 프리데이’를 주 1회 특정 요일에 설정하고, 동시에 월 1주를 보고서 없는 주간으로 설정하는 것 말이다. ‘차를 만들러 왔는데, 보고서만 만들고 있다’는 어느 노동자의 한탄에서 알 수 있듯이, 보고서는 연구소 노동자들에게 일상 업무하중의 상징이다. 이런 보고서에 얽매이지 않는 단 하루의 경험은 노동자들의 만족도를 높일 뿐 아니라, 정말로 필요한 보고서와 형식적일 뿐 무의미한 보고서를 구분하는 잣대를 마련하는 토대가 될 수 있다.


6) 노동자에게 권한부여 및 일상적 참여 확대

앞에서 제시한 실천과제들에는 사측의 인식전환과 조직 및 운영에 대한 혁신, 인적 재정적 투자, 일상적이고 지속적인 개선 등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남양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는 이들의 일상적인 참여이다. 형식적이거나 수동적인 참여는 또 다른 부수업무의 추가로 이어질 뿐이다. 실질적이고 일상적인 참여, 그것이 핵심이다.

제대로 된 참여를 위해서는 그만큼의 권한과 활동시간이 보장되어야 한다. 노동자 스스로 논의와 경험을 통해 ‘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을 피부로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개인, 부서, 센터별로 폭넓게 주체들의 현실과 요구를 수렴하는 과정부터 시작하여, 수렴된 의견이 현실 개선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노동자들이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동시에 아주 작아 보이는 개인의 현실이나 요구들도 실시간으로 수렴할 수 있는 기획이 필요하다. 노동자들이 일상적으로 느끼는 소소한 고충을 그리 어렵지 않게 털어놓을 수 있는 창구 말이다. 현재 사측에서 고충처리함을 배치하여 운영하고 있는 구획, 혹은 노동조합의 소위원(현장위원) 각각이 담당하고 있는 구획 정도의 크기를 단위로 삼아,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소통과 공유의 단위로 삼으면 무난할 것으로 보인다.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최소한 현재 대의원 선거구를 기본적인 소통과 공유의 단위로 삼을 수도 있겠다. 특히 남양연구소 여성노동자들이 겪는 2중 3중의 부담을 귀담아 들을 수 있고 독자적인 개선노력으로 이어 나갈 수 있도록 여성노동자 구획을 별도로 하는 것 역시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각 구획마다 최소한 1명 이상이 주 4시간 이상의 활동시간을 보장받아 노동자 내부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도록 하고, 매달 하루를 정해 구획별 활동주체들이 수렴한 내용을 종합하여 사측과 개선방안을 책임 있게 논의하고, 이를 기초로 분기별 산보위 또는 가칭 직무스트레스 예방관리위원회에서 정례적으로 해결방안을 마련하여 실행에 옮기는 방식의 노동조합 전반적인 기획을 마련하여 실행에 옮겨보자.


7) 소진적이고 대리적인 관행적 현장활동 혁신

노동조합 스스로도 그간의 활동 및 조직운영과 관련하여 성찰과 반성, 혁신이 필요하다. 노동자들이 현장의 주인으로 다시 서고자 하는, 현장 활동의 주체를 형성하는 과제를 중심으로 말이다. 조직 중심의 일체감이라든지, 정책대안에만 중심을 둔 역할에만 방점을 찍어온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전 활동의 패러다임에 입각한 활동방안과 역할만을 고수한다면, 현장의 실질적인 조직력이자 투쟁력인 노동자들을 일상실천의 주체로 올곧게 세우는데 실패할 위험이 크다.

지금 노동조합 활동가들의 최대 고민이자 과제는 현장조직력 강화와 현장 일상활동 강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활동의 기획-논의-조직 및 선전-집행-평가 등 활동 전반에 걸쳐 지향, 필요, 주체, 행동 등 모든 측면에서 이미 현장을 대상화하거나 대리주의, 조합주의, 경제주의적 한계를 넘어서지 못한 채 상당한 시간이 흘러온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지금 집중해야할 활동 과제는 현장의 노동자들의 참여와 권한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현장 직접 민주주의의 실현과 진전, 이를 통한 주체형성이다. 우선 노동조합 내에서조차 담당자별로 역할이 고착화되어온 활동 관행을 바로잡아야 한다. 담당자들의 직함이 아니라 의제에 따라 역량을 집중 혹은 분산하여 배치하고 운영하려는 조직활동의 혁신이 필요하다. 그래야 현장주체형성과 일상현장정치활동의 활력에 기초한 산별건설이라는 조직과제에도 부응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아래로부터의 자발적 일상적 주체적 투쟁을 광범위하게 조직하는 것이다. 현장 주체들에게 그 간의 활동을 성찰적으로 보고하는 것부터 시작해보자. 이는 무너진 신뢰와 왜곡된 관계를 재구성해 나갈 주춧돌이 될 것이다.

한편 조합주의와 경제주의적 활동 관행을 넘어서기 위해 노동과정 뿐 아니라 삶 전반에 걸친 노동자의 필요와 지향에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노동자들의 생활공간이자 일상적 소통 공간인 ‘지역’ 속에 지향, 필요, 주체, 공동행동 등의 자양분을 축적해 나가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살맛나는 일터, 살맛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일터 안에서 노동조합의 이름으로 투쟁하는 것 뿐 아니라 삶의 공간 전체에서 지향과 투쟁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단위 기업 차원의 실천을 산업 차원의 공동실천으로 바꿔 나가고, 이를 다시 지역 차원의 구체적 의제로 공유하고 함께 행동해 나가는 경험을 축적해 나가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하자.


3. 마치며

앞에서 제안한 일곱 가지 핵심 실천 과제에 대해 어떤 이들은 ‘다 옳은 말이긴 하지만, 그게 될 법한 일이냐’며 고개를 젓기도 했다. 그러나 될 법한 일이라는 실제 증거가 있다. 남양연구소 연구직 노동자들과 비슷한 수준의 장시간 노동에 시달려오던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생산기술센터 노동자들이 집단적인 ‘정시퇴근운동’을 통해 해묵은 장시간 강제 노동의 악순환을 멈추는데 성공한 것이다.

정시에 퇴근하자고 했더니 ‘짤리거나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하고 두려워하는 조합원’, ‘일중독이 되다보니 하던 일을 멈추고 집에 가는 것이 맘이 편치 않아 오히려 하소연하는 조합원’들도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하루 이틀 꾸준히 정시퇴근운동을 이어가면서 ‘저녁시간이 생기니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고, 취미 생활을 하거나, 평소 다니고 싶었던 학원에 등록한 조합원들’이 많아졌고(일터 2010년 3월호 현장의 목소리 참조), 두어 달이 흐르자 완전히 정착이 되었다고 한다. 대의원이 나서지 않아도 이제는 조합원들 스스로 알아서 퇴근하고 자신의 권리를 누리는 상태. ‘이게 원래 정상인 건데’, 드디어 정상으로 돌아간 일상.

이제 남양연구소 노동자들도 정상적인 삶, 인간적인 삶을 누릴 차례다. 그 시작을 위해 가장 적절한 시기는 언제나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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