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10년 12월 칼럼] 반올림의 2010년을 돌아보며 2011년을 내다보다!

반올림의 2010년을 돌아보며 2011년을 내다보다!


글 _ 반올림 활동가 이 종 란

뇌종양으로 투병중인 이윤정씨를 만나고 왔다. 항암 치료로 얼굴은 심하게 부어오르고 집에서도 모자를 꾹 눌러쓰고 있는 윤정씨... 1년 시한부 선고라는 청천 벽력같은 소리에도 가족들 앞에서보 조차 눈물을 잘 보이지 않던 그녀가 오늘 코 끝이 빨개지며 눈물을 흘린다. 그러다가 다시 냉정을 되찾는다. “울고 싶지 않아요.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잖아요.”
2010년을 돌아보고 2011년 반올림 활동을 내다보는 글을 쓰려니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반도체 · 전자산업노동자들의 희망을 노래하는 반올림이지만, 이미 저 세상 사람이 되었거나 힘겹게 투병중인 분들에게 희망이란 온전히 자신의 것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3년 동안 쉼 없이 달려온 이유가 바로 이들의 존재 때문이리라. 반올림마저 없었더라면 ‘삼성의 무재해 시계’가 오늘도 진짜인 듯 돌아갈 것이라 생각하니 아찔하기 그지없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앞으로도 반올림은 아픈 노동자와 고통 받은 가족들과 함께 산재인정을 위한 노력, 삼성의 산재은폐에 맞서 진상규명과 산재예방을 위한 여러 활동들을 벌일 계획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돌아보기를 통한 내다보기가 필요하다.

2010년 돌아보기를 통한 2011년 내다보기

행정소송 시작, 삼성의 개입

2007년 6월 첫 산재신청을 한 고 황유미씨를 시작으로 2008년 4월 고 황민웅, 고 이숙영, 김옥이, 박지연씨(모두 백혈병), 이후 송창호씨(악성B세포 림프종)까지 총6명의 혈액암 피해자들이 매우 긴 역학조사 평가와 자문의사협의회,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심사위원회 등 거치며 모두 불승인 판정을 받았다. 이후 피해자들은 행정소송(산재불승인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의 오랜 준비절차(서면공방)를 거쳐 지난 11월 25일 첫 재판이 열렸다. 산재인정을 받기위해 쏟아야 하는 시간은 ‘신속보상’이라는 산재보험 제도의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었지만 더 큰 문제는 삼성의 직접적 개입이다. 10월에 열린 국정감사에서 폭로된 것처럼 삼성의 직접적이고 적극적 개입을 요청한 장본인은 어이없게도 근로복지공단이다. 마치 한 몸통이나 되는 것처럼.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한 행정소송에 삼성은 직접적인 소송당사자(형식적으로는 피고보조참가인 자격이나, 실질적으로 모든 반대서면을 삼성이 쓰고 공개변론도 삼성이 고용한 대형로펌 율촌에서 도맡아 하고 있다)로 참여하여 세련된 방식으로 거짓 진술을 늘어놓는 모습이 피해자들을 더욱 아프게 만들고 있다. 앞으로 두 세 차례의 변론을 거친다고 하는데 1심의 선고가 빠르면 2월, 늦게는 몇 개월은 더 걸릴 수 있다고 한다.

반도체 산재사망노동자 추모주간 - 국제청원운동, 아시아 전자산업 노동자들과 연대

2008년 3월 6일 고 황유미씨의 첫 기일부터 반올림은 삼성본관 앞에서 추모제를 가져왔다. 2009년부터는 매년 3월 6일을 반도체 산재사망노동자 추모일로 정하였고, 올해 2010년은 3월 2일부터 6일까지의 기간을 추모주간으로 정해 여러 의미있는 행사들을 가졌다.
우선 추모주간 선포와 더불어 「삼성의 직업병 책임 인정과 안전하고 인간적인 노동조건 제공을 촉구하는 국제 청원 운동」도 시작되었고 12월 10일 현재까지 한국에서 6,150명, 해외에서 1,500명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서명에 동참하였다. 앞으로 반올림은 ‘시민사회단체 주요인사 선언’ 등을 통해 100만 청원운동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아시아 노동자들과의 연대이다. 대만, 홍콩, 미국 활동가들이 한국에 방문하여 함께 추모주간 내내 함께 하였고, 특히 「아시아 전자산업 노동자들의 현실과 투쟁」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하여 세계 전자산업 주요 생산거점인 한국, 중국, 대만을 중심으로 전자산업 노동자들의 투쟁사례를 공유하였고 국제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자리를 가졌다. 반올림은 이러한 국제연대의 장을 더 확대 할 계획이다.

삼성은 박지연씨 죽음 앞에 사죄하라

3월 31일 삼성반도체 온양공장 검사과에서 일한 어린 노동자 박지연씨가 숨을 거두었다. 고 황유미씨와 똑같이 그녀도 19살에 공장에 입사해 스물셋의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2년여의 고통스런 백혈병 투병생활 동안, 그리고 마지막 눈을 감는 순간까지... 반올림 활동가들에게 그녀의 죽음은 너무 큰 충격이자 깊은 슬픔이었다. 환자복에 마스크를 쓰고도, 대상포진으로 엉망이 된 눈으로 산재인정을 위해 작업내용 하나라도 더 떠올리려 애쓰던 모습, 근로복지공단에게 쓴 호소문... 마지막 순간의 고통스런 모습, 모두 잊을 수 없다. 잊지 않을 것이다. 그녀가 서울성모병원을 떠나 화장장에서 한줌의 재로 변해가던 그 순간, 그녀의 억울한 죽음을 추모하는 작은 외침조차 막아섰던 삼성과 삼성의 하수인이 된 대한민국 경찰을...

피해자 증언대회 ‘삼성은 돈으로 죽음의 진상을 덮으려 하는가’

죽음의 진실을 은폐하려는 삼성의 집요한 방해는 결국 박지연씨와 그 가족으로 하여금 소송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유족은 수 억원을 받고 산재소송을 취하했고 삼성은 유족에게 반올림을 만나지 말고 연락처도 바꿀 것을 요구했다. 지연씨 유족 뿐만 아니다. 삼성은 산재은폐를 위해 고 황유미씨의 부친에게는 10억을 제시했고, 고 연제욱씨 부모님에게도 아들의 죽음을 흥정했다. 삼성이 돈으로 접근한 피해자만 7명이 넘는다. 하지만 진실이 돈으로 막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피해가족들은 용기를 내서 삼성의 회유에 대해 폭로하는 증언대회를 열었다. 그러나 삼성의 산재신청 취하 종용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거기에 근로복지공단은 계속된 불승인으로 삼성에 힘을 보태고 있다.

계속된 집단산재신청과 산재 불승인 문제 국정감사 도마 위에.., 올해 불승인 발판삼아 내년에는 인정기준 개선을 위해 뛰어야

반올림은 올해에도 5월과 7월에 걸쳐 8명의 피해자들이 집단 산재신청을 했다. 삼성전자 반도체, LCD 공장의 직업성 암(백혈병, 뇌종양, 유방암 등) 피해자들이고, 희귀질환(베게너씨 육아종, 다발성경화증 등)피해자들이다. 이미 두 명은 불승인 처분을 받았고, 나머지 6명은 역학조사를 거쳐 근로복지공단으로 넘어갔거나 역학조사 심의 예정 중에 있다.
올 10월 국정감사에서도 삼성 백혈병 산재불승인 문제가 대두되었다. 직업성 암을 비롯한 업무상질병에 대한 근로복지공단의 인정기준이 매우 협소하다는 지적이 3년째 국회에서 계속되고 있지만 사회적 압력이 될 만한 투쟁과 산재인정기준에 대한 획기적인 입법적 전환 없이는 우리의 현실은 지금과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올해, 산재인정기준의 문제점을 파헤치는 발판을 마련하였다면 2011년에는 발판을 딛고 뛰어야 한다.

「2010 반도체노동권을 향해 달리다」 (2010 ‘반달’ 공동행동)

「2010 반달 공동행동」은 삼성반도체 기흥공장과 온양공장, LCD 탕정공장, 천안공장, 하이닉스 반도체와 천안, 청주, 수원, 서울지역에서 진행되었는데 유난히 삼성과의 부딪힘이 많았다. 삼성의 유령 집회신고에 대응하여 법원으로부터 기흥공장 앞 집회허가 가처분까지 얻어냈지만 삼성은 이를 비웃듯 버스로 성벽을 만들었고 수십명의 보안요원을 앞세워 삼성노동자들로부터 우리를 차단시켰다. 삼성 LCD 탕정공장 앞에서 보인 삼성측의 잔인함은... 그 공장에 다니다 작년 7월, 27세로 세상을 뜬 연제욱씨의 첫 기일을 기리기 위해 영정사진을 품고 공장 앞으로 온 연제욱씨의 어머님과 여동생에게 삼성은 댄스음악을 크게 틀어대고 보안요원을 앞세워 가로막았다. 공동행동 마지막 날 고 황민웅, 고 연제욱씨의 추모제에는 울분에 찬 구호가 서울역 광장을 메웠다. “더 이상 죽이지 마라, 더 이상 감추지 마라, 더 이상 상처주지 마라!”

부산, 대구, 전주, 울산에서도 반올림과 함께 했습니다

반올림 활동 3년째를 맞이한 올해는 여기저기서 연대의 힘이 더해졌다. 무엇보다 2009년 충남에 이어 올해에는 부산, 대구, 전주, 울산 등에서 자발적으로 지역 선전전을 진행하고 사진 한 장의 연대, 문화제 등 반올림 활동에 힘을 보태는 크고 작은 실천활동들이 벌어졌다. 내년에 이들과 함께 더 큰 장을 만들어 보아야겠다.

국제반도체 대전과 반도체의 날 “축제를 멈춰라!”

10월 12일부터 반도체 등 30개국 전자산업의 1천여 업체가 참여하는 2010 한국전자산업대전, 국제반도체대전이 한국 일산 킨텍스에서 개최되었다. 'IT's my life'(IT는 나의 삶)라는 슬로건으로 진행되는 반도체 대전의 첫 날, 킨텍스 앞에서는 'IT's my life but broke my life'(IT는 나의 삶이었지만 나의 삶을 빼앗아갔다)는 반올림의 기자회견과 퍼포먼스가 진행되었다.
10월 29일은 여의도 63빌딩에서 한국반도체협회가 주관하는 반도체의 날 행사가 열렸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반도체를 만든 노동자들이 병들고 죽어간 이야기는 없었다. 이에 반올림은 반도체의 날 수많은 이들의 뜻을 모아 100만 명의 청원운동을 전개할 것을 선포하고 정부와 삼성에 요구했다. ‘반도체의 날’ 축제를 멈춰라! 경제성장과 2015비전을 선포하기 전에, 전자산업 노동자들의 직업병과 죽음의 행렬을 멈춰라!

미국 공중보건학회 국제안전보건상 수상

11월 9일 미국 공중보건학회(APHA)에서 반올림 활동가 공유정옥 동지에게 국제산업안전보건상을 수여했다. 추천자 중의 한 사람인 가렛 브라운씨는 수상의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공유정옥씨는 전자산업노동자 뿐만 아니라 금속, 자동차 노동자들과 작업환경개선과 산재보상을 위해 오랜 기간 싸워온 훌륭한 활동가다. 반올림의 활동에 힘을 실어 주고 국제연대를 한다는 의미로 이 상을 수여한다."

2011년, 반올림 재도약을 위한 후원인이 되어주세요.

<일터>를 꾸준히 보아온 독자들은 구석구석 생생하게 기사를 써 온 <일터>로 인해 반올림 활동 내용을 잘 아리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다시 정리해서 보는 게 어떤 의미일지 생각해본다. 아마도 일터 독자들이 반올림 활동의 지지자이자 함께 연대하고 어려움을 헤쳐나갈 동지들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내년 반올림 활동은 초반부터 변화가 있다. 반올림 활동을 전담하는 상근자를 최소 1인에서 최대 2인을 두기로 했고 첫 상근활동가 역할을 담당하기로 했다. 물론 상근활동을 안 한다고 해서 그동안 함께 걸어온 반올림 활동단체와 활동가들이 무심해지거나 역할이 작아지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공동의사결정과 공동책임의 원칙은 그대로 하되, 다만 집행의 효율성을 위해 현실적으로 최소 1명 최대 2명의 상근활동가를 두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래서 감히 제안해본다.
“소중한 활동에 힘이되어 줄 약정 후원인을 모집합니다!”

2011년을 내다보다

2011년 반올림 활동은 올해의 사업을 이어 3월 추모주간 사업과 7월 현장 공동행동, 10월 반도체 대전 혹은 반도체의 날 대응을 이어갈 것이다. 그리고 2010년 물꼬트기를 시작한 국제연대를 더 확장하고 100만 국제청원운동을 실현하기 위한 실천행동들을 계속해나갈 것이다.
제보자가 계속해서 늘고 있다. 삼성 직업병 제보만 현재 100명이 훌쩍 넘어서고 있고 이중 40명에 달하는 노동자가 목숨을 빼앗겼다. 짐작하다시피 숨겨진 피해규모는 훨씬 많을 것이다. 삼성 전자 뿐만 아니라 하이닉스나 다른 전자산업에 종사한 노동자들의 상담도 조금씩 늘어가고 있다. 다행히 2011년에는 ‘전자산업 직업병 전문 연구모임’도 꾸려질 전망이다.
반올림의 투쟁은 무노조경영으로 민주주의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의 건강권마저 파괴해 온 삼성과의 투쟁이자, 공공보험인 산재보험의 존재의미를 되살리는 싸움이고, 날이 갈수록 중요성이 더 해가는 첨단 전자산업 노동자들의 노동건강권 쟁취를 위한 투쟁이다.
반올림 활동 3년을 제대로 평가하고 내년 다시 힘찬 도약을 위해 동지들의 힘과 지혜가 많이 필요하다. 더 긴밀한 연대를 하는 2011년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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