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11년 1월 일터다시보기] 무상의료운동과 복지국가 바람이 분다. 나의 '바람'은?

- <일터> 2007년 7월호 특집에 이어

한노보연 선전위원 송 홍 석


여의도에 복지국가 바람이 불고 있다. 무상급식에 이어 무상의료‘정책’운동이 이를 이끌고 있다. 한나라당의 '박근혜식 복지국가론' 등장에 이어 민주당이 1월 6일 '실질적 무상의료를 실현하겠다'고 밝히면서 새해벽두부터 ‘무상의료’가 정치권의 화두가 되고 있다.
민주당은 1월 6일 정책의총을 통해 "향후 5년간 단계적으로 입원진료비의 건강보험부담률을 90%까지 획기적으로 높여(현행 61.7%) 의료비 본인부담을 10%까지 줄이고, 진료비의 본인부담 상한액을 100만원으로 낮추어 실질적 무상의료를 실현한다"고 당론을 확정한 것이다. 그 세부 내용을 보면, 먼저 건강보험 보장성 획기적 강화방안으로 ▲필수의료 중 비급여 항목의 전면 급여화 ▲간병비 급여화 ▲입원중 소득 보전을 위해 상병수당 지급 ▲차상위 계층의 의료급여로의 재전환 ▲저소득층 보험료 면제 등을 추진하는 한편, 의료비의 낭비적 지출구조 개선 방안으로 ▲포괄수가제(입원)와 주치의제도(외래) 도입, 중장기적으로 총액계약제의 도입 등 진료비 지불제도 개편 ▲지역별 병상총량제를 도입하여 급성기 병상과잉 억제 및 지역간 불균형 해소 ▲지자체의 공공의료기관 설립 유도와 비영리민간병원의 공공성을 강화(지역사회 기여도에 따른 세제혜택) 등을 제시하며 과도한 의료비 지출을 통제하겠다는 것이다. 또 건강보험에 대한 국민참여 확대를 위해, ‘건강보험재정운영위원회’의 가입자의 권한을 확대시키고 ‘(가칭)민간의료보험법’을 제정하여 민간의료보험과의 역할도 분담시키겠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이를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재정을 약 8.1조원 정도로 추계하고, 그 재정 확충방안으로 국고 지원 30%로 확대, 보험료 부과기반 확대 등으로 7.5조원을 확보하고, 고통분담의 최종 단계로 국민동의를 전제로 보험료를 인상하겠다
고 밝혔다.

와우!!! 발표된 내용만 놓고 보면 가히 획기적이며, 그간 진보진영의 정당, 시민사회단체들의 건강보험대개혁방안들이 거의 다 들어가 있다. 노동자가 보아도 진보이고 누가 보수인지 헷갈릴 정도이며, 특히 '무상의료'를 전면에 내걸었다는 점에서! 진보와 보수의 경계를 허물어 버릴듯한 태세이다(민주노동당은 '건강보험 하나로 무상의료 실현'이라는 모토아래 그간 진보진영의 요구를 그대로 담은 관련 입법을 발의한 상태이며, 진보신당 역시 거의 동일한 행보를 보이며, 광범위한 대중운동을 전제로 보장성 강화와 낭비적 지출구조 개혁을 논의하기 위한 사회적 논의기구를 법제화하자는 '특별법'을 준비중에 있다). 이에 대해 진보신당은 '환영하고 감사한다'는 논평을 내고 진보신당이 추진하는 '건강보험 대개혁 특별법'에 함께 할 것을 제안하였고, 진보적 시민단체 역시 환영 성명을 내며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무상의료'가 주요한 정치사회적 의제가 되게 하고, 이후 ‘복지국가’의 사회적 담론을 형성하는 계기로 삼고자 기대하고 있다.

작년 일터 7월호 특집에서는 '건강보험 대개혁 방안'에 있어서 '하나로시민회의'와 '의료민영화저지 범국본'의 서로 다른 입장 차이를 소개하였다.(www.kilsh.or.kr 월간일터 코너 참조) 이후 민주노총은 두 운동진영의 분열, 대립적 상황을 극복하고, 2012년 총선, 대선 시기에 건강보험 개혁, 무상의료 운동의 가시적 성과를 내기 위해 광범위한 대중적 실천운동과 법 개정 운동이 필요하다며 두 운동진영에 '건강보험대개혁을 위한 연석회의'에 함께 할 것을 제안,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이처럼 2012년 총선과 대선을 눈앞에 둔 시점에서 보수건 진보 정치권이든 간에, 진보적 시민사회단체에서 민주노총에 이르기까지 모두 ‘건강보험보장성 강화’와 ‘무상의료’에 조직적 방점을 찍고 있다. 물론 ‘선거’라는 정치적 공간에서 '무상의료'로 표현되는 보건의료서비스의 보편적 권리를 이야기하고, 기업과 정부의 책임 강화를 이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정 정도 의미는 있다. 그러나 딱 그만큼만 의미가 있다. 왜? 자본이 보건의료서비스의 시장 확대를 주도하고 있는 상태에서 ‘무상의료 쟁취’는 선거나 입법·정책 운동으로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무상의료 ‘정책운동’은 내가 바라는 '바람'은 아니다
나는 지난 2년동안 이러한 보건의료운동진영의 한가운데 서 있었지만, 진보정당, 진보적 시민사회단체들의 위와 같은 운동방식, 즉 정책 운동적이고 국회입법 작업 중심의 운동 방식에 많은 회의를 느끼고 있다. 좋은 정책, 정의로운 정책과 이를 생산하는 보건의료전문가들, 그리고 이를 현실화시킬 정당과 국회의원들이 무상의료운동의 실질적 주체가 되는 운동방식말이다. 그 과정에서 노동자서민은 전문가들이 만들어놓은 정책의 홍보대상이 되고, 그들의 욕구와 불만은 서명판 안에 갇혀버리고, 진보정당의 표심으로 제한되어버리고 만다.
보건의료서비스를 자본의 신성장 동력으로 삼는 신자유주의 정부의 각종 의료산업화 정책에 국회만을 바라보는 무상의료 '정책운동'으로 대항해 나갈 수 있겠는가? 민간병원이 절대적 우세를 차지하고 있는 한국적 현실에서 '총액계약제'가, '지역별 병상수 총량제(병상수 제한)'가 입법투쟁으로 가능한 것인가? '주치의 제도'가, '공공의료의 강화'가, '대형병원자본의 영리의료행위에 대한 통제'가 법제도적 틀로 강제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인가. 무상의료운동이 노동자서민에게 베풀어주는 선물과 같은 게 아니라면, 복지국가는 노동자민중들이 쟁취해가는 것이라고 말로만 떠벌리는게 아니라면, 의료민영화 싸움이 단기간에 끝날 성질의 것이 아니라면, 노동자민중을 피동적 참여자로 제한하는 국회 내 투쟁에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지역에서 노동자, 민중이 주체가 되는 새로운 건강권 운동을 만들어 나가자!
그렇다면 무상의료를 '쟁취'해간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무상의료가 아무런 사회적 비용없이 무료로 제공받는 ‘공짜의료’가 아니라면, 그것은 보건의료서비스 생산과 소비, 운영과 관리의 전 영역에 걸쳐 발생하는 일체의 자본주의적 행태들을 거두어내는 과정을 필히 거쳐야 한다. 또한 ‘주체’의 문제에 있어서 그것은 노동자민중이 평등하게 건강을 누릴 권리를 주체적으로 요구하고, 그들을 불건강하게 하는 요소나 현실을 드러내고, 이에 맞서 투쟁하고, 자그마한 승리라도 그들의 요구와 힘으로 쟁취한 건강권을 스스로 향유하고 만끽했을 때일 것이다.
그러니까 사회를 바꾸는 ‘무상의료운동’이 되기 위해서는 노동자민중을 ‘위한' 시혜적 제도와 정책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노동자민중‘이(의)’ 주체가 되고, 노동자민중에 ‘의해’ 관리되고 운영되는 보건의료운동이 필요하다. 과거 '평등사회를위한민중의료연합'의 지향점이기도 하였지만(민의련의 노동안전보건부분은 현재의 ‘한노보연’으로, 공공의약부분은 ‘에이즈인권모임 나누리+’ 등의 현장운동으로 전화해나갔으나 보건의료부분은 그 활로를 찾지 못하고 해체되었다), 이제부터라도 끈질긴 실천으로 만들어나가야 한다.
그리고 그 공간은 구체적 삶의 공간으로서 ‘지역’이 되어야 할 것이다. 또, ‘의료’에 한정짓는게 아니라 '건강'의 문제로 인식과 실천을 넓혀야 한다. 그 지역 노동자서민의 불건강 문제는 무엇인지, 그것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노동자민중과 보건의료·복지·노동안전활동가들이 함께 고민하고 만들어가야 한다. 지역에서 건강권운동의 주체를 만들고, 작지만 소중한 운동의 성과들을 만들고 그 경험들을 축적해나가야 한다. 그들 전문가의 역할은 바로 여기에 있다. 보건의료전문가들이 정책생산자로 자신의 역할과 위치를 한정시켜버리는 것이 아니라, 한편으로 지역 보건의료운동의 활동가로 나설 수 있어야 한다.
공공의료의 양적 확대 이상으로 중요한 것, 그것은 지역주민이 그 지역공공의료기관의 실질적 주인으로 설 수 있게 하는 일, 병원의 돈벌이에 제동을 거는 일들... 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 지속적인 실천으로 하나하나 만들어나가자.

[일터]
태그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한노보연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