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11년 6월- 현장의목소리] ‘인천 신항 파업’으로 구속된 베트남 이주노동자들에게 지지와 연대를

인천 신항 파업’으로 구속된
베트남 이주노동자들에게 지지와 연대를





구속노동자후원회 상임활동가 이 광 열

요즈음 인천지방법원에서는 ‘불법 파업’을 했다는 이유로 구속된 베트남 이주노동자 10명의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5월 26일 처음 재판에 가봤는데, 한 사람만 빼고 죄다 국선 변호사가 변론을 하고 있었다. 변호사는 베트남 이주노동자에게 “다시는 이와 같은 행위를 하지 않을 거죠? 회사에 피해를 끼친데 대해 후회하죠?”, “앞으로 성실한 근로자로서 한국사회에 이바지 할 겁니까?” 이런 질문을 계속 던지면서 “판사님 선처를 부탁 합니다.” 로 변론을 마무리 했다. 곧장 검사의 구형이 이어지고 10명 중 9명의 노동자에게 최고 징역 3년에서 1년까지 실형이 선고되었다. 이를 보다 못한 노동/인권 단체들이 나서서 ‘석방대책위원회’를 꾸렸고, 변호사가 교체되면서 심리가 재개돼 약간이나마 시간을 벌 수 있게 되었다.

파업의 과정
인천신항 공사장에서 벌어진 베트남 이주노동자들의 파업은 지역 언론에서조차 보도된 적이 없었다. 1년여 뒤 이들 가운데 일부가 경찰에 구속되고 나서야 세상에 알려졌다. 그러다보니 파업의 원인과 경과를 파악하는 데 힘이 들었다. 변호사가 입수한 수사기록과 구속노동자들의 짤막한 증언을 토대로 사건의 진실을 조각조각 맞춰 나갈 수밖에 없었다.
인천시 중구 항동 7가 112-10. (주)태흥건설산업은 베트남에서 온 젊은 이주노동자 180여명을 고용해 인천신항 컨테이너 터미널 물막이 구조물 공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베트남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인들이 꺼리는 고층 현장에 투입 돼 콘크리트 타설과 철근, 미장 작업들을 해왔다. 아침 7시부터 저녁 7시까지, 주말도 없이 12시간 주·야 맞교대로 일을 했다. 시급은 법정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4,110원(주말 수당 150%)을 받았다. 하루도 쉬지 않고 한 달 동안 일 해봤자 150만원밖에 안 된다. 그런데도 회사는 힘든 일을 하는 이들에게 점심 식사만 제공하고는 잔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현장에서 먹어야 하는 아침, 저녁 식대는 꼬박꼬박 하루 8천 원씩(월 24만원) 월급에서 공제했다. 식사의 질도 형편없었다. 반찬은 두, 세 가지 뿐인데 늘 그대로였다. 회사는 노동자들의 일과 후 생활까지도 통제했다. 베트남 노동자들은 회사가 얻어 준 모텔방에서 생활했는데, 방으로 술과 음식을 가져가는 것도 금물이었고 친구들이 놀러 오는 것조차 가로 막았다. 하루 한 끼밖에 주지 않으면서 방안에선 음식을 해먹지도 못하게 취사도구를 압수했다. 정말 ‘창살 없는 감옥’이 따로 없었다.

노동자들의 가슴 속에 쌓여가던 불만들이 서서히 집단행동을 통해 나타나기 시작했다. 2010년 5월경 저녁을 먹던 노동자들이 ‘음식이 형편없다’며 단체로 식사를 거부했다. 회사는 요리사를 교체하는 미봉책으로 노동자들의 마음을 달래보려 했다. 7월 9일경에는 21명의 노동자들이 조직과 석식을 무료 제공하고 하루 2시간가량의 식사 시간을 근무시간으로 인정해 줄 것을 요구하며 작업을 거부했다. 회사는 곧바로 이들을 해고했다. 하지만 회사의 강경조치는 노동자들의 분노를 더 크게 자극했다. 7월 22일 6시 47분경 야근을 마친 노동자들이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있었다. 그런데 회사 간부가 들어와 정해진 식사 시간(7시)을 지키지 않는다며 욕설과 협박을 해댔다. 이에 분노한 이주노동자들은 주·야간조 모두 현장을 떠나 숙소로 돌아가 4일 동안 현장에 나오지 않았다. 공사는 중단되었다. 파업은 효과적으로 진행되었지만 이주노동자라는 불안정한 신분에다 노조와 같은 조직체계를 갖춘 것도 아니어서 시간이 갈수록 사측의 회유, 협박에 넘어가는 동료들이 생겨났다. 결국 협상을 통해 어떠한 합의도 이끌어내지 못하고 자진해서 현장으로 복귀할 수밖에 없었다. 파업이 끝난 후 회사는 일부 파업 주동자들을 해고 했고, 노동자들에 대한 감시와 통제를 한층 더 강화된 것으로 보인다.
노동조건은 거의 달라진 게 없었다. 악화된 부분도 있었다. 회사는 교활하게도 점심 시간을 가지고 노동자들을 우롱했다. 종전까지는 점심시간 1시간(12시~13시)을 포함해서 하루 12시간을 근무시간으로 인정해주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방침을 바꿔, 점심 때 12시 30분까지 식사를 마치고 현장으로 돌아와 일을 하면 12시간으로 그러지 않은 사람들은 11시간밖에 인정해주지 않았다.
2011년 1월 9일, 노동자들의 불만은 다시 한 번 폭발했다. 이 날은 일요일 저녁이었는데 일하러 나왔던 콘크리트 타설부 노동자들이 집단으로 작업을 거부했다. 관리 직원들이 황급하게 남아 있는 다른 부서 노동자들을 식당으로 불러 모아 놓고 상황을 설명해주며 타설부 일까지 맡아서 하라고 강요했다. 노동자들은 힘이 들어서 그렇게는 못하겠다며 거부했다. 회사는 어쩔 수 없이 저녁 8시경 모든 노동자들을 식당에 모이게 했고, 한 쪽 구석에서 타설부 노동자 대표들과 협상을 진행했다. 타설부 노동자들은 식사 시간 1시간을 근무시간으로 인정해 줄 것, 일요일은 휴일이니 개인적인 일들을 볼 수 있게 쉬게 해 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권위적인 회사 간부는 ‘일을 하지 않으면 모두 노동부에 신고해서 베트남으로 쫓아내겠다’며 망발을 해댔다. 이 광경을 지켜본 노동자들이 ‘타설부 노동자들을 신고하면 우리도 일을 하지 않고 노동부에 가겠다’고 항의하면서 숙소로 돌아왔다. 이틀 동안 공사가 중단되었다. 결국 2차 파업에서 회사는 노동자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고, 노동자들도 파업을 하지 않겠다는 동의서에 각자 서명한 후 업무에 복귀했다.

검찰과 경찰의 짜맞추기 수사
(주)태흥건설산업은 파업 노동자들을 경찰에 고소·고발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재판 자료를 따르면 지난 해 8월 2일 경기1지방경찰청이 파업 사실을 첩보를 통해 입수했고, 마약범죄 같은 국제적인 조직범죄를 다루는 ‘국제범죄 수사대’가 지금까지 수사를 진행해 왔다. ‘국제범죄 수사대’가 이 사건을 담당한 것도 이상한데다가 수사를 진행한 지 6개월이 지나서야 ‘파업 주동자’(회사가 지목한)도 아닌 노동자들을 10명이나 무더기로 구속하고, 17명을 추가 소환하면서 호들갑을 떠는 이유는 무엇일까?
검찰은 베트남 이주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하지도 않은 채, 예고도 없이 두 차례나 집단적으로 작업을 거부한 것에 대해 ‘불법 파업’이라며 ‘업무 방해’ 혐의를 적용하고 있다. 언제는 이주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어 활동할 수 있게 보장해 주었던가? 회사는 경찰 조사 과정에서 약 11억 900만원의 손실을 입었다고 허풍을 쳤다. 검찰은 이것만 가지고는 중벌을 내리는 것이 곤란하다고 판단했는지, 파업 기간 또는 이후 노동자들 사이에서 일어난 경미한 ‘폭력 사건’을 구실 삼아 “폭력행위 등 처벌에관한법률”(이하 폭처법)을 추가 적용했다. 조직 폭력배를 잡는다는 명목으로 박정희 때 만들어진 폭처법은 한국의 파업 노동자들에게 단골로 적용되는 악법아닌가.

지지와 연대를 호소한다.
이번 베트남 이주노동자들의 파업과정을 살펴보면서 70~80년대 한국 노동자들의 처지가 떠오른다. 사실 그다지 다르지 않다. 이주노동자들에게 노동조합법, 근로기준법은 있으나 마나한 법이다.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수없이 다치고 죽어나가던 한국의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면서 제일 먼저 내걸었던 요구가 점심시간 보장과 식당 밥을 개선하라는 것 아니었던가? 그런데 40여년이 흐른 지금, 한국에 온 이주노동자들이 비슷한 조건에서 온갖 탄압을 받아가며 똑 같은 요구를 내걸고 투쟁하고 있다. 정부와 자본은 이주노동자들의 집단행동이 분위기를 타고 다른 곳으로 전파될까 두려워 ‘인천신항 파업 노동자’들을 무더기로 구속해가며 인권을 유린하고 있다. 국적을 떠나서 노동자라면 누구나 자신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단결해서 투쟁할 권리가 있다. 인간답게 일할 수 있는 일터를 만들기 위해 모든 것을 내걸고 투쟁했던 베트남 이주노동자들의 위대한 용기가 더 이상 편파적인 ‘법질서’의 칼날 아래 짓밟히지 않도록 방어하는 일에 한국의 노동자들이 적극 나서주기를 희망한다. 한국 노동자와 이주노동자들이 함께 연대해서 싸울 때 노동자들의 힘은 더욱 강력해질 수밖에 없고, 권력과 자본도 더 이상 어줍지 않은 분열지배전략으로 노동자들 사이를 이간질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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